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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성의 멸망이 주는 교훈창 18-19장
이종수 목사 /고려신학교 53회 졸업 / 주님의품교회 담임 / 청소년전문사역자 / 저서 : 학원을 정복하라, 청소년전문교사 메이킹 등.

창 19장의 내용

소돔성으로 들어온 두 나그네를 롯이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접대한다.

그러자 소돔의 주민들 남녀노소가 이들을 강간하기 위해 모여든다.

소돔 주민들은 자기 딸들까지 내어 주며 손님들을 지키려 하는 롯마저 헤치려고 한다.

이때 두 나그네가 소돔 주민들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은 소돔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라고 정체를 밝힌다.

롯과 아내와 두 딸이 소돔성 밖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을 때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내려 소돔은 멸망한다.

롯의 아내는 피신 도중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두 딸은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후 동침하여 두 아들을 얻는다. 롯은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된다.

소돔이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1. 본문 안에서

5절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은 원어로 ‘야다’인데 ‘알다’는 뜻으로 아담과 하와가 동침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사람에게 ‘야다’가 쓰일 때는 성관계를 의미한다. 소돔 주민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온 이유는 롯이 집으로 모신 손님들을 야다(성관계 = 강간)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벧후 2:7에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라고 하고, 유다서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하므로 소돔이 음란하여 형벌을 받았음을 고발한다.

그리고 동성애자 = 소도미스트(sodomist)로 부르는 것을 보면 소돔성에는 동성애가 활발했으며, 이들이 상관하겠다는 말은 동성애를 하겠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본문 안에서 소돔성이 멸망한 이유는 두 나그네를 동성애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본문만 가지고 이렇게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은 일반 성도들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다.

그러면 소돔성이 멸망한 이유가 동성애 때문인가?

하나님은 소돔성 사건을 통해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돔과 관련해서 다른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2. 거시적으로

에스겔 선지자는 소돔의 죄악을 확실하게 말해 준다.

겔 16: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50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소돔을 선택한 이유는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기 때문이다. 소돔 땅은 물이 많아 농사나 목축하기에 좋은 알짜배기 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돔 사람들은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형함을 누리게 되자 교만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다. 또한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 ‘가증’은 ‘구역질나는, 혐오스러운’의 뜻으로 보통 성경에서 우상숭배와 동성애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동성애도 행한다.

에스겔이 말하는 소돔이 멸망한 이유는 가증한 일과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고 혼자 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 19장과 겔 16장을 통해 우리는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이유가

이웃을 성폭행(가증한 일)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시원하지가 않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고 강포를 행한 것이 멸망당할 만한 죄인가?

하나님은 왜 그 죄를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시는가?

소돔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소돔 사건과 관련한 전후 문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소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앞 문맥을 살펴봐야 한다.

 

3. 문맥적으로

창 18장과 연계해서 문맥적으로 살펴보자

왜냐하면 소돔성에 갔던 두 천사가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도 갔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세 천사가 갔다는 점이며, 그 중에 한 사람은 여호와이셨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가?

18:2 아브라함은 사람 셋이 오는 것을 보고 곧 달려 나가 몸을 땅에 굽혀 영접한다.

3-5 ‘내 주’라고 부르며 자기 집에서 쉬다가 가라고 강청하고, 나그네는 허락(?)한다.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시킨다.

7 하인에게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요리하게 한다.

8 아브라함이 잔치상을 벌여놓고 서서 나그네들의 식사를 수종든다.

 

9~ 나그네들은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17-19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가 아브라함과 자식과 권속까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20~21 소돔의 죄악이 심히 무거워서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한다고 말씀하신다.

22~ 두 나그네는 소돔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롯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아브라함에게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곧,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주여, 종, 급히, 속히,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 급히, 모셔 서매’ 로서 마치 종에게 주인이라도 온 것처럼 아주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대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그네를 향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잔치상을 차려 극진하게 대접한 것이다.

 

롯은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가?

19:1 롯은 두 나그네를 보고 일어나 땅에 엎드려 절하며 영접한다.

2 나그네를 ‘내 주여’라고 부르며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집에서 머물다가 가라고 초청한다.

3 나그네들이 거리에서 밤을 새겠다고 했지만 롯은 간청하여 자기 집으로 모시고 음식을 대접한다.

7-8 소돔 사람들이 나그네를 강간하겠다고 할 때 롯은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의 처녀 두 딸을 내어주면서까지 나그네를 보호하려고 한다.

 

나그네를 향한 롯의 태도 또한 아브라함과 거의 동일하다.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성에 두 나그네가 왔으며 그들이 롯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알게 되자

19:4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롯의 집을 에워쌌다.

5 그들을 강간할 것이니 롯에게 내놓으라고 했다.

9 롯이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자 롯마저 헤치려고 한다.

 

우리는 이상의 내용을 통해 성경이 나그네를 대접한 세 사람들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 롯은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지만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에게 강포를 행하려고 했다.

 

혹시 아브라함과 롯은 나그네들이 하나님과 천사인 줄을 알았기 때문에 대접한 것이 아닌가?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성경은 알지 못하고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이 있다고 분명히 증거한다.

성경에서 천사인 줄 모르고 대접한 사건은 아브라함과 롯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롯은 천사인 줄 모르고 대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과 롯은 나그네를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대접했는가?

