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13 금 06:10
상단여백
신학
제직론- 여자로 목사 됨이 성경적인가?
강종수 2014-09-04 19:36:25 | 조회: 4899
제직론
- 여자로 목사 됨이 성경적인가?


우리는 성경을 주께서 재림하실 날까지 지상 교회활동의 실천적 교과서로 삼는다. 중세 종교개혁 때 모든 기독교의 총체적 교리와 제도에 대한 개혁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신칭의(以信稱義)로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재현하였고 나머지 제도나 실천신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완성을 이룬 상태는 아니다.

여자로서 목사로 임직 받는 것이 성경적인가에 대한 찬반론은 교회 조직에 해당된 교회론의 교의학적 측면에서 대단히 중대한 사안이다. 한국교회는 최근 여러 교단에서 여자 목사 임직이 제도화되어 상당히 많은 여 목사가 목회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자로 목사 됨이 성경적인가를 살피게 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그 표현(실천)은 성경에 근거하기 때문이고 오직 성경의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사(종교개혁)에서 그 정당성을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이다. 먼저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조직체의 직분에 대한 신약적 근거를 보고 여자 목사가 성경적인가를 주석적 입장에서 살피고자 한다.


1. 성경적(신약) 직분론

교회의 직분은 조직적 관리의 효율성을 위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하는 체제를 만드셨고 하나님이 친히 직분자를 선택하셨다.
구원의 백성도 택하시고(신7:7,행13:48,엡1:4,살전1:4)
직분도 하나님이 택하셨고(모세,선지자들) 지금도 택하신다.
예수께서 12사도를 택하시고(마10:1,요6:70), 바울도 택하셨다(행9:15,갈1:15).
심지어 천사도 선택하셨다(딤전5:21).

교회는 주님의 피로 값 주어 사신 교회이므로(행20:28)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거룩한 내용이 충만하도록 해야 하는 유기체제로 주님의 몸이요(엡1:23) 하나님의 집이다(딤전3:15). 그러므로 교회직분은 세속적 의미로 수용하는 것은 위법이며 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다.


교회시대 직분

1)일시적 직분 : 사도직이다. 가룟 유다가 죽고 11사도만 남았을 때 맛디아를 보선하였고(행1:26), 그 후 바울이 12사도와 같은 격의 (이방인을 위한)사도로 부름을 받았다(행9:15,갈1:15). 예수께서 12사도를 뽑으셨던 이유는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12지파(창세 35:23-26)가 있었고 이 지파의 수효는 천국의 조직수로 상징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신약에도 12인을 채웠던 것으로 본다(요6:70,마10:2,계21:14).

가룟 유다가 배신을 하고 자살 한 후 12인조에서 한 명이 결여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유다가 빠진 11명만 있어도 복음을 위해서는 상관없을 듯 한데 나머지 사도들이 12인의 조직 수에 대한 집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주석적으로 말하면 구약적 예언의 성취였다. 시109: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라는 성경을 응한 것이었다.

유다 대신으로 감당할 사도의 자격에 대해 말하기를, 행1:21,22에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으로서 주의 삶을 목격한 자로 한정하였다. 따라서 사도는 그 후대에 세울 수 없다. 어떠한 인위적 해석도 불가하고 괜히 자기 신성화될 뿐, 사도 후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복음을 전해들은 자들로서 광의적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일 뿐이다. 오늘의 시대에 거룩한 권위의 그 사도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성경의 허락이 아니며 교만이고 과욕이다.

2)과도기적 직분 : 선지자직이다. 구속사적 선지자 직분은 세례 요한으로 끝이 났으나(마11:13,마14:5) 구약 예언의 성취가 시작된, 즉 메시아가 도래했으나 사도 시대에 선지자들이 몇 있어서 예언을 하고 있었다(행11:27,28, 13:1,13:11,15:32,19:6,21:4). 구약에서 신약으로 예언이 성취되는 과도기에 사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데 기초 역할을 했는데, 한시적이었고 메시아 도래와 사도들의 증언으로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사도직과 함께 선지자직이 필요치 않았다.

