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실천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임영효 & 채경락(고신대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 조교수)

 

1. 서론

 

전통적으로 신학은 성경신학, 교의학, 역사신학, 그리고 실천신학, 네 분과로 구분되었다. 신학의 근본 토대인 성경을 연구하는 성경신학, 교리적인 체계를 세우는 교의학, 교회와 신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정리하는 역사신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천신학이다. 실천신학이 다른 분과에 비해 가지는 고유성이 있다면, 역시 ‘실천’이다. ‘실천’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실천신학은 원리적으로 현장을 섬기고 실천을 겨냥한다. 물론 성경신학과 교의학, 역사신학의 분과 역시 교회와 목회 현장을 섬기지만, 실천신학은 보다 전향적으로 현장을 염두에 두고 실천을 섬기는 분과다. 다른 분과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현장으로 공급할지, 채널을 연구하는 분과이기도 하다.

현장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현장과 채널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최근 현상으로 보인다. 신학의 역사에 있어 지금만큼 실천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는 없었다. 각 신학교의 교수진 구성에서 실천신학 교수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분과의 세분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실천신학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속했던 분과들이 이제는 별도의 연구영역으로 독립되고 있는데, 선교학, 상담학, 교육학, 설교학, 예배학, 교회성장학, 목회학 등이다.

이는 현장의 필요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현장이 실천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이에 신학이 응답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한걸음 나아가, 신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신학교가 주도적으로 현장을 교육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현장의 필요에 신학교가 반응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권위구조에도 모종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신학 교수가 현장 목회자들을 지도하던 입장에서, 이제는 현장 목회자들의 돕는 자 내지는 코치형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상일 수도 있다.

본 논문은 고신의 실천신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실천신학의 영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소논문 하나로 모두를 세밀히 언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며, 효율적이지도 않다. 본 논문은 설교학과 예배학, 교회성장학과 목회학, 상담학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지나온 70년을 대체로 10년 단위로 구분하여 그 시대의 주된 관심과 논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자료 측면에서는 본 교단에서 출판된 정기간행물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이 있겠지만, 본 논문이 의도하는바 우리 교단의 실천신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개략적으로 가늠하는 데는 충분하리라고 기대한다.

 

2. 고신 실천신학의 회고

 

2.1. 1946년에서 1950년대 – 롤모델

 

실천신학은 배움에 있어서도 책보다는 현장의 무게가 크다. 책을 통해 실천에 대한 이론을 정립할 수도 있지만, 현장 사역자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보다 실천적인 배움이 가능하다. 우리 교단 초기의 실천신학은 다분히 롤모델을 따라가려는 본받음의 차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상동과 주남선 등 존경받는 현장 목회자들의 실천이 회자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실천신학의 주요한 루트가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신학교 설립자 주남선의 목회는 심방 목회였다고 한다. 이상규는 주남선의 목회를 이렇게 요약한다.

 

주남선 목사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분이었다... 그는 목회 활동에서 심방을 중시하였다. 1946년 8월 당시 거창교회의 주일 평균 출석수는 270명이었는데, 그는 교인들의 가정을 알뜰하게 살피고, 교인 가정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해결하려고 힘썼다. 어느 해 여름 장맛비가 심하게 내려 수해가 나고 집이 침수되는 등 어려움을 당했을 때 온 밤을 새우며 등불을 들고 교인 집을 찾아다니며 교인들을 위험에서 구했다고 한다. 자녀 없이 살던 한 노파가 친정에 가서 병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사 세 사람과 함께 먼 길을 찾아가 손수 장례를 치러 주고 오기도 했다고 한다.

 

6.25 동란 중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을 심방했다고 하니, 그의 목회에서 심방은 가히 절대적인 중심이었다고 할 것이다. 주남선의 헌신적인 심방 목회는 당시 교단 내 많은 목회자들에게 회자되고 모범이 되었을 것이다. 근자에는 목회의 중심에 심방보다는 예배 인도와 설교를 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당시에는 목회라면 으레 심방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을 법도 하다.

