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양대의 찬양시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두어 시간쯤 날아가는 곳에 있는 C 국의 김영대 목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쩌면 서울, 부산보다도 더 가까운 시간이지만 왜 그렇게 만나기는 어려웠는지 모른다. 장로와 집사들 간의 분쟁으로 한 교회당 건물에서 두 교회가 모이는 어려운 임지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시던 분이 갑자기 C 국은 왜 갔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그를 만나는 것도 생동한 즐거움이 있었다.


▲ 김영대 목사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그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아직은 한국을 카피해야 하는 나라지만 눈에 들어오는 도시풍경은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기초질서는 매우 엉망이어서 사람들은 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통행하고 있었다.


C 국에서는 1일 300명, 1년에는 거의 10만 여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지만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눈도 끔쩍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목사와 함께 시작한 ㅇㅇ 한인교회는 아파트를 전세 내어 쓰고 있다. 거실과 방 하나를 터서 예배실로 쓰고 중 2층은 교육관으로 쓰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는 70명이 앉으면 더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협소해 보였는데 그 자리가 거의 찰 정도로 모였다.


▲ 설교하는 필자

 

주일은 매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이 늦은 그 나라에서 10시(우리나라 시간으로 11시)에 대예배를 드리고 11시 30분에 점심을 나누고 12시부터 찬양대 연습, 12시 30분부터 오후 예배 겸 성경공부를 하고 마치면 오후 2시경인데 교인들을 바라주고 집에 돌아오면 3시가 된다. 그런데 벌써 해가 서산에 걸리는 것이다.



▲ 서약하는 학습, 세례자들

 

필자가 갔던 주일에 세례와 학습을 베풀었는데 세례자가 4명 학습자가 1명이었다. 배우려고 힘쓰고 배우면 그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저들을 보면서 김 목사는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 수세식 장면


C 국은 정말 알 수 없는 나라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OO한인교회도 언제 헤쳐모여 할는지, 김 목사 역시 언제 추방 당 할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 내에 그는 우선은 한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 기도하는 유창근 장로(아직 등록교인 아님)

 

그 나라 국어를 시험을 치면 사모님이 100점, 김 목사는 80점 정도이지만(스스로 평가하여서) 자신은 실전에서 사람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까 별반 막힘없이 의사소통을 한다고 자랑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만하면 어디를 가도 걱정은 없겠다 싶을 정도로 1년 만에 대단한 진보를 보이는 실력이었다. 이 역시 앞으로 어떤 일에 쓰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훈련이리라.

 

▲ 새로 오신 분들과 방문자를 위한 환영


김목사와의 인터뷰

 

일시:  2007년 12월 23일

장소: C국 김목사 사택

참석자: 천헌옥편집장, 김영대 목사


편집장: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언제 왜 오게 되었습니까?

김목사: 제가 2003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안내하던 집사님이 이곳의 큰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통행하다가 도로표지판의 어느 도시의 이름을 가리키며 '목사님, 이곳에도 교회가 서야 합니다. 여기 한국 사람들 많이 삽니다' 라고 하더군요. 한국 상사 주재원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한 한국 교민들이 2-3천여 명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교회가 없어서 신자들이 멀리 100KM나 떨어진 큰 도시의 한인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는데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국으로부터 공인된 삼자 교회에 참석해 봐야 그들의 말도 다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제대로 예배가 드려 질리 없고 게다가 공안 당국에서는 외국인의 예배 참석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설령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의 교회에 가면 좋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공산주의 정치형태를 유지하는 C 국에서 조선족 교회의 모임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데다가 역시 외국인과 조선족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은 극도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만의 모임은 외국인인 그들만의 모임이니 공안당국이 그렇게 통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뒤 사업상 C 국을 자주 왕래하는 집사님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곳에 교회가 섰습니까?" 라며 궁금증을 나타내곤 했지요. 그때마다 대답은 "아직 안 섰습니다"라는 것이었고 이상하게 그것이 늘 저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도시를 중심한 지역에 교회가 설립 되어야할 긴급한 필요성을 역설했을 때 저는 대책 없이 "그럼 제가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라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달력을 쳐다보고 날짜를 정해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현지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와보니 정말 교회가 서야 한다는 절박감이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 안수집사로 신앙생활을 잘하던 어떤 분은 교회 가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한 주일 두 주일 빠지다가 신앙을 다 잃어버렸고 또 어떤 분은 예배가 목말라 수 백리를 달려간 교회에서 대예배 한번만 보고 오기에는 달려온 길이 너무 아까워 온 종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가 저녁 예배까지 드리고 오는데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짧지만 심각한 마음으로 이박 삼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누구를 보내며 누구에게 가기를 권해볼까 하며 여러 사람에게 의사를 타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왕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장가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 할 일이 많아 잔치에 가지 못하겠다고 한 것처럼 다들 불가피한 사연들을 토로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선교사로 나갈 생각을 하고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가까운 나라이긴 하지만 언어와 가치관이 다르고 사고방식이나 정치체제가 다른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녀교육의 문제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나라, 그곳에선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데 주여 누가 갑니까? 아무도 없나이다. 그때 제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그렇게 기도 응답을 받은 저는 담임하고 있던 교회에 사임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2002년, 분규 중에 있는 교회에 부임해서 2004년 말까지 분규를 마무리 지었고 그러고도 벌써 2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고 있던 교회라 이제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한 교인들에게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에베소 교회와 같이 나를 파송하여 주었습니다.


