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현(Kanghyun Yoon) 교수(University of Central Oklahoma)

미국 센트럴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마케팅 교수인 윤강현 교수가 2015년 8월 16일자의 본사 기사 “왜 크리스천 청년들은 경쟁력이 없는가?”를 읽고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후 연구 보고서를 보내왔다.

윤강현 교수는 미국 오클라호마에 있는 University of Central Oklahoma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마케팅 교수이다.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지역에 있는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공은 마케팅 모델링이다. 그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리서치 프로젝트들은 관계 마케팅, 고객 충성도, 고객 만족 등에 대한 것들이 있고, 최근에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것들은 성경적 마케팅 Bible-Driven Marketing에 대한 연구들이다.

윤 교수는 이 작업을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해오면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관련 신학 서적들을 많이 섭렵하였다. 이러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개인적으로 마케팅 교수로서 그의 분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한 방법을 찾는 시도를 하게 되면서부터 이다. 그래서 기존에 알려진 다양한 마케팅 개념들이나 원리들을 성경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많은 분들이 성경 원리에 따른 바람직한 마케팅 활동을 하도록 돕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Bible-Driven Marketing Institute, LLC.를 세워 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위와 같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하나님 나라의 창조 질서 Creation Order of the Kingdom'라는 주제로 성경 공부 교제를 만들어 일반 성도들과 공부하고 있고, 또한 단행본 책을 집필하고 있다. - 편집장 주

 

삶 속에서 크리스천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1. 논의를 시작하면서

최근 기독교 신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으로 촉발된 성화를 포함한 칭의Justification 와 관련된 논쟁입니다. 다른 하나는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에 한창 논의가 진행중인 일터 사역Faith at Work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소개하는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2015년 8월 16일자 코람데오 기사 <왜 크리스천 청년들은 경쟁력이 없는가?>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최용수 목사에 의하면 각 기업들의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 한 결과 직장내에서 크리스천 청년들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크리스천들은 직장 생활을 잘 감당하지 못하거나, 직장 생활 속에서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 두 가지 문제를 고민하려고 합니다.

첫째, 과연 신구약 성경말씀을 통해 계시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God’s heart toward us’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성경말씀의 해석을 위한 촛점내지 방향이 올바르게 이루어져 왔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동시에 말씀 해석을 위한 올바른 신학적 틀을 찾아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칭의 논쟁과 관련하여 로마서에 의하면 칭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회권 교수에 의하면 한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어 죽어서 천국에 가거나 기복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구원의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 잘못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합니다 (2017년 3월 10일자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참조). 즉, 개인구원 중심적으로 치중되어 온 기존의 신학적 해석을 넘어서 그 상위 개념인 하나님 나라 중심적인 입장에서 신구약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구원을 하위 개념으로 포함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참고로 양용의, 이승구 교수는 2001년 진행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학적 혼동’이라는 주제를 놓고 진행한 대담에서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라는 신학적 개념의 토대 위에서 이 땅의 삶 속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과 삶을 적절하게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론적인 틀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생각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0:31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맺는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적 해결책이 제대로 제시되어 왔는지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일터 사역과 관련된 논의는 이러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성경 말씀과 삶의 일치성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론의 소개에 있어서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의 토대 위에서 달란트와 영적인 은사가 일터 사역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성경적인 소명에 대한 논의가 직장의 선택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교회내에서 비즈니스와 말씀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팀 켈러 목사는 <일과 영성>이라는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말씀과 삶의 일치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마케팅 교수로서 겪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본인의 직업 현장에서 마케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가장 많이 겪는 딜레마는 세속적인 이미지를 가진 마케팅과 거룩한 이미지를 가진 성경말씀을 성경적인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에 대한 논의가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켐벨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등장한 논문 (1957)을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습니다.

비지니스맨들에게 문제는 맘몬과 하나님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섬기기 위한 도전에 있다. (For businessmen, it is not a choice between mammon and God, but a challenge to make the one serve the other.)

경영이론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주장한대로 비즈니스의 유일한 목적이 두 가지 기능—마케팅과 이노베이션—을 통해 한 고객을 창출to create a customer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위의 구절은 세속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마케팅과 거룩한 이미지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 분야가 서로 연결이 된다면, 삶 속에서 마케팅 활동을 통해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가능할 수 있게되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논의들을 종합하면 이 땅에서의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크리스천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신학적 해석과 적절한 방법론들을 찾아내기 위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음은 절대적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 글은 성경적 세계관—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토대 위에서 일터 사역이 추구하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개념적 토대 위에서 창조 기사를 대표하는 창세기 1-2장에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의도가 담겨 있다고 가정합니다. 다만, 창세기 말씀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히브리 사유체계를 사용하여---헬라 사유체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창세기 1-2장 말씀을 해석하여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합니다. 다음으로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의도를 토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과 삶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찾아내기위한 토대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 두 가지 내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 글은 필자가 작년에 연세대에서 개최된 Theory & Practice in Marketing (TPM)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논문과 현재 학술지에 제출하려고 준비중인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그 안에 있는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또한 지면상 이 글은 되도록 참고 문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소개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창세기 1-2장을 구속사 중심 또는 구원 중심적으로 해석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이 많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본 글의 내용이 신학자들, 목회자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말씀에 따라 살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도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신학자와 목회자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평신도로서 마케팅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려고 고민하는 필자에게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2. 말씀 해석을 위한 세 가지 관점