성령의 은사 중에 예언하는 은사가 있으나(고전14:1-5,고전13:9,행19:6) 직분적 선지자로서의 예언이 아니다. 보편원리로는 복음전파가 곧 예언이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사안에 대한 미래적 예언이 있을 수는 있으나 성경을 벗어난 직통계시 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성경적인 복음사역으로 추천할 일이 아니다.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교회에 대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은 복음의 보편적 목적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이 있고 예언을 했으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보통 그렇지 않고 시험되는 일이 많다.

3)신약시대 영구적 직분 : 성경에 이른바 소위 교회시대에 필요한 직분자들로서, 목사와 교사(엡4:11), 장로(딤전5:17), 집사(딤전3:8)가 나타난다. 그 외 복음을 위해 수고할 적절한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나 성경상 직분의 성질은 있지만 직명은 거론된 바가 없다.
엡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복음전하는 자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직무로 아는 사람으로서 지금으로 말하면 전도인에 해당된다. 교회 직책은 사실상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모두가 전도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도를 전임으로 하는 자라면 이것은 직책에 해당된다고 본다. 신학하는 중에 목회자 수업을 받는 전도사와는 구별된다.

빌립집사를 전도자라고 표현하는데(행21:8,8:26-40) 사도가 아닌 집사로서 전도를 열심하므로 그리 형용한 것 같다. 전도인으로 불리는 빌립, 마가, 디모데, 디도 같은 분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딤후4:5,고후8:16,몬1:24). 오늘날에 와서 목사가 아닌 전도사로서 평생 전도에 주력한다면 이에 해당되는 직책으로 보인다.

(2)목사와 장로는 성경상 같이 불리나 직책에 있어 구분된다.
장로라는 말이 구약에 약 100회 신약에 60회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나 요한도 자신을 장로라고도 했다(벧전5:1,요이서1:1). 그러나 그 직책의 구분이 있었다. 직책의 내용으로 인해 존경의 경도가 달라진 것이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잘 다스리는 장로는 교회 치리장로이고 말씀과 가르침, 즉 메시지를 전하는 일(고전4:1), 곧 설교와 교육(가르침,딤후1:11)을 겸한 장로(목사)로 구분한다. 목사는 특별히 교회를 책임 감독한다는 위치로서 감독자라고도 했고(행20:28)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고 했다(고후5:20,엡6:20).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존경받을 자로 그 인격과 자격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따라야 한다. 장로라는 뜻은 ‘나이 지긋하고 수염이 난자’를 뜻하고 사회적으로 민중의 대표 격을 일컫는 사람에게 붙인 말이다. 때문에 회중에서 연륜을 쌓은 분이어야 했다(딤전3:6). 불교에도 학식을 겸한 원로는 높여 부를 때 장로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남성에게 붙여진 이름이고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집에서 원로로 추대 받는 어른들이었다(창50:7,레4:13-21,신21:1-9출3:16,민11:16,산헤드린(Sanhedrin).

목사와 장로는 동일하게 엄격히 인격적 갖춤을 요한다(딤전3:1-7).
①책망할 것이 없으며(딛1:6-7)
②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딛1:6)(여자가 한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있는가?)
③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딛1:6-7)
④나그네를 대접하며(딛1:8)
⑤가르치기를 잘하며(딛1:9)
⑥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⑦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딛1:7)
⑧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⑨자기 집을 잘 다스려(딛1:5)
⑩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3)집사(執事)직은 사도들이 안수를 해 집사로 임직하였다(행6:1-6). 사도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은 이 일에만 집념하도록 하고 구제하는 일과 접대 일 등에 대하여 안수집사로 담당하게 하였다.
집사(執事)라는 말뜻이 그러하듯 일을 잡고 처리하는 자이다. 집사의 헬라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는 ‘심부름을 하는 자, 시종드는 자’라는 뜻이다. 목사도 장로도 그 정신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의 집에 종들이다. 즉 교회 살림을 맡아 봉사하게 하였다. 지금의 안수집사의 기원이다(행6:1-6).

