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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해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불의한 자”(the unrighteous)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고전 6:1-11)
PAUL 2018-06-30 23:40:39 | 조회: 815
[질문]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불의한 자”(a[diko", the unrighteous)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고전 6:1-11)

[난제가 되는 이유]
이 구절의 해석에서 난제가 되는 이유는 “불의한 자”(a[diko", the unrighteous)에 대한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본문에서 “불의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정의를 하지 않는 채, 본문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본문에서 “불의한 자”에 대한 죄목들을 음란과 우상숭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열 가지 죄목들로 열거하고 있다. 물론, 이 열 가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고전 6:9), 본문에서 지적하는 “불의한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고전 6:10). 그런데 이 “불의한 자”가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라는 것이 난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 성도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성도들도 자신들의 이러한 불의한 행위로 인하여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새 관점학파(new perspective school)나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견해가 옳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해석 방법론]
본문에 언급된 성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들이 자신들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다시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가? 물론 본문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5세기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 그리고 중세이후 종교개혁시대의 칼빈과 알미니우스 논쟁, 더 나가서 주후 1618년의 돌트회의(Synod of Dort)에서 칼빈주의와 극단적인 알미니안주의인 항론파(remonstrant)의 논쟁을 거쳐 오늘날에도 역시 두 가지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신학계나 교회에서 성경해석의 차이로 정반대의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죄의 종류와 성격 그리고 그 결과와, 실천신학적으로 목회현장에서 발생하는 죄의 분석과, 구원론적으로 회개와 사죄의 원리로 접근해야 본문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성경해석의 원리에 따라 본문(text)의 문맥(context)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그 정황(situation)을 이해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배경(settings)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본문에서 말하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heritance)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답변과 해설]
물론 이 말씀도 이해하기가 까다로운 말씀 중의 하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신학적인 툴들(tools)을 가지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은 조직신학적으로 인죄론과 구원론의 지식을 통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인죄론에서 죄의 종류, 성격과 그 결과, 그리고 구원론에서 사죄의 원리로 회개할 수 있는 죄와 회개할 수 없는 죄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베드로가 말한 것과 같이 대단히 난해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벧후 3:15-16) 주의해야 하며, 이러한 난구들(difficult phrases)은 성경해석학과 신학적인 툴들(tools)을 사용해야 풀리는 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1) 본문의 배경, (2) 본문의 분석, (3) 조직신학적인 이해, (4) 주경신학적인 이해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석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 본문의 배경 (The Settings of the Text)
본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상적인 문제인 송사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의 성도들 사이에 발생한 소송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송사사건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형제들 간의 송사행위가 불의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고전 6:7-8). 성도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송사건에 대하여 바울은 교회와 세상, 성도와 불신자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여, (1) 성도들 간의 쟁의는 불신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 (2) 성도들 간의 쟁의는 교회 안에서 해결하라, (3) 형제간의 송사사건을 불신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은 불의한 자로 정죄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한 사건(송사사건)을 기초로 하여 구체적으로 연속되는 불의(죄)들로 발전시키고, 시편 51편에서와 같이 이를 영적으로 승화시켜서 죄의 본질과 근원을 추적해들어 간다. 이렇게 하여 구원과 멸망의 원인이 모든 죄(자범죄)의 근원이 되는 원죄에 결부되어 있다는 원리에 의거하여 이러한 불법을 행한 자를 “불의한 자”로 정죄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앞에서 언급한 죄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도 멸망(perishment)에 관련된 심판과 교회에서의 출교(excommunication)를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에 교회에서의 심판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궁극적인 구원(영생, eternal life)을 받지 못하는 경우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 특히 이단자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중생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징계(교회의 권징)를 의미한다.

본문은 불의를 송사사건으로부터 출발하여, 음란과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람, 술 취함, 후욕, 토색 등의 죄목들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귀납법(inductive method)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범죄를 행하는 자들이 곧 “불의한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연역법(deductive method)으로 말하자면, “불의한 자”가 이러한 죄를 범한다 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판단이 달라진다. 칼빈주의에서는 “불의한 자”는 이러한 죄들을 범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러한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알미니아주의에 의하면 이러한 자는 궁극적으로 구원얻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이라도 위와 같은 불법을 행할 수 있으며, 그러한 불법을 행하게 되면,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멸망 받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주의의 오대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 중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와 “성도의 견인”(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거부한다.

2. 본문의 분석 (The Analysis of the Text)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본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본문의 문맥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내용으로 분해할 수 있다.

(1) 성도들의 송사사건을 불의한 자들에게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하여 책망한다(고전 6:1; 6:14; 6:6).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하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 6:1).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고전 6:4).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고전 6:6). 형제들의 송사를 불신법정에서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2) 성도가 세상과 심지어 천사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전 2-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전 6:2),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고전 6:3). 그런데,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 6:5). 이 분분은 성도들의 분별력에 대하여 고린도교회를 책망하는 것이다.

