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10 화 08:14
상단여백
토론방
[난제해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까? (성부의 이름이나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되지 않습니까?)
PAUL 2018-05-21 08:13:50 | 조회: 525
[질문]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나요?


[난제가 되는 이유]

이 질문은 아주 쉽고 단순한 질문인 것 같지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을 경우에 당황하여 선뜻 클리어하게 답변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그것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믿음이 없어서 회의적인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질문에 선뜻 간명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는 한마디로 성경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항상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성경적인 논리로 즉시 답변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성경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까 평신도들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이 될 것 같지만, 신학도 성경을 소스(source)로 해서 체계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쉬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질문은 어느 교회 제자훈련반에서 있었던 질문으로 제자훈련 담당 목사님과 교역자들이 선뜻 답변하지 못해서 당황했던 질문이라고 합니다.


[해석방법론]

그러므로 이 질문은 성경을 소스(source)로 해서 체계화한 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쉬운 문제가 됩니다. 우선 신론에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와 인간론에서 인간의 구속과, 그리스도론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중보)을 이해하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질문한 사람이 평신도인 것 같은데, 우선 상식적인 선에서 하나님(아버지)과 예수 그리스도(아들)와 인간(죄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면 되고, 좀 더 신학적으로 이해하면 쉽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청난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신학적인 내용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답변과 해석]

1.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1) "예수의 이름"의 명칭의 의미에 대한 이해

성경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데, 성경에서 “주”(Κύριος))라는 이름은 구약에서는 메시아(Messiah)를 예시하는 여호와(Jehovah) 즉 야웨(YHWH)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합성어로서 “주 여호와”로 부르기도 합니다. 구약(OT)에서 “주 여호와”로 부르는 것을 신약(NT)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르기도 하고, 그냥 “주”(Lord)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름의 변화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구속론 적인 차원에서 이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은 “주 여호와”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르지만, “주 예수” 혹은 그냥 “예수”(Jesus)로 불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신⦁구약 관계에 혼선이 없기를 바랍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경적 언급에 대한 이해

우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 14).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행 4:30).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구약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 “주 여호와”는 신약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음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8).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왕상 18:24).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2.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

비유로 말하자면, A라는 사람이 은행의 계좌를 개설했다면, 당연히 A의 이름으로 돈을 청구해야만 은행에서 돈을 내주지만, 만약에 A가 B라는 사람에게 위임하여 B의 이름을 등록시켜주면, A의 이름이 아니라도, B의 이름으로 돈을 찾을 수 있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아버지(A)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B)에게 권세와 모든 것을 전적으로 위임하셨기 때문에(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A의 이름(하나님 아버지)이 아니라, B의 이름(예수 그리스도)으로 간구하여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부자관계뿐만 아니라 신임이 돈독한 관계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폭적으로 모든 권한을 위임해야 하는 절대적인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냥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무조건 위임하신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로 빈틈없는 율법(그리스도의 율법)을 적용하여 이행하는 조건하에서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그의 이름(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그 조건을 철저하게 지켜서 완성하신 공로를 인정하시여 성령으로 인을 쳐서 사인(sign)을 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고 했습니다. 다시 간단히 말하자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의 계약은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을 지키셔서 메시아로서의 임무를 완수하시는 조건으로 모든 권세를 예수의 이름에 위임하신 것입니다.

3.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무슨 관계이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셔서 바로 그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도록 하셨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론적 관계(신분)와 하나님과 예수님의 계약적 관계(사역)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신분관계와 계약관계를 의미합니다.

(1)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존재론적 관계 (본체론적 삼위일체 존재관계, Ontological Trinity)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Trinity) 관계는 성부(Father), 성자(Son), 성령(Holy Spirit)께서 동일하신 한 분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본질에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볼 때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같은 분으로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보면 스스로 계신 분(I AM THAT I AM)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보다 높은 분이 없으므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서도 하시고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시게 됩니다(히 6:13). 이러한 경우에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의 이름” 신약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게 됩니다.