집사의 자격도 장로와 같이 엄격하게 일반 신도들과는 구별된 자로 선정하게 했다(딤전3:8-13)
①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행6:3)
②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③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④더러운 이(공금)를 탐하지 아니하고
⑤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
⑥먼저 시험하여(지식적 자격)
⑦책망할 것이 없으면
⑧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여자가 한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있는가?)
⑨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⑩안수(행6:6)

(4)교사직은 목사가 담당할 일이긴 하나 교회의 교육을 전담하는 직임으로 지금의 교수처럼 가르치는 직무자이다. 원문상 목사와 교사를 묶어서 말하고 있다. 목사는 잘 가르치는 은사를 발휘해야 한다. 교사직은 목사직의 연장선에서 일하는 자로 매우 중요한 직분이다. 그러므로 신학교 교수는 신앙에 있어 장로(목사)의 인격과 동일 선상에서 존경받아야 한다.

4)교회시대 추가된 직분들이 있다. 이는 교회의 조직을 좀 더 효율성 있게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직명을 만들었다. 성경에는 직분의 이름이 없고 다만 그러한 명분의 일꾼들에 대한 말씀이 있을 뿐이다.

(1)권사는 더러 남자로 치면 장로에 해당되는 여성 신자로 최고의 권위자로 여기는 것은 직명에 대한 오해이다. 권사 직분의 어원적 말씀은, 롬12:8 ‘혹 위로(개역,권위)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딤전4:13 ‘... 권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안나같은 사람을 권사로 본다면 모범적 권사라 할 것이다(눅2:36-38). 그러니까 교회에서 특히 여성 신도들에게 모범되며 권면과 가르침을 잘하는 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여성 권사 직책을 두어 남성의 장로 격처럼 일반 여 성도들보다 계급적 오해를 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남자로 장로직도 두려움).

(2)서리집사(執事)라고 세우는데, 특히 여자로서 (서리)집사라는 직명을 붙이는 것이 성경적인지 의문스럽다. 서리집사라는 직명도 사회적인 직함의 응용이다. 서리(署理)라는 사전적 의미는 직위의 사람이 결원되었을 때 대신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집사 서리를 여럿 세운다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그리고 헌법상 한 해 한 번씩 재임명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 번 서리집사 임명받으면 평생(영구) 서리란 말도 없이 집사이다.

혹 다음 해 집사로 임명되지도 않거나 다른 교회에 가서 집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직명대로 단지 서리일 뿐이고 서리집사로 일을 할 수 없거나 필요치 않을 경우 그 이듬해 자동으로 직분 없이 평신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처신할 집사들이 있을까?

(3)권찰직이 있다. 권찰(勸察)은 권유하고 살핀다는 말이다. 주로 자기 구역에 심방을 직무로 알고 부지런히 살피는 일이다(딤전4:13). 그러니까 서리집사는 교회 살림을 하는 직분이면 권찰직은 신자들의 가정을 살피고 심방하는 일을 주로 하는 직이라 하겠다.

자기 지역 관할자로 구역장 정도이면 되겠지만 직분을 만들어 혹 서리집사 보다 못한 사람같이 들리게 된다면 그것은 생각을 고쳐야겠고, (서리)집사를 세우니까 이런 폐단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남녀 서리집사를 세우지 않으면 어떨까 한다.

(4)사찰은 직분으로 여기지는 않으나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당을 관리하는 자로서 성격상 일반 평신도와 다르게 교회의 한 직무에 속하기도 하다. 구약에서 문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은 레위 지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대상15:24). 시편 기자는 시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다.



2. 여자로 목사 됨이 성경적인가?

이제 여자로 목사 임직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하는가를 찾아보려고 한다. 앞서 살펴본 교회 직분에 대해 필자는 권사, 서리집사 등을 원칙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도이다. 직분을 받고도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 본인에게도 고통이고 교회의 일원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위한 직분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실상은 얼마나 영광주의가 만연한가를 반성한다.

