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독교의 다음 세기 기대는 기적이 필요하다?-

빙산처럼 붕궤되고 있는위기의 기독교

-영국 기독교의 다음 세기 기대는 기적이 필요하다?-

                                                                                               글쓴이 이병길 목사

 

글 순서

 

지뢰밭의 카사르 엘 야후드/위기의 기독교 위기는 내부적 요인/위기의 기독교 그 심각성/

위기의 기독교 잔여 시간 2017/위기의 기독교 그 내적 요인 해부/

위기의 기독교 가속화를 가져온 세속주의/성경이 경계하는 세속주의와 세속화/

위기의 기독교 각성케 할 남은 자들/흔들리는 기독교의 지형변화

마무리 글

 

위의 글 제목은 영국 비비씨 뉴스BBC NEWS의 베테랑 특파원 캐롤라인 와이어트 (Caroline Wyatt)와 영국 랭커스터대학교(Lancaster University) 종교사회학 교수 린다 우드헤드(Linda Woodhead)의 표현을 조합한 것이다. 두 사람은 공히 여성으로서 언어적 표현이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캐롤라인 와이어트는 호주 시드니 교외 달링허스트 태생이다. 영국 외교관에게 발탁된 저널리스트로서BBC에서 20(1991-2014) 간 종교담당 특파원 활동을 비롯하여 전쟁 리포터로서 탁월한 실력을 보인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특파원 생활에서 종교와 전쟁의 경계 지대를 넘나들면서 그의 뛰어난 시사 감각을 발휘한, 아주 재치 있는 기사로를 통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린다 우드헤드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적혁명: 왜 종교는 영성의 자리를 양보하고 있는가The Spiritual Revolution: Why Religion is Giving Way to Spirituality(Blackwell, 2005)라는 공저(共著)에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 교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필자는 처음위기의 기독교(Christian in crisis)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 며칠 간 생각을 거듭했다. 특히 캐롤라인 와이어트의 머리기사를 주목하고, 기사에 맺힌 영국 교회의 실상이 바로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이 경각심이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일 것이다.

 

지뢰밭의 카사르 엘 야후드

케롤라인 와이어트는 2016516일자 중동 관계사에서성지의 지뢰밭 교회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New Hope for Holy Land's minefield churches)이라는 머리기사를 뽑았다. 이 기사는 불과 서른다섯 글자로 조합된 일곱 단어로서, 이런 머리기사는 베테랑 기자가 아니고는 도저히 작성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와 함께 실린 한 장의 사진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지뢰밭 가장 자리에 자리한 유대인의 성’(Castle of the Jews, He. קאסר אל יהוד)을 뜻하는 그리스 정교회 당 건물 카사르 엘 야후드’(Qasr El-Yahud)가 기사 내용 이해에 보충되었다. 교회당은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해 북쪽, 여리고 동남쪽의 요단 강 계곡 서안(The West Bank)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여호수아의 지도하에서 이 계곡을 따라 이루어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엘리야 선지가 엘리사와 마지막 만났던 지점(왕상2:1~18)이라 믿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카사르 엘 야후드의 위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1967년 제3차 중동 6일 전쟁 때는 이스라엘군이 이 교회당을 전방진지로 사용하면서부터 민간인에게 통제되었다. 그 후 2011년 교회당이 40여년 만에 비로소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에게 제한적으로 통제가 해제되면서, 주변에서 4,000여개의 지뢰를 제거한 후 안전로를 확보, 현재는 매년 30만여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캐롤라인 와이어드 기자는 이 교회당이 지뢰밭 속에 위치해 있음을 부각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기자는 지뢰 밭 속에 열린 안전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숨을 죽인 채 마른 점토를 밟고 걸을 때마다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새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지뢰에 대한 긴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기독교가 지금 지리 밭위기에 처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까.

와이어트는 1998년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전쟁, 1999년에는 발칸반도의 코소보 전장에서,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당시에는 미국에서, 2001-200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2003년에는 영국군에 종군하여 바스라 등지에서 각각 전쟁 지대를 쫓아다니면서 활동했다(Achetron)

 

