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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58)
PAUL 2019-02-06 01:06:41 | 조회: 104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58)

3. 연쇄 고충격의 성서적 근거 (Biblical Basis)
본서(本書)에서 21세기 「제3물결」과 「제4물결」 시대에, 교회성장의 전략적인 방법으로 「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요법」은 비록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과 “뉴-톤의 운동의 법칙”(Newton's Law of Motion)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성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운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motion)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원리들을 수없이 채용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도 이러한 자연의 원리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2의 바이블이다. 이는 물론 성경과 똑 같은 목적과 권위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된 인간과 우주만물의 구원을 목적으로 주신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이지만, 자연은 타락 이전 “창조의 원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 또는 자연계시(natural revelation)로 구속과는 무관한 “제2의 바이블“이라는 뜻에서 하는 문학적인 표현에 목적이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나타난「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요법」에 관하여 상세하게 연구하기로 하자.

(1) 구약성서 (The Old Testament)
본래 「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요법」의 목적은 구속사역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구속사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면서부터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로 그를 에덴동산에서 좇아내신 후(창 3:22-23), 사전에 약속하신대로(창 3:15) 다시 찾아오셔서 인간을 만나주시게 된다. 물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그는 즉시 희생되었고, 에녹과 같은 인물들도 있으나 성경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게 된 첫 사람은 노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방주를 지었고(창 13-22; 히 11:7),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으며(히 11:7),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열렬하게 복음을 전하였다(벧후 2:5; 3:19-20).

이때에, 노아의 형편을 생각해보면, 세상이 죄악의 관영으로 복음을 전혀 듣지 않고 있을 때에, 대홍수가 나서 세상이 멸망한다고 외치며 다닌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 아니다. 하늘이 멀쩡한 날에,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20여 년 동안이나 외치고 다니니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우리가 글로, 그것도 대충의 내용으로 전해 듣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피부에 와서 닿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그 당시 노아로서는 가장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가장 중대한 문제로 육박해오는 것이다. 이러한 노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이 노아를 어떻게 생각하였겠는가? 물론, 정신이상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예레미야가 민족의 살길을 외치며 전하고 다닐 때에, 그의 친구들이 조롱하고 비웃은 것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담대했을까?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고충격훈련(high impact training)을 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말씀하시고 지시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을 강하게 하셨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상황에서 거리낌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없다.

필자는 요사이 가끔 지하철 안에서 교인들이 나와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전도전략과 방법에 대한 찬반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떠나서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할 때에, 오히려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속에 계셔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계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함께 어울려 전도하지 못한 자신의 믿음의 초라한 모습에 마음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과거에 열차간이나 시장터에서 약장수의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열렬히 외치던 그 때가 한없이 그립게 느껴지기만 했다. “주여! 용서하소서. 나의 연약한 믿음, 아니 세속화되었다고나 할까, 교만해졌다고나 할까, 보잘 것 없는 주제에, 바울과 같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해야 할, 주님께 한없이 빚진 자가, 주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다니......용서하소서. 믿음을 더하소서. 주여! 날 보내소서.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마음속으로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이 자기의 일, 자기의 시간도 개의치 않고 생기는 것도 없이, 저렇게 열심히 담대하게 전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마디로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고충격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있었던 간에....

다음으로 생각할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조용한 생활만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면서 일일이 묻기도 하고 지시를 받아가면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강도 높은 신앙훈련을 받은 것이다. 그는 복의 근원, 만인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비전의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고(창 15:12-21; 13:14-17; 히 11:8-10), 하나님의 지시를 직접 받아가며 훈련받았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의 뜻대로 하다가 실수를 하기도 하였다(창 12:1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받은 훈련을 통하여 자기 집에 있는 318명을 정예용사들로 훈련시켜서 조카 롯을 구하기도 하였다(창 14:12-16). 그는 말씀과 성령에 충만하였다.