설교에 있어서도 이론보다는 모범이 교육의 주요 루트가 되었다. 1949년부터 발간된 「파수군(把守軍)」 지에 유력한 설교자들의 설교문이 전문 혹은 요약본으로 실렸는데, 이것이 현장 설교자들에게 무게 있는 교본이 되었을 것이다. 「파수군(把守軍)」에 소개된 설교문들을 읽으면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오래된 설교문이지만 현대 설교학이 추구하는 원칙들을 잘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대지 설교인데, 주제가 선명하고, 대지들 사이의 관계성도 탄탄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대의 일부 설교학자들이 대지 설교를 비판하면서 ‘짜깁기’를 염려하는데, 우리 교단 선배 설교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기우다.

교단 초기 신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박윤선의 설교도 다수 실려 있는데, 초기에는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원초적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를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6.25 전란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설교한다. 그러나 「파수군(把守軍)」이 회를 거듭할수록 회개를 촉구하는 권면의 설교와 “교역자의 삼갈 것에 대하여(행 20:17-37)”/ “장노의 행동 원리(벧전 5:1-4)”(파수군 80호, 7-18쪽) 등의 윤리적인 주제로도 확대된다.

박손혁의 설교(파수군 8호, 6-13쪽)가 인상적인데, 주제가 매우 적용적이고 실재적이다. 제목이 “예수와 個性”이다. 내용을 살피면, 예수님과 성도 개인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디모데전서 1:12-17을 본문으로 한 설교인데, 설교를 시작하면서, 그는 바울이 일인칭 단수대명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를 토대로, 나의 신앙이 중요하고, 내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또한 예수님의 일생을 개괄적으로 훑어보면서, 주님이 개개인을 만나고, 개개인을 가르치고 소중히 여기셨음을 역설한다. 조밀한 주석을 통해 메시지를 확보하되, 매우 실존적인 적용을 설교화하고 있다.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중요성과 더불어, 그 기초에 성도 개인 신앙의 중요성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손양원(파수군 10호, 6-12쪽)의 설교는 구약 시대 선지자의 메시지를 연상시킨다. 다분히 주제 설교의 향취가 느껴지는데, “한국에 미친 화벌의 원인”이라는 제하에 교회를 넘어 한국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대지를 살펴보면 1. 국가 지도자들의 범죄의 결과이다. 2. 한민족의 범죄의 결과이다. 3. 미군정 시에 잘못된 영향. 4. 기독교의 죄악. 당시에 벌어지는 현실적인 죄악들을 열거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다. 구체적으로 본문을 적시하지 않는데, 서론부를 보면 예레미야일 가능성이 크다. 손양원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원수를 용서한 무한 사랑의 순교자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민족의 죄를 고발하고, 지도자의 죄악을 지적하는 선지자적 설교가 있었다.

초기 설교는 형태 면에서는 3대지 설교가 주류를 이루었고, 메시지 측면에서는 폭넓은 균형을 품고 있었다. 그리스도 중심적 메시지에서 성도의 삶, 나아가 사회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근자에 교회의 설교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와 신앙 일변도의 메시지로 축소된다는 비판이 있는데, 우리의 선배들은 시간을 거슬러 설교의 지평을 광활하게 넓히고 있었다.

 

2.2 1960년대 – 설교초

 

우리 교단 초기 신학교육에 있어서 실천신학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신학교육의 중심에 섰던 박윤선, 오병세, 이근삼, 홍반식 등의 전공이 주경신학과 조직신학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실천신학은 이론적인 교육보다는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판단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배우기보다 현장에서 눈으로 배우고 익힌다는 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승동측과의 합동, 그리고 이어지는 환원의 과정에서 고려신학교가 복교하였는데, 그때의 커리큘럼을 보면 초기 신학교육에 있어서 실천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박손혁: 헬라어, 신학석의

홍반식: 구약, 교회사, 히브리어

오병세: 주경신학

이근삼: 조직신학, 변증신학, 기독교윤리

한상동: 실천신학

하도례: 헬라어

 

한상동이 실천신학이라는 이름 하에 설교학과 목회학을 강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의 실천신학이 선교학, 상담학, 교육학, 설교학, 예배학, 교회성장학, 목회학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는 다른 분과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신학 분과에서도 현재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구원론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지만, 위 도표에서는 조직신학이라는 포괄적인 학과명으로 소개된다.