1)여자는 머리에 무언가(차도르,chador)를 덮어 씀

당시 헬라의 이원론적 사상 구조(남존여비,男尊女卑) 속에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교회 창설 시기였기 때문에 기존 관습을 격하게 벗어나기보다 무슨 우상시할 죄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권장했을 것이다(고전11:10). 그러나 당시의 선교적 상황에도 성경은 영적인 뜻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중심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시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하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로
(1) 애통이나 슬픔을 표시할 때(신 21:12)
(2) 간음의 죄를 범했을 때
그래서 매춘부는 짧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구약적 배경과 함께 이런 사회적 관습으로 인해 교회 내부에서도 여성들의 태도에 대해 공예배시 여성들이 단정히 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고전11:3-6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2)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명령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고전14:34-35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딤전2:12-15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가? 당시 고린도교회 내부에서 여성들이 너무 나대는 것을 방지하는 고린도교회에만 국한된 책망이었나, 온 교회에 적용될 말인가? 이 잠잠하라는 말의 내용이 어디까지인가? 여기서부터 바른 주석적 이해가 여성 목사 임직까지 성경적 이해를 바로 하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이 회중의 리더가 되어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1)인격적 동등의 예로,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말씀은 구원의 대상으로서 남녀 모두 동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도와 봉사의 직무에 남녀 모두가 활동할 수 있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고전 14:1-5,행2:18). 문제는 교회 전체를 책임지는 감독자로서 교회 앞에서 말할 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자 목사의 가능성을 이런 구절에서 답을 얻는 것은 주석적인 문제가 된다.

(2)고린도교회에만 적용할 성경은 아니다
성경은 비록 상황(context)을 기초하나 그것을 통하여 계시하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메시지를 빠뜨릴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정황과 시대의 사회적 문화의 소재는 구속사적 목적을 설명하기 위하여 채택되고 특히 교회를 위한 서신들의 교훈은 그 지역적 교회에 대한 교훈이면서 동시에 오고 오는 세대에 지상 만국교회를 위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교훈이 당대에 필요한 조치였다면 에베소교회에 혹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들도 재해석을 요하게 되는 문제를 발생한다. 여기 교훈은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만 쓰인 성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 목사를 타당하게 여기는 자들은 여성 목사를 세우기 위해 의도를 정해놓고 본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생기는 오해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본다.

(3)고린도교회에만 적용될 일이면 여자의 원죄까지 거론할 이유가 있을까?
교회는 사람이 모인 곳이므로 죄의 근성을 지닌 인간들로서는 많은 실수와 죄까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교회 직분에 대한 교시를 하는 일에 고린도교회에만 적용할 교훈과 명령이었다면 굳이 창조의 순서로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고 또한 여자가 원죄를 먼저 지었다는 등의 말을 덧붙일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상황을 기초로 모든 지상교회가 지켜야할 성경원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가 구약마저도 오늘의 교회에 적용될 교훈과 실천적 목회에 응용하고 교의학적 근거와 복음에 대한 믿음의 가치를 밝히려고 영적 해석과 문자적 교훈 등을 찾아 애쓰면서 그냥 서술해주고 있는 이런 신약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려는 의도를 나는 알 수가 없다.

딤전2:12-14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것은 두 가지니,
하나는, 창조적 원리가 그렇다 함이다. 아담이 먼저 나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지음을 받았다(창2:21,22). 그래서 인격으로는 동등한 인간이지만 존재의 시간적 선후(先後)를 볼 때 남자가 세상의 역사에 시작이었다면 여자는 그 역사의 재현을 하는 존재요 성경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아직 죄가 들어오기 전에 그래서 구원의 방주, 교회가 생기고 조직에 지도가 필요하기 전부터 여자는 남자의 조력자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남자가 여성을 비하하려는 사람의 관념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가지신 근본적인 의도였다.
무려 남자인 아담도 필요를 느껴 하나님께 여자를 요청한 사유(思惟)도 없었다. 물론 여자 없이 아담 홀로 가만 두었다 가정할 때 성경대로라면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하심대로 차츰 여성이 있었으면 했을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이유는 여자의 범죄를 말함이다. 범죄 후에는 지구촌의 삶이 어려워졌다. 그것은 남녀가 감당할 역할도 힘들게 되었고 영역을 분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으며 그 정한 도리를 벗어나면 모든 율법과 섭리의 역사에서 보듯 형벌을 가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롬1:18-3:20) 죄의 시작을 말할 때 여자인 하와의 실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딤전2:14에서 하와가 뱀에게 속아 죄에 먼저 빠졌음을 상기한다. 만약 고린도교회의 지교회 문제였다면 거창하게 이 말까지 해야 했을까? 아닐 것이다. 이런 식의 매듭은 여성으로서 교회의 직무에 대한 한계를 지으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는 구절이다.