위기의 기독교 위기는 내적 요인

사전적 뜻을 빌리면 위험불안한 상태’,위기파국 직전의 상황이다. 영어에서위기(crisis)는 헬라어 크리시스’(krisis, κρισις)에서 유래하는 라틴화 된 명사로서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전기’(turning point in a disease)가 되는 시점을 뜻한다.위기의 기독교는 곧 파국직전의 비상사태’(crisis situation)라는 말로 이해된다. 성경에는 이 말이 사용되지 않은 것 같다. 글자 뜻대로라면위기는 어떤 사안이나 상황에서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짓는 절박한 순간일 것이다. 한 때위기 신학(crisis theology)이 대두된 적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카를 바르트(Karl Bart, 1886-1968)에 의한 변증법적 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말장난 같지만위기의 기독교기독교의 위기와는 미세한 의미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로마 제국시대에 있었던 약300(54-304) 간에 걸친 10대 박해 중에서도 기독교는위기를 감지하지 않았다. 기독교 역사 발전에서 위험은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위기는 없었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위기의 기독교는 위기 요인이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일 테고,기독교의 위기는 그 요인이 다분히 외부에 의한 것이라 이해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외부 요인에 의하여위기상황이나위기국면에 처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위기의 기독교의 위기 요인은 교회 내부에서 기인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캐롤라인 와이어트의위기의 기독교는 양적(量的) 위기, 즉 가시적 요인으로 봐야할 것 같고, 미국 기독교연구소(CRI, 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핸드릭 행크해네그래프(Handric 'Hank' Hanegraaff)위기의 기독교는 질적(質的) 요인에 초점된 것 같다.

핸드릭 행크해네그래프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고, 기독교 진리를 세상에 바로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노스 캐롤라이나(NC)에서 기독교연구소(CRI) 책임자로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12천만 명의 애청자들의 인기 프로그램인 라디오 토크쇼(the Bible Answer Man) 진행을 하는 우리 시대에 아주 친숙한 복음주의 활동가다. 그는 네덜란드계 저술가로서, 특히 세상과 인간의 문제들을 성경에서 명쾌한 해답을 도출해 내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The Prayer of Jesus(Nashville, 2001)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통하여 기독교 내부의 일부 질적 변질을 예리하게 꼬집어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1993년에 출판한 447쪽의Christian in crisis : The 21st Century(HHP) 를 통하여 기독교의위기가 유럽과 영국을 넘어서 대서양 건너편 미국 땅에서까지 그 심각성의 위중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는 태평양 건너편 대한민국이라고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201567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바벨탑에 갇힌 복음(새물결플러스)이라는 제명으로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책은 부와 건강을 담보로 복음을 파는 번영신학을 고발하고, ‘믿는 대로 된다믿음신학의 이단성과 그 계보를 파헤친 명저로 알려지고 있다. 해네그래프는기독교의 위기를 교회 내부에서 찾았다. 기독교의 질적 위기 요인을 집요하게 파헤친 것이다. 외부 요인에 의한 기독교의위기는 아직은 덜 심각하지만 내부적 요인에 의한 기독교의위기는 파국 상황에 이른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영국 위기의 기독교 그 심각성

영국에서 기독교 인구 감소위기는 본 세기 전부터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런위기가 캐롤라인 와이어트 기자에 의하여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통찰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와이어트의 기독교의위기론에 대한 객관성은 다른 언론 매체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즉 영국에서 그 전통과 신뢰성을 자랑하는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 역시 영국 기독교 인구가 비기독교 인구의 성장과는 달리 불과 5년 내에 10% 감소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캐롤라인 와아어트의 기독교위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공식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는 천천히, 확실하게 영국과 웨일즈에서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2011년 영국 인구조사에 나타난 기독교 인구와 실제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숫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200577%의 기독교 인구 점유율이 2010년에는 70% 대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 것도 영국에서 기독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영국 보수적 주간지The Spectator역시 ‘2067년 영국 기독교의 종말’(2067: the end of British Christianity)이라는 다소 어두운 헤드라인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관적 전망들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드라도 영국의 기독교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위기국면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영국에서 최대 판매수를 자랑하는The Express & Star영국은 더 이상의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가?’(UK ‘No longer Christian; So are we facing a crisis of Christianity?’)라는, 거의 절망적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데일리메일은 대주교 조지 캐리가 기독교의위기를 경고한, ‘교회가 멸종 위기에 있다’(Church is on the brink of extinction)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영국 기독교 인구 감소 추세에 의한 기독교 멸종예상 표: 단위 명

2001

2011

2021

2031

2041

2051

2061

2067

35,013,000

29,676,000

24,339,000

19,002,000

18,665,000

8,328,000

2,991,000

 

THE SPECTATOR, BY Damian Thompson.

 

교회의 실상이 심각한위기국면에 처했음에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더 큰 문제다. 선지 예레미야는 유다왕국 말기의 시대적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교회와 지도자들을 질타했다.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3,14) 이는 곧 영국과 유럽 교회에 앞서서 한국 교회를 향한 선지자의 포효(咆哮)라 생각된다.

