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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46)
PAUL 2018-12-02 00:05:15 | 조회: 175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46)

(2) 설교의 개혁 (Renewal of the Preaching)
시대와 사람과 삶의 현장의 변화에 따라 교회에서도 목회자들의 메시지 내용과 전달방법(delivery method)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본질의 변화 없이 현대적인 표현과 현대적인 언어로 전달방법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전근대적인 방법들은 어필되지 않는다. 본래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세계, 그것도 타락된 세계로 진입하여 인간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구원을 유발케 하는 말씀의 사역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정확무오 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텍스트(text)가 역사(history)와 문화(culture)를 통하여 콘텍스트(context)인 인생 현장에 역사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설교란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말씀의 원문(original text)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설교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자체, 즉 기록된 성경본문(Bible text)과 꼭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과거 역사상으로 한 번 적용되었던 진리(the truth applied)이며,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재적용된 진리(the truth reapplied)이다. 이 부분이 성경말씀과 설교말씀의 차이점이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문화언어적인 차원에서 설명(說明)해서 인간의 변화를 유발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라는 기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여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설교의 본체는「화육하신 예수 그리스도」(incarnate Jesus Christ)이시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선재하신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가 바로 살아서 걸어 다니시고 말씀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질병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던 화육되신 말씀, 곧 설교 그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설교는 화육설교(incarnational preaching)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

① 설교 내용의 개혁
강단의 개혁은, 먼저 설교 내용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말씀을 이탈하거나 복음의 핵심을 잡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헤매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 이유는 설교학(homiletics)의 연구를 무시하거나, 성경지식, 더 나가서는 신학적 지식(theological understanding)의 빈곤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학적, 설교학적 지식이 풍부하거나, 성경적 기초(biblical basis)가 튼튼하면서 은혜롭게 설교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 지식을 떠나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주신 은혜 가운데, 받은 복음을 변질시킴이 없이 쉽게 전하면 된다는 뜻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지식 이상으로 전하려 할때, 설교가 비성서적 내지 비 복음적인 메시지가 되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성경을 그대로 전하면 염려 없다.

