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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한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 (히브리서 12:4-13)
스데반 황 2017-03-19 20:36:45 | 조회: 951

택한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

 

히브리서 12:4-13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지난 주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확증한 자들마다 믿음의 경주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보다 앞서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믿음의 영웅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그들을 기억하면서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때 믿음의 경주는 마라톤 경기라서 경주를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과 또한 우리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완주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히브리서 기자가 알려주는 비결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또한 그 믿음을 완성시키시는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라보라는 원어 (아포라오)는 우리 눈을 그분에게 고정하라는 뜻입니다. 고정한다는 뜻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분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인내로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완주하는 비결입니다.

 

예수님 역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믿음의 영웅들 중에 최고의 영웅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믿음의 경주에서 몇 가지 특징을 언급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에서 십자가를 지나실 때 인내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당하셨습니까? 십자가 다음에 오는 기쁨을 바라보며 감당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기쁨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나면서 당하시는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하고, 예수님의 믿음의 경주의 과정과 결과를 기억하라고 권합니다. 즉,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믿음의 경주를 해야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둘째, 3절을 보면, 믿음의 경주는 마땅히 피곤하고 낙심하게 되는 경주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낙심과 피곤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죄인들로부터 옵니다. 예수님 역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및 로마 군사들에 의해 온갖 수치와 대적하는 일들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개의치 않다는 원어 (카타흐로네오)는 “경히 여기다”, “신경 쓰지 않다”, “내버려 두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주를 달릴 때 반드시 불신앙의 사람들, 깨어 있지 못한 육신에 속한 신자들에 의해 어려움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치나 조롱이나 박해에 대해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즉, 가볍게 여겨야 합니다. 신경 쓰지 말고 믿음의 경주에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과정에서 죄 가운데 있거나 깨어 있지 못한 자들에 의해 반대와 방해를 당할 때 우리의 눈이 여전히 예수님께 고정된 채 그분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곤한 일들과 낙심되는 일들을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눈을 고정하고, 또한 그분의 모든 행적과 인내를 기억하며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온전하게 달리는 비결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경주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지 알려줍니다.

 

먼저 4절을 보면,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신자들에게 당연한 권고를 한가지 합니다. 그것은 죄라는 것은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자들의 발과 온 몸을 얽매는 것이니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조그마한 죄마저 우리를 얽맨다는 사실을 상기 시킵니다.

 

마라톤 선수의 눈에 낙엽 부스러기가 들어갔다고 합시다. 아마 힘차게 달리는 데 큰 지장을 가져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작은 죄 역시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크게 방해합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입니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해 안일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그 누구도 결단코 힘차게 달리는 믿음의 경주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징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게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이 내용을 망각하면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달리다가 크게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에서의 권면을 먼저 인용합니다. 그 인용은 잠언에서 하였습니다. 잠언 3장 11-12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 3:11-12)

 

히브리서는 독자들을 위해 이 내용을 약간 바꾸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그러면서 7절에 보면 징계를 받을 때 그 징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알고 참으라고 말합니다. 인내하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징계의 타당성을 말합니다. 징계의 타당성은 죄를 우습게 여기거나 죄에 얽매여 있는 자녀들을 향해 아버지가 징계함 같이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신의 택한 자녀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아들로 대하시니 어찌 아버지가 죄에 빠져 있는 아들을 징계하지 않겠느냐 만일 징계가 없다면,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니라”

 

이때 징계를 받는 자녀의 합당한 반응은 9절에 보니 ‘공경’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더욱 복종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또한 더욱 복종하며 살려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픕니다. 하지만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공경하고 온 마음을 다해 복종하며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연단을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지 않음으로 인해 죄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녀들은 그 징계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징계의 목적을 아는 가운데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고 합니다.

 

12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죄에 얽매인 상태 및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상태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라톤 경주를 할 때 기진 맥진하게 되면 손을 축 늘어지고, 무릎은 흔들거립니다.

 

“피곤한”으로 번역된 (파리에이미)는 무능한 상태, 또는 포기 상태, 낙심 상태를 의미하고, “연약한”으로 번역된 (파랄루오)는 불구 상태, 마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께 무용한 가운데 아무런 영적인 일들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지닌 상태는 소진되고 좌절된 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달릴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편, 13절은 징계를 받는 상태를 다리를 저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를 저는 상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다리가 아예 고관절에서 빠져버려 영영 불구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라톤 경주는커녕 다시는 달릴 수 없는 불구자가 되어 경주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징계에 대해 바른 자세로 대처하면 저는 다리의 상태가 고침을 받고, 또한 힘차게 다시 온전한 목표를 바라보며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요약하면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는 참 신자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주의 징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주어지는 징계의 목적은 고침을 받아 다시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경주를 잘 달린다는 것은 날마다의 삶 가운데서 죄의 세력에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것은 징계를 받을 때의 우리의 태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공경하는 것이며, 더욱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대 시대는 징계라는 단어에 대해 심한 알레르기를 보입니다. 하지만 징계는 어린이든 학생이든 어른이든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특히 교회가 거룩한 가운데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권징은 필수입니다. 이에 교회의 본질 3가지 중에 징계가 들어갑니다. 바른 복음의 선포,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른 성찬과 세례의 집행, 그리고 교회의 진리 수호 및 거룩을 위한 징계가 그것입니다.