영국 기독교의 이런 상황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본 와이어트는 지난 해 미국의 퓨(PEW)가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쓴 기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영국 기독교의위기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와이어트는 이렇게 문장을 엮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잃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띄우고 이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은 의심 없이 ‘YES’일 것 같다 라고 하고, 똑 같은 질문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반응은 ‘NO’라는 반향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위기의 기독교 잔여 시간 ‘2067’

‘2067 : 영국 기독교의 종말’(2067: The end British Christianity), 호주 시드니출판 타블로이드 보수신문The Daily Telegraph에 올려 진 헤드라인이다. 영국에서 기독교의 양적 감소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어 왔다. 영국 기독교는 과연 그 감소 현상이위기에 이르도록 치료나 대책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캐롤라인 와이어트는 미국의 퓨(Pew) 가 분석한 그 구체적 자료를 제시했다. 이 자료는 영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세를 기준으로 다음 표와 같이 2010~2050년까지의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표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영국인의 무종교 인구비율 현상이 28%~39%로 상승한 수치다.

 

구분

기독교-

무슬림+

힌두교+

유대교-

불교+

토속+

무교+

2010

64

5

1.4

0.5

0.4

0.1

28

2050

45

11

2

0.3

0.9

0.3

39

2010-2050년 영국 종교인구 점유율 추세전망 비교표: %

Source: Pew Research Center

 

이 분석에서 퓨리서치는 2070년대에 이르면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점유율이 기독교 인구를 추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50년 영국에서 기독교는 무슬림 인구와 동율을 보일만큼 기독교 성장이 둔화될 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유럽 발칸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비나, 호주와 뉴질랜드 등도 같은 현상을 보일 전망이다. 이에 반하여 무슬림은 유럽 인구의 약10% 상승 점유율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인데, 이는 무슬림의 높은 출산율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인구 역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성장할 것이 전망되었다. 캐롤라인 와이어트는 퓨(PEW)의 인구통계학자 콘래드 해켓(Comrad Hackett)의 분석을 인용, 1910년대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약66%가 유럽에 집중 점유되었고, 현재는 약25%대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가까운 2050년에는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16%만 유럽에 점유하게 될 것이고, 10명 중 4명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그 이유는 아프리카의 높은 출산율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종합대학교 탑텐(Top Ten)의 하나인 랭커스터대학교(Lancaster University) 종교사회학 교수 린다 우드헤드는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 이래 최대의 종교적 전환을 통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린다 교수는 몇 년 전 그의선교통계(Statistics for Mission)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영국 감리교 신자 수가 20만 명 감소한 것을 주목하고, 영국의 감리교는 거의 빈사 상태’(It's totally dying out)라고 개탄하면서, ‘현재 추세대로라면, 그들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On Current trends, they(the Methodists) will disappear, very soon)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미국 기독교 언론매체R.N.S.위기의 기독교에 대하여 빙산처럼 바다에 붕궤되고 있다’(like icebergs...crumbling into the sea)라고 했다.

필자는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서 빙산이 바다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 빙산이 붕궤 조짐을 보일 때는 신음하듯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정치인의 관심사가 될 만큼 영국의 기독교는 위기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은 어느 부활절 메시지에서우리는 여전히 기독교 국가이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른다.(We are still a Christian country, but for how much longer? )라고 한 말이 일부 인사들에게 논란을 야기시켰지만, 영국에서 기독교의 위기가 파국 직전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현재 영국의 기독교 인구 감소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0년의 64%2050년에 45%대로 떨어질 것이고, 무슬림은 갈은 시간에 5%에서 11%로 성장될 것으로 예측했다. PEW2070년대가 되면 영국에서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앞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최대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석간신문Express & Star영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영국 인구의 거의 절반이 무종교’(Britain 'no longer a Christian country and almost half of the population are 'non-religious.)라고 보도했다.

특히 일부 언론 매체의 영국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기사에는 기독교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인다. ‘영국교회의 쇠퇴 가속 중 다른 종교의 성장’, ‘영국은 사실 머지않아 기독교 국가의 위치가 끝난다’, ‘영국 기독교의 죽음의 시계등이 그렇다.

 

위기의 기독교 그 내적 요인 해부

기독교가 어떻게 빙산처럼무너질 수 있을까? 표현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기독교가 무너지는데 세 가지 결정적 요인은 교회의 세속화(세속주의), 교회의 공신력 추락, 교회의 영적 쇠약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공론이다. 이들 세 가지 내적 요인은위기의 기독교를 염려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한 것이다.

