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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1952년 9월 조직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로회, 즉 고신교회는 첫 10년 어간 이중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외적으로는 고신교회를 분파주의자, 분열주의자, 독선주의자들, 혹은 바리세파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단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1951년 9월 4일 회집한 제53회 경남노회에서와 1952년 3월 4일 회집된 제54회 경남노회에서 고신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총회에 건의하기로 한 바 있다.(1) 고려신학교나 고신교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에서 떠나도록 요구되거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즉 대구 서문교회에 출석하던 김주오, 박복달, 신경순, 서옥련, 김계초, 서경애 등 6명은 고려신학교 측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1951년 8월 19일 제명당했고, 재명된 이들은 8월 20일
포럼발표논문
이상규
2014.05.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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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12-13일(월-화)에 미래교회포럼 "고신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4차 모임이 성도간의 세상 법정 소송이란 제목으로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 열리고 있는데 약 60여명이 모였다. 동대구 노회 김영경 목사건을 듣다.5월 12일 오전 11시에 미래교회포럼 사전 모임으로 동대구 노회 김영경목사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김영경 목사가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질의 응답을 받는 형식으로 상황을 나누었다. 김영경 목사가 행복 나눔 교회에서 17년간을 목회하면서 부흥하는 가운데 있었다. 당회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노회에 고소가 된 상황에서 1차 재판을 받고 2년 정직, 수찬정지 2년, 담임 해제라는 판결을 받아서 헌법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상소를 했지만 총회 재판국
소식
코닷
2014.05.0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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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60주년을 맞아서 시작한 역사 반성과 회개의 기회로서 내건 주제 "고신 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마지막 4차 포럼 소주제는 "소송"이다. 다시 한번 함께 모여서 소송을 비롯하여 지난 3번의 포럼을 통한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고 고신 교회에 대한 권면을 하려고 한다.고신교회가 해방후 신사참배 회개촉구를 거절하는 교권파들에게 쫓겨나는 상황속에서 예배당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송사문제에 휩쓸렸다. 송상석 목사는 송사를 하면서까지 교회당을 확보하였다. 한상동은 박윤선과 함께 송사 반대의 입장을 가졌었다.그런데 이후 송상석 목사는 대학인가 과정에서 이사장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 있어서 송사를 당하자 송사 불가 입장으로 돌아섰다. 반면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한상동은 송사를 감행하였다.이런
소식
코닷
2014.04.0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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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27일 문경에서 열린 미래교회포럼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코닷- I. 들어가는 말비텐베르크 대학이 설립(1502년 10월 18일)된 지 15년이 지난 1517년에 마틴 루터는 이 대학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이 후 비텐베르크 대학은 개신교 신학과 신앙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여 17세기에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아성(Hochburg)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신생 할레 대학(Halle, 1692년 설립)과 경쟁하면서 점차 쇠약해져갔다. 나폴레옹은 독일의 프로이센(Preußen)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작센 주에 있던 비텐베르크의 대학을 폐쇄(1814)하였다. 그 후 프로이센 제국은 나폴레옹의 지배체제로부터 벗어났으며
포럼발표논문
이상조
2013.12.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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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27일 문경에서 열린 미래교회포럼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코닷- 서론 2013년 10월 30일 CNN 뉴스에 따르면, 지구의 기후 변화로 대부분 나라들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의 세계경제 3/1이 12년 내에 기후 변화의 충격에서 오는 극단적 리스크에 직면할 나라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보도한다. 영국에 있는 리스크 분석 회사 마에플크로프트(Maplecroft)의 연간 리포트는 세계 대도시에서 경제성장 유지는 기후 변화가 심각한 방해물가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오늘날 홍수로 사람들은 죽는가? 왜 지진과 태풍이 있는가? 왜 기근으로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가는가? 왜 어떤 사
포럼발표논문
홍성철
2013.12.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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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한국전쟁 당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홀홀단신 월남한 장기려 박사가 부산 영도의 제3영도교회 내에 복음진료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그야말로 환자들에게 복음과 같은 병원이었고 진료를 받은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 들였다. 복음진료소는 1957년 현재의 암남동산으로 이전하였고 1965년 고신총회 유지재단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는 고신대학의 설립인가와 함께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수익기관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고신인만 70% 가까이 근무하는 26개 진료과에 16개병동, 병상수 976병상, 임상교수 350여명을 비롯 1,5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형병원으로 발전하였다. 그 동안 복음병원은 몸집이 커지는 반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노출 시켜 한 때 부도를 맞아 위기를 당하기도
소식
코닷
2013.12.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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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면서 고신교회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교단설립 60주년을 지나면서 그 동안 내재해 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맞물려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대학의 존립위기와 한국의 종합병원들이 맞고 있는 경영위기가 그 대표적 현상이다. 고신교단에 속한 대학과 병원의 미래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적당히 넘어갈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존립자체가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 고신교단이 직면한 위기의 핵심과 본질이 무엇인가이다. 작금에 대학과 병원이 직면한 경영
