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M 이사회(이사장 김윤하 목사) 불라디보스톡 탐방기-1

김윤하 목사(참빛교회, KPM 이사장)

“아리랑의 실체는 노래로 존재하지만 한 민족의 아리랑은 노래 이상의 삶의 가치이며 삶과 역사이다. 아리랑은 고려인의 가슴시린 삶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적 여정이다.”

불라디보스톡에 있는 고려인 역사관에 기록되어진 글의 일부인데, 아직도 살아 있는 숨결처럼 내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아리랑이 이처럼 민족의 혼과 애환을 담은 노래인지를 알지 못하고 흥으로 불렀던 우리의 모습이 너무 죄송스럽기만 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아리랑이 가슴을 시리게 하고 내 민족의 절규가 나를 울렸습니다. 감히 아리랑을 부르기가 두려웠지만 이제는 스토리가 실린 노래가 되어 내 심장이 듣는 노래로 변해 버렸습니다.

불라디보스톡은 러시아 땅이지만 우리에게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조선 말기에 정치와 권력의 부패로 인하여 많은 민중들이 굶주림에 견딜 수가 없어서 이 땅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한 곳입니다. 물론 발해를 세웠던 고구려인들의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본래 정착하고 있던 자들이나 이주해 온 자들이나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민족의 동질성을 가지고 스스로 고려인이라 칭하면서 집단화 되어 가게 되자 러시아인들에게는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중국 만주를 중심으로 모여서 만든 조선족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스탈린은 중일 전쟁이 일어난 1937년 일본과 가까운 고려인들이 일본의 간첩으로 활동하며 러시아 정부를 반대할 것을 두려워하여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라는 극단의 조치를 집행하게 됩니다. 이때 민족주의자들은 숙청되었고, 17만 명의 사람들은 목적지도 모르는 곳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떠나야 했습니다. 열차 안은 추위와 굶주림과 공포로 가득하여 죽음의 현장이 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허허벌판인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에 던져 졌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끈질긴 삶의 투쟁으로 굴을 파고 생명을 유지하면서 그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들은 한 곳에 정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로 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민족주의라는 구실로 또 다시 고려인들을 추방하면서 떠도는 방랑객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소련 연방이었다가 독립한 우크라이나 등의 국가에는 시민권 없는 많은 고려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1911년부터 고려인들이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지금은 약 3만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 속에서 정착하기 위해서 모국어를 다 잊어 버렸고 후세들에게도 가르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의 후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이민족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고통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도 이런 유랑민들의 애환의 스토리가 실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리랑을 전 세계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아리랑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이런 고려인들의 끈질긴 삶의 현장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가슴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은 수많은 삶의 고개를 넘으면서 그 삶의 내용들을 가사로 붙여서 나만의 노래를 만들어 내는 특별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는 개인의 흥이나 사랑보다는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이 스며들어 있는 역사의 소리입니다. ​다시는 내 자녀들에게 이런 인생을 남기지 말아야지 하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머무는 동안 아리랑을 가슴으로 부르면서 내 심장에 흐르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내 속에 불타오르는 이 염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내 조상들의 한이 서린 이 장소에서 내가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리랑을 담고 가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괴로워했습니다. 내 조국의 안정과 평화만이라도 그들에게 전해주고 가고 싶었는데, 지금 조국은 혼란과 대립으로 불확실한 모습인데, 그냥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만 내가 호흡하는 한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리랑을 부르면서 떠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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