(4)잠잠 하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
구약에도 특별한 시기에 여성으로서 선지자로 활동한 자들이 몇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 처음부터 채워진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특별히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출애굽 시대의 미리암(출15:20), 사사시대의 드보라(삿4:4), 요시야 시대의 훌다(왕상 22:14: 대하 34:22), 노야다(느 6:14), 이사야의 아내(사8:3) 등이다. 남성의 비율에 비해 극소수였다.

왜 여성을 불러 선지자로 활동하게 하셨을까? 문제는 남자로 바른 지도자가 못되고 사회가 혼란할 때 여성이라도 들어 사용하신 것으로 봐야한다. 역사에 줄곧 균등하게 남녀 지도자를 선택하신 일도 없을 뿐 아니라 특히 여성 제사장직은 전혀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직 정한 레위지파에 세습이었고 타 지파의 사람으로서 기능적인 혹은 인격적으로 위대하다고 제사장이 되는 법도 없었다(민25:11-13).

잠잠하는 명령은 딤전1:12에 이른 바, 남자를 주관하는, 즉 교회를 주관하는 리더로는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교회에서 여성으로서 어린이를 교육하거나 심방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에도 조신(操身)한 언행으로 감당하는 것이 바르다.

신약에 교회가 창설되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여성의 활동도 구약적 배경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교회의 일에 참여했다(브리스길라,롬16:3, 뵈뵈,롬16:1, 유오디아와 순두게,빌 4:2-3, 롬16:1-12). 그러나 교회의 리더로 직임을 맡은 바를 말한 것이 아니다.

(5)선교사와 여전도사의 설교와 선교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나?
일정의 신학을 학습하고 교회의 전도와 교육과 선교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 다만 특수 선교로서 감당하는데 용이한 여성으로서의 역량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다. 가령 여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곳에 여성 선교사(전도자)가 왕래하는 것은 남성보다 유리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교회에 유아들의 교육과 전도에도 남성보다 여성이 적합하다.

외국 선교사로 간다면 여성 홀로 가기엔 여러 상황이 불안하다. 물론 성령에 붙들려 일할 수 있는 일이긴 해도 사람이 위험(고후11:26)을 감수하기가 남성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남성 조력자(남편이나 선교회 지도자)의 도움을 어떤 식으로든 받으면서 선교에 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본다.

교회의 여성으로서 사회에 선교적 활동을 하는데 있어 여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사회 개량 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성으로서 목사로 교회 지도자가 되라는 법이 성경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교훈으로 말하지 않는데 억지로 굳이 교회에서 감독이 되려는 것은 성경보다 다른 생각을 먼저 한 것이라 본다.

(6)현실적으로 여성목사가 되면 어려운 상황들
성경의 교훈을 떠나 현실적으로도 험악한 세상에 여성으로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첫째, 가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녀를 출산하고 교육하며 아내로서의 역할은 언제하나? 더러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성이 목사가 된 경우를 보는데 남성으로서도 가정이 온전치 못하면 목사로 세상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야기된다.

사람이 제 가정도 지키지 못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교회, 죄를 벗어나 의를 좇아 빛을 발해야 할 곳에서 지도를 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남편이 없고 그리고 특별히 은혜를 받았다고 목사를 한다는 것은 성경해석보다 자기 상황을 합리화한 것이다.

교회라고 안전한 곳이 아니다. 항상 조심해야 할 사람이 모인 곳이다. 거친 사람도 많고 여러 경우에 남자로서 감당하기도 어려운 현실에 여성으로서 과연 얼마나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여자 목사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목사를 이해하고 있다. 누가 이렇게 교회사회의 직책을 만들어버렸는지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7)성령의 능력을 받았기에 목사를 하는가?
물론 남자로서 목사가 되어도 지식으로 목사가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얻지 못한 상태로 목회를 끌고 가는 것은 본인에게도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능력과 은사가 직분을 정하는 원리는 잘못한 인식이다. 성경은 직분의 은사와 성령의 은사를 구분한다.

