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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 두 구원, 두 믿음, 두 은혜, 두 칭의
박창진 2017-10-21 08:31:29 | 조회: 334

구원은 죽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거든요. 성경에서 죽음은 두 가지예요.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마 8:22)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인되지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과 이 땅에서 생명이 끝나는 것요. 뒤의 죽음은 영원한 멸망과 연결되지요.

구원도 둘이에요. 앞의 죽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인 구원(엡 2:8)과 뒤의 죽음 곧 영원한 멸망에서 건짐을 받는 것인 구원 곧 영원한 구원(히 5:9). 성경은 둘을 함께 말씀하고 있어요.

앞의 구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 얻게 되죠(요 1:12). 영접함인 믿음으로요. 하나님의 자녀가 돼요. 출생이죠. 거듭난 거예요. 복음을 들을 때에 그 마음을 열어 복음을 따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행 16:14) 곧 은혜의 결과예요. 신자에겐 과거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과거형으로 표현돼요. 구원얻었다(엡 2:8-9). 원어로는 완료를 가리키는 아오리스트인데, 반복되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 표현으론 과거형으로 기술되지요.

당사자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 전적 은혜예요(엡 2:9, 딛 3:5).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고 교제하는 영생(요 17:3)을 주시기로 작정된 모든 자가 예외 없이 다 믿어요(행 13:48). 하나님의 효력있는 부르심(요 6:39-40, 딛 3:5)의 결과로서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해요.

그때에 법정적 칭의가 주어집니다(롬 3:22). 법정적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사함받아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에요.

그 후의 삶은 출생 이후의 성장 또는 성숙과 관련된 것이에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사안이지요.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고요. 그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아요(롬 4:22). 이는 출생과 무관해요. 어떤 상태든지 출생은 불변이에요. 의지하지 않더라도 출생했다는 사실은 불변인 거예요. 일반적으로 이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고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요.

신자에겐 육체의 욕심대로 살지 않게 하시려는 성령의 역사(갈 5:17)가 있어요. 은혜이지요. 이 은혜는 헛되이 받을 수 있어요(고후 6:1). 육체의 욕심으로 거스를 수 있는 것이죠(고전 5:17). 거스르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고 보세요.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은혜를 바르게 받아요. 육체의 욕심으로 거스리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따르는 거예요. 성령을 좇아 행하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돼요(갈 5:16).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세요. 관계적 칭의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요.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원하는 삶이에요.

그것은 영원한 구원을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행위를 따른 심판을 하시는데(계 20:12) 그 결과에 의해 결정되거든요. 성령을 위하여 심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고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어 자기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갈 6:8)는 바울 사도의 진술과 같이요.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순종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곧 의지함인 믿음의 외형화이지요. 의지함인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이에요. 영원한 구원은 의지함인 믿음으로 다르게는 순종으로(히 5:9) 얻게 되는 것이죠. 최종 심판에서 성령을 위해 심은 삶이라고 판정되면 최종적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거예요.

의지하지 않으면 곧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해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라(롬 8:13)는 말씀과 같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에서 천국에서 영원토록 교제하는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곧 은혜에서 탈락하는 것이지요. 사망에 이르는 죄(요일 5:16)를 짓는 것도 한 예고요.

배교(히 6:4-6), 믿음에서 파선하고 선한 양심을 저버림(딤전 1:19), 성전 곧 교회를 더럽힘(고전 3:16), 어미와 음행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정적 범죄(고전 5:5), 윤리적 범죄의 지속(고전 6:8-11),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저버림(마 25:14-30, 고전 9:27) 등이 그 예랍니다.

위의 예시들이 관계 회복인 구원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요? 아니에요. 각각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이거든요. 곧 관계 회복의 구원을 얻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에요. 그런 경우가 아니면 문맥의 내용에 의해 관계 회복의 구원을 얻은 신자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지요.

배교(히 6:4-6)를 생각해봐요. 단어 뜻은 믿음을 배반하는 거예요. 거듭나지 않았으면 해당사항이 없죠. 믿질 않았으니요. 성령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은택은 거듭난 이에게만 주어져요. 성령은 사람을 우롱하지 않으세요. 부르지도 않은 사람에게 착각하도록 일하시진 않으세요.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데요. 배교 전에 새롭게 되었다는 거예요. 거듭난 이에게만 사용되는 표현이죠. 교리에 입각한 선관점을 집어넣지 않으면 그 의미는 자명해요. 시대적 정황도 그래요. 그 시점의 유대사회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핍박받았는데 믿지도 않으면서 핍박을 감수하고 교회의 지체일 이유가 없어요.

김세윤 교수는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과 성도의 견인이 동시적이래요. 정반대의 내용인데도요. 성경이 내용적으로 모순이라는 말이고 영감에 대한 거부죠.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고요. 성경의 가르침은 둘 중 하나예요.

물론 성도의 견인을 말씀하는 듯한 성구(요 10:27-28, 롬 8:33-39, 고전 1:8, 고전 3:15 등)가 많아요. 근데 그 성구들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곧 믿음이 내포되어 있어요. 고전 3:15의 경우는 분파의 상태 곧 사망에 이르지 않는 범죄의 상태에서 심판이 집행될 경우에 대한 기술이에요. 그 시점에선 그래도 불 가운데 받는 것같은 구원을 얻는 거예요. 언급된 성구들은 은혜에서 탈락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은혜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요. 둘이 다른 것이란 사실이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요.

전체적으론 불가항력적 은혜와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죠. 성경에서 두 죽음, 두 구원, 두 믿음, 두 은혜, 두 칭의를 말씀한다는 걸 알게 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이 내용이 성경의 진술과 일치하는 지를 잘 살피시고 성경적인 구원론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삶이 있으시면 좋겠네요. 믿음의 선진들보다 하나님을, 기존 교리보다 말씀을 더 사랑한다면 어렵진 않을 듯요. 어느 정도 용기는 필요할 거예요. 자신이 속한 교단에 이 내용을 평가해달라는 청원을 할 정도의. 혼자 하기 주저되면 몇 사람이 함께 하시면 되겠죠.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환경을 만들면 자신과 지체를 세우는 데에도 훨씬 유익할 거예요. 하나님을 친근히 하며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며 친근히 하는 경외가 더 강하게 이루어질 테니요.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데에도 유익할 거고요. 말씀사역자가 아니시면 이 글을 교회 말씀사역자에게 읽고 평가해 달라고 요청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수용하고 있는 교리를 따라 그냥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고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사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섬기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으니요.

이 글을 읽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곧 믿음으로 다르게는 순종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시길 바래요.

오직 성경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2017-10-21 08: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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