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26 일 03:14
상단여백
토론방
사도 바울이 세우기 원햬던 교회
홍성철 2006-12-20 11:54:58 | 조회: 4235
바울의 교회와 로마 제국의 헬라 도시들의 의회로서 에클레시아

에클레시아 용어의 정의
사도 바울이 사용한 교회 (ekklesia)는 고대 헬라 도시의 국가의 도시 국가(polis)로서 사용되었다. 헬라의 도시 의회는 그들이 모임을 갖기 위해 그들의 신들에게 예배하며 기도하고 모임을 시작하였다. 헬라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인 교회의 용어는 헬라 도시에서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헬라 도시의 법적인 시의회를 말하던 에클레시아는 사도행전 19장 39절에서 에베소 시의회가 지니는 법적인 집회를 말한다. F.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 Literature, the third Edition, p. 303.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 (qahal)을 상징하는 히브리어로 카할 (qahal)은 백성들의 모임와 정치적 단체 (body)임을 의미한다. 헬라어 구약 성경은 셉투아진트 (the LXX)는 하나님의 총회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한다 (신 9:10; 23:3; 사 21:5,8; 미 2:5).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회중인 에클레시아는 땅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 은혜와 진리를 보존하는 것이었으며, 모든 민족들에게 야웨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영광과 진리와 은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였다. Raymond Zorn, Church and Kingdom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 Publishing House, 1962), p. 62; George V. Shillington, The New Testament Church as Ekklesia, Direction (1972), p. 327.

사도 바울의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세상의 미신 종교와 숭배 종교의식과는 전혀 달랐다. 1 세기 당시 많은 종교 사상과 이방 숭배 의식 중에서 예수 운동은 이 종교적 용어인 에클레시아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공동체가 다른 세상적 모임과 종교 사상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K.L. Schmidt, “ekklesia,” TDNT, III, p. 516.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로 사용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유대인의 회당 (synagoge)과 다른 공동체임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회당은 (synagoge) 유대인들이 건물 중심으로 모였고, 회당이란 이름은 유대인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다. C. Coenen, “Church,” NIDNTT. 이것은 예수 운동의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지역에서 건물 중심으로 모이던 유대인의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임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용어를 사용한 교회 공동체는 건물 중심으로 모이고 지역 중심으로 모이는 유대교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회당 중심으로 모이는 유대인으로 불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1세기에 헬라 도시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황제 숭배에 열을 올린 로마 황제와 제국주의 숭배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로마 황제는 헬라 시의회를 제원하고 헬라 시의회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주인과 충성을 맹세하는 보호와 수혜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헬라 도시 시의회인 에클레시아와 유대인의 회당 (synagoge)과 다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임을 차별화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황제 숭배에 지대한 공헌을 하던 헬라 도시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는 분명히 다른 공동체였다.

로마 제국 안에 불법적인 공동체로서 교회 공동체 에클레시아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제국이 인정하지 않은 불법적인 집회와 모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공동체였다. 로마 제국은 네로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모든 백성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로마의 평화를 깰 수 있는 정치적 선동이 될 수 있는 정치적 집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네로 황제 후에 등장한 플라비안 왕조(the Flavian dynasty, AD 69-96)도 불법적이며 자발적인 모임이던 간에 그것들이 정치적 목적이 되어 불법적인 난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집회와 모임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발견된 비문에 보면 어떤 모임과 합법적인 모임도 정치적 목적으로 도시에서 모임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 법령을 위반하는 사람들은 도시 의회에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J.González,‘The Lex Irnitana :A New Flavian Municipal Law ’,JRS 76 (1986)147 –243,here 172, 193 (ch 74).For two parallel Flavian municipal laws,the Lex Salpensana and Lex alacitana , see E.G.Hardy,Roman Laws and Charters (Oxford:Clarendon,1912)61 –118; Justin K. Hardin, “Decrees and Drachmas at Thessalonica: An Illegal Assembly in Jason’s House (Acts 17:1-10a), New Testament Studies (2006): p. 18. .

교회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제국이 인정하지 않은 불법적인 집회였지만 그들은 모이기를 힘쓰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였고, 로마가 인정하지 않은 불법적인 집회라는 정치적인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로마인들이 보고 지방 행정 장관들이 보았을 때, 정치적인 집단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를 주님으로 모시거나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창조하신 우주의 황제로, 그리고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이 볼 때 더 심각한 그리스도의 교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다시 재림하여 온 세상을 신판하고 전복하고 새 하늘 과 새 땅을 준다는 교리는 영원한 제국을 꿈꾸던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로마를 전복하는 공동체의 교리로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인들과 로마 행정 장관들이 볼 때는 그리스도인의 교회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반역과 폭동을 일으키는 정치적 집단과 모임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그런데 1세기 신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 삶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교회인 에클레시아에 모이는 신자들은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모인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모임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순교를 각오하고 교회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를 사모하였던 것이다.

