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간 대한민국의 생존은 불가사의라 할 수 있다. 수십년 동안 온갖 착취를 당하면서 자기 말조차 빼앗겼던 식민지로 신음했고, 광복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세계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절단된 나라였다. 70·80년대에는 대학가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밤낮 없이 날아다녔고, 불과 10여년 전에는 IMF라는 국가 부도로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으며, 이런 와중에도 골 깊은 지역감정과 끝없는 이념 대결로 국가적인 누수가 일상화되었던 나라였다.

그런데 1960년대 초만 해도 아프리카의 최빈국 경제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같은 시기에 건국한 아프리카 53개국의 GDP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고,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34개국의 무역수지와 비슷한 규모를 가진 세계 11위권 경제국가로 성장했다. 생존 자체가 의심되었던 나라가 이제는 첨단 정보기술을 선도하는 나라로 전세계에 우뚝 선 현실은 20세기의 불가사의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 20세기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은 20세기 초의 평양대부흥과 같은 튼실한 영적 토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거듭나게 한 가장 중요한 근거의 하나로 손가락 두세 마디에 불과한 휴대전화 자판에 완벽하게 넣을 수 있는 한글을 꼽고 있는데, 이 땅에 한글을 뿌리내리게 한 일등 공신이 선교사들이 번역한 한글 성경이었다. 또한 근세 초기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부터 술과 도박, 담배를 금지함으로써 민족의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키고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도 교회였다.

세계 역사는 나라의 진정한 융성이 건강한 영적 토대에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성장과 영향력은 웨일스의 부흥과 윌리엄 윌버포스의 정직운동이 그 영적 디딤돌이 되었다. 20세기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배후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어난 대각성과 제레미아 램파이어의 평신도 기도운동, 그리고 사무엘 밀즈의 건초더미 기도회에서 시작된 학생 선교사 헌신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있었다. 복음의 빛이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비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속까지 입체적으로 투시하는 영적사관(靈的史觀)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1907년의 대각성운동에서 성장의 터가 닦이고 60·70년대 한국 교회 부흥에서 발전의 기둥이 세워졌음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또한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배후에 교회의 침체가 있었던 것도 간파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퇴보는 교회의 부흥과 침체에 따라 그 궤를 같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심장은 이 민족의 새로운 100년의 불가사의도 기독교의 자기희생 터 위에서 펼쳐질 것이란 믿음의 꿈으로 고동쳐야 한다. 이 꿈을 품은 자마다 바벨론 70년의 포로생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 이른 것처럼, 머잖아 광복 70년이 되기까지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이 온전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거룩한 설렘이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대선에서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는’ 이 위대한 꿈의 초석을 놓는 하나님의 사람이 선출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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