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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다시 새롭게 하여 ~ 없나니
박창진 2018-03-15 20:05:50 | 조회: 405

히 6:6의 한 부분이다.

'다시 새롭게 하여.' 이는 이전에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다. 국어로나 헬라어로나 똑같다.

새롭게 된다. 신약 성경에서 이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거듭날 때에만 가능하다.

본문의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가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그들은 과거에 새롭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다. 믿었다. 믿기 이전의 삶에서 회개한 것이다.
본문 자체에 의하면 다르게 말할 거리가 없다. 전혀.

또한 그들은 배교한 사람들이다.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로 그 믿음을 배반했다. 그 배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죄 가운데 죽은 자가 되었던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 은혜 안에서 새롭게 되었는데, 배교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그 어떤 이유로든지 배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가? 그 시점에서 배교하지 않은 유대인 신자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 시점에 유대인 신자들은 유대사회에서 고통을 겪었다. 유대교에서 파문당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을 붙들고 함께 잡은 손을 놓지 않길 원하셨다. 배교의 파국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인지시켜서 남은 유대인 신자들을 지키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시겠는가? 유대인 신자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엄중하여서 배교가 일상화될 수도 있기에.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본문의 배교는 원래부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단다. '다시 새롭게 하여', '다시 십자가가 못박아'라는 표현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남은 자들이 배교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을 무시 내지 멸시하는 것이다.

배교가 신자완 아무 관계가 없단다. 배교하면 원래부터 믿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럼 신자는 배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무슨 경각심이 생기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경각심을 없애버린 결과 교회역사적으로 배교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위 성구가 원래부터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를 완전히 내팽겨친 악행일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영감론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이 계시하신 바대로 행하시는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다. 배교하면 다시 회개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고선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니 뭐라고 해야 하는가?

성경이 영감되었다는 것은 기록된 내용이 문법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헬라어가 문법에 있어 철저하다. 두 번이나 '다시'를 썼다. 그런데도 원래부터 믿지 않은 사람 얘기란다. '다시'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또는 사용 못하는데 사용했다는 말이다. 곧 성구가 오류라는 주장이다. 영감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몰아가고선 외부적으론 공공연하게 영감되었단다. 이 표리부동을 언제까지 견지하려는 것인지?

교리를 위해, 조상들의 유전을 지키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성경을 왜곡하는 스스로를 한 번이라도 돌아보라. 제발.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서면 어떤 하나님의 판결이 뒤따를 지도 심각하게 재고해보라. 제발.

조상들의 유전이 아니라 성경을 붙들어야 하리라.

첨언

“한 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한 번 비췸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을 듣는 경우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에 다 함께 사용 가능하다. 둘 중의 어느 하나인데, 정확하게 어느 경우인 지는 이어지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맛보았다는 것은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진 않고 듣기만 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은사를 베푸시는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사람을 현혹시키지 않는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거듭난 것처럼 생각하게 역사하지 않으신다. 성령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그러한 역사를 행하신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마시게 하신 사람들(고전 12:13)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이다. 은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택이다(엡4:12).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은 성령의 조명으로 가능하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성령의 조명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작용일 뿐이다. 성령의 조명은 거듭난 자에게만 주어진다. 인간 이성의 작용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본 것이 아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 오는 세대는 완전하게 된 새 언약의 시대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신음하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으로 인해 온전히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시대이다. 바울 사도와 같다(롬 7:25). 이는 성령이 내주하신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복음을 듣고 어떤 이유로든지 교회에 자리를 차지한 이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 상태에서 타락하였다. 배교이다. 배교는 믿음을 배반했다는 뜻이다. 단순히 복음을 듣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였거나 가라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믿음이 없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확증한 것은 배교일 수가 없다. 배교는 믿음을 전제한 경우에만 가능한 표현이다. 이어지는 내용도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구절은 그 위에 내리는 비를 흡수한 땅에서 두 종류의 식물이 나오는 것을 묘사한다. 성경에서 땅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때엔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 비는 땅을 비옥하게 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서 말씀을 상징한다.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이 두 종류의 식물을 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경우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경우이다. 전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사는 것이다. 후자는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다.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그분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그렇게 정반대의 식물을 내고 있다. 전자는 편지가 주어진 그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받아들이고 사는 신자들이다. 후자는 배교한 이들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들은 단순히 복음을 들은 이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들이다. 샘 스톰스(Sam Storms)는 터프 토픽스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땅이라고 주장한다(1). 성도의 견인론자들은 거의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본문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성도의 견인론이라는 선관점에 입각하여 본문을 읽고 거기에 끼워맞추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구도자나 가라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에 여기엔 해당사항이 없다. 가룟 유다가 대표적이다. 예수님이 한 번 목욕하면 다시 목욕할 필요는 없지만 최후의 만찬 때에 앉아 있는 제자들 모두가 목욕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요 13:10). 목욕은 거듭남을 의미하고 목욕하지 않은 이는 가룟 유다이다. 그는 거듭나지 않았다. 사탄에 의해 심긴 가라지에 해당된다. 열 두 제자의 한 사람이지만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거듭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깨닫는 바가 있었겠지만 성령의 조명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 이성의 작용이었을 뿐이다. 그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의 곁을 떠난 것은 배교가 아니다. 그는 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순 없다. 하나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선행되지 않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룟 유다는 애초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배반은 배교가 아니다. 거듭나지 못한 한 사람이 돈을 사랑하여 돈을 얻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판 것일 뿐이다. 원래부터 믿지 않았던 이가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간 것일 뿐이다.

