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한 2016 미포 후기(2)

한국교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2016 미래교회포럼 내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 차원에서 미포후기를 실습니다. 후기내용은 미포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6 미포 현장, 연동교회당에서 12월 5-6일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홍성철 목사(코닷연구위원 대전주는교회담임, 영국 웨일즈대학 Ph.D)

“이신칭의 복음: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란 제목으로 미래교회 포럼이 세미나를 주최했다. 박영돈 교수는 이신칭의 복음이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서 제대로 설교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고 했다. 반면에 김세윤 교수는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론 자체가 윤리부재라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순종과 회개가 없는 이신칭의가 문제

박영돈 교수는 순종과 회개함이 없이 예수님을 믿으려는 이신칭의가 문제라고 본질적 문제를 잘 지적한다. 또한 우리나라 강단에서 이신칭의와 성화를 분리함으로, 구원은 믿기만 하면 된다고 보고 성화는 천국에서 받을 상급 정도로 이해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박 교수는 성화도 없고 윤리도 없는 구원을 보장해주는 왜곡된 현대판 칭의론을 비판한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주님과 관계론적 의미로서 칭의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구속하는 묵시적 세계관으로 칭의론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칭의와 성화를 구별했던 입장을 비판하며 이 둘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종교개혁자의 이신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정적으로 죄를 사면해주고 의롭다고 선언하는 법정적 칭의에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가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 복음에 들어온 신자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이신칭의 임을 더불어 강조한다. 김 교수는 로마서 1:3-4절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인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에서 오셨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부활했음을 로마서 1:16-17절을 통해 연결시킨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신자의 관계적 이신칭의는 로마서 6:1-14절에서 영적 세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 성령 하나님의 내주로 인해 이신칭의는 계명 순종인 성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김 교수의 이신칭의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성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 주장을 로마서 본문 자체를 가지고 증명한다.

이신칭의를 제대로 강론하지 않은 강단이 문제

필자가 볼 때 이신칭의와 성화 그리고 윤리부재와 관계된 문제들은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중생과 회심의 역사가 배제된 채로 이신칭의를 값싸게 소개한 강단이 잘못이다.

그러나 로마서 6:1-14절의 칭의교리에 따르면,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분명히 변화가 따라온다. 구원을 받을 때 분명히 옛 본성이 죽는 쪼개진 분할이 있다(complete cleavage). 그러므로 이신칭의 교리에서 구원은 옛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옛 본성이 죽어 버린 완성된 실체가 되는 것이다. 옛 본성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옛 본성이 아직도 살아있다든지, 혹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옛 본성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바울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 개념이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체험하고 믿지 않으니 로마서 8장의 성령 하나님도 오시지 않고 그러니 로마서 12-16장의 그리스도의 삶이나 윤리가 부재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지 않은 양극단

필자가 보기에 강단에서 이신칭의가 제대로 설교되면 성화도 있고 믿음으로 사는 윤리도 있다. 그러나 로마서의 이신칭의와 성화를 회개를 통해 체험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지적으로만 이해하니 진정한 구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교회당만 오가다 보니 예수님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영적으로 게으른 무율법주의 증세를 가진 교인들이 많아진다. 또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오래 동안 교회를 다니니 자기 힘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신앙생활 하려는 율법주의자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을 체험하지 않고 교회당에 다니는 종교생활의 양극단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 교인들에게서 많이 보이고 있다.

성경은 일관되게 참된 믿음은 순종이라는 점을 강조(순종 없이 구원 없다)

바울서신이나 복음서, 야고보서, 그리고 요한서신도 일관성 있게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은 참된 이신칭의는 반드시 성화와 윤리 변화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복음의 원조 예수님의 가르침으로서 산상보훈은 회개를 동반한 변화를 말씀한다. 내적 변화, 외적 변화로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회개하고 믿으면 율법주의의 의를 초월한다. 그 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세상에서 대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좁은 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 사랑의 보편적 생활방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회개하고 믿게 하는 영적 대각성으로서의 이신칭의가 필요하다

강단에서 교회의 기초라 살 수 있는 이신칭의를 바로 전파해야 한다. 회개하고 믿게 하는 영적 대각성이 있어야 한다. ‘이신칭의가 성화와 구분되는가?’ ‘한번 구원을 받았으면 탈락되는가 안되는가?’도 중요하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강단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가?’ ‘교인들이 예수님을 주로 회개하고 제대로 믿고 있는가?’ 세상의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보배로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값싸게 소개하는 일은 그만하고 교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영적 대각성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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