(3) 성도들 간의 피차 송사하는 것은 불의로 차라리 불의를 당하여 속는 편이 낫다고 권고한다(고전 6:7-8).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 6:7).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고전 6:8). 차라리 믿음으로 손해를 보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4) 이러한 행동을 하는 자들은 “불의한 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심각한 자범죄들을 열거하고 있다.

(5)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결론을 내린다(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불신자에서 성도로 변화된 증거를 말하고 있다.

위의 분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의 키워드들(key words)이 바로 (4)항과 (5)항에서 발견된다.

3. 조직신학적 이해 (Theological Understanding)
성경을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충분한 신학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위의 본문에서는 특히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조직신학적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신학적으로 목회학적인 교인관리(people management)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신학적으로 범죄와 구원의 문제, 그리고 목회학적으로 권징의 문제를 성서적으로 정확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1) 인죄론 (Anthropo-hamaltiology)
조직신학 인죄론에서 인간의 죄에 관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조직신학적으로 인간의 죄를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해서 다룬다. 첫째가, 원죄(peccatum originale)로 우리 조상 아담이 지은 죄로 이 원죄를 우리가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 죄로 멸망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멸망 받는 것(지옥에 가는 것)은 바로 이 원죄 때문이다. 둘째가, 자범죄(peccatum actuale)로 이 죄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스스로 범하는 죄를 말한다. 이 자범죄는 원죄의 영향력이 육신에까지 완전히 오염되었기 때문에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피할 수 없는 죄로 육신이 죽어야 그 굴레에서 벗어나 영혼의 성화가 완성된다(히 12:23; 계 14:5; 소요리문답 37항).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죄 없다 하면 스스로를 속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다(요일 1:8; 1:10). 이것은 원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범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죄악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 속에 거하는 죄의 활동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표출되는 행위를 의미한다(롬 7:19-20).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9-20). 그러므로 비록 중생한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자범죄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같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범죄로도 멸망(지옥)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단 답으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고 다르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원죄가 해결된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범죄는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궁극적인 멸망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자범죄가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그 원죄가 살아 있다면, 이 자범죄가 원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범죄로 멸망 받는 것 같이 보이나,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자범죄가 아니라 원죄 때문에 멸망 받는 것이다. 성경은 원죄와 자범죄라는 명확한 용어로 구분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뿐 이 모두를 “죄”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자범죄를 범하는 경우에도 멸망 받는 것같이 표현하고 있어서 조직신학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는 그의 자범죄도 해결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자범죄는 원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불신자)은 그의 원죄로 심판에 이르게 되고 그의 자범죄에 따라 그 형벌이 더욱 가중된다. 그러나 원죄가 해결 된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며(요 5:24), 오히려 그의 선행에 따라 보상의 상(마 10:40-42; 고전 3:14-15; 살전 2:19-20; 히 12:3; 계 22:12; )으로 그의 영광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단 12:3; 계 21:24,26). 그러면,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의 자범죄는 어찌 되는 것인가? 이 문제도 성경이 명쾌하게 답을 주고 있다.

물론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중생인)의 원죄는 단번에 제물로 드리신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해결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궁극적인 멸망(지옥형벌)은 받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의 자범죄도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그 자범죄는 (1) 사망의 쏘는 능력이 상실 된 죄(고전 15:55,56)로 (2) 회개가 불가능한 죄(히 6:4-6)가 아니라 회개가 가능한 죄(고후 7:9)이기 때문에, 중생한 성도들에게는 이 자범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징계(보응)를 받게 된다(히 12:5-13).

본문에서 “불의한 자”는 아직도 원죄 해결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고전 6:9-10). 그리고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며(고전 6:6), 저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완연한 허물이 있기 때문에(고전 6:7) 불의한 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인들 중에 송사를 세상의 불신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은 역시 “불의한 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인가? 이 문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마지막 절에 보면 그들이 전에는 “불의한 자”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었으나,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이 되었다고 했기 때문에 현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이는 시차적인 표현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중생 이전과 이후의 상황 말이다.