신구약 성경말씀을 통하여 계시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찾아내기 위하여 필자는 세 가지 관점을 가지고 말씀을 해석할 것을 추천합니다. 세 가지 관점이란 하나님 나라의 관점, 히브리 관점, 그리고 주기도문 관점입니다. 특히, 창세기 1-2장에 담긴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통치 계획의 핵심이 무엇인지 찾기 위하여 각각의 관점이 왜 필요한지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1)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바라보기

지금까지 신구약 성경말씀을 구속 또는 구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주된 해석적인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말씀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입니다. 왜 하나님 나라가 핵심적인 주제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선포한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나라—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것—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5, 4:11, 14:25; 누가복음 8:10, 9:11, 13:28, 16:16, 요한복음 3:3, 3:5).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신 주기도문 말씀의 핵심도 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신구약 성경말씀을 해석할 때 상위 개념은 하나님 나라이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세 가지 신앙의 축인 창조 신학, 구원 신학, 그리고 종말 신학을 하나님 나라의 하위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예로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이유를 하나님 나라라는 상위의 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이 땅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는 히브리어로 ‘말쿠스malkuth’로, 헬라어로 ‘바실레이아basileia’라고 불리웁니다. 구약 성경에서 ‘말쿠스’는 어떤 실제적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왕의 다스림 또는 통치권 그리고 왕의 권위가 펼쳐지는 공간 또는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바실레이아’가 왕의 다스림 또는 통치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권이 펼쳐지는 모든 영역’으로 정의합니다. 그레엄 골즈워디 (2011)는 그의 책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 하에 하나님의 임재장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God’s people in God’s place under God’s rule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already’와 ‘아직yet’의 구도 속에서 현재성과 미래성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신구약 성경말씀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에 접할 때 늘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아래의 마태복음 6:33 말씀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개역개정)

 

2) 히브리 관점에서 바라보기

잘 아시는대로 창세기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책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에 담긴 하나님의 통치 계획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기록된 당시의 언어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이 밑바탕에 깔린 히브리 관점을 가지고 창세기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헬라 사유체계가 아닌 근동 시대의 배경이 되는 히브리 사유체계를 가지고 창세기 1-2장 말씀을 해석하는 노력을 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 사유체계를 가지고 말씀을 해석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히브리 관점과 헬라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성경 번역의 과정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헬라적 관점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해석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사유체계를 가지고 창세기 1-2장에 담긴 하나님의 통치 의도를 찾아내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히브리 관점과 헬라 관점의 가장 큰 차이점을 지적하라면 전자는 관계의 틀 속에서 실천을 강조하는 ‘행위doing’에 촛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정적인 틀 속에서 지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앎knowing’에 주목하는데 있습니다. 관계의 틀 속에서 행위에 촛점을 둔다는 것은 대상이 가진 기능성과 실용성에 주목한다는 말과 관련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토대로 히브리 사유체계는 관계의 토대 위에서 기능성, 실용성, 행위성으로 특징지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헬라 사유체계는 지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눈으로 관찰되는 사물의 외향성, 정신 활동을 통한 지식의 향상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보만이 쓴 책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와 브라이언 놀스가 인터넷에 쓴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위하여 한 가지 쉬운 예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손 안에 있는 연필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향한 세계관 또는 관점의 입장에서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여 연필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첫 번째은 연필이 외양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취하게 되면 손 안에 있는 것은 길고 노란색을 띤 나무라는 재질로 되어있고, 위에는 지우개가 달려있고, 가운데에는 검은 색의 흑심이 있다고 설명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능적인 차원에서 연필의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연필은 공책이나 종이 위에 글을 쓰기위한 도구라고 설명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합니까? 물론 삶 속에서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지만 고대 근동지방에 살았던 히브리 사람들은 주로 기능적이자 행위적인 면에 초점을 둔 반면, 헬라 또는 그리스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은 지식의 향상에 촛점을 두고 주로 정신 활동을 통해 외양적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에 숨겨진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의도를 찾아내려면 히브리 단어가 지닌 의미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존 왈튼John Walton 구약학 교수는 그의 책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of Genesis One>에서 기능적인 입장에서 창세기 1장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여 창세기 1-2장에 담긴 하나님의 통치 계획을 찾아내기 위하여 기능성으로 대표되는 히브리 사유체계를 사용한 해석을 시도할 것입니다.