편집장: 이곳 한인교회와 목사님이 속한 노회와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김목사: 이곳 한인교회는 고신총회 남부산노회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예 설립예배를 드릴 때 남부산 노회 임원들이 오셔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편집장: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김목사 : 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에 한인교회를 개척한다면 처음부터 교단의 기치를 걸고 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교단 소속이 없다 보니 교회에서는 C 국에 진출한 지 오래된 준 토박이 급이나 헌금 많이 하는 사람, 자기주장 내세우는 목소리 큰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행정도 당회도 없고 무슨 봉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교회의 제반 사항을 협의해 가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이나 방침이 제대로 반영되기가 어렵겠지요.


교단 소속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는 첫째, 아무리 외국에 있는 교회지만 일관성 있는 교회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교회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시대에는 고신 교회들처럼 순교 신앙의 계승이라는 뚜렷한 개성이 있는 전통을 지켜간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둘째는 교회의 행정력이 국외에까지 미칠 수 있습니다. 직원 선택이라든지 임직 같은 일에도 교단의 통일된 의식에 의해 치러질 수 있으므로 훨씬 권위 있는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만약 한인교회가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무슨 제재를 받게 될 경우 교단의 배경을 가진 교회가 교단을 통해 우리 정부에 어필하고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를 통해 공안당국에 어필할 수 있어 교민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교단 소속이 없는 개 교회가 대처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넷째는 담임 목회자가 자신이 초창기 개척 멤버라 하더라도 교단에서 감시 감독이 가능하고 목회자 개인에게 문제가 발생할 시 노회가 개입할 수 있으므로 목회자의 독단을 예방 할 수 있습니다.


편집장: 아직도 이곳에 새로운 한인교회와 목사가 필요한가요?

김목사: 네, 제가 이곳에 올 당시만 하더라도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한인교회들도 생겨나고 안정되어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와 목사가 필요한 곳은 많이 있습니다.


편집장: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김목사: 네, 참고사항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전담 사역자의 현지 주택확보 - 짧은 기간은 원룸을 임대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아파트를 임대해야 합니다.

2) 어학과정 등록 -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지만 C 국에 살면서 귀 막고 입 닫고 살수는 없는 법이니 그 나라의 말과 간체자의 글을 쓰고 읽을 정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자동차 구입 - 물론 자동차가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당장에 급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C 국의 교통체계는 우리나라와 달라서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베테랑 운전사라도 C 국에서는 사고 나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니 C 국 교통 체계에 익숙해 질 때까지 택시를 이용해야 하므로 선교 예산의 상당부분을 교통비로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자동차를 가진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재 자기 차를 가진 사람을 차와 함께 운전기사로 고용하는데 한 달에 우리 돈으로 약 80-90만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하지만 운전기사를 고용할 만큼 그렇게 나다닐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4) 생활비 - C 국의 물가를 감안할 때 우리 나라보다는 적게 들겠지만 대충 어림잡아 한 달에 C 국 돈 만 위안(한화 135만원 정도) 정도는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집장: 이곳에 적임자라면 어떤 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목사: 첫째로, 자녀들이 장성하여 해외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 자녀 교육에 애로가 없는 연배라야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 신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목사보다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목회의 노하우가 축적된 사람이라야 합니다. 제자훈련이라든지 가정교회라든지 국내에서 목회를 하고 그것을 시행해 본 사람이 좋을 것 같습니다. 셋째로, 군목 출신 목사들이 군종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사역 할 수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넷째로, 성격이 적극적이고 명랑하며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좋습니다.


편집장: 마지막으로 김목사님의 애로 사항이 있다면?

김목사: 모든 것이 애로사항이지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입니다. 국내에서 개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 받을 방법도 없고 교인들은 아직은 새내기들이고 제가 받는 연금으로 한국에 있는 자녀들과 우리 식구와 교회 경상비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늘 모자라지요. 조금만 눈길을 돌려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집장: 네, 잘 알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목사: 감사합니다.

 

김영대목사 연락처: C국현지- 1595-112-2038

                             휴대폰: 010-5074-5227 

 

▲ 한국의 아들들의 방문으로 황산을 여행하며 담은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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