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 목사

순교자 염광(鹽光)『박관준 장로 일대기: 정의가 나를 부를 때』(1998. 두란노)-

아주 오래 전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부제(副題)이다.

책은 독립운동가 박관준(1875.4.13-1945.3.13) 장로가 순교한 지 50여년 만에, 역시 독립 운동가였던 그의 아들 월광 박영창(1915-2015) 목사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박관준 장로는 한국 교회사에서 순교자 주기철(朱基徹, 1897-1944), 손양원(孫良源, 1902-1950), 이기풍(1868-1942), 최봉석(崔鳳奭, 869-1944) 목사 등에 가리어 그의 이름이 역사 기록에 어렴풋 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1910.8.29-1945.8.15) 하에서 신사참배 반대와 기독교 탄압에 저항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50여명이 순교를 당했고, 5,000여명이 어두운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역사의 진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가 위난을 만난 상황에서 정의의 부름에 당당하게 바른 역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정의의 부름에 솔선수범한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정신과 그 희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의가 나를 부를 때’-

1939년 3월24일 금요일 오후 1시경,

18년간의 공정 기를 끝낸 5층 흰색 건물의 일본제국 국회의사당(東京都 千代田區 永田町1-7-1), 그곳 2층 방청석에는 제74회 중의원 회의 개회 시간에 맞춰 비장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세 사람의 한국인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의분에 빛났고, 숨이 막힐 듯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 세 사람은 당시 65세의 박관준 장로, 그의 아들 25세의 박영창 신학생, 그리고 선천 보성여학교 교사를 지낸 32세의 안이숙(安利淑, 1907-1997) 선생이었다. 의사당 내에서 이들 세 사람의 신분과 잠시 후 그들이 무슨 사건을 벌일 것인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일본 국회는 일본 군대의 해외 파병과 신종교법안 심의에 대비하여 의사당 경내는 삼엄한 경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오후 마침 의순(議順)에 따라 신종교법안 심의가 진행되는 1시48분 경, 방청석에 앉았던 세 사람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기민한 행동으로 ‘여호와의 대사명이다’라는 함성과 함께 미리 준비한 신사참배 반대 항의 및 경고 성명서 뭉치를 의장단상으로 던졌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개회된 의사당은 순식간의 소란에 혼란스러워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경위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에 앞서 박관준은 1938년 9월9일,

평양 서문밖교회당에서 모인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27차 총회가 일제의 위협하에서 총회장 홍택기(洪澤麒, 1939-1950) 목사의 사회로 신사참배를 가결, 아울러서 일본 국회가 ‘모든 종교는 일본제국의 승인하에 신봉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단체법’을 결의할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다. 이에 분노한 박관준은 죽음을 각오하고 일본 국회 의사당으로 달려간 것이다.

박관준은 ‘정의가 나를 부를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박관준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까지 그 정의의 부름에 동참케 했던 것이다.

박관준 등 세 사람이 일제 중의원 단상에 던진 경고문 성명서는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일본의 천황숭배인 신도(神道)를 기독교로 개종할 것, 다음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신사참배 악법 강요 등, 이에 반대하는 양심적 교역자의 투옥 등을 철폐할 것, 마지막 한 가지는 우상 숭배인 신도(神道)와 기독교의 하나님 중 하나를 선택할 것 등이었다.

박관준 등은 ‘제국의회 소란죄’로 현장에서 체포된 후 일본 경시청에서 40여 일간 모진 취조를 받았다. 취조 중에서도 박관준 등은 신사참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오히려 박관준은 ‘만약 나의 생존 중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자손의 대에 이르기까지라도 목적 관철을 이루기 위하여 이 같은 행동을 계속 감행하겠다.’라는 의연한 결의를 보였다.