학교에서의 교육과 별도로, 「파수군(把守軍)」 지면을 통한 ‘설교초’ 보급이 눈에 띤다. 설교초란 설교의 개요(outline)를 대지 형태로 소개하는 형식인데, 현장 목회자들의 설교 준비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전부터 다양한 설교자의 설교문이 기고되었는데, 1950년대 말부터 요약 형식으로 소개되다가, 설교초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 호에 서너 편씩 공급되었는데, 다수 설교자들이 이에 참여하지만, 이찬영이 주로 기고를 했다. 한 예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망의 양면(롬 6:28)

서론 1.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히 9:27)

2.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상가에 있음(전 7:4)

1. 불신자의 사망관

1. 공포를 느낀다

2. 슬픈 것이다

3. 막을 수 없다

2. 기독 신자의 사망관

1. 인생을 정화하는 것이다

2. 안식 세계로 옮겨지는 것이다

3.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결론: 사망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가?

 

보다시피 서론과 본론의 대지들, 그리고 결론까지 설교의 흐름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개요 형식으로 제공되었다. 본문에서 기본 메시지를 얻되, 일단 주제를 확보하면 논리적인 결을 따라 성경 전반에서 대지를 확보한 듯하다. 설교 자료가 흔치 않던 시절, 현장 설교자들에게 매우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어진 설교초를 골격 삼아 살을 붙여서 설교문을 완성하거나, 혹은 설교초를 적절히 수정하여 설교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교육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설교를 어떻게 작성할 수 있는지 기본적인 흐름을 섭렵하는 교육 자료로도 기능하였을 것이다.

그 주제도 다양하여, 절기에 맞춘 설교초도 제공되는데, 11월에는 감사, 12월에는 성탄에 관한 설교초다. 고난주간 기념 설교초도 보이는데, 특별새벽기도회 용으로 보인다. 청년회 헌신예배 설교와 전도 설교, 나중에는 아동을 위한 설교도 따로 소개된다. 아래는 감사절과 성탄절을 염두에 둔 설교초들이다.

 

감사의 헌제(눅 7:36-50)

서론 1. 은혜 받은 여인이 감사감격하여 세 가지 제사를 드렸다

2. 우리도 감사절 제사로서 귀한 헌납을 해야 하겠다.

1. 헌심

2. 헌신

3. 헌물

결론 1. 말로만 표현하는 의식적인 감사는 쓸데없다.

2. 마음, 몸, 물질 등 모든 것을 드리는 제사가 참 감사다.

 

성탄을 맞이하는 3종 인물(마 2:1-11)

서론=만민들이 성탄을 맞으나 그 중 대표적 인물들

(1) 주의 탄생을 미워하는 자=헤롯

(2) 주의 탄생에 무관심한 자=제사장, 서기관

(3) 주의 탄생을 사모하는 자=동방박사

 

반세기가 지난 설교 개요인데, 선명한 주제와 역동적인 흐름이, 흡사 현대 설교학의 논의들을 깊이 소화한 풍모다. 그런데 아쉽게도 설교초 제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모습을 감춘다. 현재 여러 기독교 출판사에서 다양한 설교 자료와 설교 샘플을 제공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시대를 앞선 시도였다고 판단된다.

 

2.3. 1970년대 – 이론으로서의 설교학

 

1970년대 들어서 이론적인 설교학 교육이 시작된다. 양승달이 학교 강의와 더불어 「고신대학보」를 통해 실천신학에 관한 글들을 소개하는데, 제목만 소개하면 “교회를 섬김으로서의 설교”(1974년 1권, 37-40), “복음전도를 위한 목사의 역할”(1975년, 10권, 8-13), “종교개혁과 16세기의 설교”(1975년, 14권, 14-17), 그리고 “19세기 화란의 설교와 설교자들”(1975년, 16권, 6-8) 등이다. 기독교 역사 속 선배들의 설교 실천을 소개함으로써 현장 설교자들의 설교 실천을 도우려는 시도로 판단된다.