(2)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계약적 공동사역 관계 (경륜론적 삼위일체 관계, Economical Trinity)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에 성부, 성자, 성령의 각위(each person)에 따른 역할(role)을 분담해서 하시게 됩니다. 물론, 삼위께서 모든 일에 상호 내적 교통(intra communication)을 통하여 신의 회의(The Divine Counsel; The Counsel of God) 차원에서 의논하시고 사역을 하시기 때문에 삼위가 일체로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 중 구원의 계획은 성부 하나님께서 하시되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의논해서 실행하십니다. 이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하시되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의논해서 하시며, 인간에게 구원을 적용하시는 사역은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의논해서 실행하신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의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에게, 성자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에게 사역의 바통을 넘기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 원리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에게, 성자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에게 나머지 사역을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요 14:26; 15:26). 그러므로 요한이 말한 대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모든 일을 자기 혼자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요 8:16, 29; 16:32).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여 그의 이름 즉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두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원리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그러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위임하심으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서적, 신학적, 그리고 교회전통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성경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1) 구약(왕상 18:24; 욜 3:32)과 신약성경(행 2:21)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4:13~14; 요 15:16).
(3) 사도들이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행 4:30).
(4) 오늘날도 성경과 교회전통에 따라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 신학적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특히 성자(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보아
(2)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전권을 위임하셨기 때문에.
(3) 예수님께서 자기의 이름(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4)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에.

THE END

REV. PAUL B. JANG
e-mail: revpauljang@hotmail.com
website: www.mission4.org (한글)
website: www.usmission4.org (영문)
2018-05-21 08:13:50
107.xxx.xxx.180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번호 제 목 닉네임 날짜 조회
공지 자동등록방지를 알려드립니다. (1) kscoram 2014-10-17 26132
공지 게시판에 대한 안내 (1) 코닷 2014-05-28 31113
423 [난제해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을 복수(우리)로 표현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창 1:26-27). (1) PAUL 2018-07-10 814
422 [난제해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불의한 자”(the unrighteous)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고전 6:1-11) (2) PAUL 2018-06-30 815
421 "님의 구독신청"에 대한 질문 (1) GFSS 2018-06-12 425
420 [난제해설] 성경에 근친상간(incest)과 같은 성범죄를 범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주고, 그의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고전 5:1-5) PAUL 2018-05-25 822
419 [난제해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까? (성부의 이름이나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되지 않습니까?) PAUL 2018-05-21 525
418 [난제해설]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한 삼분설(세대주의 입장)과 이분설(개혁주의 입장)에 관한 성서적, 신학적 이해 PAUL 2018-05-12 1017
417 [난제해설] "견고한 영생"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이해 (성도의 한번 구원은 영원한가? 아니면 잠정적인가?) PAUL 2018-05-08 520
416 가정교회와 장로교 (10) 정주채 2017-09-22 1372
415 코닷 편집진은 다양한 상정안건을 다루어 주세요 (1) 소리지르는돌 2017-07-29 671
414 부교역자의 정규직화를 서둘러야 합니다. 강믿음 2017-06-20 801
413 불건전한 집단에 고신 교수가 갈 수 있는가? (1) 강종수 2017-01-07 1776
412 이신칭의 즉 이신과 칭의 김반석 2016-12-27 1209
411 [난제해설] 천국에서의 상은 단지 구원을 의미할 뿐,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받는 상은 없다? PAUL 2016-11-20 2440
410 과연 총대자격을 박탈할 것인가? 바나바 2016-09-28 1468
409 "You Raise Me Up(유 레이즈 미 업) 특송 가능한가요? 하늘의 왕자 2016-09-27 1764
408 고려신학대학원의 역사 바로잡기 바나바 2016-09-26 1172
407 칭의론에 대한 흔한 오해 (1) 이상엽 2016-09-09 1243
406 [ 백석대 총장 최갑종교수는 알미니안주의 ] (1) 강종수 2016-08-28 2582
405 기도문 정의 2016-08-28 1070
404 총회 상정안건을 보다가 바나바 2016-07-26 1746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