이 부분은 씨 뿌리는 비유(마 13:3~23)와 직결되어 있다. 그 비유에서 씨를 받는 지역은 크게 둘로 나뉜다. 길 가와 밭이다. 밭은 세 종류의 상태로 나뉜다. 그 아래에 큰 돌이 있는 밭과 가시떨기가 나 있는 밭 그리고 결실하기 좋은 밭이다. 길 가는 하나님의 은혜완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고 밭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곳이다. 그 은혜 안에 있음에도 두 부류로 나뉘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와 열매를 맺는 경우이다.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넘어지는 자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는 전자이다.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는 자는 후자이다. 전자는 하나님 편에서 주도하신 최상의 환경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들 포도를 맺은 것과 같다(사 5:1~7).

이어지는 그물 비유(마 13:47~50)도 같은 내용이다. 바다는 세상이고 그물은 교회이다. 예수님이 세우시겠다고 한 예수님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그물 안에 있는 고기는 알곡들이다. 그 중에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있다. 후자는 불 아궁이에 던져진다. 바울 사도가 언급한 거듭났음에도 윤리적 범죄를 지속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신자들은 한 예이다. 포괄적으론 육체를 위하여 심어 자기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된 이들이다.

배교에 대한 기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에 대한 가르침(히 6:1~3) 직후에 주어졌다. 아무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연관성이 있다. 그 초보의 토대를 가진 이들에게서 나타난 모습에 관한 기술이다. 이는 그 시점을 생각하기만 해도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이단시하였다.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 사회에서 배척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때로는 죽음의 위협도 뒤따르는 일이었다. 칼뱅이 살던 시대나 오늘날과는 다르다. 전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도 않았으면서 교회 공동체에 속하려고 할까? 바보거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자명하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진술만큼이나 자명하다. 어떤 전제를 가지고서 그 전제에 끼워맞추기를 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성도의 견인론이라는 안경을 끼고서 그것에 본문을 끼워맞추기를 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그 의미는 분명하다. 성도의 견인론자들은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앞세워 그 의미가 너무나도 분명한 이 구절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다양성은 성도의 견인론이라는 전제를 정당화하였기에 생겨난 해석 때문이다. 잘못된 해석이었던 것이다. 장로의 유전을 앞세워 진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돌이켜야 할 것이다.

1) <터프 토픽스>(샘 스톰스, 장해영 역, 서울:새물결플러스, 2016), 301.

2018-03-15 20:05:50
223.xxx.xxx.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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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 2018-03-24 12:50:29 삭제

예수님 앞의 바리새인들이 님과 같았죠.
전통 하나 믿고선.

pnugoodman | 2018-03-20 23:36:00 삭제

사람인지라
몇 번 기회를 줘도 별 성과가 없으니 버려두는 것이지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네요.

뭐 지적질 해주니 관심받는 것 같아 신나던가요? 딴지 걸어주길 바라는 것은 또 뭡니까?

님은 성경을 볼 때
머리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입히지 말고
하나님이 뭐라 하시는지 듣는 훈련부터 하셔야 합니다.

박창진 | 2018-03-19 15:37:53 삭제

제 글에 성경적 근거 없이 꼬박꼬박 딴지를 걸던 분이 조용하시네요.
위 글에 대해선 딴지 거리를 못 찾으시겠나 보네요.
그렇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쪽으로 변화가 있으시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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