분량 면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는 다소 짤막한 에세이 형식의 글들이다. 내용 면에서는, 기술적인 지침보다는 대체로 설교자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와 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설교는 말씀과 사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전제하면서, 말씀 자체가 중요하지만, 전달하는 사람이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사람인 동시에 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하므로 사람을 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의 인격은 설교를 준비할 때와 그 설교에 큰 영향력을 가져다준다. 예술가는 방탕한 생활을 해도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며 작가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가 있다. 그 이유는 그 작품들과 그 인간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와 설교자의 인격과는 불가분리의 밀접한 관계에 있다.

 

설교는 단지 설교문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설교자의 활동임을 직시하고 있다. 설교자의 인격과 삶이 구비되지 않으면, 선포되는 말씀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인격과 삶은 물론, 심지어 건강까지도 잘 관리하여야 한다는 실제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2.4. 1980년대 – 구속사적 설교

 

1980년대의 관심은 단연 구속사적 설교다. 화란에서 온 고재수의 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신학보」에 거의 매 호마다 구속사적 관련 논문이 기고될 정도로 논의의 열기가 뜨겁다. H. M. Ohmann의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대한 기독론적 설교”(이병구 역, 1986년 12호, 160-180쪽), 박종칠의 “구속사적 성경해석”(1987년, 13호, 137-150쪽), 고재수의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있어서 모범의 기능”(1987년, 14호, 115-131쪽)과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1988년, 16호, 19-36쪽) 외 다수의 논문이 구속사적 해석 혹은 구속사적 설교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인 기조는 모범제시형 설교를 비판하고, 구속사적 설교를 옹호한다. 다른 말로 인물 중심의 설교를 비판하고, 하나님 중심의 설교를 적극 옹호한다. 고재수의 처음 논문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있어서 모범의 기능”은, 표면적으로는 설교에 있어서 모범의 기능에 대해 다분히 호의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범은 인물의 모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범이다. 어떤 인물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에 일관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모범이다. 예를 들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셨다는 것은, 다른 경우에 유사한 죄를 저지른 사람을 하나님이 죽이시지 않더라도, 사실상 죽어 마땅하다는 의미로 설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모범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모범제시형 설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글이다.

고재수의 두 번째 논문인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은 매우 강한 어조로 구속사적 설교를 주창한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셨을 때 의도하셨던 그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소위 도덕화와 심리화를 강하게 거부한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행동 지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행위를 선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당연히 설교도 그런 기조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속사를 단지 인간의 도덕적 규범이나 심리적인 위안의 기초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박종칠은 “구속사적 성경해석”에서 QT의 성경 해석에 불만을 표하는데, 고재수의 도덕화 심리화 거부와 연장선에 있다. 역사적인 구속 사건을 개인적인 경건의 자료로 삼는데 대한 거부감이다.

현재까지도 구속사적 설교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이해가 요구된다. 학문적으로는 구속사적 설교가 지속적으로 선언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모범제시형의 설교가 많이 실천되고 있다. 이 긴장 속에서 현장 설교자들의 설교 실천이 폄하될 가능성도 있다. 구속사적 설교가 구약 본문에 대한 좋은 접근임에는 분명하지만, 유일한 접근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 중심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인물 중심의 설교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셨을 때 의도하셨던 그 교훈’ 안에 인물에 대한 교훈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둘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적절한 조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2.5. 1990년대 – 예배학과 직분론

 

설교학에 집중되었던 관심이 1990년대에 들어서 예배학과 직분론 등으로 확대된다. 「개혁신학과 교회」에 직분론과 예배학 관련 논문들이 다수 기고되는데, 직분론에 있어서는 허순길이 주된 필자다. 미국 장로교회 내 장로 직분에 관한 하지(C. Hodge)와 쏘넬(James H. Thornwell)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비판하고 분석하는 “개혁주의 직분관”(1991년, 제2권, 73-111쪽)을 시작으로, “역사적으로 본 개혁주의 직분”(1993년, 제3권, 197-236쪽)이 직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논하고 있다.