 

세속주의

개발도상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되면 세속주의’(the secularism) 유혹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위기의 기독교가 직면하는 내부적 요인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콘래드 해켓은 기독교가 붕궤되는 일정한 공식은 없지만, 다른 지역에서 기독교 역시 서부 유럽의 붕궤 길을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아직은 덜 세속화 되었지만 경제적 번영과 교육수준 향상이 교회를 자칫 세속주의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속주의의 세속화는 교회의 타협을 유도하고, 세상과 타협하면 복음 진리를 훼손할 할 수 있고, 교회의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보수적인 영국 주간지The Spectator는 영국 기독교의위기재앙’(a catastrophe)이라는 말로 표현했다.영국 기독교가 어떻게 이런 위기의 재앙에 직면했을까?이 질문에 대한 분석적 해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Why is British Christianity facing such a catastrophe? There is a one-word answer, but it requires a lot of unpacking)

영국의 주류 전통은 앵글로색슨인과 스코틀랜드의 켈트인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이들은 인종 차별 간극과 함께 신앙적으로 켈트인은 장로교, 앵글로색슨계는 성공회(영국국교)에 속한다. 영국위기의 기독교는 바로 이들 영국 주류계 90%가 유지해 왔던 기독교적 전통 붕궤를 뜻하기에 그 심각성이 더한 것이다. 2011년 인구조사에 의한 기독교 인구 비율은 영국 전체 인구의 59.3%33,243,000명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기독교의 빈사상태는 바로 이들 전통적 주류 종족 축이 무너졌다는 말이다.

 

교회의 공신력 추락

교회가 세속에서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될 때 그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교회가 신뢰받지 못하는 요인들 가운데 먼저 손꼽히는 것이 윤리, 즉 성적 문제다. 산업혁명 후 영국은 전통적 고도의 윤리의식 이완과 함께 성적 개방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들 중에는 아주 제한된 소수에 제한될 수 있지만 성직자의 불신앙도 포함된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가 도덕적 높은 품위를 지킨다고 하드라도 인기함정(The snare of seeking popularity)으로부터 자기를 지키지 않으면, 일순간에 교회를 무너지게 할 수 있다. 복음주의연맹(The Evangelical Alliance)에 의하면 매일 50%성직자가 성경을 안 읽으며, 37%가 매일 기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나의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세속 타협

앵글리칸 신앙을 가진 영국인 여성 헤드 알 유세프(Heather A-Yousuf)는 약30년 전 이슬라 시아파 무슬림 남성과 혼인했다. 그녀는 각자의 신앙을 존중하고, 가족은 그 신앙의 핵심에 둔다라고 한다. 기독교인의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다원화 시대의 타협’(compromise)적 사조를 고려하면 쉽게 납득도 될 만하다. 타협의 전제는 양보’, 즉 쌍방 간의 양보는 타협을 도출해 내기에 어렵지 않다. 20152, 앵글리칸총회(the Church of England General Synod, 2015)에서 한 무슬림이 아랍어로 연설한 데 대하여 총대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앵글리칸은 무슬림과 이룬 대타협의 결과일 것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알라’(Allah)선지자 무하마드가 총회장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연설이 진행되었다면, 앵글리칸은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을 양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의 세속에서 타협은 복음 진리의 양보이다.

미국 교회 역시 타협의 함정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2016618~25,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미국장로교(PCUSA, The Presbyterian Church USA) 222차 연차 총회(the 222nd General Assembly)3천여 명의 총대가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다. PCUSA 교단은 2015년 말 기준으로 교인 157만 명, 목사 277, 9,624개 교회를 가진 거대 교단이다. 총회개회 예배에는 에큐메니칼의 기본 정신인 교회일치’(The Church is One, 사실은 종교적 화합The Religious Unity)에 의한 종교와 인종간의 화해와 화합에 따라서 무슬림 커뮤니티 지도자 와지디 사이디(Waidi Said) 가 기도 했다. ‘알라여 우리를 축복하고, 우리 가족을 축복하고, 우리 주님을 축복하소서.’(Allah bless us and bless our families and bless our Lord) 이처럼 타협적 PCUSA2015317일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두 성인간의 연합으로 헌법 개정, 전국 171개 노회 중 86개 노회 찬성; 2010년에는 동성애자 목사 안수에 반대하여 150개 교회가 교단에서 탈퇴)한 교단이다.(Time; Faith, ‘Presbyterian Church Votes Recognize Same-Sex Marriage. By Helen Regan) 이런 일련의 사안들과 함께 교세는 지난 20년 간 250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급격하게 감소되었고, 2020년까지 4천명 교인이 더 떠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965430만 명의 교세가 불과 반세기만에 거의 75%에 해당하는 120만 명대로 추락한 것은 보수적인 백인 기독교인의 이탈 현상이 아닌가 짐작된다.(The American Conservative, By Rod Dreher)

