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폐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인구 대비 천만이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고 우리가 처한 당면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내세우는 가치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와 호응관계에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뒤로는 물질에 혈안이 되고, 영적인 평화를 내세우지만 단지 말 뿐이고, 결국 물질적인 축복과 기복을 파는 종교업자들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예천불지로 협박하고, 천당에 대한 환상과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번갈아 자극합니다.


공룡화가 된 교회는 실로 거대한 기업처럼 돌아갑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교회 건축 비용을 충당하려면 각종 헌금을 나열해서 마치 수익 사업처럼 걷어야만 합니다. 교회 건물 하나에 수백억이 들었다면 생산적인 사업을 벌인 것도 아닌 교회는 수십 개의 명칭을 붙인 헌금과, 신도 수의 확장에 목을 맬 것입니다. 신유치료를 빙자한 기독교의 기도원은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된 지 오랩니다.


목사님들이 내세우는 교회의 외적 성장과 교회가 받은 물질적인 축복의 이면에는 이렇게 신도들의 희생이 배어 있다는 겁니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가난한 신도 앞에서 고급차를 굴리는 분은 이미 성직자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자비량을 실천하지는 못할망정, 신도의 헌금으로 부를 누리고 사치를 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그러면서도 목사님들의 각종 부패상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일부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을 겁니다.


목사가 여신도에게 자고 싶다 빤쓰 내려라하면 내려야 진짜 신도라는 빤쓰 목사님. 여자가 기저귀를 차고 강대상에 올라온다고 호통을 치며 여성을 비하하는 기저귀 목사님. 미국에서 매독 치료를 받고 오페라 가수와 다시 간통을 한 나비부인 목사님. 여신도와 통정하다가 들이닥친 남편을 피해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렸다 추락사한 과로사 목사님.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며 자기가 믿는 신의 영역까지 월권한 생명책 담당 목사님.


하나하나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심판을 설교하는 종교 엘리트들의 부패가, 그들보다 더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신도들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하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미 기독교가 자정능력이 아예 없었거나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정화하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깨끗해지라고 강요하는 기독교의 모순은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교회 하나 세우면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다는 것은 신도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외적 성장과 신도의 양적 팽창이 목사의 성공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신도들은 결국 현금 지급기 노릇만 죽어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에 대한 멸시와 폄하를 일삼으며, 피해를 주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고 무자비한 경제 침탈을 자행했던 제국주의의 첨병에는 언제나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학살부터 호주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등 수많은 선량한 이들이 기독교의 이름 앞에서 죽었습니다.


박해 받았다고 주장하고 순교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수십 수만 배나 달하는 사람들이, 짐승처럼 죽어갔습니다.


그러한 기독교의 죄악사를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불상을 파괴하고 단군 상을 부수고 장승을 훼손합니다. 부산에 있는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수만의 신도가 모여서 통성 기도를 합니다.


타문화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으로 문화의 상대성. 다양성에 대한 존중도 없이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망 사건이 순교로 미화되는 현실은 이런 기독교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아주 단순합니다. 존중 받기를 원하면 먼저 존중하라는 겁니다. 불과 5년 전에 아마도 이런 자정에 대한 논의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우리는 최소한의 기대를 가지고 예의 주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기독교에 자정 능력이 과연 있겠냐는 겁니다.


크리스천투데이의 김 대원 기자는 이번 토론회를 두고 11월 8일자 상보에 다음과 같은 교계 일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종교 소멸 적 시각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에서 <건설적인> 토론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모두 우상이고 사탄이며 마귀로 치부하면서, 심지어 사찰이 무너지라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군집한 수만의 군중이 통성 기도를 하는 ‘종교 소멸적’ 시각이 건설적인지 엄숙하게 되물으면서 발제를 마칩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