포럼발표논문
코닷
2013.11.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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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 고신교단은 8천교회의 장로교 통합, 만이천교회의 합동 측 교단에 비하면 1,800여 개교회로 이루어진 비교적 작은 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대형 교단 못지않게 부산에 종합 대학 캠퍼스, 대학병원, 대전에 선교 센터 건물, 천안에 신학대학원 캠퍼스, 서울에 교단본부 건물 등 필요한 하드웨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학교와 신학대학원, 의과대학과 병원의 3자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 기관이 각기 변화를 겪게 되었고 고려신학교(현재의 신학대학원)로부터 시작된 교단이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역학관계가 보이게 되었다. 고신교회는 본래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교단이다. 고려파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한상동 목사는 장로교 총
포럼발표논문
코닷
2013.11.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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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이사회의 불법 속에 태어난 고려신학대학, 6억이 180억 원으로 불어나 결국 복음병원의 부도 초래와 그래서 고려학원의 관선이사회 파송 원인이 되었던 엄청난 부정횡령 등, 8계명과 9계명의 죄악을 공적으로 회개해야 고신이 산다고 외친 미래교회포럼은 이후 고려학원이 살아남을 길에 대한 대안을 찾는 발제를 계속하여 고려학원은 특성화가 대안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미래교회포럼의 셋째 날, 이성구 박사(시온성교회, 전고려신학대학원 교수)와 김순성 박사(고려신학대학원장)는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의 관계연구’ ‘고려신학대학원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제에 나섰고 자유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특성화가 대안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교회가 수익 병원과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가를 먼저 답해야 한다.
소식
코닷
2013.11.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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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이사 사태와 김해복음병원 문제 학교법인 고려학원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던 사건은 고신교회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조상들의 유업이며 총회의 직영기관들인 고려신학대학원과 고신대학교, 그리고 복음병원이 불신자들이 포함된 관선이사회의 손에 넘겨졌던 것이다. 이는 우리 고신역사에 뿐 아니라 한국교회역사에 수치로 기록된, 바벨론 유수와 같은 사건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정복되고 포로로 잡혀갔던 치욕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도 일어난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고 온 세상이 들떠있었던 그때 고신교회는 김해복음병원(이하 김복원이라 칭한다) 처리문제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결국 정부 당국은 총회가 파견한 학교법인
포럼발표논문
코닷
2013.11.2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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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조이사회 사건”의 전말(1) 서두에서 먼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은 본인이 일차 자료를 수집한 후 쓴 것이 아니고 주로 허순길 박사가 에서 이미 밝힌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처음 미래 포럼 준비자들로부터 본인에게 이 주제에 대한 발제 청탁이 왔을 때 본인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리서치해 본 적이 없는 반면 허순길 박사, 아니면 이상규 교수가 먼저 연구 발표해 놓은 바가 있으니 그들에게 섭외해 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준비자의 대답이, 허박사는 처음에 수락했다가 얼마 후 긴급한 가정사가 발생하여 호주에 가야 하기
포럼발표논문
코닷
2013.11.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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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학 인가(認可) 기초이념과 현실의 평가고신대학의 인가 기초이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고신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고려신학교’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려신학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순수한 믿음 가운데 탄생하였다. 학교라는 기관은 일반적으로 치밀한 계획이 앞서고, 인력과 재정이 확보됨으로 설립된다. 그러나 고려신학교의 설립은 그와는 달랐다. 주의 말씀을 죽도록 순종하며 살던 주의 제자들이 감옥에서 품었던 거룩한 이상을 감옥 밖에 나와 실현하게 된 것이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1940년 7월 투옥되어 5년 동안 옥고를 치르던 주남선, 한상동 두 목사가 옥중에서 일본의 패망과 출옥의 날을 바라보고 한국 교회 재건을 위해 신학 교육기관의 설립을 기원했다. 이 들은 당시 감옥
포럼발표논문
코닷
2013.11.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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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살아간다.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위기이고 한국도 위기이다. 좁혀보면 우리가 속한 교단에도 수년 내로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인구감소로 오는 자연스런 현상은 3년 후엔 고등학생이 줄고 졸업생이 급감하여 1/3의대학들이 문을 닫는다고들 야단이다. 교육부가 미리 칼을 빼들고 있기도 하다. 물론 개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인이 급감하여 많은 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들을 한다.복음병원이 2차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복음병원, 고신대학교, 그리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총괄하는 고려학원에 다가오고 있는 이런 위기를 총회임원들과 이사회도 감지하고 12월 17일 고신대 현
소식
코닷