교회의 비유와 그 이미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 이미지를 가졌다. 고린도 전서 3장 1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지니는 이미지를 싸우고 파벌 싸움을 하는 고린도 전서의 상황에서 교회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님이 거주하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교회 그 자체는 하나님이 거주하는 장소이다. 땅 위에서 존재하는 교회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으로 존재하듯이 신약에서도 교회에 함께 하신다 (고전 10:16-17). 세번째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의 연합과 결속을 강조햇다. 교회를 더럽히고, 교회를 나누고, 내부적인 분파를 조성하는 일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맛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후서 6:16-18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임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강조하면서 구약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했다 (레 26:12; 겔 37:27). 그러나 신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과 달리 신약에서는 실재로 그들 가운데 거주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의 특징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세상의 공동체와는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졌다. 바울 사도가 세우기를 원했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인 에클레시아가 그 기반이 된다 (롬 16:5,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 골 4:15,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아킵보 집에 있는 교회: 몬 2).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가정에 모이는 에클레시아가 모여 큰 에클레시아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롬 16:23). 그래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있는 큰 에클레시아를 ‘온 교회가 모여’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교회인 에클레시아를 말할 때 단수와 복수를 사용하여 말한다. K.L. Schmidt, ekklesia, TDNT, III, p. 506.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인 셀 교회가 모였고 한 달에 한번 대 그룹으로 모였다. 초대 교회가 한 달에 한번 큰 모임으로 모였다는 것은 로마 제국이 법적으로 정치적 동기를 가진 모임의 성격을 금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살펴볼 때, 로마 제국의 법에 저촉되는 모임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헬라 대도시에서 사용하는 시 의회의 용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은 빌립보, 에베소, 데살로니가, 골로새, 겐그레아, 고린도, 라오디게아, 그리고 로마의 대도시에 가정 교회들을 통해 사역하였다. 그의 가정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선교를 위해 헌신한 가정 교회의 셀 모임은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배워야 하는 신학적 모델이다. Roger W. Gehring, House Church and Mission: The Importance of Household Structures in Early Christianity (Peaboy: Hendrickson, 2004), 제 4장.

그들은 가정 교회에서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선교하며, 교제하고 봉사하는 기능을 감당하였다. 따라서 이 네 가지 교회의 기능은 셀 그룹에서 존재해야 하며, 셀 그룹에서 선교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성령임의 능력을 사모하는 기도가 있었다. 초대 교회 셀 교회는 단순히 교제하는 모임이 아니라, 선교, 기도, 전도, 말씀, 교제의 공동제적 기능을 함께 수행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가 크던지 작든지 집에서 모이든지 큰 집에서 모이든지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불려진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를 언급하고자 할 때 적은 수가 모여 예배하는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만약 누가 교회를 말할 때 교회당 건물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의 본질과 정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교회를 언급할 때 먼저 주일 날 모이는 예배 공동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먼저 소그룹으로 말하는 교회가 교회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사용하는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고전 12; 롬 12장).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이 머리라고 할 때에는 그것은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며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가진 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담임 목사와 장로가 머리가 아니라, 예수께서 최고의 자리와 위치를 가지고 계시며, 교회의 나머지 구성원은 예수님의 몸의 기능을 감당하는 유기적인 공동체적인 사명과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교회에서 최고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목사와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과 섬기는 집사들은 모두가 예수를 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의 말씀처럼 교회는 다양한 직분을 가지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이 종의 역할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의 도시들의 교회인 모임들을 예배의 공동체일 뿐 만 아니라, 헬라 도시들의 ‘에클레시아’와 견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세상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대안 사회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치적 공동체로서 보았다 (살전 1:1; 고전 11:18; 고후 8:1; 갈 1:2; 살전 2:14; 고전 16:1; 16:19). 8) 게다가 사도 바울은 단수 혹은 복수를 사용하면서 정치적 용어로 알려진 ‘에클레시아’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헬라 도시들과 소아시아에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면모를 가진 범 세계적인 예수 운동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데살로니가 도시가 시이저 숭배 사상에 헌신된 도시였음을 지적한다.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데살로니가 시 의회인 에클레시아가 황제 숭배 사상에 몰두하여 교회가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시의회가 로마 황제의 것이지만, 데살로니의 에클레시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임을 강조한다. Karl Paul Donfried, Paul, Thessalonica, and Early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2002), 제 2장.

