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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여백
신학
잘못된 예정과 성경적인 예정
박창진 2008-11-10 10:04:55 | 조회: 4357
칼빈의 작정론의 문제

예정론에 있어서 칼빈에게 있어서 예정과 작정은 동의어입니다. 그가 기독교강요 마지막 편에서 구분하여 작정은 섭리론에서 다루고 예정은 구원론에서 다루고 있지만 동의어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었다고 봅니다. 예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우주 그 어디에도 없으며 그 무엇도 없다고 말합니다. 돌 하나가 어떤 지역에서 어떤 모양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도 예정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절대 불변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그 사람이 영원한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을 예정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미 정해진 대로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쓰나미도, 태안 반도의 기름 유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정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신앙고백이겠지만 성경의 가르치는 바는 아닙니다. 그의 주장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을 임의로 무한대로 확장한 인간적인 사고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예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앞에서 아담의 범죄와 관련하여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예정하셔야만 우주 경영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에 매여 사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 있어서는 모든 것이 동시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경영에 있어서 특정한 영역에서 예정하셨지만 그 이외의 영역은 허용하신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언제 어떻게 땅으로 떨어지는가는 예정이 아니라 허용입니다. 예정과 허용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개념의 두 단어를 함께 붙여 사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범죄의 경우에 대한 허용적 작정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아담에게서 살핀 바와 같이 신자의 범죄에 있어서 작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여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한 집사님이 “목사님, 제가 지금 이 상태인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목사는 “집사님, 제가 지금 이 상태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여 예수님을 더 온전히 닮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지난 삶에서 그 은혜를 언제나 온전히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경적으로 어느 것이 옳은 생각일까요? 목사의 생각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 집사님의 질문은 예정론에 입각해서 생각할 때에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입니다. 예정론에 따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창세전에 정하셨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대로 지금 된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자신이 배운 바를 따라 생각하게 되는 것을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예정은 우리의 연약함과 잘못의 결과임에도 하나님께 그 책임을 넘기도록 길을 터놓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넘어서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전부터 지속된 하나님의 도우심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연약하여 넘어지거나 범죄의 경우에는 이미 피할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칼빈식의 예정론은 그 내용에 있어서 숙명론, 운명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인생은 정해진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숙명론, 운명론도 사람의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떨어질 때까지 입만 벌리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우도 가능하고 사과를 따기 위해 사과나무를 올라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떠하든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얻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론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정론으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목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정론은 깊이 알려고 하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예정론을 말하고서는 그 안에서 생각하려고만 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자연 재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쉽게 운운하는 것의 배경에는 칼빈식의 예정론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심판은 언약의 백성이라는 전제가 있거나 아니면 언약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부당한 핍박을 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국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

예정이란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하여 이전에 미리 정하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틀 안에 있는 우리와는 달리 동시적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아십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일에 대해서는 정하셨습니다. 인간의 시간의 관점에서는 미래의 일이 정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이 아니라.

예정에는 언제나 그 예정의 성취를 위한 섭리가 뒤따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기계적으로 성취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정이 인간과 관계되어 있는데, 인간은 로봇이 아니고 자신들의 의지를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를 따라 살기에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통하여 예정하신 바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정하지 않으신 일들은 섭리가 뒤따르지 않습니다. 허용하신 일들인데 거기에는 섭리가 뒤따르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어 일이 진행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리며 생활하는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예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정과 관련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예정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구속 역사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언약의 시대가 진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예정이며 그 예정을 이루기 위한 섭리가 뒤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역사에 사람들이 악역을 담당하는데, 그것을 성경은 예정의 성취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사자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서 그러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섭리는 인간의 의지를 거스리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예정된 것입니다. 이 땅의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에도 복음을 듣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였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질 때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 선택과 예정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상태에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의 예정은 반드시 구원을 얻은 이후에 그 구원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아직 구원을 얻은 자리에 나오지 못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원하심이 적용될 뿐입니다.