종교의 현대적 감각은 이미 다원화로 사회적 기능성으로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하는 세상이 되었고 성경의 교리적 사상에 대한 기초를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여자라도 설교 잘하면 강단에 서고 능력(?)을 나타내면 하나님의 종이다는 식이다. 능력이 먼저인가? 하나님의 뜻이 먼저인가? 마7:21-23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나타나도 하나님의 정한 법을 벗어나 불법(不法, ἀνομία)을 행하면 저주를 받는다(갈1:7-8).

그러면 여성 목사로 교회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은 뭔가? 그렇다. 요즘 여성목사들 중에 교회를 세우고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자들이 생겼고 교회사회는 여성목사를 당연시하는 세태이다. 그런데 종교인으로 일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님께서 오실 때 세상을 판단하시는 기준이 있는데, 능력이 얼마나 있어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가 보다 말씀대로 살았는지를 물으실 것이다. 말씀대로 산다는 범주에 물론 충성의 행위가 포함되지만 원리대로 살았는지를 물을 것이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할 것은, 성경적이지 않는데 선하게 보이거나 능력 있게 보인다고 해서 그게 다 옳다거나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때가 되면 비성경적, 허락하지 않은 삶의 형태는 결국에는 행복으로 가지 않고 파멸과 후회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말세에 처하여 개인 사유의 자유 속에 제각기 자기 소욕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무질서의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때에 성경적인 직분은사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이대로 흘러가는 교회사회는 상당한 보응을 받을 미래를 가고 있다 하겠다.

비단 여성 목사 안수와 무자격자들을 안수하는 것 자체만이 이슈화 할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초가 흔들리기에 이런 유형의 문제가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즉 다른 교회 상식은 다 잘되고 있는데 유독 여성목사에 대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 모든 질서가 깨어지고 있기에 이런 여성 목사 안수가 허락되고 있다는 말이다.

http://cafe.daum.net/st888
2014-09-04 19:36:25
121.xxx.xxx.250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번호 제 목 닉네임 날짜 조회
공지 게시판에 대하여 코닷 2014-05-28 3098
3 [ 주일성수 ] 강종수 2016-05-21 1504
2 기적을 빼놓고는 성경과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Love God 2016-05-07 758
1 저 아래에 33번글 예정론에 관한 글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Love God 2016-04-15 748
0 창49:24 번역/예언적 적용으로 본 번역 강종수 2016-03-05 907
-1 [ 십일조 ]는 감사의 시작 강종수 2015-04-11 2713
-2 제직론- 여자로 목사 됨이 성경적인가? 강종수 2014-09-04 4899
-3 [오병선님의 댓글신고] 이 글에 대한 댓글을 지워주세요. 오병선 2014-06-17 2131
-4 [ 복음 전파의 열정으로 인한 시험 ] 강종수 2014-04-12 1957
-5 성도들 인사말로 '할렐루야~'가 옳은가? 강종수 2014-03-20 2865
-6 '중보기도'란 용어, 성도끼리 사용함이 합당한가? 강종수 2014-03-19 2334
-7 요1:1과 창1:1의 '태초' 번역 차이 강종수 2014-02-01 3086
-8 은사(恩賜, χαρισμάτα, 카리스마타) 종류 정리 강종수 2014-02-01 3601
-9 부산노회 영도시찰 종교개혁지 탐방 박재수 2013-09-05 4111
-10 이런 가르침 문제가 없는지요? (1) 유휘경 2011-10-25 3363
-11 언약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나라 (1) 김광석 2011-01-28 6327
-12 이런 자가 이단이다 강종수 2009-12-02 3323
-13 설교와 설교자 강종수 2009-04-04 3848
-14 잘못된 예정과 성경적인 예정 (12) 박창진 2008-11-10 4356
-15 계시록의 key 구절에 대한 해석 박창진 2008-11-01 3106
-16 음부와 지옥, 낙원과 천국 박창진 2008-11-01 6550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