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없는마을에 사는 아이들. 왼쪽부터 우희(3), 대한(7), 대성(5), 영광(8) ⓒ복음과상황 이종연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본동 일대 ‘국경없는마을’. 이제는 브랜드가 된 이 마을 이름이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곡동에는 원래 한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이 IMF 이후 일자리를 잃고 이곳을 떠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물밀듯이 원곡동에 들어왔다. 월세가 쌌고 주변 공단으로 출퇴 근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가 거주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국경 없는 마을이 됐다.

2007년 7월 말 현재 원곡본동의 주민은 3만 1058명. 이중 내국인은 2만 1167명, 외국인은 9891명이다. 그러나 안산이주민센터 류성환 사무국장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미등록 외국인이 1만 명쯤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즉 미등록 외국인까지 실제 거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내국인과 외국인이 각각 2만 명 정도 살고 있다는 뜻이다.

‘국경없는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은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박천응 목사는 국경없는마을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국적, 언어, 피부색, 종교, 경제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기’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그 의미를 정의했다.

 

 

▲ ⓒ복음과상황 신철민 국경없는마을의 목표는 단순하다. ‘행복한 사회 만들기’. 국경 없는 공동체·국경 없는 평화·국경 없는 인권·국경 없는 노동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원함에도 이전까지 외국인 노동자를 그 범주에 넣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지원기관은 안산시에 20여 개가 있다. 각 기관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복지, 교육활동도 하고 각종 행사와 동아리를 만들고 지원하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방문했던 여러 기관에서는 모두 일당백이 되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 기관마다 일하는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함께 모이면 삐거덕거리는 일도 생긴다. 8월 30일 오후, 안산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 구성 간담회에 20여 명이 참석했다. 2시간 가까이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참석자들 사이에 날선 대화가 오갔고 무엇을 논의할지에 관해서만 1시간 가까이 토론을 벌이는 광경이 벌어졌다. 의제를 둘러싸고 혼재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각 단체에게는 서로 양보하고 조율해야 할 숙제가 남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외국인들을 위해 이렇게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못 볼 것 같다. ▲ 원곡동에서는 휴대폰 가게와 야채 가게가 가장 많다. 휴대폰을 사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원곡동은 외국인에게 친숙한 마을이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국경없는마을 거리는 평일에는 외국인들이 주로 일터에 나가 한산하다가 주말이 되면 외국인들이 지방에서까지 올라와 북적대는 거리로 변한다.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원곡동 일대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들의 수도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만하다. 이제 그 국경없는마을의 국경없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파키스탄에서 온 아바시 이야기