이 기도에 대하여 미국 보수 매체The American Conservative(TAC)의 편집장 랏 드레허(Rod Dreher)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를 하나의 선지자로 부르는 황당한 내용이다라고 논평했다.

 

위기의 기독교 가속화를 가져온 세속주의

영국에서 교회’(T.E.C., Anglican)와 국가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런 관계를 고려할 때 영국이 세속화 되어야 하는가?’(Should Britain become a secular state?)라는 질문은 질문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몇 년 사이 영국 언론은 영국 교회의 세속화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정교(政敎) 분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세속화관점에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라스고우대학교의 칼럼 브라운(Callum Brown) 교수는 본세기 초입에 중요한 책 두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하나는 영국 기독교의 죽음The Death of Christian Britain: Understanding Secularisation, 1800-2000(London, 2001), 다른 하나는 ‘21세기의 종교와 사회Religion and Society in Twentieth-Century Britain(Hardlow, 2006)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다 같이 영국에서 기독교 존치가 이미 실기(失期) 상태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저널리스트 스티브 도티(Steve Doughty)가 언급한 세속주의에 귀결될 것이라는 이해 때문이다.

스티브 도티가 언급한 세속주의라는 말은 1871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조지 쟈콥 홀리오어크(George Jacob Holyoake, 18171906)The Principles of Secularism Illustrated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에 앞서 세속주의라는 용어는 1851년에 출판된 그의 책English Secularism ; a confession of belief(1896)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세속주의가 광범하게 신학적 관심이 된 것은 아마도 20세기 중엽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하비 콕스의The Secular City(Collier Books, 1965)의 출판, 그리고 성공회 주교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세속신학’(Secular Theology)이 대두되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이들의 세속화 이론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자유주의 신학자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기독교 세속화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기독교의 세속화 주장에는 인간 이성을 기독교의 전통과 조직 및 교리적 억압에서 해방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확대해석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 스스로 독립하는 개인의 자유가 세속화라는 말에 강하게 함의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주의용어 자체는 단순한 것 같으나 그 정의와 해석 및 적용은 매우 복잡하다. 이를테면 세속주의는 종교가 아니다’, ‘무신론 철학과 인본주적 세속주의’, ‘청치사회 운동으로서 세속주의등 다양한 해석이 있다.

세속주의는 큰 틀에서 두 가지 기본 명제를 갖는 원리다. 그 하나는 종교와 국가 관계에서 엄격한 분리이며, 다른 하나는 법 앞에서 종교와 신앙적 차이를 초월한 동등 개념을 갖는 것이다. 좁혀서 말하면 공권(公權)과 교권(敎權)의 종교적 조직 및 교리적 카테고리에서 개인의 자유와 신앙을 분리하는 성향을 띄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세속주의는 무신론은 아니다’(Secularism is not atheism)라는 주장과 함께 국가로부터 종교의 분리, 신자와 비신자의 동등한 보호, 종교 자유를 추구하는, 말하자면 세속주의는 지구촌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자유롭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일치와 화해의 정신...

간혹 세속주의자들에게 세속주의는 국교(國敎)나 어떤 종교에 예속과 간섭을 받지 않는 비종교’(non-religious)적 개념을 포괄한다. 이런 측면에서 파키스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종교가 정부의 간섭아래 있으므로 세속화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국교가 없는 나라를 세속국가로서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약100개 국가, 공식적으로 국교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 특정 종교가 국교 역할을 하고 있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이들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11:36; 고전10:31~33)이라는 생활 지표로 삼는 개혁교회 기준에서 세속주의는 하나님 중심에서 떠난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종교 생활로 분류된다개혁교회 입장에서 세속주의는 어떤 형태로든지 종교 신앙은 있어도 성경의 하나님 신앙은 없다는 데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세속주의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이 세상의 가치관과 방법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논리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세속’(世俗, secular)은 세상의 일반적(무신론적) 관습과 풍습에 의하여 형성된 가치관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거룩혹은 탈속(脫俗, sacred, unworldliness)은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한다. 세속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세속은하나님이 없다는 논리를 체계화 하여 이를 이성에 호소한다. 이에 대하여 다윗은 시편14:1절에서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는 말로써 세속의 정체를 밝혔다.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기초된 기독교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기독교가 세속에 오염되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치심에 전적 헌신해야 한다.(6:25~34; 7:13~14; 21~27) 기독교인은 세속적 영역(the secular realm)에 대한 성경 관을 갖고 있다. ‘거룩세속의 영역은 서로 다르지만 두 영역은 다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 존재하기 때문에 두 영역이 서로 상충되지는 않는다. 국가는 시민을 통치하고 교회는 교회 자체를 어거하는,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갖는 것이다. 공정한 시민 질서 유지는 국가의 임무에 속하고, 말씀과 영적 사역은 교회의 임무에 속한다.(13:1~7)