허순길의 관심은 이후 보다 현실적인 이슈인 여집사 직분으로 나아가는데, “여집사직 제도에 관한 연구”(1998년, 211-230쪽)에서 여성 안수 문제까지 포괄하여 민감한 문제를 주경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의 연구의 특징은 현실적인 이슈를 다루면서도, 철저히 성경 주해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디모데전서 3:11, 로마서 16:1, 그리고 디모데전서 5:3-16, 사도행전 6:1-6에 대한 세밀한 주석을 통해 여집사 제도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장로직을 남성에게 제한하는 것은 특정한 문화권의 제도가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따라 주어진 것임으로 영구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여집사를 세움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는데, “집사가 권위적 성격을 가진 가르치는 행위와 권위를 행사하는 권징 시행에 관련하지 않고, 단지 봉사에만 관련”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게 한다.

예배는 늘 있어 왔지만, 예배학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는 1990년대 한진환에 의해 시작된다. 「개혁신학과 교회」에 다수의 예배관련 논문이 기고되는데, “예배와 신앙 공동체”(1995년, 제5권, 183-206쪽)을 시작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예배지침에 나타난 세례의식”(1996년, 제6권, 169-192쪽), “성찬의 본질에 대한 재조명과 그 현대적 적용”(1997년, 제7권, 257-270쪽) 등이다. 첫 논문에서 그가 밝히는 대로, 그간 교회는 교회의 예전적인 실천들에 대해서 “전통과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성찰 없는 실천은 무의미한 기계적 행동이 될 수 있다. 예배와 세례, 그리고 성찬의 본질과 의미를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인도하는 목사와 참여하는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첫 논문에서 그는 교회를 기본적으로 말씀 공동체, 교제 공동체, 그리고 종말론적 공동체로 정의하는데, 이 공동체적인 특성이 예배 행위를 통해 드러나고 있으며 또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적으로 선포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교제 공동체의 활력이 예배 안에서 실천되고 느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다소 희석되고 희미해진 “평안의 인사”를 실천할 것을 제언한다. 단순히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넘어 예전의 일부로서 경건하고도 의미 있게 실천될 필요를 제시한다.

세 번째 논문에서 한진환은 제목 그대로 “성찬의 본질”을 고찰하는데, 인상적인 것은 성찬의 기원을 최후의 만찬을 넘어 주님의 부활 후 식사에서 찾는다.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가 성찬을 목요일이 아닌 주일에 가진 것과, 특히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는 슬픔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기쁨으로 떡을 떼었다”(행 2:46)는 사실에 주목한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생하게 기억케 하는 상징물”을 넘어 “성도가 새 언약의 복 속에 살고 있음을 확증하시고 인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라는 말이다. 한국 장로교회가 성찬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만 맞추고 있음을 아쉬워하면서, “이것은 너무나 좁은 안목이다. 성찬은 비단 그리스도의 죽음 뿐 아니라 그분의 부활과 승천, 왕 되심과 다시 오심의 구원 사건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짓는다. 거의 20년 전 논문인데, 아직 현장 교회의 성찬은 오직 주님의 수난에만 맞추어져 있는 현실은 아쉬움을 품게 한다. 실천 신학은, 다른 분과의 신학도 마찬가지겠지만, 연구와 더불어 현장 보급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2.6. 2000년대 – 목회학과 설교학

 

실천신학은 언제나 현장과 호흡해야 한다. 현장을 이론적으로 지도하는 기능도 있지만, 현장의 물음에 대답하는 화답의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현장과 실천신학의 관계는 일방향보다 쌍방향 협업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00년대 들어서 우리 교단의 실천신학은 보다 현장과 긴밀하게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 내 갈등 문제와 교회 개척, 그리고 제자훈련과 가정교회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목회와 설교에 관한 보다 전문적인 연구가 현장의 요청에 응답한다.

