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 있는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하늘이 온통 빨간 색칠을 한 것처럼 불타고 있다. 섭씨 42-3도를 웃도는 고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이상 기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호주까지 사막화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는 커피하면 다른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직접 볶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한다. 기후는 우리가 어릴 때와는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마치 고속열차가 가속이 붙은 채 달려오고 있는 듯하다.

천헌옥 목사(편집인)

우리들이 일으키고 있는 생활의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하늘을 뒤덮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치 공상 만화를 보는 듯 한 환경 속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아니 중국에서 황사가 날아와 한국의 대기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던가? 중국의 환경은 날로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기에 서풍을 맞아야 하는 겨울철의 한국은 덩달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가? 인식구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삶의 철학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집집마다 마흔이 넘어가는 자녀들이 미혼으로 남아 결혼거부를 선언하는 것을 보고 있다. 딸 하나만 낳고서도 더 낳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변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이라 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 되고 가장 훌륭한 인격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표로써 걸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 등 세계열강의 나라이든 아니든, 자유민주국가이든 아니든 모두가 막말 꾼인 데다가 아전인수 격으로 나라운영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자국의 유익이 중요하겠지만 가인(창4장)식 발상을 가진 자들이 리더십이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막말을 하는 사람이 더 솔직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태가 되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남장여인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전국에서 국회의원 중 한 사람 정도였다. 그것도 너무 이상해서 어떤 사람일까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오히려 정상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동성끼리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취향이며 자유이며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서 결혼까지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고 국회는 동성결혼을 입법하려고 들썩이고 있다. 남녀 7세 부동석을 외치던 어른들은 지금 다 어디 있나 싶다.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

과학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예측하기 어렵다. 동네에서 한 집 정도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 학생들까지 손에 전화기를 가지고 다닌다. 그뿐 아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서 바로 SNS로 전송한다. 몇 초 후에는 방송이 되기도 한다. 카톡이나 문자, 무료음성통화는 세계를 한 가족으로 만든다. 그래서 한 번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복음 21:27에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했는데, 예수님이 오시는 모습을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핸드폰 동영상으로 중계할 테니까” 하니 아내가 동의했다. 지금 그런 시대가 되었다.

대학들이 살아남기 위해 의과대학을 증설하고 그리하여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나왔다.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질병을 고치는 것을 연구할 수밖에 없고 그 덕에 진작 죽었어야 할 사람도 작은 한 알의 약으로 건강하게 살아 이제 100세 시대가 되었으니 70이 청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때로 전철 경로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설 때가 있는데, 80이 훨씬 넘은 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100세 시대가 실감나고 70은 청춘이라는 말에 동감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하루의 변화는 이전 100년의 변화를 훨씬 앞지른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지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해의 둥근 끝 부분이 서쪽하늘의 산에 닿으면서 그 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단 1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늘 가운데 있을 때는 움직이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넘어갈 때는 순식간이다.

마지막은 가속이 붙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같이 세상은 그렇게 가속도가 붙어 있는 듯하다. 24시간은 어제나 꼭 같지만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워서 해가 넘어가듯 그렇게 재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같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상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의 강단에서는 윤리만 강조하거나 교리만 강조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물질만 탐하는 설교가 횡행하고 잘되고 형통하리라는 설교로 만족할 것인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그렇게 진행되어 가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때가 때이니만큼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신랑이 올 때가 임박하였음을 자각하고 등에 기름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말세를 사는 슬기이다. 강단은 재림에 대한 메시지로 성도들을 깨워야 한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재림하실 주님을 고대하며 하루하루 정결하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기 위해 신부화장을 고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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