 

물론 징계하는 자들 역시 부패하기 때문에 징계라는 수단을 통해 악을 저지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못된 부모가 자녀를 징계한답시고 자신의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교회도 목사가 맘에 들지 않는 교우를 향해 징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권위에 의한 바른 징계가 시행되지 않으면 죄 많은 상태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더 많은 죄악을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어렸을 때에 징계를 받지 않고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무절제한 사랑이 그 아이를 망친 셈입니다. 징계를 맛보지 못한 자들의 특징은 교만과 방자함입니다. 특히 올바른 권위질서에 도전하는 특징을 한결같이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죄가 전혀 없으셨던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 자신도 순종을 배우셨다는 사실입니다.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히 5:8-10)

 

그러므로 죄 많은 우리들이야 얼마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순종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징계 없이 순종을 배운다는 것은 원래부터 죄인인 우리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가 아닌 자들을 향해서는 죄를 지어도 내버려 두십니다. 심지어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끔찍한 죄악을 저질러도 내버려 두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지 징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24, 26-32)

 

그러나 그들의 종착역은 불못입니다.

[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1:8, 20:15).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주의 자녀들을 향해서는 그들이 죄 가운데 거할 때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 대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가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라”(7-8절).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된 자들에 대해 징계가 주어지는 것이 나타납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1-2).

 

깨끗하게 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즉, 죄에 얽매이지 않고 거룩함의 자유를 누려야 포도나무로부터 영양분을 풍성하게 공급 받으며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잘 익은 열매를 맺어 드릴 수 있습니다.

[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느니라 …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5, 8)

 

이는 우리의 죄악에 대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거룩하여지고 그리고 그 이후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이 땅의 참 교회를 향해 큰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본문도 마찬가지 말씀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안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0-11).

 

연단을 받았다는 것은 원어로 (김나조)인데 체육관을 뜻하는 (짐네지움)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 뜻은 “훈련하다, 절제하는 가운데 반복하여 몸과 마음을 수련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징계를 받는 기간 동안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더욱 영의 아버지께 복종하려고 노력한다면 도리어 그 기간은 영의 체육관에서 영적으로 훈련을 받는 기간이 되어 결국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 복의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정상적인 믿음의 경주를 날마다 힘차게 달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계속적으로 날마다 삶 가운데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의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함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열매이고 평강은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나타나는 우리 마음과 성품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통해 경건의 훈련을 쌓은 자들은 그의 삶이 외적으로는 철저하게 주께 순종하여 의의 열매를 맺고, 내적으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한없는 하늘의 평강을 누리고 또한 동시에 그리스도를 닮는 성품을 빚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복된 참 신자와 어리석은 거짓 신자의 차이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나뉘게 됩니다. 복된 신자는 징계를 받을 때 더욱 그리스도께 나아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반면, 어리석은 거짓 신자는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더욱 주께로부터 멀리 도망갑니다.

[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살전 4:3, 7-8)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주의 자녀라면 주께 사랑의 회초리를 맞을 때 반드시 더욱 그분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거듭날 때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의롭게 됩니다. 이를 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하게 거룩한 생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믿음의 경주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로 그 거룩한 생명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본받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거룩의 근원은 그리스도의 생명이기에 동일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여기서 우리는 칭의와 거룩, 그리고 성결의 관계를 보게 됩니다. 칭의는 객관적인 것이며 그것은 나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오직 하나님의 일입니다.

[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23-26)

 

그러나 우리의 거룩함과 의로운 행실은 거룩한 생명을 받은 자들이 자아를 부인하고 더욱 그리스도를 붙들 때에만 나타나는 열매들입니다.

[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벧전 1:15; 마 5:48; 딤후 2:22, 21)

 

마치 열매가 뿌리에 연결되어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거룩한 성품과 의로운 삶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릴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얽매는 죄를 끊어야 하고, 이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징계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목표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눈을 두었기 때문에 자나깨나 쉬지 않고 주님을 의식하게 됩니다.

[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그러나 거룩하지 않은 삶은 정반대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의식하는 삶이 아니라 쉬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는데 마음이 가 있습니다. 즉, 세상과 사람들을 의식하며 사는 삶을 사는데, 이러한 삶은 멸망을 향하는 삶입니다.

[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를 주 앞에 서게 할 수 있는 완전한 의를 전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의 거룩한 생명을 주어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경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경주에는 영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6-18)

 

이러한 자세를 지니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어떠한 힘든 상황이든, 또한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는 상황이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한 열매들이 맺혀집니다.

[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8-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맏형인 것은 우리가 구원 받은 직후부터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7-18)

 

오늘의 교훈을 마음에 두고 믿음으로 경주를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때 이를 갈거나 하나님을 욕하거나 그 마음에 독을 품게 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에 사용되는 불신자들을 향해서도 용서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죄인들과 마귀가 내게 힘들고 억울하고 피곤한 일들을 일삼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이 모든 징계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사실을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하게 되고 나아가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되면서 우리에게 악과 해를 가하는 불신자 및 깨어 있지 못한 신자들을 향해 예수님처럼 인내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를 생각하라”(히 12:3).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 여러분에게 인생이 남아있는 한 믿음의 경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의 경주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에 얽매여 비참 가운데 서 있는 자녀들을 그 늪과 얽매는 덫에서 끄집어내시기 위한 것이며, 또한 다시 온전히 믿음의 경주를 달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자들은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전 4:6-8).

 

우리 모두가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하기 바랍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대항하는 죄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한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우리를 얽매는데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죄에 대해 징계하여 주신 사실에 대해 도리어 한 없는 감사를 드리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더욱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간섭하셔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고 또한 순종의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날마다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며, 하늘의 평강과 감사가 충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부족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영생을 나누어주는 일에 쓰임 받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 주를 만나게 될 때에 잘 했다 칭찬 받으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고 얽매는 죄악들을 차단하고 더욱 그리스도께 시선을 두고 온 힘을 다해 경주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2017-03-19 20: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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