90년대에 주로 예배학 관련 글을 내놓던 한진환은 2000년대 들어 관심의 초점을 설교학에 맞춘다. “현대 설교학의 동향에 대한 소고”는 전통적인 강해설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신설교학에 대해, 역으로 적절한 비판을 가한다. 이야기체 설교로 대표되는 신설교학에 일정 부분 장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야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달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성경의 문학적 형태를 설교에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진리의 간접적 전달은 설교에 있어서의 케리그마적 선포를 약화”시킬 수 있고, 또한 “청중이 스스로 결론을 도출해야 하고 적용해야 하는 것”도 주요한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목회적 이슈로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제자훈련이다. 옥한흠을 통해 한국 교회에 널리 유포된 제자훈련은, 실시하든 안 하든지 주요한 목회적 이슈임에 틀림이 없다. 현유광은 “목회와 제자훈련의 관계정립”을 이론화하는데, “목회는 곧 제자 삼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정리한다. 목회와 제자훈련은 본질상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제자훈련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사람이 되게 하고,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니, 제자훈련이 곧 목회라는 주장이다.

배굉호는 우편전화 조사와 신대원 학생을 설문조사를 통해 “제자훈련과 교회성장과의 관계”를 연구하여, 제자훈련이 교회의 성숙과 성장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제자훈련과 더불어 목회현장에서 크게 이슈가 된 것이 가정교회 문제다. 2008년에는 총회의 요청에 의하여 가정교회 이슈에 대하여 신학교수들의 연구물이 개진되는데,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면, 가정교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우려가 강하다.

김순성의 연구 키워드는 ‘영성’이다. 「개혁신학과 교회」에 관련 논문들을 기고하는데, “신앙 공동체 영성의 해석학적 자리로서의 주변성”(2001년, 제12권, 223-244쪽)에서 시작하여, “고신 영성의 재발견과 실천신학적 조명”(2006년, 제19권, 171-196쪽), “칼빈의 기도론의 영성 유형과 기도모델”(2010년, 제24권, 263-290쪽), “공동체 영성과 목회”(2012년, 제26권, 267-288쪽)에 이르기까지 영성에 대한 연구물들을 내놓는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여러 각도로 진단하면서 “왜곡되고 변질된 영성이 교회 내에 범람”하는 것도 큰 이유임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모색하는데, 새로운 영성 개발보다 교단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고신 영성에서 찾는다. 고신의 영성을 “극한 고난과 박해 상황에서 꽃핀 순교적 영성으로서 주변성을 지향하는 하나님 중심의 십자가의 영성, 자기 부정과 회개의 영성, 저항과 순교의 영성, 자기 포기와 하나님 영광의 영성, 코람데오의 영성”으로 규정하면서, 초기 고신의 영성을 재발견하고 회복하는 것이 고신 교단과 한국교회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7. 2010년대 – 교회성장학과 상담학

 

임영효는 2000년대 중반부터 리더십과 교회성장학 이슈에 관하여 「고신신학」을 통해 꾸준히 연구물을 내놓고 있다. 목회자의 리더십이 교회의 성숙과 성장에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교회성장학과 리더십은 한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연구의 특징은 철저히 성경 본문에 기초한 신학이다. 실천신학의 특성상 기술적인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그는 모든 논의의 기초를 철저히 성경 본문에 의거하고 있다. “크리스천 리더십의 원리”(2005년, 제7권, 17-50쪽)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7-12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효과적인 기독교 교육의 원리”(2006년, 제8권, 99-128쪽)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5-7절, “부흥의 원리에 관한 연구”(제9권, 50-81쪽)에서는 사도행전 2장을 중심으로 부흥의 원리를 정리하고, “영성개발과 교회성장”(2008년, 제10권, 107-154쪽)에서는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주해적으로 접근한다.