사도 바울은 에클레시아는 세상에서 희망을 두고 사는 어떤 조직과 공동체에 대한 대안 (Alternative) 사회인 하나님의 지상 명령의 대행자로 세우기를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 당시 이스라엘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의 창조주인신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백성으로서 에클레시아는 세상이 섬기는 신들을 다른 한 분의 신을 섬기는 예수의 공동체였다. 헬라 도시들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가 그들의 전통적인 신들과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만 섬기는 공동체였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세상에 많은 주들이 있고 많은 신들이 있으나 (고전 8:5), 에클레시아는 예수만 섬기는 공동체이라고 바울 사도는 강조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는 세상의 돈의 신인 맘몬과 권력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

바울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세상과 분리되어 교회 공동체가 결속과 단결을 이루는 공동체임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전 1:10-13)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그와 가치관과는 관련이 먼 결속의 공동체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분열과 파당은 고린도 교회 안으로 부자인 신자들이 들어와 그들이 특정한 사도를 후원함으로 로마 제국의 보호와 수혜의 특별관계가 교회인 에클레시아에서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후에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 와서 그의 사역을 대신하였다.

교회에서 어떤 지도자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로마 제국주의 사회가 표방하고 세상 풍습과 다르지 않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존재한 분파주의나 파당주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래의 모습이 아님을 지적한다.

교회는 세상의 분파주의와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사회였다. 그것은 로마 제국이 말하는 로마 제국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는 우주적 공동체를 말하였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교회는 분열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도구인 하나님의 공동체였다.

교회는 서로간에 다른 교리 차이 때문에 분열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서로간의 교권 획득과 이권 때문에 분열하면 그것은 교회의 몸을 나누는 범죄 행위이다. 그러면 왜 교회는 연합하고 분열하지 말아야 하는가?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사명을 세상 속에서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지상의 대행자이다. 만약 교회가 서로 분열하고 분파를 조성한다면 그 교회는 거룩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의 에클레시아는 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세상의 법정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지 세상이 에클레시아인 교회를 판단하고 재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바울 사도는 역설했다 (고전 6:1-8). 따라서 교회는 재산권 분쟁으로 생긴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세상과 다른 공동체로서 세상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세상이 교회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 사회에서 민주 사회로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교회의 재산권 문제나 경제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나가서 세상의 법정의 판결을 받는 것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과 해결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던 교회인 성도는 예수의 재림 후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판결하는 권위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을 것이라는 유대적 종말론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경제적 문제를 들고 법정에 나가 세상이 교회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16장에서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대안 사회로서 범 세계적 경제적 호혜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조건 없이 연보하여 후원하는 경제적 평등 사상에 입각한 범 세계적인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예수의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했다. 사도 바울이 가난한 성도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도와주는 이런 경제적 호혜 공동체는 로마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온 민족들을 착취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함으로 경제적 부를 이루던 로마가 지배하던 세계적 경제 공동체의 이상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 부자인 교회들은 가난한 나라의 성도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 에클레시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감당하였다. 또한 바울 사도의 에클레시아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 민족들에게 그의 아름다운 빛을 선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드러내는 공동체로 서야 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이다.
2006-12-20 11:54:58
221.xxx.xxx.161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곽창대 | 2006-12-21 16:41:43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섬기는 교회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 되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제 목 닉네임 날짜 조회
공지 자동등록방지를 알려드립니다. (1) kscoram 2014-10-17 26284
공지 게시판에 대한 안내 (1) 코닷 2014-05-28 31272
22 킴스 클럽(Kim's club)화된 도올과의 신학 대 토론회 코닷 2007-05-14 4372
21 가정 교회와 정치 제도 (2) 박창진 2007-05-08 3967
20 논의의 진전을 바라며 (2) 박창진 2007-05-07 3729
19 가정 교회를 논함에 있어서 박창진 2007-05-06 3936
18 부산노회 가정교회 관련 보고서 (3) 황 창 기 2007-04-23 4790
17 결론에 대한 토론 코닷 2007-04-22 3701
16 6. “가정교회”의 위험성에 대한 토론 코닷 2007-04-21 4054
15 5. “가정교회”와 장로교회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토론 코닷 2007-04-21 3973
14 4.1 “가정교회의 개념”에 대한 토론 코닷 2007-04-21 4138
13 부흥을 방해하는 요인 홍성철 2007-04-17 3612
12 담임목사청빙은 광고게시판으로 코닷 2007-02-07 4443
11 바울 복음과 제국의 복음 (1) 홍성철 2007-02-07 3720
10 고 이근삼 목사 유족 위로 예배에 관하여 (3) 김형석 2007-01-29 5107
9 사도 바울이 세우기 원햬던 교회 (1) 홍성철 2006-12-20 4235
8 '지갑속에서 천원짜리 기막히게 찾아내는 성도 김정임 2006-11-17 4850
7 코닷은 뉴스 보도를 공정하게 합시다. (2) 황 창 기 2006-11-12 4080
6 고신 환원을 어떻게 나는 이해하는가? (5) 이세령 2006-11-03 3953
5 '잘못된 해석 또는 설교'란 말에 오해가 없기를.... 황 창 기 2006-11-02 3775
4 코닷컴은 이러지 맙시다! (2) 황 창 기 2006-10-12 4375
3 세상의 성공을 자랑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요? 전기홍 2006-10-12 3821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