▲ 파키스탄에서 온 아바시 씨 ⓒ복음과상황 이종연 아바시(33)씨는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15년 됐어요. 여기 안산에서 식당한지는 10년 좀 넘었고요. 한국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파키스탄에서 대학에 7개월 쯤 다니다가 하고 싶은 공부 아니어서 아버지와 싸웠어요. 그때는 무작정 파키스탄을 떠나고 싶어서 그냥 한국 왔어요. 그리고 1년이나 지나서 집에 연락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제가 싸가지가 없었죠. 아버지는 큰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돈도 꽤 벌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도와주면 하는 눈치인데 제가 갈 수도 없고… 지금은 동생이 아버지 돕고 있어요. 결혼은 하셨어요? 네. 결혼했어요. 한국 아내 있어요. 8년 전에 했어요. 아내는 지금 보석 만드는 곳에서 판매하는 일 해요. 거기 꽤 비싼 보석들만 팔아요. 귀화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귀화 시험에 2번이나 떨어졌어요. 이제 시험 안 봐요. 시험이 많이 어려운가요? 시간이 너무 촉박해요. 천천히 읽으면 다 이해하고 풀 수 있는데 시간을 너무 조금 줘요. 예전에 300명 시험 봤는데 2명 붙었을 정도로 시험이 어려워요. 이제 다시 시험 안 보려고요. 차라리 그 시간에 돈을 벌지… 결혼이민자 자격으로 귀화 신청 할 수 있지 않나요? 사람 일이 자기 맘대로 다 안 돼요…. 아내랑 혼인신고는 아직 안 했어요. 아내는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지금 애들도 3명이에요. 가족들은 모두 파키스탄에 있나요?사촌 동생이랑 같은 동네에서 살던 동네 동생이 한국 와 있어요. 이제 1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그 친구들은 공장에서 일해요. 여전히 한국은 외국인 정책에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요. 한국인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요? 혹은 한국에 살면서 좋은 점은 뭔가요? 옛날에는 한국 사람이랑 결혼해도 비자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한국에 사니까 그냥 사는 거고 불편하거나 좋은 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정이 든 것 같아요. 그래도 비자 연기하러 갈 때가 제일 싫어요. 지금 사업 비자로 있는데 1년이나 2년마다 가서 새로 신청해야 해요. 갖고 갈 서류도 너무 많고 늘 불안한 마음으로 가죠. 국경없는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곳 원곡동 마을에 바라시는 게 있다면요? 단속이요! 단속만 안 하면 좋겠어요. 마을 여기서 한번 저기서 한번 계속 단속하면 하루에 열 번도 더 해요. 불법인 사람들도 불안하지만 합법인 사람들도 괜히 불안하고 짜증나죠. 한 달 전부터 아바시씨는 하산타(33, 스리랑카 출신)씨 가족과 동업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영광이(8)와 기성이(7개월)의 아버지이기도 한 하산타는 올해 초 부인 야무나(38)씨가 강제 출국 당할 처지에 놓여서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영광이가 이주아동을 위한 특별 학급생으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생이별 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있었고 이후 야무나는 다시 한국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 가족에게 아바시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동업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산타씨 가족에게 아바시씨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쉼터에서 만난 사람들 출신 국가가 다르고 형편이 어려워도 아바시씨와 하산타씨처럼 서로 돕고 이웃 간에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참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장 웨이(39, 가명)씨는 한국 남편과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이 술만 마시면 그에게 폭력을 일삼아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그는 팔과 배를 가리키며 남편이 술만 먹으면 때린다고 표현했다. 배는 옷에 가려 볼 수 없었으나 팔에는 피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라도 다르고 남편도 말을 못하는 등 서로가 서로를 품기에는 그들이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았던 건 아닐까… 결국 장 웨이씨는 여성 쉼터로 거처를 옮겼다. 쉼터는 여러 사정으로 머무를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피난처 역할을 한다. 왕팡(32, 가명)씨 역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쉼터에 왔다. 며칠 있으면 이곳을 나간다. 다행히 일을 구해 공장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주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그도 처음 센터에 왔을 때 온 몸에 멍이 가득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쉼터는 장 웨이씨처럼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 왔다가 남편의 폭력 등으로 도망 나온 사람들이나 공장에서 일 하던 중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 혹은 강제 출국 위기에 처해서 갈 곳 없는 사람들 등이 임시적으로 살 수 있도록 이주민센터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쉼터를 운영하는 이주민센터 부속기관 여성상담소 ‘블링크’(BLinK, Better Life in Korea)의 이해령 소장은 “보통 8~12명 정도가 쉼터에서 지내게 되는데 요즘은 행복하게도 그 수가 줄어 2명 정도만 지내고 있다. 쉼터에 들어온 사람들은 짧게는 하루만 있다가 나가기도 하고 길게는 6개월 이상 머물기도 한다”고 말했다. 블링크에서는 상담과 심리 치료, 한국어 공부 등을 담당하며 이들을 지원한다. 또 어느 정도 회복된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저녁에는 쉼터에서 담당 목사와 상담을 하고 생활 교육, 경제 교육 등도 받는다. 그렇게 쉼터를 통해 이들은 다시 한국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밤이나 주말이 되면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가 설치된 가게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우리 몽골 사람이에요”

빌궁(17), 어르시허(16), 타미르(16). 부모님을 따라 몽골에서부터 한국에 온 이 아이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째 한국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몽골어가 쉽고 몽골 친구가 그립다. 또 언젠가는 몽골에 돌아갈 거라고 말한다.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도 치고 낯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면서도 “너희 어디 나라 사람이니?”라는 질문에는 “우린 몽골 사람이에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몽골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눈치였다. 이 아이들이 몽골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과도 그렇게 어울려 다니며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파키스탄 식당 앞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중 예쁘고 가냘프게 보이는 한 여자아이에게 아이들이 조폭이라고 놀렸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5학년 오빠도 꼼짝 못하는 눈치다. “왜 별명이 조폭이야?”라고 묻자 그 아이 대답이 참 슬프게 돌아왔다. “학교에서 애들이 외국인이라고 놀려서 제가 참다가 한 대 때렸거든요. 그 때부터 조폭이래요.”(웃음) 

 

 

젓가락질 하다가 손가락질 받기도 하지만

국경없는마을에는 고기 뷔페식당이 많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무슬림들을 위해 골라먹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 식당에서 외국인들이 바닥에 앉지 못하는 걸 미처 못 챙기다니… 식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뭔가를 깔고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그건 바로 목욕탕의자!