대다수 학자들이 기술적인 방법론에 치중하는 교회성장론에서도, 임영효는 성경 주해에 기초한다. “교회성장의 성경적 원리”(2011년, 제13권, 9-66쪽)를 에베소서 4장 11-16절에서 찾는데, 소위 핵심 사역자들의 말씀 양육을 통한 모든 성도의 일꾼화를 이론화한다. 교회성장에서도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먼저 목사와 교사, 복음전하는 자로 지칭되는 핵심 사역자를 먼저 세우시고, 그들의 말씀 사역을 통해 모든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 실천신학의 지향점은 현장에 있지만, 원리적 기초는 성경에 있다는 개혁신학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상담학이다. 물질문명의 발달 속에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피폐함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상담은 유용한 위로와 회복의 도구가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하재성은 「개혁신학과 교회」 지에 이 분야에 다양한 주제의 연구물들을 내놓고 있다. “목회 상담과 설교”(2009년, 제22권, 159-186쪽)에서 상담과 설교의 관계를 모색하는데, “설교학과 상담학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잠식할 수 없으며, 서로의 고유한 영역과 기능을 존중해야 한다”고 정리한다. 설교와 상담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어서 상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재성은 일반 상담학에서 논의되는 유용한 자료들을 현장 목회자들에게 공급하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목회와 상담에서 나타나는 역전이 감정과 기독교적 영성”(2009년, 제22권, 187-213쪽)에서 목회 상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역전이 감정에 대한 이해와 대처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목회자는 설교자이면서 동시에 상담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목회자의 어려움에 대해 적절한 조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Carl G. Jung이 말하는 신비체험과 영적 현상들”(2015년, 제29권, 214-239쪽)에서는 소위 정신병과 귀신들림을 구분하는 현실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피로와 우울증은 현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난제 가운데 하나인데,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의 우울증과 탈진”(2015년, 제29권, 240-262쪽)에서 그는 재독 한인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의 논의를 기본틀로 목회자의 우울증을 분석한다. 목회적인 중압감 속에 ‘거룩한’ 자기 착취에 힘겨워하는 목회자들에게, 안식을 일컫는 중단과,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소위 서사성의 회복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70년 간 교단의 실천신학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요약하면, 실천 신학의 특성상 그 시작은 모범적인 목회자(롤모델)였을 것이다. 이론적인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모범적인 사역을 행하는 목회자가 곧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었을 것이다. 정기간행물이 발간되면서, 설교문이 게재되기 시작하고, 1960년대에는 ‘설교초’ 형식으로 현장 설교자들을 섬겼다. 1970년대 이론적인 설교학 관련 글이 처음 소개되고, 이어서 구속사적 설교가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설교와 설교학 관련 논의가 분량 면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현장 목회에 있어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예배학과 직분론, 2000년대 들어 설교학과 목회학 등으로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최근 들어서는 교회성장학과 상담학까지 실천신학의 영역은 세밀하면서 폭넓어지고 있다.

 

3. 실천신학의 전망

 

3.1. 실천신학의 성격

 

19세기까지 신학은 개별적 본문의 의미를 탐구하는 주경신학(Exegetical theology)과 성경 본문 속에 나타나고 있는 개개의 가르침(교훈)을 광범위한 신학적 원리와 상호 연관시키는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과 교회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오늘 이 시대를 향한 영적교훈을 받고자 하는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과 주경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을 통하여 발견된 성경적 진리들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의 4분과로 구분되어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그 동안 실천신학에 속해 있었던 선교학(Missiology)이 독립적인 분과로 인정을 받게 되므로 오늘날은 5개 분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신학은 여전히 신학의 종합적인 성격을 지닌 분과로서 계속적으로 세분화되어지고 그 영역이 확대되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효율적 순종과 섬김으로 이어지게 하는 학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서 교회로서의 기능(function)과 사명(Task)을 올바르게 수행해 나가게 하는 적용(application)과 봉사(service)의 신학이다.” 뮬러(A.D. Muller)는 “실천신학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에 관한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이, 실천신학은 그 성격상 교회의 신학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의 기능과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3.2. 미래의 실천신학의 연구방향

 