선택과 예정을 따라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는 복음을 들을 때에 “마음을 열어 복음을 청종하게 하신지라”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 성령님의 역사는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인격적입니다. 그 역사의 열매는 당사자가 인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만 가능합니다. 동시에 그 역사를 당사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반드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어 있는 인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들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이후의 모든 삶이 예정되었다고 칼빈주의에서는 말합니다. 아침 밥을 몇 숟가락으로 다 먹는가, 하늘에 몇번 화장실에 가는가도 예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는 것도 예정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두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을 임의로 확대한 것일 뿐입습니다.

다시 한번 적지만 하나님은 앞뒤가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범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범죄하지 않도록 피할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행하시면서 범죄를 예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효력있는 부르심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예정이 아닙니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 곧 은혜로 바르게 받느냐 아니면 헛되이 받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고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자기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깨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에 대해 죽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바르게 받는 삶입니다.
2008-11-10 10: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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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쁨 | 2008-12-09 09:01:55 삭제

그 누군가가 댓글들을 본다면 과연 누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저는 누차 주장하는 방법의 오류에 대해 이야기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지도 못하며 확신하지도 못하는 주장의 사실여부에만 매달려 있네요.

또, 마치 피해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것 같습니다.
설령 박창진님이 피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님의 주장이 동정이나 지지를 받지는 않습니다.

"설득력이 있다"라는 말은 좀 심하게 말하면 "그럴듯 하다"이지
그것 자체로 "사실이다"또는 "아니다"를 확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의미는 "역시 모르는 일이다"입니다.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것이지만 제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예정이 "전 우주적인지" "특정부분적"인지는
하나님의 계시나 말씀의 지지가 있기전에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창진님은 마치 사실을 알고 있는양
"하나님의 예정은 특정부분적이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에 그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였고, 정당한 지지를 받으려면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요구가 신학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만이 요구할수 있는것입니까?
고등학교 수준만 되어도 그런 논리와 국어의 오류는 알수 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칼빈의 예정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칼빈도 "전우적 예정"에 대해
타당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는가 봅니다.
아직도 '론'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봐서는요.
역시 주장일 뿐이지 사실여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서는 제가 지식 부족으로 말씀 드릴것이 없지만
제 나름대로는 칼빈의 "전 우주적 예정"이 님의 주장에 비해서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전우주적이냐 특정부분적이냐"가 성경에 특정하여
언급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예정범위가 교회의 신앙유지와 복음전파에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하고 필요한 사안이면
성령께서 성경에 기록하셨을 줄 믿습니다.

다른말로 말해서 사실 그런것 몰라도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믿고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님처럼 알지도 못하는 것을 사실을 아는양
말해서는 안됩니다. 님의 주장은 주장하는 방법도 틀렸고,
칼빈에 비해 설득력도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박창진 | 2008-12-08 18:33:07 삭제

"아하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구나"라는 경험을 확실하게 하네요.
예정이 전우주적인가 아니면 특정한 어떤 영역으로 국한되는가.
답은 둘 중에 하나이지 그 이외에는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요.
그러면 무엇인가?
성경적인 근거로서 어느 한가지를 말하는 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요.
성경 어디에도 전우주적이라는 문자도 없고 특정한 영역에 국한된다는 문자도 없고요.
그러면?

그러다가 자신은 예지예정을 생각할 때에 전우주적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네요.
예정 자체에 대한 진술이 아닌 성경의 다른 진술을 통하여 그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여전히 문자가 없다고 말하고요.

성경적인 근거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문자로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자신의 글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고요.
참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네요.
이제 더 이상 댓글 적고 싶지가 않네요.
님 마음대로 생각하고 사시기를.

천기쁨 | 2008-12-08 10:16:16 삭제

웬만하면 이 글에 대해서 제가 단 댓글을 다시 한번
차근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 말한것이 아닙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5일 댓글에 있는 정도 입니다.

저는 박창진님의 주장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중입니다.

물론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둘 중의 하나임이 확실합니다.
전우주적 예정이거나, 특정부분 예정이거나...
하지만 님과 저처럼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그것에 대해 사실여부를
밝힐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이다"또는 "아니다"라고 명시하면
사실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전우주적 예정"과 "특정부분 예정"을 주장하는 양쪽 다 그러합니다.
어느 쪽이든 사실여부를 인정받으시려거든 성경적인 근거가 필요합니다.
성경적인 근거없이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습니다.

