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룡 이혜련 성경번역 선교사 ‘선교사 파송 30주년 기념 인터뷰’

‘사전은 도대체 누가 만드나?’ 늘 궁금했었다. N국 S부족의 사전을 만들고 있는 이상룡 선교사(KPM)를 만났다. S부족은 히말라야 고산지역을 주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선교사님의 안전을 위해 국가와 부족 이름은 생략하오니 양해를 바랍니다). 이 선교사는 이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로 사전을 만들 계획이다. 물론 S부족 언어로 된 최초의 사전이 될 것이다.

이상용 선교사는 1986년 12월 고신 총회선교부에서 선교사로 인준 받고 출국을 했으니 이 선교사와 인터뷰한 2017년 1월 3일을 기준으로 선교사역 만 30년을 넘어섰다. 본의 아니게 이번 인터뷰는 이상용 이혜련 선교사 ‘선교사 파송 30주년 기념 인터뷰’가 되었다.

이 선교사 부부는 ‘Nepali-Korean Dictionary’ 사전을 만들고 S부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이제 다시 S부족의 표준어를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사전학자, Rufus Gouws 교수가 있는 스텔렌보쉬 대학교에서 사전학을 공부하며 S부족 표준어 사전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상용 이혜련 선교사를 남아공 케이프타운 로즈 메모리얼 근처의 한 식당으로 불러냈다.

인터뷰하는 이상룡 이혜련 성경번역 선교사와 함께

 

1. 선교사님과 인터뷰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이 들어가셨을 때 약 30만 명 되는 S부족 가운데 단 한명의 크리스천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사역의 고통”을 말씀하셨는데 그 고통은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이었습니까?

투자의 문제도 아니고 기간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 일로 영향을 받을 사람도 없고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당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소용없는 일을 하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성경번역사역에 대한 저희들의 믿음(FAITH MISSION)은 번역된 말씀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읽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이가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언젠가는 성경을 읽고 변화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뛰어 넘어야 되고, 숫자를 뛰어 넘어야 되는 사역입니다.

5년에서 10년 까지는 버틸 수 있는데, 20년이 가까이 될 때는 사역의 어려움을 넘어서 비참한 상황이 되곤 합니다. 사역의 가시적 열매를 맺는 동년배의 다른 사역자들과 비교되고, 주변에서 눈치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희도 이런 문제를 겪었습니다. 선교본부의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고 인내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팀 안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죽어 나가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픔을 가지고 한국에 가보니 많은 사역자들과 교인들이 우울증의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드러내 놓고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경우 눈치 보지 말고 바로 공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공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울증은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질병임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제 속에 내제되어 있었던 실용주의에 물든 세속적 가치, 유명해 지고자 하는 욕망, 업적중심주의의 가치관 등을 내려놓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 어두움과 두려움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제가 선교사님 사역 보고서를 살펴보니, 제일 먼저 N국에서 생활하시면서 비자 문제와 안전 문제 때문에 N국 사전을 먼저 만드시고, 그리고 S부족 문화와 언어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시고, 그 다음 성경을 번역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언어학적 연구 원리를 따라 진행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계획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선교지에 와서 먼저 도착한 일본 선교사의 집에 가보니 일본사람들이 쓴 N국에 관련된 참고자료를 찾아 볼 수 있는 비블리오그라피를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에도 자료가 있을까 해서 찾아보니 그 당시 한국 사람이 쓴 N국 관련 자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과 비교되는 수치감도 들고, 비자 문제도 있고 해서 언어학적 기초 작업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사전 만들기였습니다.

N국 사전을 만들고 난 다음, S부족이 살고 있는 히말라야 고지를 5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그 지방의 사투리를 연구했습니다. 한글 성경 번역 중 존 로스 버전이 제일 먼저 번역된 한글 성경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존 로스 번역이 평양도 사투리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훈을 받고 S부족의 사투리들을 조사 했습니다. 5년 만에 S부족에게 세 종류의 사투리가 있음을 알아내고 언어학적 데이터로 볼 때 가장 서로 이해하기 쉬운 연결언어(bridge dialect)를 찾아내어 그 언어로 번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부부가 힘을 합해 N국 사전과 회화교재를 만들고 S부족의 브리지 언어를 발견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나서 성경번역을 시작하게 되니 총 15년 정도 걸려서 성경번역을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볼 때는 기가 막힌 순서요 타이밍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기가 꽉 막히는 상황이었습니다.

