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M 이사회(이사장 김윤하 목사) 불라디보스톡 탐방기-2

불라디보스톡에 머무는 셋째 날이 3. 1 운동이 일어난 9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묶은 숙소에서 기념식이 있었으나 이사회 회의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전날 우리는 발해의 유적지와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몇 군데 둘러보았습니다. 그 동안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벌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과 애국선열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고 그 현장도 여러 번 다녀왔었습니다. 특히 김구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웠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청산리 전투와 같은 독립군들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해에 그 현장을 돌아보면서 민족에 대한 특별한 감동을 담아 왔었습니다.

그런데 연해주에 독립 운동이나 항일 투쟁은 조금은 낯선 부분이 많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외에는 익숙한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만주나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연해주에는 고려인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항일 투쟁은 더 거세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연해주는 오래전에 발해의 본거지였으며 발해는 고구려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물려받은 고려인들, 그리고 수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다져진 저항 정신과 강한 정신력, 그런 가운데 국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더 뼈저리게 알았던 고려인들이었기에 일본에 대한 항거는 더 뜨겁게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들렸던 불라디보스톡에 있는 고려문화센터는 러시아 한인 이주 140년 기념으로 세워진 기념관입니다. 그 안에 있는 고구려 역사관에는 항일 운동의 내용을 사진과 기록으로 전시해 놓았는데, 많은 항일 단체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진들은 김윤하 목사의 작품

독립 운동하면서 이 작은 연해주에 무슨 단체가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 그러나 그 단체들이 모두 항일 운동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성격은 모두 달랐습니다. 권업회, 선명회, 대한 광복군 정부, 대한 국민의회 등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등의 이름을 내 걸었지만 같은 사람이 겹쳐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최재형, 이상설, 안중근, 김경천, 홍범도, 이범윤, 이종호등입니다.

우리가 찾았던 첫 번째 장소가 최재형 선생이 잠시 머물렀던 자택입니다. 지금은 페허처럼 버려진 집으로, 시에서 구입하여 수리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집 정면에는 태극기와 함께 간판이 있었는데 “이 집은 연해주에 대표적 항일 독립 운동가이며 전로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던 최재형 선생이 1919년부터 1920년 4월 일본 헌병대에 의해 학살되기 전까지 거주하였던 곳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최 선생님은 이곳에서 무역업과 군수물자 공급업체로 엄청난 돈을 벌었으며 그 재산을 모두 독립 운동에 쏟아 부으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 고려인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신뢰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일찌기 우리 정부에서 이 집을 구입하여 기념관으로 만들고 정비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들른 곳은 이상설 선생의 유허지 에 있는 기념비입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뼈를 뿌린 장소에 세운 기념비입니다.

​그는 헤이그 밀사로 이준 이휘 등을 대동하고 사행하여 한국 독립을 주장한 분이십니다. 사행했다는 것은 몰래 밀사들을 동행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고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권업회에 초대 회장직을 맡았으며 대한 광복군 정부에 초대회장인 최재형을 도와서 부회장직을 맡아서 투쟁한 자입니다.

​이 기념비 앞에서 선구자 노래를 부르고 애국가를 부를 때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픈지 남몰래 가슴을 쥐어짜면서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얼른 강가로 나와 닦았습니다. 유허지 앞으로 우스리스크 강이 흐르고 그 건너편으로 발해의 흔적이 있는 성곽은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김경천 장군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데, 그는 러시아 빨치산 군대를 이끌면서 백위군에 소속되어 있던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일등 공신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1908년 4월에 최재형, 이범윤, 이위종 등이 연추에서 결성한 “동의회” 맴버로 출발하였습니다. 그 후에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단원 13명과 함께 비밀결사체인 “동역단지회” 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독립의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하여 왼손 무명지를 끊어서 혈서로 “대한독립” 이라는 네 글자를 남겼습니다. 그 후에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또 히로부미” 를 살해하고 사살 당합니다.

연해주에 독립 운동이 거세어지자 일본은 1920년 4월에 대대적으로 일본군을 투입하여 강력한 체포 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대부분의 연해주 독립 운동가들은 이때에 붙들려 총살당하거나 옥사하였습니다. 조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받는 설움도 크고 조국이 자기들을 위해 해 준 것도 없었는데, 자신들의 그 소중한 생명을 아낌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던져 버린 것입니다.

​연해주에 독립 운동가들은 대부분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이었고 생활이 안정된 자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일함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조국을 위해서 전부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한 인물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과연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이 조국을 위해서 생명을 던질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안정된 조국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은 모두가 조국을 위해서 생명을 던진 순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특히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믿음의 영웅들을 보시고 이 민족을 살려 주시고 오늘의 축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너무 폐쇄적이고 교회 중심이라는 구호 아래서 국가를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눈물로 기도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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