그 후 박관준은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한국에서 박관준은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경찰의 날카로운 감시 하에서도 계속 신사참배 반대 활동을 했다. 1941년 봄, 일본은 박관준에게 신사참배 반대는 곧 일본 천황에 대한 반역죄라는 올가미를 씌워, 그가 태어난 평안북도의 영변경찰서에 검속시켰다. 그 후 다시 신의주경찰서로 이송되었다가, 마지막으로 평양형무소로 이감 된 후 독방에 처해졌다.

감옥에서 박관준은 평소와 같이 기도 생활을 멈추지 않았고, 예심법정에 섰을 때에는 당당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순교 직전 그는 40일 간 금식 기도하던 중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 실려간지 5일 만에 박관준은 방문자들에게 ‘우리나라는 앞으로 이사야11장 10절~16절의 말씀과 같이 됩니다. 여러분! 끝까지 신앙생활을 사수하시다가 앞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때는 1945년 3월13일, 광복 5개월 이틀을 남겨둔 날이었다.

박관준은 순교를 이미 예감한 듯 다음과 같이 그의 마지막 삶을 다짐하는 한시(漢詩) 한 수를 써서 당시 신사참배 반대 활동에 함께 한 이인재(b.1905) 전도사에게 전했다고 한다.

인생 일대에 한 번 죽음이 있으니(人生有一死) 어째 죽을 때 죽지 않으리요(何不死於死)

그대 홀로 죽을 때 죽었으니(君獨死於死) 죽었어도 천추에 죽지 않었도다(千秋死不死)

죽을 때가 와서 죽지 않으면(時來死不死) 살아 즐거움이 죽음만 못하리라(生樂不如死)

예수께서 나 위해 죽으셨으니(耶蘇爲我死) 나도 예수님위해 죽으리라(我爲耶蘇死)

2015년 7월28일, 박관준의 아들 독립운동가 박영창(1915-2015) 목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100세로 소천 했다.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난 박영창은 그의 선친과 안이숙 선생과 함께 일본 국회 의사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한국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박영창은 중국으로 탈출하여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면서 6년 간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선친의 옥사(獄死) 부음(訃音)을 듣고 귀국하여 광복을 맞았다. 일본 호세이대학, 도쿄 신학대학, 연희대학, 장로회 신학교, 그리고 명지대학 교목 실장 등을 지낸 후, 1969년 도미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한 남가주교회를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2015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면서 뜨거운 애국심을 보였던 그는『정의가 나를 부를 때』,『일본이여 대답하라』는 등의 책을 통하여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각성케 하고 있다.

안이숙은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신사참배 반대 항의 경고문 투척 사건 후 현장에서 체포 투옥, 다시 평양 형무소로 이감 조치된 그는 6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45년 5월18일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사형집행 예정 하루 전에 출옥했다. 출옥 후 안이숙은『죽으면 죽으리라』를 비롯, 저작 활동을 통하여 한국 교회에 순결한 신앙과 뜨거운 애국심에 큰 감명을 주었다.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안이숙은 ‘정의가 나를 부를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불나비처럼 일본의 심장부에 겁 없이 뛰어들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정의는 불의한 일제에 저항하는 정신이었다.

그 정의는 3.1독립선언문이 표명한 바와 같이 인류의 보편적 권리인 ‘자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는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이었다. 이 정신을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헌법이다. 그 숭고한 정신에 의하여 박관준과 박영창, 안이숙은 일제의 불의에 저항하는 몸짓으로 맞선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어두운 불의에 갇힌,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병길 목사가 집회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필자는 그 위기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을 스케치 해 보니...

불행하게도 시위대의 함성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고, 그들이 벌이는 온갖 저질스러운 퍼포먼스는 소름끼치게 거칠었다. 순간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일부 언론들은 애써 그 소름끼치는 시위 현장의 실상을 외면했다. 다분히 의도적이라 생각되었다. 카메라가 현장에 출동해 있었으나 앵글의 초점은 딴 곳에 맞춰졌다. 일부 언론은 침묵하는 절대다수 시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구미대로 편파적 짜집기 보도를 일삼았다. 정의를 외면한 것이다.

