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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62)
PAUL 2019-02-26 13:25:22 | 조회: 82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62)

2)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 (The Case of Samaritan Woman)
신약성서에도 예수님께서「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요법」을 사용하신 사실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사도 바울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조차도 없는 것 같은 상태에서, 수가 성 우물로 물을 길러 같다가 우연히 예수님과 조우(遭遇, encounter)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말씀과 성령의 고충격요법”중에 첫 단계인 주님의 부르심(소명, calling)의 단계가 생략된 것인데, 사실, 성경말씀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제1단계의 부르심이 있었든 것이다.

제1단계: 소명 (Calling/Vocation)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예정하신 스케줄에 따라 운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한번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인도했는데,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만 듣고 갔을 뿐, 예수님을 만난다는 예감조차도 없었던 것으로 알았으나,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자, 하시는 말씀,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시고, 이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이어서 예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시며 대답하신 것을 보면, 사전에 빌립을 통해서 나다나엘을 만나시려는 계획이 있었고, 결국 빌립을 통하여 부르신 것이라는 사실을 보아 “소명”의 단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빌립은 주님의 사전 부르심에 감동하여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체험으로 보아도, “직접 음성으로 부르시는 것보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특히 하나님께서 부르셨는지 자신도 모르다가 어떠한 은혜의 사건이나, 신학교를 가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게 될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것을 알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내심의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적 소명이 아닌 중생에 관한 내적소명(inner call)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음성과 같은 외적인 수단을 통하여 듣지 못했을 때를 지칭하는 뜻이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사마리아를 지나시기로 예정코스를 잡으시고, 올라가시다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겠다는 생각을 반드시 하셨으리라고 믿는다. 결국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리에 있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오기를 기다리신 것이다. 물론 본문에는 피곤하셔서 쉬시는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요 4:6),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마리아 여인의 모든 사연, 심지어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익히 아시고 계신 것을 보아(요 4:18), 사전에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의 하시는 일에 무계획적이 아니라 세밀한 것 까지 그의 계획 속에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에,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공식적인 초청(소명)은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시는 것과 같이, 사마리아 여인을 부르신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사마리아 여자 본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먼저 찾아와 주셔서 자기를 불러,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에 말할 수 없이 감격했던 것이다.

제2단계: 대면: (Confrontation/Encounter)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제2단계는, 문자 그대로 “대면” 혹은 조우(encounter)의 경우이다.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는 소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여자에게 있어서는, 물을 길러 수가 성 우물로 나갔다가 우연히 주님을 만나게 된 조우(encounter)의 경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우도 주님의 스케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제는 주님의 계획대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면이라는 둘째 단계를 밟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피곤하셔서 우물가에서 쉬시는 중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 길러 나오는 것을 보시고 서슴없이 만나시는(meeting) 것이다.

이 만남은 과연 무슨 만남인가? 그리스도와 사마리아의 여인의 만남(대면)은 하나의 혁명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예수님은 유대인이요, 사마리아 여인은 그 당시 상종할 수 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구약시대의 북조 이스라엘)의 여자였기 때문이다(요 4:9). 둘째로, 그 당시 여자는 면박을 얼굴에 써야할 정도로 남녀가 유별했던 시대인데, 그것도 낯선 유대청년을 다른 데도 아닌 우물가에서 단둘이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풍속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영적인 의미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그것도 여섯 남편이나 섬긴 경험이 있는 사마리아 여인, 죄인중의 죄인인 인간이 의인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혁명중의 혁명이 아닐 수 없는 사건이다. 더구나 옛날에도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와 주셔서 죄인을 만나주시는 대면의 단계이다.

제3단계: 대화 (Dialogue/Conversation)
사마리아 여자에게 있어서 제자훈련(말씀과 성령의 연쇄 고충격훈련)의 제3단계는 대화(Conversation)의 단계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대면하시는 즉시, 그 여자와의 대화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의 첫 대화는 “물을 좀 달라”시는 서두였다(요 4:7). 이렇게 시작하신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 속에는 선명한 구속론이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는 낯선 유대청년으로서의 어설픈 대화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그 대화의 분위기는 심각한 인생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날카로운 수술칼로서의 메스를 가하는 것과 같았고, 이처럼 심각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가시는 주님의 대화의 화술에 이 사마리아 여인은 정신을 잃고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자도 당당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질문공세를 펴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요 4:9) 이와 같이 당당하게 당신이 누구이기에 서슴없이 물을 달라고 하느냐? 는 말투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마음속을 한 발작씩 파고 들어가시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물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을 뿐만 아니라 조상 야곱과 그 아들들과 짐승들이 다 먹었는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예수님께 바짝 다가섰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생수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말씀해주시면서, 이 생수를 마시는 자마다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시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이런 물을 달라고 더욱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 아직도 생수에 대한 육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고 있는 상태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직도 말씀의 뜻을 잘 모르고 있는 이 답답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도록 믿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계신다.