 

성경이 경계하는 세속주의와 세속화

성경은 성속(聖俗)을 구별한다.거룩한(12:16; 28:2; 29:31; 23:19) 것과 세속’(世俗)은 서로 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NIV)에서 세속’(secular)이라는 단어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거룩한(sacred)이라는 단어는 창1:14~벧후2:21까지 모두 126(구약 119, 신약7)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거룩은 히브리어 바달’(badal, ‘בָּדַל’ ), 신약에서 헬라어 하기오스’(hagios, γιος)는 각각 거룩에 해당하는 구별하다, 분리하다’(to separate)라는 뜻이다. 이 말은 종교적 의미와 함께 육체적, 도덕적 순결도 포함된다.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은 세속에서 구별되는 거룩이다. 율법과 십계명, 선지자들의 설교의 핵심도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을 지키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경은 거룩한 영역과 세속의 영역을 구별 짓는다. 신약성경에서 구별되다’(set apart, sanctified)라는 뜻에 해당하는 단어 교회는 에클레시아’(ekklesia, κκλησα)로서 부름 받은 회중’(a called-out assembly),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부름 받은 무리이다. 이 무리를 성경이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1:7), 세상의 소금(5:13), 세상의 빛(5:14)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거룩한것과 세속을 구분 적용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이고, 비록 현재는고통중에 있을지라도 어느 날 피조물이 회복될 것이다(8:19, 20, 2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만물을 그(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1:22, 23)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하나님이 만유의 주(2:10, 11; 2:2)로서 만유 안에 계실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종말적 관점에서 세속(세상)의 문화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의 현장은 세상, 세속이다. 가정과 직장, 학교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세속이다. 기독교인은 세속에서 세속적 직업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거룩한 일이 되게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드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3:23~24)고 격려한다. 성경은 좀 더 알기 쉽게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세속에서 실천되며 확장된다. 배가 바닷물 위를 항해하듯 그리스도인은 세속에서 거룩한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다만 세속화(Secularization), 세속주의(Secularism)는 경계해야 한다. 세속주의와 세속화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과 그의 이성을 중심하기 때문에 성경이 경계하는 것이다.

 

위기의 기독교 각성케 할 남은 자들

영국 남동쪽에 있는 캔트(Kent) 주 스플리트(Ebbsfleet)에는 옛 로마시대의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 현재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아나바Annaba) 출신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 기념탑이 우뚝 서있다. 얼핏 아프리카인의 기념탑이 왜 영국에라는 의아심을 가질만도 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A.D.595년 교황 그레고리 1(Pope Gregory , 540-604)의 앵글로 색슨인(Anglo Saxsons)에 대한 선교정책에 의하여 영국 선교사로 발탁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A.D. 59730명의 베네딕토 수도사와 함께 복음을 들고 스플리트(Ebbsfleet) 해안에 상륙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84년에 기념탑을 세웠으니,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상을 떠난 지 1454, 영국 기독교 역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상륙으로부터 현재 1419년이 된다. 혹자는 영국에서 기독교 역사를 A.D.1세기로 소급 적용하지만 당시는 영국에서 어떤 신앙적 변화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 관점이다.

