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안교육 칼럼2>

자식을 위해 울지말고 자신을 위해 우십시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안 들어주세요‘
   한 어머님께서 넋두리처럼 한 말입니다. 무슨 기도를 하길래 안 들어주시는지 물었더니, 밤낮으로 하는 기도는 오직 하나, 자식을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자식 잘되라고 하는 기도인데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나마 우리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도 부모님의 눈물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기도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봅니다.

   어머니의 대명사는 ‘자녀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자녀를 위해,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마치 광인처럼, 자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들입니다. 자녀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는 부모는 평생 자녀의 종처럼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모님의 은혜가 크고 깊은데 왜 이 땅의 교육은 무너짐의 굉음으로 들려올까요?

   가만히 보면, 모든 교육의 관계자들이 밤낮없이 노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부총리를 비롯한 모든 교육정책입안자들도 밤낮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주어진 제도권 속에서 학생들에게 최고의 결과를 안겨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들을 배우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문제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교육의 문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교육부장관에게도, 교사에게도, 교과서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교육환경은 그 어떤 때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된 우리들 자신입니다. 자녀에 대한 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을 맡은 부모들로부터 교육의 문제는 시작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합니다. 부모들의 신념, 가치관, 우선순위, 말과 행동을 배웁니다. 부모들이  실력보다는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합니다. 풍요한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최고라고 보여주면 그대로 합니다. 무엇을 희생하더라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으면 그대로 합니다. 고통하는 이웃을 돌아보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떠밀면 그대로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사회의 부산물이 아니라 우리 부모들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가까운 정의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말없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 뒷꼭지에서 배운다는 말은 백번 옳은 말입니다.

   교육의 근본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를 위한 울음에 우리 자신을 위한 울음을 더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자신을 위해 먼저 울어야 합니다. 정말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우리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하며 목놓아 울어야 합니다. 세상은 환경문제로 인한 위기보다 가정문제로 인한 위기가 훨씬 빠르게 사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요, 가정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입니다. 부모들이 변하면 자녀들이 변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올바른 신념과 올바른 가치관으로 살기 위해, 이웃을 먼저 위하는 마음으로 살기위해 치열하게 몸부림 칠 때 비로소 우리의 자녀들은 바뀔 것입니다. 교육개혁의 출발은 부모들의 통곡에 달려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통곡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통곡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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