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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예수그리스도 인격에 기초한 종말론 3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황 창 기 2006-11-13 03:02:09 | 조회: 2358
[고신대 학보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종말론은 ‘때와 시간’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중심이라고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이 성경에서 어떤 분[Person]으로 제시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동시에 시공간을 창조하신 그리스도를 시공간에 한정시킬 수 없음도 입증되기를 바란다.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시공간이 창조주를 제한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인격을 바로 파악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적 특성을 깨닫는 기초가 놓이기 바란다. 따라서 종말론이야 말로 신학의 어머니 [mother of theology]임을 넌지시 반증되는 효과도 거두고자 한다.

우선 로마서 6장 초반부에 성도는 ㄱ]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 [2절], ㄴ]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고 [3절, 4절], ㄷ]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5절]라고 하며, ㄹ]또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5절, 8절]라고 한다.

특히 에베소서 2:5-6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 때 [예수님 때] 태어났던가?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어떻게 연합되었다는 말인가? 4절에 ‘함께 장사되었나니’라는 표현대로 주님과‘함께 묻혔다’는 말이다. ‘아버지 시신과 어머니 시신을 한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말과 같이‘주님과 나와의 연합’을 이해하자. 5절에서는 ‘그분과 같이 부활에도 연합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연합되었다’(have been united with)는 흠정역 [KJV]에서는 ‘함께 심기었다’(have been planted together)고 번역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 다른 곳을 살펴보자.

1. 마태복음 2:13-15
예수님과 모세시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동일시 (同一視)하였다. 거기 배경은 아기 예수님을 헤롯왕이 죽이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에 알려주신 것이다. 따라서 아기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이집트에 피난 가 있었다. 이것을 15 절에는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예수님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출애굽]을 색다르게 표현하였다는 범이다. 즉 사실‘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고 하면 될 것을 다르게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을 지은 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이루려 하심’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개인 출애굽을 호세아 11장 1절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낸’ 것을 성취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즉 예수님의 출애굽은 곧‘그 옛날 모세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 점이다. 다른 말로하면‘예수님의 출애굽’과‘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같이 본다[= 동일시 (同一視)하고 있다]는 말이다.

2. 사도행전 9:1-5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즉 “제자”와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사도행전 9:1 절 이하에 사울이은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요청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원초 교회 성도를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 난 것이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행 9:4). 그때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5). 이 때 사울이 대답하여‘주여 누구십니까?’여쭈었더니‘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주님이 대답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네가 어찌하여 내 제자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시지 않고‘나’를 이라고 하심으로 주님의 ‘제자’들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25:45에서도“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작은 자’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내게’하지 아니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주님의 성도를 동일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말씀은 엄청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성도를 이처럼 인정하시고, 또 보호하시는 차원을 넘어서 비천한 우리 성도들을 주님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이 곧 주님의 고통이요, 우리의 수난이 곧 주님의 수난으로 주님께서 여기시고 계시니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러므로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우리 홀로 외톨이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으며 나의 고통을 주님께서 나와 같이 감당해 주신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도는 결코 낙심하지 말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야 할 것이다. 사실 주님은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어려움도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시는 멋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006-11-13 0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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