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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의 공
알콩달콩 2016-12-24 18:11:17 | 조회: 985

김세윤 교수는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과 성도의 견인이 다 성경적이라고 했다. 심판에 대한 본문은 그 본문대로, 견인에 대한 본문은 그 본문대로 읽고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날 포럼에 참여한 목사들은 그의 강의에 공감을 했다. 어떤 목사는 그 내용을 뉴스앤조이에 기사화하기도 했다. 사실 동기 목사들을 만나면 평상시에 그가 말한 대로 가르치고 있단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교리는 은혜에서 탈락하지 않는 경우와 탈락하는 경우를 함께 담고 있다. 탈락하는 경우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탈락하지 않는 경우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탈락하지 않는 경우를 성도의 견인이라고 했는데, 잘못된 것이다. 성도의 견인은 은혜에서 탈락하는 경우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성경에 있는가? 없는가? 있다. 김세윤 교수처럼 정직하게 성경을 읽는다면 이는 다르게 말할 여지가 없다. 바울 사도조차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은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전 9:27)고 했다. 이는 겁을 내며 벌벌 떠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두려움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빌 2:12).

고전 6:8~11을 보자. 그 의미는 명백하다. 고린도의 성도들 중에 어떤 이들이 불의를 행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다양한 불의의 항목들은 언급한다. 고린도 성도 중에 어떤 이들은 믿기 전에 그러한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때에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삶을 다시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돼지우리에서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 주었는데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는 달리 말할 여지가 없다.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파악되는 것이다.

딤전 1:19을 보자.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면서 어떤 이들이 그것을 버렸고 그 믿음에서 파선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가지라고 한 믿음과 파선했다는 믿음은 같은 것이다. 가지라고 한 선한 양심과 버렸다고 한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르게 볼 여지가 없다. 관사를 사용하고 있다.

성경대로 교리를 정립하면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지 않아도 된다. 교리 때문에 성경의 진술을 저자의 의도대로 말하지 않고 왜곡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 괴롭지 않은가? 박영돈 교수라고 해서 고전 6:8~11의 본문이 칭의된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기술된 것임을 모르겠는가? 그보다 훨씬 공부를 못한 나도 알고 중학생만 되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딤전 1:19의 경우에 관사가 앞에 진술된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데 디모데가 가져야 할 믿음은 진짜 믿음이고 파선했다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가져야 할 선한 양심과 버렸다는 그 양심이 다르다고 말할 여지가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설교를 한다면 양심이 고통스럽지 않은가?

성경의 가르침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전하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힘들지 않다. 노회에 구원론을 다시 살펴달라고 헌의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총회에서 신학부에 연구 의뢰할 것이고 신학부는 교수회에 과제를 할당할 것이다. 김세윤 교수와 같이 정직하게 본문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대로 정립될 것이다.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는 경우가 성경에 없다가 아니라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사역자로 살면서 기존 교리와 내용적으로 다르다고 여겨지는 어떤 본문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아니면 기존 교리에 맞추어 변개하여 말함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양심의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인지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거짓을 전하는 일이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울 수 있는 토양을 갖추게 된다. 지체들이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섬기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는 정직하게 본문을 읽고 본문에서 말하는 바를 전했다. 그날 강의를 들은 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본문을 읽고 전하는 말씀사역자가 되자. 그렇게 말씀을 전파하자. 지체들은 그러한 말씀을 듣자. 양자 모두 그것은 권리이며 의무이다. 미래교회포럼이 한 번의 시간으로 끝내지 말고 사후 조치까지 취하기를 소망한다. 북소리를 냈으면 진군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추신, 바울 사도는 서신서에서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진술하였음에도 성도의 견인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을 잘못 읽은 결과이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행위와 믿음에 관한 진술이다. 신자의 믿음 아닌 모든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고 읽는 잘못이다. 율법 준수로 의롭다함을 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순종이며 불순종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글에서 몇 차례 밝혔다.

2016-12-24 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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