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개혁과제Ⅰ

본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오늘날 고신교회의 개혁과제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개혁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과 직결된 윤리와 이에 연관된 교회의 행정과 구조 등의 개혁과제들을 찾아 논하려 한다. 그것도 고신교회를 중심으로 하려 하는 것은, 가능한 한정된 영역에서 실제적이고 실행 가능성이 높은 주제들을 다룸으로써 개혁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이다.

우리는 500년 전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늘, 바로 지금의 교회현장에서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그리고 500년 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신학적 교리적 개혁이 중심이었다. 물론 당시의 신학적인 타락 이상으로 윤리적 타락도 눈뜨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신학적인 왜곡은 기독교의 근본을 흔들 정도였으므로 윤리적 개혁은 다음 문제였다.

그러나 신학적 종교개혁은 당연히 윤리적인 개혁운동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500년 전 종교개혁에 잇대어 일어난 경건운동이 있었으니 곧 청교도운동이다. 청교도들의 경건운동은 신앙과 생활의 일치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신이 설립이념으로 내걸었던 “신앙과 생활의 순결”도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성경적인 교리는 있으나 성경적인 삶은 없고, 말씀은 있으나 순종은 없으며, 코람데오의 표어는 있으나 진실함은 없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일으켜야 할 종교개혁의 타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세운 교회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은혜는 중세기 로마교의 면죄부처럼 남용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일으켜야 할 운동의 중심과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다시 일으켜야 할 개혁운동은 바로 청교도운동이 아닌가! 혀끝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삶으로 하도록 이끄는 운동이 청교도운동이요 경건운동이다.

500년 전 종교개혁과 오늘날 종교개혁의 차이는 교리와 윤리의 순서라고 본다. 그 때는 교리가 우선이었으나 지금은 윤리가 우선이다. 그때는 잘못된 교리가 교회를 잘못 이끌었으나 지금은 교회의 윤리적인 타락이 복음전도의 문을 막고 있다. 교회 밖의 일반인들은 교회의 교리를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그들은 교인들의 생활을 보고 기독교를 평가한다. 그들은 믿음보다 행실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찍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고 하셨다.

사람을 타락으로 이끄는 가장 일반적이고 원초적인 사물들은 돈, 쾌락, 명예, 권력이다. 이것들은 세상이 좋아하는 것들이고 세속인들이 누구나 가장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기독인들에게도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도전이요 유혹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유혹들에 제대로 항거도 해보지 못한 채 무너지고 있다.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내세우던 고신교회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제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야 한다. 삶의 작은 한 절이라도 바로잡고 서야 한다. 개혁운동은 각자 각자에서 출발하여 교회로, 노회로, 총회로 퍼져나가야 한다. 어쩌면 이 순서가 역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겠기 때문이다. 목사, 장로들이 맑아지면 교인들이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음 주제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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