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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4)
박창진 2007-10-28 18:26:29 | 조회: 5227
십일조를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신자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은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유익한 좋은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그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나 목회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옳지 않습니다. 목회는 오직 성경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성경적 원리와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포기하여야 합니다. 성경적인 원리에 일치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습니다. 오직 성경적인 원리 곧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십일조를 법으로 가르침으로 인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형편에도 십일조를 하고서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이 적지 않습니다. 생활이 힘든 부녀가 칠십 오만원의 월급을 받고서 칠만 오천원의 십일조를 하는 모습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수는 없다는 자세로 굳이 십일조를 합니다. 물론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원함으로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에 대한 이제까지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북한 정권 하에서 주민들이 자원하여 즐겁게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원하여 즐겁게 하더라도 잘못된 원리에 기초하여 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일 뿐입니다.

제대로 공부를 한 신학자들이라면 바른 신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십일조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침묵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신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세우는 좋은 전통은 오직 성경적 원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전통이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강조하며 시행되는 한국 교회의 전통은 좋은 전통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유럽 교회의 전통이 좋은 전통입니다.

십일조의 유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 재정의 확보에 있어서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인데, 교회로서의 사람들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는 재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재정의 확보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십일조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십일조를 하는 신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돈에 대한 나름의 신앙고백을 한다는 유익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교회가 십일조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시대에 유대인 교사들은 좋은 마음으로 이방인 교회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이 선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우는 행위로서 범법자가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갈 2:18). 십일조의 유용성을 앞세워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은 율법의 유용성을 앞세워 율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방편으로 제시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원의 방편으로 제시될 때에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율법 준수 요구가 범법 행위가 되는 것은 구원의 방편으로 제시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떤 전제를 달든지 달지 않든지 간에 그러한 요구 자체가 범법 행위가 되었습니다. 십일조도 원리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교회에서 헌금의 한 항목으로 십일조를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심에 대한 감사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십일조는 선교 헌금과 같은 비중의 헌금의 한 항목일 뿐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법일 수는 없습니다. 선교 헌금을 신자가 자신의 신앙 양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는 것과 같이 십일조도 자유롭게 하여야 하는 헌금의 한 항목일 뿐입니다. 그리고 선교 헌금이 선교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것과 같이 십일조는 가난한 지체들 나아가 불신자들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다른 재정 사용을 최소한으로 하고 구제에 최대한으로 힘을 쏟는다면 한국 교회의 선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복음화를 이루는데 훨씬 강한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07-10-28 18: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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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창 기 | 2007-11-02 13:44:22 삭제

'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제목이 좋습니다. 즉 어느것이 더 성경의 가르침이냐에 대한 노력은 계속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하고 다르다'는 식으로 '성경'보다 '우리'를 표준삼는 일은 지양하고, 성경에 충실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같이 어울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목사님의 노력도 대단하지만, 용기도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말 잘못하면 '잡혀 들어가는'[?] 경직된 교계 현실에도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담력말입니다.
1975년에 나온
Van Til 박사 회갑 논문집[?]인 Jerusalem and Athen에도 '십일조 yes, 십일조 no'라는 입장의 두 논문이 포함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전통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박창진 | 2007-11-02 11:44:48 삭제

참여에 감사를 드립니다.

구약 시대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에 의해서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십일조를 정해 놓고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약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대로 그냥 마음에 정한 대로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외함의 진정한 표현을 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유럽 교회 화란의 개혁교회의 경우에 십일조를 하지 않지만 한국교회의 성도들보다 헌금의 비중은 더 높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훨씬 많은 비중의 물질을 내어놓습니다.
그것이 성도를 바르게 섬기는 목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한다고 다 허용되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 곧 성경적 원리를 따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결정되어져야 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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