실천신학은 신학의 종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과로서 타 신학분과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을 올바르게 연구하려고 하면 Text(본문)와 Context(현장) 둘 다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하며, Text의 의미를 Context에 적절히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Context의 다양한 사건과 겪는 다양한 실제적인 경험들을 Text의 관점에서 바르게 분석, 평가하여 재해석 및 재적용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신학적인 이해와 다른 신학분과들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사역의 현장에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인 존 M. 프레임(John M. Frame)이 정의했듯이, “신학은 신자들이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용이 없는 신학이라고 할 때 미완성의 신학이요, 올바른 신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실천신학분야에서의 모든 연구를 통하여 올바른 적용이 도출되도록 신학의 5영역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간학문적/종합적 신학연구(Inter-disciplinary/Multi-disciplinary study) 즉 전체적인 연구(wholistic study)방식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실천신학의 영역에서 고신신학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연구방향은 상황과 경험과 감정에서 사역의 원리와 방법을 찾아내는 주관주의적인 연구방법이 아니라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에서 모든 사역의 원리와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까지라도 찾아낼 수 있는 성경중심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의 개혁주의 실천신학자들로 알려져 있는 R. B. 카이퍼(Kuiper)나 J. E. 아담스(Adams)나 클라우니(Edmond P. Clowney)의 연구방법이 성경에서 프락시스(praxis)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던 성경신학적인 방법이었듯이, 고신의 실천신학도 특별계시의 말씀에서 교회사역의 원리와 구체적인 내용들을 탐구하여 사역의 현장에 적용해 나가고자 하는 성경의존적인 실천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부름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따라야 할 삶과 사역의 유일한 기준과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 속에서 실천신학의 원리를 찾아 사역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성경자체(Scripture Itself)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3.3. 미래의 실천신학의 연구영역

 

1967년에 출판된 “베이커의 실천신학사전”(Baker's Dictionary of Practical Theology)에서는 실천신학의 분야를 ① 설교(Preaching) ② 설교학(Homiletics) ③ 해석학(Hermeneutics) ④ 전도-선교학(Evangelism-Missions) ⑤ 상담학(Counseling) ⑥ 행정학(Administration) ⑦ 목회학(Pastoral) ⑧ 청지기론(Stewardship) ⑨ 예배학(Worship) ⑩ 교육학(Education)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서 실천신학의 연구영역으로는 1) 예배학, 2) 설교학, 3) 기독교교육, 4) 목회학, 5) 교회정치, 교회행정학, 6) 평신도신학, 7) 전도학, 8) 목회상담학, 9) 교회성장학, 10) 찬송학, 11) 강해설교, 12) 크리스천 리더십, 13) 교회개척론, 14) 제자훈련학, 15) 목회진단학, 16) 영성신학, 17) 기독교사회복지학 18) 목회진단학, 19) 목회심리학 20) 치유사역학 등으로 더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세분화되어져 나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천신학은 교회사역을 주로 다루는 학문인 점을 고려할 때, 예수님의 3대 사역인 설교사역(preaching ministry)와 성경교육사역(teaching ministry)과 치유사역(healing ministry)분야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부여하신 양을 먹이는 사역(강해설교와 성경교육)과 양을 치는 사역(영적 리더십과 영성신학)에 관한 영역들이 보다 깊이 있게 연구되고, 구체적인 적용점들을 찾아나가게 된다면 21세기의 교회사역에 큰 기여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어진다.

 

4. 결론

 

지난 70년 동안의 고신신학에 있어서 실천신학은 초기에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에 비하여 체계적인 연구와 전문신학자의 배출이 어려웠던 반면에, 중기 이후에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2000년대에 접어들어 외국에서 실천신학분야를 연구하고 특정 영역에서 학위를 취득한 전문인들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므로 다양한 영역의 연구논문들이 발표되어졌으며 보다 깊이있는 전문적인 저서출판이 활성화되어지므로 교단 신학의 발전과 교단 교회들의 사역에 도움을 제공하므로 실천신학 분야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특히 고신대학교에 선교목회대학원이 설립되어 목회학 전공, 신학전공, 선교학 전공, 교회성장학 전공, 치유사역전공, 사회복지 전공 등 석사과정의 여러 전공분야들의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실천신학 분야에 더욱 체계적인 연구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신신학의 미래에 큰 도움과 활력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천신학은 본문과 현장을 항상 균형있게 이해하고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신학의 결론에 해당되는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이요, 신학의 면류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업은 신학의 모든 영역을 이해해야 하고 특히 성경적인 근거가 분명해야 하기에 성경신학적인 지식과 기초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참으로 어려운 연구영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성경적인 개혁주의 실천신학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신학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변화하고 있는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하면서 성경에서 현장의 문제와 요구에 대한 해답과 적절한 적용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모든 신학이 살아있는 올바른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신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을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처방을 제시하므로 건강한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할 수 있는 개혁주의 교회건설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실천신학의 발전이 요구되며, 이러한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성경중심적인 개혁주의 실천신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미래의 고신신학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