그렇게도 ‘촛불집회’ 인원에 집착하던 방송의 앵커들과 카메라 앞에 나선 패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라고 말 바꾸기를 거침없이 하는 멘트를 보고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수적으로는 ‘태극기 집회’ 수가 압도했기 때문이었을까? 앵커의 말대로라면 태극기를 든 시민들의 그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직도 일부 언론 매체는 ‘태극기 집회’를 애써 ‘친 박과 보수단체’라는 편 가르기 표현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익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언론이 ‘촛불 집회’의 주체는 애둘러 숨긴 채 ‘촛불민심’ 띄우기와 대선 주자들의 ‘대세’(大勢)를 세뇌하듯 반복적인 보도로 시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정의를 외면한 것이라 보인다. 정의를 말 한다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 땅에 사는 누구든지 공정한 법의 통제를 받는 것이 정의로운 태도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거늘...

그러나 그동안 시민들은 언론의 갈지자 편향 보도에 정신적 피해는 물론 판단의 혼선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혹시라도 언론이 불의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정서와 의지적 결단을 호도(糊塗)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고, 아울러서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왜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방한계선 이쪽에서 이렇게 서로 증오심을 불태우며 편을 갈라 싸워야 하는가? 숭례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세종로대로는 경찰이 설치한 차단벽을 경계로 시위 군중이 갈라져 있다. 손에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한 마디로 목숨을 건 혈전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지만 시위대들이 외치는 구호와 함성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거의 살기 찬 폭력 수준이었다. 과연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는 것일까?

정의 구현(具現)을 목적한 표현의 자유가 혹시라도 인간의 잔인한 야수성(野獸性)을 합리적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는 곧 원치 않는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다.

또 다른 함성...

가장 정의로워야 할 국회가 왜 ‘쓰레기’ 집단으로 지탄을 받는 것일까?

제20대 국회 지역구 당선 의원의 종교 분포에 의하면 개신교 의원은 93명(로마 천주교 77명의 26%, 불교 52명의 17%)으로서 전체 의원 수의 31%에 해당한다. 이는 제19대에 비할 때 소폭 감소 현상을 보이지만 결코 소수의 점유율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의 정의로운 의정 활동이 있었다면 과연 ‘쓰레기’라는 오명 비판을 받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정의를 상실한 것 같다.

간혹 국회의원들을 ‘선량’(選良)이라고 한다. 머니투데이(2016.4.15)가 ‘바른사회시민회의’ 자료에 근거하여 보도한 바에 의하면 제20대 국회의원 30.7%인 92명이 집시법 위반을 포함한 각종 법죄 전과자(새누리 30명, 더민주 50명, 국민의당 5명, 정의당 3명, 무소속 4명)로 조사되었다면서, 신문은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구성 전부터 당선자의 약31%가 전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한 말을 인용보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20대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시위 현장에서 ‘쓰레기 국회 해산’이라는 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장 공정해야 할 검찰과 특검이 왜 시민들의 규탄 대상이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검찰과 특검이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의에 대한 불행일 뿐 아니라, 검찰 자체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검찰과 특검이 정의를 사수하지 못하고 바람 같은 정치와 시류(時流)에 영합한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을 거들 나게 하는 중대한 범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을까?

이 나라 전국 방방 곳곳에서, 아니 캐나다와 미국, 호주 등지에서 해외 교민들 역시 분노의 물결로 조국의 국난 극복에 참여하는 것은 가히 가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정의를 폐기한 북한의 김정은 집단은 오늘도 적화야욕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악마의 불장난이다. 피를 나눈 형제를 낯선 땅에서 독살시키는 윤리적 타락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역사는 그들의 만행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현실 앞에 놓여있다.

잔인하고 음흉한 세력들이 온갖 거짓과 날조를 통하여 민초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의 맑은 정신을 혼미로 몰아가고 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나마 각성한 정의의 시민들이 영하의 길바닥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목이 터지라 부르는 것이리라.

 

-201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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