특히 이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모세로서, 그는 누구보다도 직접, 그리고 강력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고충격훈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씀과 성령의 강한 충격훈련을 받은 것에 관하여는 다음의「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훈련의 실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그의 고충격훈련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가 광야의 고충격훈련이요 둘째가 왕궁의 고충격훈련이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인도하는 훈련과 왕궁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는 훈련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많은 시험과 훈련을 통과하게 하셨다. 만약에 모세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한 고충격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에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다음으로,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사사들과 사무엘, 다윗 등 구약에 많은 지도자들이 있는데, 특히 본서에서는 엘리야 선지자의 훈련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불림을 받고 당시의 어용 이방선지자들인 바알 선지자들과의 갈멜산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응답으로 승리하여 “갈멜산 혁명”을 통하여 그들을 멸절시키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3년 반이나 가물었던 땅에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왕의 왕후인 이세벨이 잡으러 다니자 두려워서 광야로 피신 다니기에 정신이 없었다. 결국 도망 다니다가 지쳐서 한 로뎀나무 밑에 쓰러져 하나님께 죽기를 구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런 지경에 빠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통하여 떡과 물을 먹여서 기력을 회복하게 해서 40주야를 광야횡단을 할 수 있게 하셨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항상 생각을 멈추곤 한다. 어떻게 해서 떡과 물을 한 번 먹고 40주야를 달려갔을까? 물론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많지만, 그 광야의 악조건과 장비도 없이 그런 괴력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다름 아닌 그 식물의 힘으로 40주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에 이르렀다고 했다(왕상 19:8). 여기에는 하나님의 또 다른 힘이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음식부터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직접 배달해주신 하나님의 특명요리이다.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해서 천사가 충분히 먹도록 권면했다. 아무튼 아무리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이라 하더라도 한 번 먹은 음식으로 40일 이상 달릴 수 있는 힘이 나올 수가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음식인 영의 음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징적으로 숯불에 구운 떡과 물도 의미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쿡킹(cooking)한 음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적인 음식의 재료와 칼로리가 가미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돋워 주신 기력을 통하여 광야 길을 달리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이 충만한 예언자이다. 성령의 고충격력(高衝擊力)을 항상 유지하고 다님으로 갈멜산에서도 승리할 수가 있었다. 그 성령의 권능으로 자기를 잡으러 온 두 그룹의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들을 하늘의 불로 죽이는 괴력을 나타내고(왕하 1:10-12),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했다(왕상 17:17-20). 물론 바알 선지자들과 그리고 대정부 투쟁에 지쳐서 기운이 진하여 로뎀나무 밑에 쓰러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고충격력을 충전시켜주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육신의 힘을 얻은 엘리야는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지진 후에 그 지진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불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 후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여기서 엘리야는 자신의 중심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자기의 처절한 모습을 아뢰고 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하나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뎀나무 밑에서부터 지쳐있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 위하여 마음의 확신과 담대함과, 그리고 강력한 영력을 갖도록 “성령의 고충격훈련”을 호렙산 동굴에서 천둥 번개 치는 듯한 상황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현현하시는 가운데서 강도 높게 시키신 것이다(왕상 19:9-14).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수행하라고 명하셨다.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정치개혁),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후계자를 삼으라고(종교개혁) 하셨다(왕상 19:15-16).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구약시대니까 지나쳐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의 지도자를 세우고 종교의 지도자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지도자로 세워야 나라가 복을 받아 태평성대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 전파를 위한 기반을 삼을 수 있다. 어느 특정 후보자를 추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세울 수 있도록 우선 교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지도해야 한다. 교인들은 정당에든, 직장이든 자기의 생활현장에서 역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지도자를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유도해야 한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은 더욱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얼마 전에 교회의 총회장이나 감독, 노회장, 심지어는 지 교회에서 까지도 직원들을 세울 때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선거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비뽑기”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교회 선거개혁 캠페인을 자기의 자본을 투자하여 한국과 미국의 한인교회들을 순회하며 전개하는 박×× 목사님의 부탁으로 그의 지론인 “교회의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논단을 영어로 번역해준 적이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금권선거로 인하여 부패해간다고 전제하고, 성경적인 “제비뽑기”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고 외치고 있다. 물론,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이해해야 할 문제도 없지는 않지만, 미국과 같은 선진 교회에서와 같은 교회조직으로 개혁하지 않고 구태여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선거부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노를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할 수 있다면 “제비뽑기” 방식으로 돌아가면 교회선거가 개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제비뽑기”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선거제도에 앞서서 선거부정이 나오지 않도록 교회의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의 총회장, 노회장의 직권을 대폭 축소하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약 10여 년 간 미국 개혁교단인 CRC(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총회나 노회에 참석해서 지켜보면서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회의진행이 대단히 신사적이며, 승패를 떠나서 결정사항에 기분 좋게 승복하는 정치문화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우리 한국교회도(政局도 마찬가지지만) 저들과 같이 은혜롭게 회의를 진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선거전에 지나치게 열을 올려서 회장이 되고자 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문화적인 멘탈리티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에, 미국교회의 회장(총회장, 노회장)은 교회의 실권을 행사하는 회장(president)이 아니라,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chairman)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노회장, 총회장이 노회나 총회의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앙집권 체제(centralistic system)에서의 회장위치가 아니고, 각 분과위(committee)들로 교권이 분산되어 있는데 반하여, 한국교회의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1년 동안은 상임회장(?)으로 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회장에 당선되려고 전략상 수단을 가리지 않다보니 부정선거가 자연히 자행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문화가 성숙되지 않는 한, 현제도는 개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엘리야 이후에, 엘리사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수많은 지도자들(에스라, 느혜미야,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舊譯: 聖神)에 의하여 연쇄적으로 고충격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들을 감당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내려주시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만이 현대교회를 성장시킨다.

- 계속 -

Rev./Dr. Paul B. Jang
revpaulj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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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0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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