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가 2016년에 리메이커(remak)되어 극장가로 돌아왔다. 추석 전날에 개봉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추석날 집에 모인 가족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시사회에서 먼저 영화를 감상한 많은 목회자들이 감동적이었다고 평을 하기에 기대를 걸고 가족들을 동원하여 찾아갔던 것이다. 필자는 먼저 나온 영화와 구분하기 위해 벤허 1959년 판과 2016년 판으로 구분한다.

필자가 11세 때인 1959년에 나온 벤허 1959년 판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예수 십자가 사건이다. 그의 죽음, 고난, 피 흘리심의 장면들과 벤허의 회심, 그의 어머니와 누이의 병 고침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짧은 시간에 진수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때맞춰 내린 비와 함께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온 땅을 적시듯 흘러내려 가는 것에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을 암시해 주면서 그것이 복음을 받은 벤허의 마음에서 마음을 통하여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런데 벤허 2016년 판은 그 클라이맥스가 경주장이다. 스팩타클(spectacular)한 모든 것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경주장도 그렇고 경주 장면도 그랬다. 그것은 벤허 1959년 판이 보여 주려고 했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우선 벤허 1959년 판과 2016 판이 어떤 점이 다른지를 필자의 눈으로 본 소감을 몇가지 짚어보려 한다.

너무 많은 각색: 우선 벤허1959 판은 원작에 충실하려고 했다면 2016 판은 너무 많이 각색하였다는 것이다. 메살라를 고아로 설정하고 집 앞에 버려진 그를 벤허의 아버지가 거두어 벤허와 형제처럼 자라게 하였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2016년 판은 그의 성장, 출세, 배신,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결투를 거쳐 1959년 판에서는 죽었던 그가 2016년 판에서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결국은 벤허의 여동생과 결혼으로 골인하는 가닥으로 스토리를 잡은 휴머니즘적 영화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죽어가면서도 칼을 숨겨두고 있다가 마지막 벤허를 찌르려던 그의 팔이 순간적으로 벤허와 포옹함으로서 종결하는 등 영화 내내 어색한 연결이 그랬다.

 

▲ 1959년 판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좌) 2016년 판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우)

예수의 인간성: 벤허 1959년 판이 예수의 신성을 나타내려 하였다면 2016 판은 인간성을 나타내려 하였다는 것이 눈에 뜨인다. 1959년 판에서는 예수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음성도 그리 많이 들리지 않는다. 그의 신성을 베일 속에 싸놓아 신비감을 더한다. 그러나 2016년 판에서는 얼굴, 음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벤허를 설득하듯 말씀하시는 모습은 인간 예수를 그리려 애를 쓴 듯 보였다. 여기서도 이 영화가 religious sentiment를 벗고 humanism으로 건너가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 만능: 그리고 그 시대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너무 물질 만능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두드러졌다. 벤허의 노예 신분 면제를 돈을 걸고 하는 내기에서 얻어 내는 것과 결코 열릴 것 같지 않은 감옥에서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를 돈으로 빼내는 것은 당시에도 돈이 통했을 법도 하지만 너무 인간적인 방법을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어색한 것은 아프리카 상인이 벤허의 무엇을 믿고 빌라도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그 엄청난 돈을 퍼부을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설득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1959년 판은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했다면 2016년 판은 섭리를 빼고 우연을 대체하는 영화였다. 벤허가 사령관을 극적으로 구출하고 그의 양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1959년 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러나 2016년 판에는 그냥 파도에 떠밀려 우연히 어떤 해변에 닿고 우연히 아프리카 상인에 의해 구출되고 그의 병든 말을 살리는 것으로 신임을 얻어 그의 일행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섭리를 스토리에서 빼내는 작업을 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리스 해전에서 난파한 벤허가 아프리카 상인의 예루살렘 행로에 발견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아직도 나병 환자로 감옥에 있던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던 날 내린 비가 지붕 돌 틈새로 흘러내리는 것을 맞으면서 고침을 받는데, 이는 시각적으로 십자가와 병 고침을 분리함으로 하나님의 손길에서 떼어놓으려는 의도가 보였다. 1959년 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들을 십자가 현장에서 분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감옥에 있어야 했고 그런 그들을 빼내기 위해서는 돈으로 매수해야 하는 어설픈 설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리스도의 이야기: 벤허를 쓴 저자는 루 월레스(Lew Wallace)로 유명한 장군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천재였다. 그의 친구인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과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여 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자고 다짐하고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연구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의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그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는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2주 후에 그는 소설 <벤허>를 쓰기 시작했다. 부제는 그리스도의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이었다. 이 소설은 1880년 출판과 동시에 200만 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연극, 영화화되어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의해 벤허 1959년 판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제작비인 1,500만 불을 투입, 10년의 제작 기간과 10만 명의 출연 인원, 1년여 촬영기간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로 필름을 소모한 이 영화는 대사를 한마디 이상 하는 인물만도 496, 하이라이트인 전차 경주 신을 위해 15천 명이 4개월간 연습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래서 충실히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썼던 것이 확실한 영화가 되었다.

 

사람의 이야기: 1959년 판의 그리스도의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에서 메살라와 벤허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2016년 판으로 리메이커되었다. 1959년 판이 그리스도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엉키고 설킨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어떻게 적절하게 그 손길이 터치하는지를 보여주어 어쩌면 성경의 고증에 충실하면서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말하려고 했다면 2016년 판은 그야말로 벤허와 메살라에 고정해 그들의 이야기에 충실했고 그리고 그들의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humanism의 극치였다고 할 것이다. 2016판의 remaker는 변화되기 전의 루 월레스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상당히 많이 떼어놓는 일에 충실한 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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