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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대 총장 최갑종교수는 알미니안주의 ]
강종수 2016-08-28 21:52:31 | 조회: 2565
[ 백석대 총장 최갑종교수는 알미니안주의 ]


코람데오닷컴에 주장과 논문> 나의 주장에
특별기고: ‘구원론/칭의론, 다시 생각하기’ 라는 주제의 글에 대한
글의 논지와 의도를 곡해하는 분들도 있어 간단하게 해명의 글

[ 성경이 우리의 답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가르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 ] / 최갑종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51


최갑종교수는 서두에, '제 글의 논지는 전통적인 “이신칭의 구원론”을 포기하고,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론에서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1) 본문 ‘아마도 독자들 가운데 “이것이 옳으면 저것은 틀렸고, 저것이 옳으면 이것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저의 “이것도 성경의 가르침이고, 저것도 성경의 가르침이다”는 양면적인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비판/ 흑백논리에 익숙한 사람이라 했는데, 진리의 절대성과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신뢰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교만이나 잘못된 논리가 아닙니다.

확실시하려는 것을 불의하게 여기는 듯한 어조는 최교수가 지닌 성경의 양면적 주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럴 겁니다. 바른 성경관을 지닌 자이므로 최교수의 성경관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동의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2) 본문 ‘더구나 성경으로부터 통일성을 가진 교리를 찾는 조직신학적 관점에 익숙해 있거나, 전통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보려고 할 경우, 저의 양면적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비판/ 여기서 전통적인 조직신학적 관점이라면 칼빈주의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등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인데, 성경을 바탕으로 한 전통 교리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셨네요? 성경 전체를 보지 않고 편협적으로 만든 것이 우리가 말하는 칼빈주의의 조직신학에 나오는 논리들인가요?

그렇게 하는 말로 들리는데, 만약 그렇게 말한 바라면 전통적으로 물려받는 신학과 신학자들은 성경을 볼 때 전체를 못 본 셈이라는 말이고, 이런 말은 거둬들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정통신학자라면 선배들에 대해 할 수 없는 말을 한 겁니다.


3) 본문 ‘논리적으로 수긍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고수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제자도를 강조하는 마태복음서나 신자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읽을 때는,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강조하는 바울의 서신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판(1)/ 물론 성경을 모두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또한 신학의 강조점을 달리 할 수는 있어도(교파신학의 유형처럼) 구원론에 있어서 정통신학을 한 사람이라면 논리적으로 수긍되지 않는 말은 해도 안 되고 논증되지 않은 것을 교리처럼 혹은 교리보다 우월하게 여기며 받아들이는 자세를 고수한다는데, 그야말로 이런 말이 논리적으로 옳은 말입니까?

모르는 것은 모른 상태이지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도가 무슨 뜻입니까? 받아들이려면 어떤 맥락을 따라(혹은 구속사적 해석이라든가) 이해를 기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냥 받아들인다면 보자기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품에 안는다고 가정할 때 그게 순종이라든가 신앙 유익함에 뭐가 있나요?

(2)/ 예수님의 제자도를 강조하는 마태복음이 칭의, 구원문제와 직결이 되나요? 창조에 관하여 말하려면 창세기에서 발췌를 하겠고 종말에 관설해서는 특히 계시록을 주해해야 하겠지요? 칭의와 구원 문제를 놓고 제자도가 여기서 왜 나오나요?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읽을 때는 바울서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행위 강조와 은혜구원 논증이 충돌되니까 살짝 행위만 듣고, 은혜만 듣는 방식으로 성경을 보자는 겁니까? 우리가 언제 바울과 야고보의 구원론에 충돌이 있다고 배웠나요?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바울은 구원의 기획을 말함이고 야고보는 그 구원의 성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구원 얻은 자의 신앙행위의 당연성을 강조한 것이지 상충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행위 이야기 하면 은혜구원 의식하지 않고 은혜구원 들을 때는 행위 강조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면 바울과 야고보가 함께 교수 앞에 오면 어쩔 거에요? 눈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거나 사팔뜨기 할럽니까?


4)본문 ‘저는 이러한 자세가 또한 “오직 성경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가르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는 개혁신학의 원리와도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 믿음의 선조들이 오직 성경으로, 성경이 가자는 데로 가고 서자는 데 선다는 말은 성경의 양면성을 보신다는 최교수의 관점이 아니라 성경이 가자는 대로 간다는 것은 성경구절이 가자는 것을 넘어서서 성경적으로 가고 선다는 말이고 그것은 통일된 성경의 사상대로 가고 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했다가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더라 그래서 가다가 서다가 그렇게 하자는 뜻이 아니지요?


5) 본문 ‘우리가 성경의 판단 자가 아니라, 성경이 우리의 판단 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경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성경 말씀에 경외할 수밖에 없고, 그 말씀에 겸손과 승복할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비판/ 성경 말씀에 경외심을 갖는 것은 나이 드는 것하고 별 상관이 없는 줄 압니다.
성경을 누가 판단하겠어요? 신학적 상식이 아닌 말이고, 성경이 우리를 판단한다는 말은 진리의 보편성이라 그리 말을 안 해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며 성경 말씀에 승복하는 것은 연구할수록 되는 일이 아니라 경건한 자에게 임하는 주의 지혜로 구원사적으로 통일된 영감으로 사모하고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니까 나이와 연구로 인한 본인의 성경관과 칭의해석은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말입니다.

