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말 현재 원곡본동의 주민은 3만 1058명. 이중 내국인은 2만 1167명, 외국인은 9891명이다. 그러나 안산이주민센터 류성환 사무국장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미등록 외국인이 1만 명쯤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즉 미등록 외국인까지 실제 거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내국인과 외국인이 각각 2만 명 정도 살고 있다는 뜻이다.
‘국경없는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은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박천응 목사는 국경없는마을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국적, 언어, 피부색, 종교, 경제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기’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그 의미를 정의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아바시 이야기
빌궁(17), 어르시허(16), 타미르(16). 부모님을 따라 몽골에서부터 한국에 온 이 아이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째 한국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몽골어가 쉽고 몽골 친구가 그립다. 또 언젠가는 몽골에 돌아갈 거라고 말한다.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도 치고 낯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면서도 “너희 어디 나라 사람이니?”라는 질문에는 “우린 몽골 사람이에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몽골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눈치였다. 이 아이들이 몽골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과도 그렇게 어울려 다니며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파키스탄 식당 앞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중 예쁘고 가냘프게 보이는 한 여자아이에게 아이들이 조폭이라고 놀렸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5학년 오빠도 꼼짝 못하는 눈치다. “왜 별명이 조폭이야?”라고 묻자 그 아이 대답이 참 슬프게 돌아왔다. “학교에서 애들이 외국인이라고 놀려서 제가 참다가 한 대 때렸거든요. 그 때부터 조폭이래요.”(웃음)
젓가락질 하다가 손가락질 받기도 하지만
국경없는마을에는 고기 뷔페식당이 많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무슬림들을 위해 골라먹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 식당에서 외국인들이 바닥에 앉지 못하는 걸 미처 못 챙기다니… 식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뭔가를 깔고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그건 바로 목욕탕의자!
이제는 우리도 잘 알지만 일부 나라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파키스탄 식당 ‘파라다이스’에서도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웃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한국에 와서 젓가락질을 배운 외국인이 본국에 가서 손으로 음식을 먹는 대신 젓가락질을 한 것이다. 이걸 본 사람들이 젓가락질 하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는 것.
이런 소소하고도 재미있는 일을 뒤로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얼마 전 유엔은 인종차별 철폐조약 이행 관련 보고서에서 ‘순수혈통’ 혹은 ‘혼혈’과 같은 용어와, 이에 담긴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교회 역시 우리 사회로부터, 타문화를 존경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일방적인 선교를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많고도 많은 이 때 국경없는마을의 하루가 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화두를 던지기 훨씬 전인 90년대 중반부터 안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한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47) 대표를 만나 보았다.
안산이주민센터에서는 국경없는마을을 어떤 관점에서 섬기고 있나.
1999년 ‘국경없는마을 1차년도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경없는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법과 제도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범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세계화로 인한 노동의 이동 과정에서 한국사회 역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갈 것이 불가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문제를 단속과 강제 추방이라는 법적인 제재로만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말씀하신 공동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 안산이주민센터 모습 ⓒ복음과상황
이종연
국경없는마을은 다문화공동체이다. 다문화적 관점에서 주민과 축제, 행사 등을 함께 함으로써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 둘째는 참여 공동체이다. 지금까지 외국인은 원곡동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원주민의 배타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90일 이상 거주하면 외국인도 법적으로 주민이 될 수 있는 ‘거주외국인지원조례’가 만들어졌다. 셋째는 경제 공동체이다. 결혼이민자(대다수는 여성)의 80%가 극빈층이고 이들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 구하기이다. 센터에서는 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여성 쉼터 리모델링을 준비 중이다. 공방도 만들고 중국동포 직업안내소도 꾸릴 계획이다. 가나와 콩고 출신의 난민을 위한 작업장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한 또 다른 고용창출을 기대하는 것이다. 넷째는 지역사회 안전망 공동체이다. 불법 체류자에게 사고가 생기거나 누군가 갑자기 죽었을 때 얼마씩 돈을 내서 그들을 돕는 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운동의 어려움이 있다면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고 마을은 공동체적 정신을 기반에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 공동체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정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주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3년 뒤에는 출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각 동아리는 장기체류자들 중심으로 지도, 운영되고 있다. 소위 불법 체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10년, 15년 된 분들도 있다.
박 대표는 다문화교회 목사이기도 하신데 기독교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우리가 외국인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살도록 도울 때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역사회 공동체라고 한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런 비전을 갖고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국경없는마을운동은 하향운동이다. 하향운동이 되어야 여기 사는 분들의 지지도 받고 연대도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교회 이름 드러낼 것도 없이 그저 봉사할 필요가 있다.
단지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서 나쁜 사람인 것처럼 인식하는 편견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의식개혁을 모토로 하는 것이 다문화운동이다. 즉 다문화운동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닌 다수자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수자가 소수자를 차별하기 때문에 다문화 문제가 발생하는 거고 그래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춤을 추다가 서로 다르게 추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같은 재료라도 다르게 음식을 만들어 먹어 보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은 이주민들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이 편견이 무섭다. 이주민들과 결혼하는 한국인도 있는데… 요즘 이 지역 학교에서 다문화 강의 섭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편견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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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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