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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2)
박창진 2007-10-25 18:58:14 | 조회: 4407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기에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기에 하여야 한다고 하면 안식일을 준수하셨기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행하셨음에도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경우에만 유효하다고 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됩니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새벽에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신 많은 행동들에 대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교회는 성경적인 원리를 토대로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십일조와 안식일 준수 그리고 새벽 기도회 등을 함께 생각하면 어떤 원리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십일조는 예수님께서 지키셨고 지키라고 말씀하셨기에 유효하다고 합니다. 안식일 준수는 예수님이 지키셨지만 지키라고 말씀하지는 않았기에 유효하지 않다고 합니다. 새벽기도는 예수님이 행하셨고 행하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예수님을 본받는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임의로 취사선택하여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명백한 잘못입니다.

안식일 준수에 있어서는 주일 성수로의 대체가 명백하다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의 백성에게 안식일의 완성으로서 주일을 주셨습니다. 초대 교회가 안식 후 첫날, 매 주일 첫날에 공적 예배로 모인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비록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은 따로 없더라도 계시의 점진성을 따라서 교회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옳습니다(상세한 내용은 ‘영광스러운 교회의 회복’ 319-325 쪽에 있습니다). 안식일의 완성으로서의 주일과 그 날에 초대 교회가 공적으로 예배한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임이 분명합니다. 그 당대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주일 성수는 아니었지만 주일을 지키는 것 자체는 사도적인 복음의 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십일조와 연결시켜 십일조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안식일의 완성으로서의 주일과 주일 성수가 명백한 것과 같이 십일조의 완성도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자신이 아닌 지체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사도들은 완성된 십일조를 교회에게 가르쳤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물질을 두 가지 용도로 나누어 말합니다. 씨와 먹을 것입니다(고후 9:10). 먹을 것은 가족들의 생활을 위하여 사용하는 물질입니다. 씨는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어려운 지체들과 불신자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물질입니다. 먹을 것 이상의 물질은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십분의 일이라거나 십분의 이 또는 삼이라는 등의 물질에 비례하는 어떤 기준은 없습니다. 먹을 것 이상의 물질을 씨로 받아들이고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심는 것이 십일조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음을 말하면서 십일조는 교회에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안식일의 완성으로서 주일과 주일 성수가 옳은 것과 같이 십일조의 완성으로서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한 씨가 옳은 것입니다.

이는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면서 십일조가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의 잘못도 동시에 밝히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소득의 얼마를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적정한 수준에서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어려운 지체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는 기준을 정하여 하나님 나라를 구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데 내어놓지 않는 신자라면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성립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십일조의 정신을 살려서 신자에게 물질 사용에 있어서 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전혀 잘못된 논리입니다. 먼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보다 신자의 내면과 형편을 더 잘 아십니다. 사람의 판단과는 비교되지 않게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에게 물질 사용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십일조를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신자들의 모습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소득의 십분의 일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신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는 십일조를 하고서 그것을 만족하며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십분의 일 이상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경우에도 십일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십일조를 하지 않고도 소득의 십분의 일을 훨씬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신자도 있습니다. 많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유럽 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사회 복지와 제 3세계를 돕는 일에 자신들의 소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한국 교회의 신자들보다 훨씬 비율이 높습니다. 바나바가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지체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한 것(행 4:37)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만약 율법의 십일조가 옳다면 바나바가 땅을 파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기업인 땅을 보존하여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희년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을 사도들로부터 듣고 바나바는 땅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 값 전부를 가난한 지체들을 위하여 기꺼이 즐겁게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십분의 일이 아니라 모두를 내어놓은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면서 십일조의 실제적인 사용은 십일조 제정의 목적과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가난한 지체들과 불신자들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십일조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며 십일조를 하게하고서는 그와는 다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말로는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면서 행동으로서는 십일조의 정신을 저버리는 처사입니다. 한국 교회는 십일조가 교회 재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상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제나 선교를 위하여서는 전체 재정에 비해 너무도 적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이 어떻게 헌금하도록 하는 방편으로만 이용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2007-10-25 18: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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