젊어도(칼빈 27세 기독교강요) 지혜로울 수 있고 나이만 들면 늙은이고 어른이 아니라듯 치매가 들 수 있습니다. 방지를 위해 목사 70세 은퇴를 하는 거지요.


6)본문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로의 구원”을 말하는 로마서 3-11장과 갈라디아서 3-4장만이 복음이 아니라,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 및 탈락을 말하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마 5-7장),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비유의 말씀도 복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비판/ 바로 이 본문에서 최교수의 구원관과 칭의론이 드러난다고 보아집니다. 행위에 따라 구원이 탈락된다고 믿는 산상수훈에 대한 주석학적 해석에 문제를 가졌습니다. 물론 마 25장의 해석도 같은 유형입니다.

산상수훈은 어디까지나 믿는 자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훈하신 내용이지 영생과 영벌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잣대가 아닙니다. 선하고 착한 행위에 대한 교훈은 성도의 삶의 영적 원리로서 성화적인 면을 교훈하신 것이지 그런 행위의 잣대로 심판을 하신다는 뜻이 아니지요? 산상수훈이 언제 심판의 기준이 되었나요?

산위에서 교훈하신 바라 해서 산상수훈, 산상보훈이라고 하지만, 우찌무라 간조(무교회주의자이긴 하지만 그의 영감을 높이 평가합니다)가 그의 마태복음 산상수훈에 관해 명칭이 수훈이라 하니 윤리적으로 들려서 천국의 복음, 기쁜 복음이라고 표현하기 원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이 있다면 완성된 복음인 산상복음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산상수훈은 특별히 제자들에게(마5:1) 주신 말씀이지 일반 청중, 그러니까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심판할 잣대로서의 신약적 윤리나 판단의 기초가 아닙니다.


7) 본문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성경에 역시 나타나고 있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 및 탈락”의 메시지를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비판/ 제자도에서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 및 탈락의 메시지가 있습니까? 그래서 행위가 불온해서 유다가 버림 받았나요? 유다는 선택되지 못한 자였고 인간의 편에서 볼 때 회개치 않았지만 실제 그의 인생은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자였습니다(마26:24).

같이 사탄이 들어간 베드로는 고쳐주시고(마16:23) 유다 속의 예수를 팔려는 마귀는 왜 쫓아내지 않으셨는지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선택론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나요?


8) 본문 ‘우리가 정직하게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마태복음 5:20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을 읽는다면,’

비판/ 본문을 읽고 구원의 탈락될 기준으로 보지 못하면 정직하게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겸손이란 아직은 완전한 설명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의 앞뒤 맥락을 해석해서 깨달아야 할 과정도 있고 단순히 구절 단위로 믿는다면서 이단들이 편협된 주장을 하므로 건전한 신학교에서 실수하지 않고 바로 해석하기 위해 공부하잖나요? 아무 구절이나 읽고 믿는다고 하다가 다른 구절과 상관될 듯한 구절에서는 햇갈리므로 신학의 전문성을 준비하고 영감이 있는 분께 배워 가르치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마 5:20의 본문은 사람이 가진 그 어떠한 의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믿음의 의를 비교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과시하는 외식적 행위를 본받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의와 그 교훈을 따라 살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주님의 의와 바리새인들의 의로운척 하는 태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한 신앙을 나타낼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곧 출간되는 저의 마태복음 주해 및 설교 한 부분).


9) 본문 ‘산상설교(마 5-7)의 결론...
혹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나, ...
성경에는 오직 은혜와 믿음에 의한 칭의 및 구원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과 멸망에 관한 가르침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판/ (1)산상설교의 결론에서 말씀하신 바는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의 권위를 따라 살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가 성부하나님과 동일하심이 강조되는 말씀으로, 성경사상대로 행사하지 않은 능력을 나타낸 선지자도 멸망을 받았음을 보였습니다(마7:21-23).

이 말씀이 산상설교의 교훈(?)대로 살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시키시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주의 말씀에 권위로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는 뜻이지 일일이 그리 따르지 않으면 멸망시키려는 총체적 구원의 잣대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2)마태복음 25장에 있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나..도 마찬가지로 비유컨대 성령 없이 믿음 없는 교인은 멸망할 것을 이른 말씀이고 믿음을 지닌 자들의 경각심을 위한 교훈으로 먼저 그 목적을 들어야 합니다.

비유에서 이른 바가 교인 중에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시킨다는 목표가 아니지요. 그러면 어느 정도로 잘 믿어야 탈락이 안 될까요? 안식교에서는 소위 예수가 공중에 이미 재림하셨고, <조사심판>을 하고 계시다 하죠? 마치 조사심판을 하듯이 행위규칙을 정한다면 어느 정도 행동해야 하고 또 내용은 어떤 것이 있나요?

(3)‘성경에는 오직 은혜와 믿음에 의한 칭의 및 구원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과 멸망에 관한 가르침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행위에 따른 심판이라면 이미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신자라도 행위에 따른 심판으로 멸망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결론적으로 최갑종교수는 알미니안주의 신학입니다.


성경은 행위로 구원 얻을 그 어떤 시기나 규율이 주어진 바가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 치면 어떤 행위로 얼마만큼 잘 믿어야 하나요?
신약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요?
......................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신 주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2016-08-28 21:52:31
175.xxx.xxx.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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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세 | 2017-03-19 23:19:40 삭제

이 글을 쓴 사람은 심지어 칼빈주의자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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