이제는 우리도 잘 알지만 일부 나라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파키스탄 식당 ‘파라다이스’에서도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웃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한국에 와서 젓가락질을 배운 외국인이 본국에 가서 손으로 음식을 먹는 대신 젓가락질을 한 것이다. 이걸 본 사람들이 젓가락질 하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는 것.

이런 소소하고도 재미있는 일을 뒤로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얼마 전 유엔은 인종차별 철폐조약 이행 관련 보고서에서 ‘순수혈통’ 혹은 ‘혼혈’과 같은 용어와, 이에 담긴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교회 역시 우리 사회로부터, 타문화를 존경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일방적인 선교를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많고도 많은 이 때 국경없는마을의 하루가 지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주민입니다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 대표 인터뷰 ▲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 대표 ⓒ복음과상황 이종연
“이주민들을 한국인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노동자로 보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주민이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화두를 던지기 훨씬 전인 90년대 중반부터 안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한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47) 대표를 만나 보았다.

 

안산이주민센터에서는 국경없는마을을 어떤 관점에서 섬기고 있나.

1999년 ‘국경없는마을 1차년도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경없는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법과 제도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범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세계화로 인한 노동의 이동 과정에서 한국사회 역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갈 것이 불가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문제를 단속과 강제 추방이라는 법적인 제재로만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 안산이주민센터 모습 ⓒ복음과상황 이종연  
 
말씀하신 공동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국경없는마을은 다문화공동체이다. 다문화적 관점에서 주민과 축제, 행사 등을 함께 함으로써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 둘째는 참여 공동체이다. 지금까지 외국인은 원곡동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원주민의 배타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90일 이상 거주하면 외국인도 법적으로 주민이 될 수 있는 ‘거주외국인지원조례’가 만들어졌다. 셋째는 경제 공동체이다. 결혼이민자(대다수는 여성)의 80%가 극빈층이고 이들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 구하기이다. 센터에서는 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여성 쉼터 리모델링을 준비 중이다. 공방도 만들고 중국동포 직업안내소도 꾸릴 계획이다. 가나와 콩고 출신의 난민을 위한 작업장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한 또 다른 고용창출을 기대하는 것이다. 넷째는 지역사회 안전망 공동체이다. 불법 체류자에게 사고가 생기거나 누군가 갑자기 죽었을 때 얼마씩 돈을 내서 그들을 돕는 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운동의 어려움이 있다면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고 마을은 공동체적 정신을 기반에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 공동체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정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주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3년 뒤에는 출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각 동아리는 장기체류자들 중심으로 지도, 운영되고 있다. 소위 불법 체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10년, 15년 된 분들도 있다.

 

박 대표는 다문화교회 목사이기도 하신데 기독교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우리가 외국인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살도록 도울 때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역사회 공동체라고 한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런 비전을 갖고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국경없는마을운동은 하향운동이다. 하향운동이 되어야 여기 사는 분들의 지지도 받고 연대도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교회 이름 드러낼 것도 없이 그저 봉사할 필요가 있다.

 

단지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서 나쁜 사람인 것처럼 인식하는 편견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의식개혁을 모토로 하는 것이 다문화운동이다. 즉 다문화운동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닌 다수자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수자가 소수자를 차별하기 때문에 다문화 문제가 발생하는 거고 그래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춤을 추다가 서로 다르게 추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같은 재료라도 다르게 음식을 만들어 먹어 보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은 이주민들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이 편견이 무섭다. 이주민들과 결혼하는 한국인도 있는데… 요즘 이 지역 학교에서 다문화 강의 섭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편견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뜻이다.


국경없는마을 추석 축제에 놀러오세요
 

지하철 4호선 안산역이 좀 멀긴 해요. 그래도 안산역에서 지하도를 건너오시면 눈앞에서  흥미로운 추석 축제 한마당이 펼쳐질 거예요~!

국경없는마을 야외극장 아시죠? 9월 15일에 거기서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있어요. 9월 23일에는 스리랑카 크리켓 대회와 콘서트가 있는데요. 특별히 스리랑카 대통령 아드님이 오신다네요. 유명한 밴드도 와서 공연하는데 스리랑카에서는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9월 25일 추석에는 국경없는마을 곳곳에서 문화축제가 벌어진답니다. 나라별로 음식도 만들고 공연도 하고 전통놀이도 할거래요. 축제 이름인 ‘강강술래’처럼 우리도 함께 가서 둥글게 둥글게 강강술래를 함께 해 봐요. 9월 1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주말과 추석연휴 때 국경없는마을로 꼭 놀러오세요^^(출처 복음과 상황)


글 사진 이종연 기자 limpid@newsnjoy.co.kr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