3.성경번역을 마치시고 이제 ‘표준어 사전’ 준비를 하시는데 이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티벧의 불교 언어의 영향을 받은 S부족 언어에는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신과 사랑이라는 개념이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식으로 말해도 그들은 티벧 불교식으로 이해를 함으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키텀(key term)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언어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과 개념 자체를 새롭게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일이 바로 표준어 작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표준어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그 부족의 표준어 사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 소수부족의 표준말을 결정하는가? ‘의 문제는 전 세계 소수부족 선교를 위한 중요한 모델이 되기 때문에 언어학과 사전학이 발달한 스텔렌보쉬대학교로 도움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인터뷰하는 이상룡 이혜련 성경번역 선교사와 함께

4. 한 종족의 언어를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이 작업은 그 부족에게 있어서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님이 하신 일은 그 부족에게 있어서 세종대왕이 한 일과 유사한 것 아닙니까? S부족들에게 이 선교사님 부부는 어떤 존재인가요?

자신들의 글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들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 종족 어를 사용 안하고 국가의 공용어만 쓰는 경우를 보면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자신들의 언어를 쓰는 것에 수치감을 느끼고, 빨리 영어 배우고 N국어 해서 출세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자기 부족의 정체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면서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S부족어 성경이 나온 후에 S부족 교회들이 세워지고 현재 200-300명 정도의 S부족 크리스천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5. 50년 만에 이루어진 성경번역사역에 전임자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전임자들이 3년을 못 버틴 지역에서 어떻게 27년을 버티고 사역을 완성해 내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소위 서구의 선교사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5번째 팀이었습니다. 성경번역을 시작하기 위해서 언어를 배우는데만 10년이 걸리는데, 우리가 그만두면 다시 10년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도 전임 선교사들처럼 철수할 이유가 많았습니다. 조국교회에서 목회를 위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문제로 이런 저런 철수해야 할 이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배운 대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 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척산 기도원 고 표지원 원장님이 후원 기도회 모임을 꾸려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표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기도하시는 권사님 그룹을 만났고 정규적으로 표 전도사님이 그 그룹의 기도회를 인도하시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기도 그룹이 성경번역선교회 GBT 선교사 15분을 위해 기도하고 돕고 계십니다. 이런 일을 30년 동안 해 오셨습니다. 또한 에젤(돕는 배필) 선교회(http://ezer.or.kr/)도 20년 동안 지원하면서 쉬지 않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가 버틸 수 있었고 그나마 성경번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N국 S부족어로 번역된 성경

6. 이 선교사님 부부는 언어학자로서 사역하신 전문인 선교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전문인 선교사 혹은 평신도 선교사의 역할이 커질 것 같은데, 앞으로서의 선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계 선교에 크게 두 가지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선교비가 줄어들고 선교사가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을 고려하고 선교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교의 현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선교는 아프리카 현지인 중심으로 가고 거기에 맞게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빨리할수록 살아남고 여기에 둔하면 도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교사 많이 보내겠다는 숫자 게임은 끝내고, 선교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현재도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에 30%-40% 이상의 적자계정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선교를 지원하는 교회에서 부터 선교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선교 현장을 잘 몰라서 선교자금을 날려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선교 구조조정은 선교의 전문화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선교단체에서 선교 오지에 투입될 경비행기를 구입하려고 한다면 비행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들이 탁상에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몰고 오지를 다니는 비행전문 선교사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비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전학회에 참여하는 것이 선교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전제작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일과 같은 전문적인 일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세상언어로 사전 만드는 것이 선교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뒷짐 지고 있었다면 오늘 S부족 성경번역도 없었을 것입니다. 전문선교에서 뒤 떨어지면 미래 선교 패러다임에서 뒤떨어집니다. 고신교회가 선견지명을 갖고 20년 전에 투자한 사전 전문 선교사가 이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KPM 선교사로서 GBT에 파송된 성경번역 선교사입니다. 고신교회에 속해서 선교하는 것이 매우 큰 힘이 됩니다. 소속과 정체감이 분명함으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소속감과 정체성이 분명한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이 더욱 더 필요한 시기입니다. 예를 들어 병원 선교 전문인 그룹, 선교현지의 신학교를 세우는 전문인 그룹, 성경번역 선교 전문인 그룹, 학교 선교 전문인 그룹 등을 만들어서 그 분야를 연구하고 현장을 돕도록 하는 선교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평신도 전문가 선교사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에 잠시 방문했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제 저희는 S부족 언어의 표준화 작업을 하면서 거기에 합당한 사전 제작을 위해 다시 N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좋아하며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선교사님 부부와 3시간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교사역 30년이 지난 선교사들 이었지만 S부족의 표준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다시 공부하고 도전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울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선교지를 떠나지 않으며 죽으면 죽으리라의 정신으로 사역했던 지난 30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실용주의에 물든 세속적 가치, 유명해 지고자 하는 욕망, 업적중심주의의 가치관을 내려놓을 때” 비로서 가능했다는 이 선교사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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