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정말 지독했던 선거’를 치러냈다. 대통령 당선자도 결정됐다. 국민의 선택이 내려졌으니 이제 제발 좀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했으면 한다. 정당간의 집권 경쟁에 이웃끼리, 직장동료끼리 덩달아 옥신각신했다면, 저물어가는 한 해가 다하기 전에 회포의 정이라도 푸는 것이 좋겠다.

나는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른바 ‘장로 대통령론’을 경계하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비난을 무릅쓰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기본적인 신학적 노선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많은 분들의 소원대로 장로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로 대통령론에 경계의 발언을 앞으로 최소한 5년 동안 계속할 것이다.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과 이명박 당선자의 개인적 리더십의 결과로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모시게 됐다. 아직도 장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진 지지자가 있다면 재고를 촉구한다. 다가오는 주일 예배에 제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도는 자제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성탄절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임하셨던 아기 예수를 경배할 시간이다. 나는 성탄절이 오면 한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토목공학을 전공했던 그 친구는 철저한 반기독교인이었다.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이 친구는 신학을 전공하는 나를 언제나 정신적인 미숙아로 취급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신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어 정신적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 그 친구의 주장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끈질긴 나의 전도에도 꿈쩍도 않던 그 친구는 졸업 후 전공에 따라 건축회사에 취직했다. 중동 어느 나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막의 모래뿐인 곳에, 현장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 친구는 사막의 적막 가운데서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의 반기독교 정서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친구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건설노동자들을 모아서 사막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주일마다 예배도 드렸다. 그러나 그 친구는 교회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어렵게 구한 성경을 함께 읽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첫해가 가고 첫번째 성탄절이 그 사막교회에 도래했다. 막막했다고 한다. 성탄절 예배에 적절한 찬송을 불러야 하는데 그 흔한 “기쁘다 구주 오셨네”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그 친구는 사막교회의 첫 성탄절 예배에 “징글벨”을 찬송으로 불렀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가 성탄 찬송이 된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막교회의 첫 성탄절 예배에 울려 퍼졌던 “징글벨”을 아름다운 찬양으로 받으시는 그런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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