다시 말하면 성경말씀 중에 설교 본문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전하다 보면, 자기 소리만 늘어놓다 말게 된다. 더 나가서 이상한 소리까지 하게 되어 교인들의 신앙사상에 지극히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성경해석학(hermeneutics)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아무 해석법이나 마구 적용하는 경향이 많다. 한 예를 든다면, 성경을 우화적 해석법(allegoric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일변도로 적용하여 성경구절의 의도나(intention), 그 진의(true meaning)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희한한 동음이의의 신소리(pun)로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설교 준비를 위한 성경해석은 설교학적 패턴(homiletical pattern)으로 말하여 설명하면, 선택한 성경의 본문(sermon text: Scriptures)—성경 해석학(hermeneutics)—성서신학(biblical theology)—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의 배경라인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하면, 건전한 조직신학적 뼈대와 성서신학적 체계에 꼭 맞는 성경 해석학의 도구들(tools)을 사용하여 성경의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exegesis or exposition)한 후에, 성령의 능력(spiritual power)을 통하여 삶의 현장에 효과 있게 적용함으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 성경해석학은 조직신학과 성성신학과 같은 체계적인 성경원리에 맞추어 제작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연장(tool)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를 분해하거나 조립하기 위하여 종류나 규격이 꼭 맞는 연장을 선택해서 사용해야 되는 것과 같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도 해당 구절을 주석하는데 꼭 맞는 성경해석법의 연장(tool)을 잘 선택해서 사용해야 한다. 물론, 성경해석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주도(top priority of initiative)는 성령(the Holy Spirit)께서 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설교 본문을 택하거나, 해석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주석(commentaries, exposition)이나 다른 신학적인 서적들(theological books)을 먼저 떠들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조명을 받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설교자(preacher)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엎드려 기도함으로 성령의 영감, 즉 설교의 영감을 받은 후에, 성령의 지혜를 통하여 설교 본문의 해석으로 들어가야 한다. 본문을 해석하기 위한 직접적인 연장은 성경해석학의 방법이므로, 성경해석법 중에 어느 방법, 즉 어떤 연장(tool)을 사용해야 할지를 결정하여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성경해석이 올바로 된 것인지,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이 확인 작업을 하기 위하여,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원리가 필요하고, 권위 있는 주석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아전인수 격(我田引水格)으로 오용하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올바른 성서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delivery)해야 할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하여 전달하는 설교의 내용이 철저하게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② 설교 형식의 개혁
강단의 개혁은, 다음으로 설교형태의 변화를 통하여 시도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서 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목설교(topical preaching)를 위주로 하였다. 한국교회는 초기에 미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설교형식인 제목설교가 선교사들에 의하여 그대로 이식(移植)되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제목설교가 적절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조직에 있어서 통일성이 있고, 내용에 있어서 명료해서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설교의 통일성과 간결성의 잇점 때문에 제목설교가 한국교회 선교의 백년사 속에서 주역을 담당해 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 당시 한국 교회의 초기 단계의 상황으로 보아 제목설교가, 많은 잇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설교유형들 보다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도 많이 바뀌었거나 기성인들도 많이 발전됐다. 성숙했다는 표현이 좋을지 모른다. 물론, 급진 신학자들이 말하는 신앙이 아닌 실존적으로 “성숙한 인간”(man of age)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받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앙이 많이 성장했고, 그리스도인의 문화생활도 많이 발전해서 생활양식(life style)이 달라짐에 따라 이에 부응해서 현대인에게 적절한 영의 양식을, 때를 따라 공급해 줄 사명이 설교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비유로 말한다면 현대인의 식성에 맞도록,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요리를 해서 영양가가 풍부한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효과적인 설교방법을 통하여 복음의 진수성찬을 효과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홀랜드(Dewitte T. Holand)는 설교는 목사의 직무와 함께 계속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양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대로 인위적인 방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대부분 강해설교 형태(expository preaching style)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항상 그렇지만, 특히 오늘날 한국 교회에 있어서 강해설교가 적절하다고 본다. 제목설교(topical preaching)가 간결성과 통일성의 장점도 있지만, 독창성이나 본문을 등한히 취급하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홍정길 목사는 제목설교가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전하기 쉬우므로 바람직한 설교가 아니라고 부정론을 폈다. 그는 제목설교의 위험성을 전제하고, 제목설교는 근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한국교회에 바람직한 설교형태는 본문의 강해설교라고 주장했다. 이성헌 목사도 강해설교가 설교의 원형(the archetype of preaching)으로서 처음부터, 예수님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설교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다. 콜러(Charles W. Koller)도 강해설교가 설교의 원형이라고 말했다.

강해설교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나 성경 본문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약간의 약점도 없지는 않다. 그 중에 하나가 현장과 연결시키는 적용(application)의 기술이나 배려이다. 성경 본문에만 집중하다 보면, 하나의 주석가로 끝나기 쉬운 약점에 빠지기 쉽다. 목회현장(ministry field), 삶의 현장(context)을 소홀히 하여, 오늘의 말씀이 아니라 그 당시의 말씀, 나의 말씀이 아니라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끝나기 쉬운 약점이 있다. 강해설교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서에서는 간단하게 다섯 가지 방법(four types)을 소개한다. 첫째, 내연형으로 본문의 “집중강해식”(intensive type) 설교방법이다. 이 강해설교의 방식은 성경 본문 전체를 한 구절 한 구절씩(one verse by one verse) 빠짐없이 세밀하게(in detail), 그리고 집중적으로(intensively) 강해해나가는 설교방법이다.

둘째, 외연형으로 본문의 “확대강해식”(extensive type) 설교방법이다. 이 강해설교 방법은 본문은 물론 본문에 관련된 내용을 전 성경(all Scriptures)에까지 확대하여(extensively) 본문의 전달내용을 보강하는 방법이다. 셋째, 선택형으로 본문의 구절 “선택강해식”(selective style) 설교방법이다. 이 방법은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high-light)을 선택해서 그 부분을 중심테마(central theme)로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넷째, 숙고형으로 본문의 “반영강해식”(reflective style) 설교방법이다. 이 방법은 마치 보석상이 보석을 다면(多面)으로 깎아서 보석의 여러 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선택된 본문의 여러 면의 의미를 반영시키는 방법으로 다면영상(多面映像, multi-screen)의 효과의 장점들을 최대한도로 이용하는 설교방법이다. 다섯째, 주해식 강해설교(exegetical preaching)가 있는데 이것은 성경본문을 한구절 한구절 구구절절 해석하며 설교현장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방법 만이 강해설교인 줄로 오해하고 있다.