2013.11.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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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목회자협의회의 정신을 이어 받은 미래교회준비위원회는 2012년 12월에 문경에서 전체 모임을 갖고 박은조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미래교회포럼(이하 미포)으로 정식 출발하였다. 고신 60주년 기념대회를 마치고 나서 고신 교회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들이 자발적으로 미래교회포럼으로 모이게 했는데, 그 첫번 모임 주제를 "고신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정했다. 이는 고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두 번의 모임을 가졌는데 “고신 초창기 설립과 관련한 주제”를 다룬 것이 첫 번째 문경 모임이었고 올해 4/29-5/1일에 대전 세계 선교센터에서 합동과 환원, 그리고 초기 고신의 두 신학자 박형룡과 박윤선과의 관계를
소식
코닷
2013.10.1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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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성경공부모임의 기원과 의미 및 적용 16세기 종교개혁이 기독교의 페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교육이다. 중세 시대의 교육은 수도원과 대성당, 그리고 대학이 맡고 있었다. 수도원의 수도사 학교와 대성당의 사제 교육 제도는 프랑스의 파리(Paris)와 런던의 옥스퍼드(Oxford)를 중심으로 교수 길드(guild)가 북유럽풍의 중세 대학으로 발전하는데 가교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중세 대학이 설립된 이후 수도사 학교와 대성당 학교 형태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이 세 기관을 통한 중세의 신학교육은 성직자 양성과 재교육을 위한 것이지 그 혜택이 일반 교인들에게까지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중세 말기에 세워진 공동생활형제단은 평신도의 경건
포럼발표논문
황대우
201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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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1.10-1546.2.18)가 1517년 10월 31일에 발표한 「95개조」가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중요한 첫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는 개신교의 시발점을 루터의 제자인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2.16-1560.4.19)이(2) 작성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 1530)을 기점으로 잡는다.(3) 왜냐하면 아마도 이 신앙고백 속에 개신교 최초로 교회의 두 가지 표지(ecclesiae notae; marks)가 고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순수한 종교적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루터교회-독일인 루터(1
포럼발표논문
최윤배
201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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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고신 초기와 박윤선’이란 제목을 받고 고신 2세대에 속한 사람으로 박윤선의 신학과 신앙과 생활이 초기 고신교회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억하고 아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유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고려신학교가 설립 개교한 것은 1946년 9월 20이었고, 고신교회가 총 노회로 출발한 것이 1952년 9월 16일이었다. 필자가 고려신학교 예과에 입학한 것은 1954년 9월이었다. 그러니 이때 고려신학교는 개교한 지 8년, 고신교회가 형성된 지는 2년이 된 때였다. 수년 전부터 전국 SFC 수양회나, 지도자 수련회 등에 참석하여 박윤선 교수의 강의나 설교를 가끔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를 가까이하고 자주 듣게 된 것은 신학교에 입학한 1954년부터였다. 예과 재학 중에 예
포럼발표논문
허순길 목사
201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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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이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교육이다. 이 교육 효과는 '자국어 성경'과 '자국어 설교'를 통해 나타났다. 유럽 각국의 자국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지만 자국어 성경 번역을 정당화하고 보편화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이다.”5월 1일(수)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위치한 총회세계선교센터에서 있었던 미래교회포럼 셋째 날 오전 발표에서 황대우 교수(고신대학교 교양학부)는 “16세기 성경공부모임의 기원과 의미 및 적용”이라는 제목를 가지고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였다. 황 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취리히의 성경공부모임자국어 성경을 보급하고 자국어 설교를 하는 데 루터가 미친 영향이
소식
코닷
201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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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올 해는 고려파가 1960년 예장승동측과 합동 후 1963년 다시 환원한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변천을 했고, 양 교단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수많은 교단으로 사분오열되어 같은 신학 노선을 걷고 있는 교단들 사이에도 왕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환원 후 고려파와 합동은 과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과거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뚜렷한 시각차를 노정해왔다. 특히 19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 과정을 서술하는 면에서 보여준 뚜렷한 시각차는 그 한 예이다. 같은 신학 노선을 걷고 있는 고신과 합동이 환원 5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그 사건을 돌아보고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 아닐 수 없다.(1) 1959년
포럼발표논문
박용규 교수
201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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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가을 고신에 부임한 때로부터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듬해 봄 당대 한국 최고의 보수 신학자 박형룡은 고신을 떠나 버렸다. 한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해서 육 개월 만에 사임하는 사람도 처신이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고신측이었다. 일제 하에서 대부분 신사참배에 굴복했던 목사들로서 당시 출옥 성도들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던 한국 장로교회 주류들(1)은 박형룡 박사가 반 년만에 고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고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확증으로 단정하고 싶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초부터 평양 신학교의 최초의 한국인 교수들 중 한 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에서 이미 공인된 경력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신학자”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포럼발표논문
양낙흥 교수
2013.05.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