(2) 구원론 (Soteriology, the Salvation of Man)
구원론적으로 볼 때에, 본문에서 말하는 “불의한 자”는 분명히 음란한 자를 비롯하여 모두 열 가지 죄를 범한 자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멸망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불의한 자”는 멸망 받는다. 그러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구원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맥락을 보면 구원론적인 과정의 전후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불의한 자”는 원칙적으로 멸망 받는다. 이러한 면에서 고린도교회의 “불의한 자”는 멸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의한 자”로 지칭하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구원의 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그 전후관계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고린도교회의 “불의한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멸망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불의한 자”는 그 당시는 “이방인”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불신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린도교회에서 “불의한 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전에는 “이방인” 즉 “불신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1) 세상과 천사까지 판단할 수 있다는 성도의 위치에 있기 전의 “불신자”의 위치에서 행하는 행태에 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고, (2) 앞으로 성도의 위치에서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원론적인 경고로 고린도교회의 경각심을 위한 언급이며, (3)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인 고전 6:11에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결론을 맺은 것을 보면 확실히 고린도교회의 ”불의한 자“들이 과거에는 불의했지만, 현재는 그 불의들을 회개하고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로, 과거 ”불의한 자“들이었을 때의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4. 주경신학적 이해 (Exegetical Understanding)
주경신학적으로 접근하려면, 본문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주석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지면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본 아티클(article)에서는 중요한 부분만 주석하여 본문에서 말하는 “불의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과연 중생한 성도들이 다시 그와 같은 범죄로 인하여 구원에서 탈락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게 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전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위의 본문말씀 중에 “불의한 자”는 불신자를 의미하며, “성도들”은 교회 안의 신자들을 가리킨다.

(고전 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위의 본문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형제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 즉 신자들을 가리키며,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고전 6: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본문에서 피차에 송사하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들은 완연히 허물이 있는 “불의한 자들”로서 차라리 속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며 속이는 자들이라고 한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한 자들의 불의가 본문에 거론된 죄목들로서 음란,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람, 술취함, 후욕, 토색 등으로 이러한 죄를 지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교인들 중에 과거에 불의한 자였더니,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위의 주석들을 통하여, 우리는 본문내용의 시차적 관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선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원론적인 말씀이며,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고린도교인들이 전에는 불의한 자들이었으나 지금은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뜻이다(고전 6:11). 원론적으로 불의한 자가 구원을 얻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고린도교인들이 불의한 자라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으로 중생하여 거룩하게 된 의로운 자들이라는 뜻이다(고전 6:11).

그러므로 현재 고린도교인들이 불의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불의한 자”였던 당시를 거론하며 그러한 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거의 불의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거듭난 중생인이기 때문에 현재는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성도들도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범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불신자 시절의 불의한 행동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으로 주어진 것으로, 이러한 경고는 고전 10장을 비롯하여 성경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경에서 삼가라고 경고하고 있는 대부분의 죄들은 자기가 범하는 자범죄(peccatum actuale)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 때문에 멸망 받는 것은 아니다. 물론 원죄(peccatum originale)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범죄를 언급하면서 멸망 받는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원죄에 의해서 멸망을 받고, 자범죄에 의해서는 그 죄에 대한 보응으로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원죄해결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는 원죄에 의해서 지옥형벌을 받게 되며, 그들이 살아생전 범한 자범죄로 인하여 그의 행함에 따라 지옥에서의 그의 형벌이 가중된다. 그러나 원죄를 해결받은 성도들은 그들의 자범죄에 대한 보응으로 살아생전의 하나님의 징계로 현세에서 고통은 받으나, 그들의 선행은 천국에서의 보상의 상으로 더욱 그들의 축복의 기쁨(bliss)과 영광(glory)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단 12:3).

[결론]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은 설명을 통하여 몇 가지로 요약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불의한 자”는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2) “불의한 자”의 죄는 거론된 예들과 같이 전에 자신이 지은 자범죄를 의미한다.
(3) “불의한 자”의 원죄와 같은 죄가 아닌 자범죄는 회개가 가능한 죄이다.
(4) “불의한 자”는 원죄와 자범죄를 사함 받고 현재는 의롭다 함을 얻은 상태이다.
(5) 그러므로 원죄를 해결 받은 성도들은 자범죄로 심판(멸망)을 받지 않는다.
(6) 본문에서 바울은 이전의 “불의한 자”의 행동을 삼가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로서 “불의한 자”였을 때는 열 가지의 자범죄들이 원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죄를 범하는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었지만,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고전 6:11)이 이와 같은 자범죄를 범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범죄들에 준하는 보응으로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자범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말씀으로 이러한 경고의 말씀은 성경에 넘치도록 꽉 차있는 것을 볼 수 있다(히 12:5-13). 이것은 무서운 징계를 가져오는 자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THE END

REV/DR. PAUL B. JANG
Email: revpauljang@hotmail.com
Website: www.mission4.org (한글)
Website: www.usmission4.org (영문)
2018-06-30 23:40:39
107.xxx.xxx.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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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 2018-08-04 15:51:53 삭제

원죄와 자범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결받게 됩니다. 믿고 중생하는 순간 원죄는 물론 자범죄 역시 해결은 받으나 자범죄는 현재나 미래적인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에 대한 회개와 보응(징계)이 따르게 됩니다(히 12:6-13).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즉 단번에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신학적인 전문용어로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ce)에서 믿어 중생하는 순간 완전히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주말씀 | 2018-08-04 13:06:04 삭제

원죄는 어떻게 해결 받고 자범죄는 어떻게 해결 받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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