③ 설교 방식의 개혁
마지막으로, 교회의 강단의 개혁은 설교의 전달방법(delivery method)에 있어서 화육설교(incarnational preaching)의 방법을 구사하도록 해야 한다. 화육설교(incarnational preaching)란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사건을 전제로 한 설교로, 인간의 영혼과 육신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인격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기적의 메시지(miracle message)로서 인격화된 메시지(personified message)이다. 이 설교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거듭나고(born again), 삶의 가치관(a value of human life)이 바뀌고, 육신의 질병(physical disease)도 치유되고, 사회(human society)가 변화된다. 이 설교는 설교의 내용과 언어에 멎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육사건”(incarnational event)을 유발시키게 하는 설교방식이다. 본문과 설교내용, 그리고 전달언어 속에만 화육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교인들의 영혼과 생활현장에 “화육사건”으로 생생하게 육박해 와서(has been coming) 부딪히는(touchable) 설교를 말한다. 영혼을 터치해서(touch) 거듭나게 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는(change of life) 그러한 말씀을 말한다.

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하시매”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라고 했는데, 이 사건이 곧 화육사건이요 하나님의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θεύ)가 세상에 말씀되고(spoken) 선포된(preached) 그리스도의 말씀(ῥήματος Χριστού)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선재의 말씀(pre-existent Logos)을 말하며, 후자는 화육된 말씀(incarnate Logos or God-Man)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씀”(the Word)이라는 용어에 대한 두 가지 종류의 헬라어 단어들 즉 “로고스”(λόγο󰐠)와 “레마”(ῥήμα)의 어원학적인 용법(etymological use)에 절대적인 해석의 키(key to an interpretation)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신․구약성경에서 교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히브리어에서 “말씀”(ר󰔪󰕏)의 어원학적 의미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의 배후에는 두 가지 개념, 즉 지성적 요소(a noetic element)인 “사상”(the thought)과 역학적 요소(a dynamic element)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용어들(用語, terms)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학적 이해(theological understanding)와 성경 말씀의 설교학적 적용(homiletical application)에 접근하기 쉬운 면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선 신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용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삼위일체론(theory of Trinity)을 정립하는데 용이하다. 다시 말하면, 이 용어를 통하여 말씀으로 선재하신 하나님(Godhead)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incarnate Christ)의 선재형(pre-existential image)으로서, 그 선재하신 하나님과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설교학적인 면에서 볼 때, 선포된 말씀은 “믿음”(πιστίς)의 상태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말씀“(ῥήμα Χριστού)은 롬 10:8의 “믿음의 말씀”(λόγος τής πίστεύς)의 뜻과 같다.

흠정역 성경(KJV)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διὰ ῥήματός ϑεύ)으로 번역되었으나, 새 국제번역 성경(NIV)과 한글 개역성경은 “그리스도의 말씀”(Word of Christ: δία ῥήματός Χριστού)으로 번역되어, 오히려 후자의 번역이 신학적, 설교학적 배려(配慮)를 더 한 셈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레도우스(Greathouse, William M.)는 “그리스도의 말씀“(the word of Christ)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는 말보다 더 주의를 끈다고 말했다. 사실상, 말씀이 선포되었다는 것(that the word has been preached)은 역사하는 “믿음의 방편”(the means of working faith)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믿음의 말씀”(the word of faith)으로 그 말씀이 믿음을 생기게(beget) 하고 자라게도(flourish)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God's revealed word)은 “그리스도”(Christ)로서 곧 “살아있는 말씀”(the living word)이요 “세상에 오신 말씀”(the word came into the world), “역사하는 말씀”(the working word)으로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메시지”(the Divine message), 곧 “선포된 말씀”(the word preached)으로 설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선포”(proclamation, preaching)가 “역사하는 믿음의 방편”(the means of working faith)이라고 했으니, 그 선포, 즉 “설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화육사건” (incarnation event of Christ)의 방식을 취해야 하므로, 이는 근본적으로 화육설교(incarnational preaching)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화육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스데반이나 바울사도와 같이 준비한 설교말씀에 반드시 사로잡혀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화육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마 1:20).

- 계속 -

Rev./Dr. Paul B.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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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0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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