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목사(열방교회, 코닷운영위원장)

필자는 다음 세대를 염려하면서 건전한 복음과 쉐마교육을 철학으로 건강한 교회 세우기와 어린이 집과 선교원 그리고 대안학교를 세워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사역을 하면서 이슈화 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동성애가 합법화 되면 사회는 성적 타락과 가정 붕괴로,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으로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다음세대가 끊어지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심한 것은 작금에 정치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얻을 표를 의식하여 동성애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소수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미명하에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얻어 동성애 주의자들이 커밍 아웃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법적 권리와 사회적 지지를 받으려고 발악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작년(2015)에는 서울대 동성애자인 김보미라는 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이 되면서 대학 안에도 공공연하게 동성애가 인정 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다. 올해는 연세대에서 총여학생 회장에 동성애자 그룹인 컴투게더에 활동하던 마태영씨가 당선됨으로 인해서 캠퍼스 내에서 동성애자들이 활개를 치도록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연한 대학생들과 학생 리더들의 커밍아웃으로 동성애는 확산되어가는 조짐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동성애법을 통과시키려는 여론 몰이가 판을 치며 동성 결혼 정당성 확보를 위해 발판을 구축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신학과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미래의 지도자가 될 지도급 학생이 레즈비언이 되었다는 점과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연세대학 안에 이러한 비성경적인 세속적인 가치를 지닌 자들이 공공연하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35년 전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이며 성경적 세계관을 정립한 존 스토트(John Stott)를 연구한 한 사람으로써 그가 쓴 동성애에 관한 글을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Issue facing Christians today-chapter 16]. 지금으로 35년 전에 저술된 내용이지만 지금 우리와 현대인들에게 나침판과 같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내용이기에 조금도 주저 없이 기술해 본다.

동성애적 교제 (Homosexual Partnerships?)

1. 논의를 위한 전제(The context for discussion)

1)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따라서 ‘동성애’ 라는 현상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을 비 인간적이라고 비난할 자유는 없다.

2) 우리는 모두 성적인 존재이다. 성은 인간성의 근본이며, 창조시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성적인 존재로 각자 독특한 성적 정향(定向)을 가지고 있다.

3)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교리는 인간의 모든 부분이 죄로 인하여 감염되었고 뒤틀려 있으며 성(性)도 거기에 포함된다.

4) 성적인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우리는 논제의 전제를 살펴보았는데, 솔직한 질문은 ‘정말 일시적인 동성애의 행위가 아니라 한 평생 동성애 교제(결혼)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2. 성경적인 금물(The Biblical prohibitions)

성경 네 곳이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 소돔과 기브아 이야기(창18장: 삿19,20장), 둘째, 레위기의 금지구절(18:22-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20:13-”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셋째, 로마서 1장의 바울의 언급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로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이와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아느니라”. 넷째, 기타 바울 서신의 구절들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창 노릇을 하는 자나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남을 중상하는 자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표준 새번역).딤전 1:9-10- “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 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언급을 제시하였는데 어떤 신학자들은(스켄조니 - Letha Scanzoni, 몰렌코트 - Virginia Mollencott) 성경상의 금지는 몹시 특정한 것으로 환대의 위배(소돔과 기브아), 의식적 금기(레위기 규율), 파렴치한 방탕(로마서), 남창과 젊은이들의 타락(고전, 딤전)을 금하고 있지만 동성 간의 교제(결혼)은 금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성경은 창세기 1,2장에서 결혼은 이성간의 교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성경상의 성(性)과 결혼 (Sex and marriage in the Bible)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간 창조에 있어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남여가 평등하게 창조 되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성간의 결혼의 토대를 구축한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세가지 기본적인 진실이 담겨있다. 1) 인간교제에 대한 욕구이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2:18). 2)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이성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남자인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이성)를 만들어 아내가 되게 하셨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23). 3) 결과로 일어나는 결혼제도다. 23절의 사랑의 시 뒤에 24절에 “이러므로”는 이런 이유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이 성립이 되고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창 2:24을 인용하셔서 남자와 그의 아내 사이의 평생 결합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의도 이었다고 밝히고, “하나님께서 짝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덧 붙혔다(막10:4-9).

이렇게 성경은 결혼을 하나님이 이성간의 일부일처제에 의해 설립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합이며, 공개적으로 인정 되어야 하며 (부모를 떠나), 영구한 결합이며(그는 그 아내와 연합하여), 육체적으로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한 몸). 그리고 하나님이 다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성경은 가른 어떤 종류의 결혼이나 성적 교섭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4. 현재 논의 대고 있는 주장들(Contemporary Arguments considered)

동성애자들과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성경적인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고, 동성애적 교제의 합법성을 옹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1) 성경과 문화에 관한 논의

성경에서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금지는 그 문화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지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동성애를 문화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기자들은 현대 문화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했다라고 치부한다. 과연 그럴까? 성경에서 동성애의 죄에 대한 지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제정하신 결혼제도 하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전제하에서다. 죄로 비난 받아야 할 근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모순이 되기 때문이고, 이 질서(이성간의 일부일처제)가 문화가 아닌 창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유효성은 영구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2) 창조와 본성에 관한 논의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자가 되었고, 동성애 교제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본성이고 내게는 조금도 비정상적이지 않소!” 노르만 빈텡거(N. Pittenger)는 오랜 전에 “동성 연애자는 부자연스런 욕구와 습성을 지신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동성애 교제를 옹호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한 가정이 탄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있어서 순리(Pusis)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성간의 결혼제도를 유지하고 계시는 동안에는 동성 간의 성적 행위는 엄연히 금지된 사안이다.