영국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지 약1400여년, 현재 영국 교회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영국내 170개 종교 단체 중 지난 10(2001-2011 인구조사) 간 영국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는 불안한 변화를 보였다. 10년 단위로 실시하는 영국의 인구조사에 나타난 기독교 인구 비율은 매우 비관적이다. 2001년 인구조사 때의 기독교 인구는 42,079,000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71.6%를 점유했던 것이 2011년에는 전체 인구의 59.3%33,200,000 명대로 감소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2001년과 2011년 사이 영국에서 태어난 기독교 인구 중 530만 명 감소되었다. 이는 한 주에 약10,000명이 감소한 셈이다. 만일 이런 감소 추세가 지속된다면 2067년이 되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미국IBT(International Business Times)의 미디어 문화 에디터인 크리스토퍼 자라(Christopher Zara)는 영국에서 만일 기독교가 다음 세기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If Christianity wants to see the next century, it may need a miracle.)라고 한 말은 영국의 기독교 회생이 거의 절망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는 달리 무종교는 9,104,000(15.5%)~14,100,000(25.1%) 명으로 증가 현상을 보였다. 영국에서 기독교는 소수 종교로 가는 노정에 있다’(Christianity on course to be minority religion in UK)는 말이 왠지 이해하기 어렵다.

숫자로 나타난 기독교 인구 감소에 의한 미래 예측은 영국 기독교의 다음 세기 역사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영국 기독교 전망에 대한 희망적 끈을 놓지 않는 목소리는 매우 고무적이다. ‘영국 기독교는 죽지 않는다. 잠들어 있을 뿐이다. 복음이 교회의 잠을 깨울 수 있다.’(British Christianity isn't dying. It's sleeping. Evangelism can awaken it.) 저널리스트, 역사가 팀 스태인리('Tim'oth Randolph Stanley) 박사는 1960대부터 영국 교회의 사양(斜陽) 조짐과 함께 소돔 고모라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고 회고 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결정적 쇠퇴에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는 No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물론 지난 110(1850-1960) 간 영국 교회의 번영기와 비교하면 현재의 상황은 비관적이다. 비관적 결과는 신앙과 국가 간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국가가 국교(Anglicanism)를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구속사에 있어서남은 자(the remnants, 5:7~9, 4~15) 사상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보장이다. 영국 기독교의 깊은 잠을 깨울남은 자들은 누구일까?

 

흔들리는 기독교의 지형 변화

실시간 전 세계인구 통계를 알리는 월드미터tm(Worldometers)2016104() 오전930분 현재 세계 인구는 7454587,322, 오늘 출생154,000, 오늘 사망 64,969, 오늘 인구 증가는 90,228명으로 나타났다. 오늘 출생자와 사망자의 단순 차이는 89,031명이다. 숨가쁘게 바뀌는 월드미터스의 알림 숫자를 지켜보노라면 금방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또 변해가는 속도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인구 역시 지형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최대무신론 인구를 가진 18개 국가: 인구대비 %

홍콩

70

스페인

55

네덜란드

66

오스트리아

54

영국

66

아제르바이잔

54

이스라엘

65

베트남

54

일본

62

캐나다

53

독일

59

프랑스

53

오스트랄리아

58

덴마크

52

스위스

58

아일랜드

51

대한민국

55

라트비아

50

The Washington Post/By Rick Noak/April 14, 2015

 

미국 커뮤니케이션 전략가, 아니 미국 중동 전문가로 더 잘 알려진 조엘 씨 로젠버그(Joel C. Rosenberg)는 소설 마지막 지하드The Last Jihad(2003)를 통하여 이슬람의 지하드 이념 속살을 드러낸 작가로서 유명하다. 로젠버그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미국과 세계를 흔드시는 이유 네 가지’(cf. 2:6~7, 21~22)에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방법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안전지대가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의 교회 사역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대한 경고로써 세계 역사를 흔드신다고 했다(Joel C. Rosenberg's Blog). 하나님은 과거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섭리를 따라 세계를 흔들어진동시키고 계신다. 세계 정치와 경제, 영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기독교 인구와 그 지형 판도를 흔들고 계신다.

기독교는 캐나다 리딤어(Redeemer)대학교의 데이비드 티. 코이지스(David T. Koyzis) 박사의 잊혀진 황금시대A Forgotten Golden Age, 미국 베일러(Baylor)대학교의 저명한 역사학 교수 필립 젠킨스(Phiip Jenins)기독교의 잃어버린 역사The Lost History of Christianity(2008) 앞에서 곰곰이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지중해 시대와 대서양 시대를 풍미(風靡) 했던 기독교 세계역사는 이제 태평양 시대에 진입하면서 무신론과 이슬람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BBC NEWS가 퓨(Pew)의 자료를 인용, 2007년 미국 기독교 인구는 전체인구의 78%를 점유했는데, 2014년에는 71%대로 하락한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시기에 조사된 미국인 무종교 인구는 16%~23%대로 증가했다. 이는 미국인 중 5~6백만 명이 어떤 종교도 결코 갖지 않은, 미국에서 기독교 복음주의 다음으로 큰 부류로 분류된다. 미국은 아직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기독교 인구가 많은 편이다.

