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를 의미하는 영어단어가 많지만, 이디엇(Idiot)은 바보를 뜻하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데, 왜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불렀을까?

그리스 철학의 양대 산맥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인 동시에 정치 사상가였다. 그들은 폴리스(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그리스 정치의 이상적인 모델을 찾기 위해 사색하고 논쟁했던 인물이다. 플라톤은 소수 엘리트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중과 엘리트들이 함께 참여하는 혼합 통치체제를 선호했다. 바로 여기서 바보들이 등장한다. 바람직한 정치체제를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바로 고대 그리스 사회의 '바보'였던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바로 바보였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우리도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 기독교인 정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를 출마시키든가, 아니면 최소한 기독교인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도록 선거운동에 뛰어들어야 할까?

시대가 흘러가자 정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면의 세계를 돌아보는 것을 더 강조하는 철학자들이 그리스에 나타났다. 이른바 스토아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질투, 명예욕과 분노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인간의 참된 가치를 내면의 세계에 두는 경향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테면 스스로 바보가 되기로 결정한 철학자들이다. 초기 기독교는 이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토아 철학이 '금욕주의'라고 번역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기독교가 영향을 받았던 스토아 철학은 금욕주의와 더불어 정치적 관점의 초월이었다.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나라는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대통령 선거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가 운영의 청사진이나 지도력의 미래를 보여주기는커녕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온갖 구설수와 지리멸렬하는 후보들의 정치공학적 계산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신문을 덮고, TV를 끄고, 조용히 내면의 세계를 돌아보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이 혼탁한 시대를 견디는 방법일 수 있겠다. 차라리 바보가 되어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어떨까? "하나님의 나라여, 부디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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