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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본선교 최초의 선교사
   
▲ 이청길 선교사(동경성서교회)

프란시스코 쟈비엘 신부와 야지로(弥治郎)의 만남은 일본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프란시스코 쟈비엘 신부는 야지로(弥治郎)의 만남을 통하여 일본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면서 최초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1549815일에 프란시스코 쟈비엘 신부는 야지로(弥治郎)를 통역관으로 세우고 야지로(弥治郎)의 고향인 가고시마(鹿児島)에 상륙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일본선교의 첫 출발이 된 것이다. 일본선교의 최초의 선교사로 일본 땅에 온 쟈비엘이란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쟈비엘은 150647,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나바라왕국에서 고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왕족의 중요한 요직에 있었으며 어머니는 명문의 출신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의 다복한 가정에서 32녀 가운데 막내둥이로 성장하였다. 1512,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전쟁이 돌발하여 나바라 왕국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전쟁을 치렸지만 스페인에 패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형들은 몰락한 왕국의 군인출신이 되어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분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524년에 나바라 왕국은 결국 스페인에 합병되고 말았다.

1523년에 쟈비엘은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고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연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철학을 경의하였다. 성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된 쟈비엘은 사제서품을 받아 카토릭교회의 신부로서 일하게 되었다. 쟈비엘은 파리대학에서 카토릭교회 선교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가진 동향인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San lgnacio Loyola1491-1556)는 스페인 귀족으로 군인이었으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쟈비엘은 1534815일 파리 외곽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와 함께 7명의 동지들이 모여서 예수회란 수도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예수회는 청빈, 정결, 순명에다 교황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고 실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카토릭교회의 자체적인 정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럽에서는 카토릭교회가 부패하여 타락한 가운데 1518년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서 매우 혼란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카토릭교회에서는 자체적인 비판과 더불어 자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교황 바오르 3세가 예수회를 승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수세에 몰린 로마 교황청은 종교개혁에 대항할 담당자로서 사도 정신에 불타오르는 예수회라는 수도회 단체를 통하여 카토릭교회를 옹호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회 선교회 단체를 통하여 동방진출을 위한 선교기지를 구축하도록 지원하여 인도 고아(Goa)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카토릭교회가 조급하게 동방진출의 계획을 세운 것은 종교개혁이후 개혁교회들의 진출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선교사들을 통하여 카토릭교회의 세력 확대와 더불어 해외 영토 확장을 위한 탐색 작전과 무역 통상을 위한 선발대로 파송하였기 때문이다.

프란시스코 쟈비엘은 카토릭교회의 비밀 결사대와 같은 예수회에 소속한 신부로서 일본 땅에 첫 선교사로 파송되었기에 선교역사의 흐름을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청길  ckleej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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