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헌옥 목사(편집인)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교리가 문제가 될 리가 없다. 문제는 한 번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고 구원을 받으면 영원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못하는 데 있는것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이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군불을 지폈는가?

먼저는 톰 라이트 박사였고 다음은 김세윤 박사였다. 톰 라이트는 첫 칭의/구원과 마지막 칭의/구원을 구분하였다. 즉 믿음으로 첫 칭의를 얻고 거룩한 삶으로 마지막 칭의를 얻는다는 주장이다. 김세윤 박사는 이미의 칭의와 아직의 칭의를 주장하였다. 믿음으로 이미의 칭의를 얻고 성령으로 산 삶으로 얻는 아직의 칭의를 얻는다는 주장이다. 표현의 용어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주장들이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예수를 믿음으로 첫 칭의를 얻지만 성령으로 살지 못하여 성화되지 못한다면 심판 때에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최종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일부 이를 뒷받침할만한 구절들이 있다. 그리고 소위 성도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그럴듯하게 맞을 수도 있다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성경학적으로 조직신학적으로 반발을 할 수 있고 또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미래교회포럼(대표회장 박은조 목사)은 김세윤 박사를 불러 12월 경, 세미나를 열고 입장을 들어볼 시간을 가질 계획으로 있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신대원 교수의 주장도 들을 계획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내에서 이와 유사한 주장이 나와 기존 이신칭의를 고수하던 학자들과 목사들에게 도전이 되었다. 바로 백석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는 최갑종 박사(신약학 전공)이다. 그는 한번 구원에 참여한 자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는 거룩한 삶이 없고 타락한 자는 최종적인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앞선 분들과 다른 점은 구원에 참여하고 <타락>하였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물론 회개 없는 타락은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이들 세분의 유수한 박사들은 조금씩 용어만 달리하면서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이 문제(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를 해결하면 이신칭의는 손대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첫 단추를 단단히 채워버리고 시작하기에 결국 중도에 낙심하고 포기하며 타락한 자들이 생겨나자 유보나 최종 탈락이라는 말들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신대원에서 M.div 과정만 이수했다. 깊은 신학을 전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소 목회하면서 깨달은 바를 기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할 뿐이다. 이점을 미리 말해 두는 것은 글이 조직적이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요한복음 1: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하나님)를 영접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말씀하고 있다. 중생을 이르는 것이다.

요한복음 3: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3:5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중생은 결국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6:15절에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거듭남(중생)을 강조하였다.

종합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거듭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교인이 있고 성도가 있다. 이들은 교인에 속하는 무리들이다. 물론 이들도 입으로 시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이해한다는 것이지 거듭남은 아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말하면 무조건 그가 칭의를 입었다고 단정한다. 문제는 여기 발생하는 것이다.

 

누가 거듭난 성도인가?

입으로 시인하는 교인이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한다. 물론 처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거듭났는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히 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신을 자가판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는데 누가복은 6:44절이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열매를 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거듭난 성도의 특징(열매)을 이렇게 정의해 본다.

(1) 죄에 대한 자각증세: 살아있는 육체는 뜨거운 물이나 불이 조금만 살에 대어도 격하게 반응을 한다. 그 뜨거움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죽은 시체는 수천도의 불속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영혼도 자각증세가 있는데, 곧 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죄로 죽었던 사람이고 죄는 우리를 지옥백성이 되게 했던 것이기에 살아있는 영혼은 죄가 접촉해 오면 반응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거듭난 영혼의 유아기에는 반복하여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회개하여 죄를 이기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

() 거짓말: 요한복음 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이방인이 아닌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귀는 하나님이 걸작품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거짓말로 속여 타락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거짓말의 최초 단계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변명은 결국 거짓말로 가는 연결통로이다. 그리고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대놓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거짓말에 대해서 분노하신다. 그것은 마귀에게 분노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5절에 보면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했다. 구원받은 144천명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21:8절에는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다. 또 요한계시록 21:27절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2:15절에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거짓말에 대해 이렇듯 강조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거짓말하는 자는 아직 거듭나지 않았고 마귀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비록 교회 안에서 직분을 가지고 교인행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사탄의 속성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에게서 났다(8:44)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엄밀히 따지자면 마귀의 자식이다. 성령의 새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해도 성도는 아닌 것이다. 그를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의를 입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거짓말에서 모든 죄가 나온다고 믿는다. 죄의 근본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자각증세가 없는 교인은 중생한 사람이 아니다.

() 연약함: 혹자는 거듭났지만 연약하기 때문에 때로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다. 우리를 보호하고 양육하시는 성령께서 그냥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 로마서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마귀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시겠는가? 만약 구원 받은 자가 간혹 마귀의 밥이 되어 타락하고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논리를 편다면 이야말로 참 아이러니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시도록 하나님을 응원하는 기도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자녀들을 마귀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마귀와의 전쟁에서도 질 수가 없는 분이시다. 이는 성도의 견인, 혹은 궁극적 구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 성령의 열매를 맺음: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안다. 인간의 자식도 그 부모를 닮는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새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어 있다. 성령께서 먹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성도들을 자라게 한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 아홉 가지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거듭난 새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면 결국 크거나 작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이런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확실하다.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을 받을 사람에 해당한다(마태복음 5:3-10). 팔복을 자세히 보라. 이는 결코 땅위에서 받을 물질적인 복이 아니다. 영생을 얻은 자에게 주시는 복이다.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열매가 있다. 육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 19-21절이다. 거듭나지 못한 육의 사람이 맺는 열매이다. 이를 보고 우리는 어디에 속하였는지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나가는 말

요한복음 8:41-44을 보자.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1절의 아비는 누구일까? 44절에 답이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부르고 그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종교라고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을 향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마귀의 자식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가지지 못한,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 말씀이다. 오늘날도 다를 것이 없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례도 받고 하나님을 부르지만 중생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을 믿는 자로 간주하였다가 다시 타락하여 구원에서 탈락된다고 하는 것은 애초 시작이 잘못된 표현이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신칭의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확실하게 믿기만 하면 거듭날 것이고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다. 낳기만 하고 버려둘 부모는 없다. 아이가 울면 젖을 물리고 배설을 하면 손수 그 손으로 치워 준다. 하나님 아버지도 그리하실 것이다. 거듭났으니 스스로 자라 구원이라는 열매를 따라고 하시면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를 돌보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고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양육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 하나 순종뿐이다.

필자는 주장한다. 이신칭의는 그냥 그대로 제 자리에 가만 두라. 다만 한국교회가 믿음 없는 교인을 양산하지 말고 성도를 생산하라. 즉 거듭난 새 사람을 낳는 어머니(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연히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그의 다른(마귀) 열매를 보고 구원은 심판 때까지 유보되었다고 하는 말은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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