님이 생각하는 전지전능의 의미를 풀어보세요.
그리고 왜 조선공의 이야기가 논리적인 면에서 대등하지 않은지 말해보세요.
또한 성경을 근거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답이 명백하다"라고 하면
님이 하나님인가요?

신학을 공부하지 못한사람이라도 논리라는 것은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님이 신학적인 주제를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논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논리적으로 타탕치 않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가만히 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전 우주적 예정이냐 아니냐"에 대한 사실 여부에 대해 님의 의견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님이 주장하고 있는 논리가 제대로 성립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이 "전우주적이냐 아니냐"가 성경말씀의 뒷받침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입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명백하다고 하셨지요?
그 근거를 제시하세요. 말만 하지 말고.

용기가 가상하다시니 고맙습니다.
강아지가 범에게 덤비는 이유는 범이 범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닐뿐더러
이 정도는 필요에 따라 공부해도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박창진 | 2008-12-07 20:28:48 삭제

님의 문제점.

하나, 비교하려면 논리적으로 대등한 것을 제시하여야 하지요.
조선공 이야기와 예정에 관한 것은 대등한 것이 아니랍니다.
님의 주장과 같으려면 예정에 관해서도 알 수 없다가 답이겠지요.
님의 논리는 성경에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떻다고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다 알 수 없다가 답이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예정의 범위는 님이 원하는 문장이 없을 뿐 그 답은 명백하답니다.
우주 전부이냐 아니면 어떤 특정한 부분이냐.
둘 중의 한 가지이지 "알 수 없다"가 아니랍니다.

둘째, 전지전능이 우주 전부에 대한 예정을 지지한다고요?
전지전능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서 그렇게 연결시키는지요?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예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에 대해 허락할 필요가 없답니다.
이미 예정되었기에 별도의 허락이 필요없이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가 뒷받침되어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주제를 그에 대한 개념이나 이전의 연구에 대한 공부도 없이 반대하다가 이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논리로 판단하고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문장-우주의 모든 것을 예정하지는 않았다-이 없다고 하다가 이제는 논리가 아니라고.
우주의 모든 것을 예정하지 않았다는 문장이 필요하지 않답니다.
그런 문장 없어도 그 주제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명백하거든요.

용기는 가상한데, 왠만하면 공부를 하고서 달려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표현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거든요.

천기쁨 | 2008-12-05 16:56:30 삭제

박창진님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다고 해서
반드시 옳거나 옳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로 결론 내릴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장은 명확해도 옳고 그름을 따져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예로 들었듯이 "그 조선공은 북쪽과 남쪽의 배만 만들었다"라는 말은
그 주장이 명확하지만 옳거나 그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것이 정답입니다.

자 지금쯤 제가 쓴 글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저는 철저하게 박창진님의 주장의 오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지
칼빈에 대해서는 아직 가타부타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님의 주장을 반박한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칼빈의 입장에 서있다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서 제시한 논리의 반복으로
제가 님의 주장을 반박한다고 해서
제가 칼빈의 입장에 서있다라고 말하거나,
칼빈의 입장에 반한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칼빈의 입장에 있는지 칼빈의 입장에 반하는지
아직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님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인 오류에 대해
계속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주장하는 방법이 틀렸으므로 그 주장을 전제로 하는 이후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생이 아닙니다. 칼빈의 주장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왜 그런 주장을
하게되었는지 그 배경을 모릅니다만,
칼빈의 주장이 "예정은 전 우주적이다"라고 한다면
칼빈의 주장이 님의 주장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라는 명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명제의 근거는 성경에 많은 부분이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줄로 압니다. 부정하시렵니까?
또한 위의 명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된 상식이고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창진님이 위의 명제("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에 대해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예정이 전 우주적이다"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아 다분히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가요?

아마 칼빈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그렇게 주장하였는지도 모르죠.
이후는 공부를 해 봐야 알기 때문에 칼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에서는 말해봐야 제 추측일 뿐일테니까요

어쨌든 님은 주장하는 방법이 틀리며,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말씀을 들이덴것도 아니고, 혼자서 맞다고 하고선 그걸 전제로
또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박창진 | 2008-12-05 13:15:12 삭제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에 대해서만 예정하셨다"라는 말이 없는 한,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대해서 예정하신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이 없는 한 제 주장이 틀린말이 된다고요?