이러한 물을 주는 데는 조건이 있다고 하시면서 남편을 불러 오라는 것이다. 이 여인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신 것이다. 아찔 하는 느낌이 오면서도 자기의 사생활문제를 순간적으로 터치하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예감이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나의 사생활을 알고 있으실까? 자기의 마음을 압박해오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 여인은 반사적으로 남편이 없다고 부정하고 만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요 4:17). 이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은 옳으나, 사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다고 이 여인의 과거를 거침없이 들쳐 내시는 것이다. 이에 사마리아 여인은 어떠한 영적인 위압감이 조여드는 것을 느끼면서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하며 어느새 자기의 사생활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선지자, 즉 자기의 신앙적인 카운슬러(Counselor)로 받아드리게 된 것이다. 저가 누구이시기에 어떻게 자기의 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계실까? 이는 선지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신앙생활 중에, 예배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된다. 조상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요 4:19-20).

그러나 예수께서 참 예배는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때가 왔는데 바로 이 때이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예배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요 4:21-23). 이제 자기의 인간적인 사생활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까지 정확하게 해결해주시는 분인 것을 보니 과연 범상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의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게 된다. 이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그로라” 하고 바로 자기가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에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 는 한 유대청년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분을 점차 자기의 사생활까지 의논할 카운슬러(Counselor)로, 다음으로 자기의 신앙문제를 상담할 선지자(Prophet)로, 그리고 결국은 자기의 인생의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메시야(Messiah), 곧 그리스도로 받아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위대한 “아가페의 대화“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대화를 통하여 사마리아 여인을 설득시키게 되었다.

제4단계: 설복 (Persuasion/Training)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제4단계인 “설복”(persuasion)의 단계에서, 역시 대화로써 완전히 변화시키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설복시키기 위하여 이 답답한 여인을 앞에 놓고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 나아가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보던 사마리아 여자를 설득시키시는 예수님의 대화의 기술(dialogue skill)은 목회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다. 유대의 한 낯선 청년으로 알고 대화에 응했던 사마리아 여자를 예수께서는 메시야로 알아보도록 그래서 완전히 설복되도록 대화로 이끌어 나가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 그리스도와의 대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모시도록 설득되었고(요 4:19), 다시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모시도록 설복되고만 것이다(요 4:29).

제5단계: 사명 (Mission)
예수님을 선지자요, 그리스도로 받아드리도록 설복당한 사마리아 여자는 죄인 괴수로서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죄의 문제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그리스도를 만난 그 은혜에 너무나 감격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자기와 같이 세상 죄악의 그늘에서 숨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자기가 만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명감에 불타기 시작하였다. 이 억제할 수 없는 사명감에 마음이 뜨거워 견딜 수 없으므로 자기가 사는 동리로 뛰어 들어가게 된다(요 4:25-26). 예수께서 “내가 그로라”(요 4:26) 하시는 말씀에 이 여인은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도취되었고, 이 은혜로우신 그리스도를 나가서 전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솟구친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8절에 보면 주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에 도취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전도하러 동네로 들어간 것”을 보아 충분히 알 수 있다.

제6단계: 파송 (Sending)
예수그리스도를 뜻밖에 만나서 자기의 인생문제를 해결 받고 얻은 영적인 기쁨에 넘치고 사명감에 불타서 자기의 생활수단인 물동이도 내던지고 수가 성 동리로 뛰어 들어가서 온 동리를 다니며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외친 것이다. 예수께서 그 마음속에 사명감이 불타서 뛰 쳐 나가도록 강도 높게 훈련하신 결과이다.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요 43:28)라고 해서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훈련받고 동리로 파송(sending)된 것을 암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자의 제자훈련은 가장 짧은 기록을 세운 것 같다. 정오에 우물가에서 시작된 단 한 사람의 사마리아 여자를 상대로 단 하루, 그것도 단 몇 시간(1-2 시간?)만에 완벽한 제자훈련으로 성공한 케이스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육 시쯤이면 우리의 시간으로 정오가 되는데, 이때부터 단 몇 시간 안에 완벽한 제자훈련을 시키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무적인 장면이다.

- 계속 -

Rev./Dr. Paul B.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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