너무 극진하게 대접을 해서 현대의 문화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소돔과 대조하므로 소돔이 멸망해야 할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롯은 소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소돔에 천사들을 보낸 까닭은 무엇인가?

18:20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 소돔과 고모라는 하늘에까지 들릴만큼 부르짖음이 사무쳤다. 그리고 그 죄는 심히 멸망 받을 만큼 무거운 죄였다.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소돔에 보낸 까닭은 하나님께 들린 심히 무거운 죄로 인한 부르짖음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소돔성에서 하늘에까지 들렸던 부르짖음은 누구의 부르짖음이었겠는가?

호크마 주석은 '부르짖음'을 압제받는 자가 외치는 부르짖음을 뜻한다고 주석한다.

그들은 압제를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당하는 부르짖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죄는 멸망 받을 만큼 무거운 죄인 것이다.

하나님은 왜 천사들을 나그네의 모습으로 보내셨을까?

부자, 상인, 군인 등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도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왜 나그네의 모습으로 보내셨을까?

신 10: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고 돌보신다.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 추수할 때 추수물을 나누어 주어야 할 대상이다.

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 절기 때 초청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야 한다.

신 26: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 3년마다 십일조를 모아 나누어 주어야 할 대상이다.

겔 22: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 나그네를 학대한 것은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 볼 때 성경에서 나그네는 사회적 약자의 대표로서 돌보아야 할 이웃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나그네의 모습으로 소돔에 보낸 것은 소돔 사람들이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확인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약자인 나그네에게 강포를 행하려 했다. 하나님께 들렸던 압제로 인한 부르짖음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성경은 왜 나그네를 대하는 일로 아브라함(과 롯)과 소돔 사람들을 대조하는가?

a.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건을 통해 소돔이 멸망 받아야 할 마땅한 근거를 대는 것이다.

소돔이 심판 받아야 할 근거는 가난한 이웃을 압제하여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증거가 바로 두 나그네를 성폭행하려고 한 죄이다.

당시 나그네는 관광을 하는 여행객이 아니다. 집이 없어 떠도는 노숙자 같은 신세들이다. 그런 그들의 유일한 재산은 몸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몸까지 폭행하고 빼앗으려고 한 것이므로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돔의 죄를 너무 동성애로만 한정짓기보다는 이웃에 대한 강포의 대표적인 사례가 성폭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b. 소돔성과는 다른 아브라함과 롯의 나그네를 향한 대접을 통해 하나님나라 백성은 멸망 받을 인간나라 백성과는 삶이 달라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계명은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나라의 백성답게 살라고 주신 하나님나라의 법이다. 예수님은 계명전체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개의 명령으로 요약해 주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보이는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고 증명된다.(요일 4:20)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표현인 것이다.

 

우리는 소돔이 멸망당한 이유를 찾고 있다.

미시적으로 창 19장 본문에서는 두 나그네를 성폭행하려고 했기 때문임을 알았다.

거시적으로 겔 16장을 통해서는 소돔이 태평하고 부유하므로 교만하여 져서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가증스런 일도 행했기 때문임을 알았다.

문맥적으로 앞장인 창 18장과 연계해서 볼 때 소돔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강포를 행했기 때문임을 알았다.

소돔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부요로 인해 교만해져서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성폭행하려 하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요함을 혼자 누리고 약한 이웃을 괴롭힌 것이 멸망당할 만큼 중대한 범죄인가?

그렇다. 만약 이웃을 경쟁자와 원수로 여기고 이웃보다 더 많아지기 위해 이웃의 것을 착취하고 군림하며 약한 이웃들을 억압한다면 그는 세상나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불신자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질서를 파괴하는 악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소돔이 심판받은 이유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롯이 구원 받았음도 확인할 수 있다.

롯이 비록 소돔성에 살므로 그 영향을 받아 심령이 상(고문하다, 고통을 주다)했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나라의 법을 지키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 19:29) 하나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더하셔서(19:17) 소돔의 멸망에서 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을 따라 왔기 때문이다(창 12:4). 무엇보다 신약의 벧후 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라고 롯을 의로운 자요 의인이라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눅 12:31절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거나 구하지 말고 하나님나라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구체적인 삶은 33절에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은 그것으로 없는 이웃들과 나누라는 것이다.

생명이든, 건강이든, 물질이든, 권력이든, 재능이든, 지식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가 많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없는 사람들을 도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진 것은 섬기라는 부르심이다. 많이 가질수록 약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돔의 멸망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인가?

창 18:19은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이웃에게)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롯, 소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웃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죄는 극한 이기심으로 큰 자가 되기 위해 이웃을 경쟁자와 원수로 보게 한다. 자신을 위해 이웃을 억압한다. 이웃보다 더 높아지기 위해 이웃의 것을 착취한다. 약한 이웃들 위에 군림하여 자기를 자랑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법으로 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이웃을 사랑의 대상으로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자원하여 자신의 것(복음과 소유)을 이웃과 나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인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성의 멸망을 통해 경고하시며,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교훈하신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전심으로 지킨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알기 때문에 주인의 뜻대로 자신의 소유를 어려운 이웃과 자원하여 나눈다.

자신의 것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이 구원받은 증거요, 하나님나라 백성다운 삶이다.

 

 

이종수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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