이게 논리라고요?
이런 글을 적고서 논리 공부를 운운하다니...

제 주장은 명확합니다.
"예정의 내용은 우주의 모든 것이 아니다."
칼빈의 주장도 명확하지요.
"예정의 내용은 우주의 모든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둘 중의 하나이지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닌 가능성은 없습니다. 제로랍니다.
이 정도는 이해하시겠지요?

님의 주장과 같이 그러한 문장이 없어서 제가 틀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칼빈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됩니다.
그렇지요? 이 정도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자 님의 논리를 그대로 제가 들이대겠습니다.
성경 어디에 우주의 모든 것이 예정이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칼빈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성립하려면 님이 말하는 그 논리에 입각해서는 그러한 구절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요? 이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려나요?

한번 제시해 보십시오.
성경 어디에 우주의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고 하는지...

제시하지 못하면 님이 말하는 그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 가를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셨으면 합니다.

천기쁨 | 2008-12-04 19:36:37 삭제

또한 문장속에 "...관련하여 이미 밝힌 바와 같이..."라는 말이 있는데 본인 스스로 "밝혔다"라고 해서 그 내용을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즉, 본인의 주장은 현재 아무런 권위가 없다는 말입니다. 글을 읽는 이로 부터 권위나 인정을 받으시려거든 확실한 성경말씀을 인용하거나, 진실만을 말하거나, 자신의 주장에 대해 옳다고 인정한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을 거명하셔야 합니다.

그 밝혔다고 하는것도 제가 보기에는 "감정에 대한 호소"입니다.
"인정상 그렇지 않겠느냐"하는 것이지 사실을 말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천기쁨 | 2008-12-04 19:18:57 삭제

박창진님은 논리에 대해서 먼저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님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느 섬에 조선공이 한 명 있습니다.
조선공은 배를 튼튼하고 잘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그 섬의 동서남북에는 배가 각각 한척씩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배는 확실히 그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나옵니다.
"그 조선공은 북쪽과 남쪽의 배만 만들었다" 라는 명제가
맞습니까? 틀립니까? 아니면 알 수 없습니까?

답은 "알 수 없습니다."가 맞습니다.
즉"그 말이 확실히 맞다"고 하면 오히려 틀린것이 됩니다.
또"그 말이 확실히 틀리다"고 해도 틀린것이 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에
대해서만 예정하셨다"라는 말이 없는 한,
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대해서 예정하신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이 없는 한 님의 주장은 틀린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그러한 구절을 찾아내시든가 그게 아니라면 알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님은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고서는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을 이미 오류가 있는 자신의 논리와 사고속에 국한시키고 제한시키고 있는 꼴입니다.

박창진 | 2008-11-20 13:08:33 삭제

그 본문들을 읽기는 읽으셨습니까?
그 본문들에 예정과 관련하여 내용이 없던가요?

제가 읽은 성경에서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어떤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
택자들의 선택과 예정.

다시 한번 본문들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디에서 모든 일을 예정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예정했다는 문구는 아예 없고 말입니다.

천기쁨 | 2008-11-19 13:59:08 삭제

제시한 성경구절 어느 곳에서 "하나님은 모든일에 대해서 예정하신것이 아니라 특정한 일에 대해서만 예정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나요?

박창진 | 2008-11-19 13:00:15 삭제

그러네요.
본문이 적혀 있지 않았네요.
글 읽는 분들이 그 정도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아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예정에 대한 성경 구절은 행 3:20, 행 4:28, 엡 1:5, 9, 11, 엡 3:11 입니다.

당연히 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다고 알려주시는 것은 아니니깐 말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도 어떤 사람의 생각일 뿐이며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도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요.

그 생각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지요.

천기쁨 | 2008-11-19 12:30:11 삭제

글쓴이는 칼빈을 비판하면서도 칼빈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하나님은 모든일에 대해서 예정하신것이 아니라 특정한 일에 대해서만 예정하셨다"고 말하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로 전개되는 내용 또한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성경적 근거가 없으면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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