(Pew) 프로젝트(The Future of World)에 의하면, 2010년 기독교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31.4%216,830만 명, 무슬림은 23.2%159,970만 명, 2050년 기독교 인구는 31.4%, 무슬림은 29.7%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수치는 2050년이 되면 기독교 인구와 무슬림 인구가 거의 동수에 이르게 되고, 그 이후에는 무슬림이 전 세계에서 최대의 종교 집단이 될 것을 암시한다. 이를 다시 연령별 종교그룹 인구 비율은 다음 표와 같다.

 

종교그룹

15세 이하

15~59

60세 이상

무슬림

34

60

7

힌두교

30

62

8

기독교

27

60

14

토속종교

22

67

11

기타종교

21

65

14

유대교

21

59

20

불교

20

65

15

무교

19

68

13

전세계 평균

27

62

11

2010년 연령별 종교 인구 비율: 단위 %

PEW RESEARCH CENTER

 

위 표에 의하면 기독교 인구 연령대가 무슬림과 비교할 때 비교적 노화 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무리 글

성경은 기독교의 역사는 끝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도다(31:3).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파기하시지 않는다.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할 것이라(89:34). 교회의 역사는 이 세상의 역사적 환경이 방해하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1) 이 문장은 미완료형, 즉 현재 진행형이다. 기독교는 진행형,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위기에서남은 자들을 통한 역사적 전환

기독교의 다양한 정보 제공 임무를 통하여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사실과 동향Facts & Trends(1957)위기의 기독교상황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활동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기독교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Facts & Trends는 기독교가 전 세계적위기의 기독교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여력을 강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 기독교 인구는 23억에 달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지 엘리야 시대에 남겨두신 자 7,000명의 약330배의 숫자다. 엘리야 선지는 당시 호렙산 은신처에서오직 나만 남았거늘(왕상19:9, 14) 이라는 비관적 현실에 갇혀있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왕상19:18)이 남아 있는 것을 알려주셨다. 엘리야의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위기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엘리야에게 현실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셨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2.5%가 기독교 인구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에게는 멈춤이 없다.

 

구원 사역을 멈추시지 않는 하나님

(PEW)에 의하면 로마천주교는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절반(50.1%)109,461만 명(세계인구의 15.9%)인 반면에 프로테스탄트 인구는 37%864만 명(세계인구의 11.6%)에 불과하다(2011). 계수와 점유율로 단순 비교하면 프로테스탄트는 로마천주교의 교세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러나 로마천주교의 주요 판도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실제적 영향력은 로마천주교를 상회하고 있다. 16세기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 한 사람의 외침이 유럽과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놓았던 역사적 사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때 기독교는 지금이 또 다른 기독교의 세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 로마천주교 인구는 전 세계 로마천주교 인구의 40%에 근접하는 425백만의 교세를 자랑한다. 그러나 1950년 라틴아메리카에서 로마천주교 점유비율이 94%에서 2014년에 69%로 추락했다(PEW). 그런가 하면 프로테스탄트 인구는 1950년의 3%에서 201419%대로 상향 곡선을 그렀다(CT, Christian Today).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개혁교회들이 분발하고 있다는 증거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

1970년 전 세계 무신론 인구는 16500만 명, 2000년에는 거의 40만 명이 감소, 이런 추세를 고려할 때 2050년에 무신론 인구는 12,500만 명으로 하향세를 보일 전망이다.(Facts & Trends). 이런 전망은 점차적으로 무신론 인구의 감소 시그널이라는 관측이다. 그런가 하면 시대사조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확실한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위기의 기독교시대의 기독교에게 격려가 된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기독교는 1.32% 성장하고, 이슬람은 1.88%, 힌두교는 1.26% 각각 성장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복음주의 교회는 2.13%로 고속 성장세를 보였다. (Facts & Trends) 성장 비율 비교에서 프로테스탄트는 1.62%, 로마천주교는 1.13% 성장을 보였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15년에 프로테스탄트는 4.5%(328,582,000) 성장하여,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6%581,134,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해마다 8,260만 권의 성경책이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이 숫자는 2025년이 되면 11천만 권으로 등반될 것이고, 2050년에는 13500만권으로 증가할 것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에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교회가 다음 세기에 대한 기대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한 언론 매체의 절망적인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 확신하건데 현재 역사적 상황과 인간의 수학 공식 개념을 넘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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