3) 관계의 성질에 대한 논의

동성애자들과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여의 성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전제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와의 관계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잘못된 사랑에서 출발하는 동성애 교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지 윤리나 도덕도 무시해 버리고 사랑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는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만이라면 일부 다처도 우리가 허락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명의 아내를 맞이한 것이지 미워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기준은 성경이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합하므로 한몸이 된다는 진리이다.

4) 관용과 복음에 관한 논의

일부사람들은 ‘동성애 그리스도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성애적 신도들의 의무이다”라고 하면서 동성애자들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기독교 복음의 전체적인 요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상하시고 받아주시기 때문에 그들을 용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매우 혼란스러운 진술이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의 ‘받아들임’은 그가 회개하고 믿는 자들을 모두 완전히 아낌없이 용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가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음에도 용서 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 한해서이지 계속 죄를 짓게 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사람을 받아 줄 수 없다. 다만 심판이 있을 뿐이다.

5. 믿음, 소망, 사랑(Faith, Hope and Love)

동성애의 교제가 비성경적이고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난 죄라고 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충고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는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의 세요소를 택하고 싶다.

1)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필요성

믿음이란 신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성적 정향이나 체직 그리고 욕구에 의해서 자신의 성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정향이 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인격적인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말씀의 기준이 삶의 모든 영역의 시금석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2)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필요성

동성애 교제의 비정상적인 현상은 유전적인 것보다 학습에 의한 것으로 보고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노력에 의해서 실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손길을 구하고 사랑으로 반응하고 치료에 최선을 다한다면 영광스러운 회복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신체와 정신과 영혼의 완전한 치료는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온전한 몸과 영혼으로 변형된다. 그 때에는 우리의 인격을 더럽히고 왜곡시켰던 모든 것으로부터 결국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을 믿고 바랄 때 우리는 현 세상에서 겪는 고통도 참을 수 있고 우리를 영광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3)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필요성

우리는 현재 시간 사이에 살고 있다. 믿음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은총과 소망 속에 기대하는 영광 사이에 살고 있다. 그것 사이에 사랑이 있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적대시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사랑과 이해와 관용을 통해서 그들을 끌어 안아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난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며 우정과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 줄 친구가 필요함을 깨닫고 사랑으로 돌봐 주어야 한다. 그들의 고민이 아무리 난처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남자 혹은 여자에게(아니 우리 모두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요구하신다. 믿음이란 그의 기준과 그들을 지키는 은혜에 대한 믿음이며, 소망은 현재의 고통 너머 미래의 영광에 대한 것이며, 사랑은 서로를 돌보고 조력한 사랑이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고전 13:13).

결론적으로,

이처럼 스토트 박사의 동성애 교제에 대한 견해는 선명하고 확실하다. 성경적 관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논쟁점에 대한 성경적 가치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오늘날 찬반 진영에서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논지를 성경으로 설득력 있게 진술하고 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은 달라 질 수 있지만 스토트 박사는 전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으로 동성애교제에 대해서 접근하고 해법을 제시해 준다. 문화와 사회적 환경 그리고 역사적 관점 보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기준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그는 교회를 이끌어 오는 세 스승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이며 마지막 스승은 전통(Tradition) 이라고 하면서 2000년 역사 속에 객관화된 진리가 바로 우리의 모든 신앙과 삶에 잣대가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바로 그 전통에 서서 성경적인 해석의 관점으로 동성애를 풀어 내고 있다. 논리 정연한 그의 논지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

한국 사회도 지금 해마다 퀴어 축제를 통해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미국과 구라파처럼 소수인권을 중시 여겨야 한다는 명분아래 동성애 결혼을 입법화하려는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만일 동성결혼이 입법화 된다면 우리나라는 급속히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과 저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법안은 막아야 하고, 성의 순결과 거룩을 지켜 내어야 한다. 이것이 다른 그 어떤 것 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서고 성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고 창조의 원리인 이성의 결혼을 통한 가정 천국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지상 명령인 쉐마는 가정을 가정되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여 결국 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변혁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가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는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비바람에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보이지 않게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동성애 교제와 동성결혼의 부정적 영향력으로 가정을 무너뜨리는 주범을 척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적인 교훈으로 남여가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건강한 가정 세우기에 앞장서고 동성애 결혼과 옹호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으로 변화 시키는 일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가는 것을 시대적인 사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회와 국가는 반 인륜적인 동성애 결혼을 장려하려는 운동에 동정하거나 동조할 것이 아니라 하루 속히 이런 풍조가 약화되고 사라질 수 있도록 홍보하고 권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P.S : 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하고 풍부한 이해를 얻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앞에서 소개한 책 페이지 336-361까지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서는 기독교 문서 선교회에서 출판한 ‘현대 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이라는 책인데 영어 이해가 부족하신 분들은 이 책을 구입하여 읽어 보시면 된다(참고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이해하고 읽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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