 

3) 주기도문 관점에서 바라보기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교회에서 특정 모임을 마칠 때 마태복음 6장에 등장하는 주기도문 말씀을 암송합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 말씀을 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바로 이 땅에서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10절인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 있습니다. 이 구절에 등장하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임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 주기도문의 핵심입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9-13, 개역개정)

 

주기도문 말씀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 땅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뜻이 무엇인지 알도록 도와줍니다. 둘째,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누구를 통해 또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앞으로 계속 논의가 되겠지만 창세기 1-2장 말씀을 통해 계시된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통치 계획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성경말씀 해석하기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신구약 성경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통적으로 신학적인 차원에서 신구약 말씀을 해석할 때 많이 사용되는 도구가 구속사Redemptive History 접근법입니다. 구속사 접근법이란 신구약 성경말씀의 스토리라인을 크게 네 부분—즉, 창세기 1-2장에 근거한 창조, 창세기 3장에 근거한 타락, 구속 또는 구원,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완성—으로 구분한 뒤, 예수 그리스도로 대표되는 구속 또는 구원을 중심에 놓고 다른 부분을 구원에 맞추어 해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사적 성경 해석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반면에 동일한 구속사적 접근법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신구약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창세기 1-2장을 대표되는 창조 부분에 태초에 계획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계획—필자는 이를 하나님 나라의 창조 질서Creation Order of the Kingdom라고 명명함—이 담겨있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 기록된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원래 계획한 통치 계획이 무너지게 됩니다. 무너진 통치 계획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을 시작으로 구원 계획을 시작하셨고, 이 구원 계획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는 사건을 통해 정점에 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원래 태초에 계획된 통치 계획의 완전한 회복을 위하여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한 마지막 심판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창조Creation는 이 땅의 통치를 위한 하나님의 통치 계획의 시작을 알려주고, 타락Fall은 통치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고, 구속Redemption (또는 구원Salvation)은 통치 계획의 회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고, 마지막으로 완성Consummation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토대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한 통치 계획의 완전한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려주게 됩니다.

이 내용은 개혁주의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알버트 월터스와 마이클 고힌이 소개한 새로운 구도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쓴 베스트 셀러인 <창조, 타락, 구속Creation Regained>에서 기존의 구속사 흐름을 재해석하여 창조는 Form, 타락은 Deform, 그리고 구속은 Reform로 설명하고 있고, 여기에 최용준 교수는 완성은 Transform을 더하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필자는 기능성과 행위성으로 대표되는 히브리 관점의 토대 위에서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의 구속사 흐름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결과를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3. 창조 기사에 숨겨진 하나님의 통치 계획

이 글이 성경말씀의 해석을 위하여 추천하는 세 가지 관점을 토대로 창세기 1-2장으로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통치 계획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럼 이하에서 필자가 발견한 내용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만, 히브리 관점을 토대로 창조 관련내용을 해석할 때 기존의 내용과 다른 해석이 등장함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 태초에 일어난 창조 사역의 핵심

전통적으로 창조와 관련된 해석은 Creatio ex nihilo라는 신학적 독트린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코프 1959; 그루뎀 1994). ‘무에서의 창조’라는 의미를 가진 이 라틴어 신학 용어는 왈튼 교수가 언급한 물질적 존재론material ontology에 촛점을 둔 시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루뎀이 조직신학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을 사용하여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에서의 창조’라는 토대 위에서 창조와 관련하여 창세기에 등장하는 두 가지 히브리 단어—즉, 바라bara와 아사asa—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바라bara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면에 아사asa는 유에서 유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을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다분히 외양성을 강조하는 헬라적 관점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기능성으로 대표되는 히브리 사유체계를 사용하였을 때 하나님이 태초에 이루신 창조creation의 핵심은 왈튼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특정 대상에 역할과 기능을 부여하는 데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의 핵심은 이 땅에 하나님의 공급God’s supply을 통한 채움fulfillment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토대의 구축에 있습니다. 이 주장을 위한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해 봅니다.

첫째, 창세기 1:2 말씀에 등장하는 두 단어 “혼돈하고 공허하며formless and empty”의 히브리 단어는 토후 보후tohu bohu입니다. 이 두 단어가 가진 의미를 히브리 관점에서 살펴보면 비어있고 혼돈스러운 외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질서가 세워지지 않았고, 특정한 역할이나 기능이 부여되지 않은 모습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둘째, 창세기 1:3-31 말씀에 등장하는 6일 동안의 창조 과정에 숨겨져 있는 두 가지 창조 원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벌코프와 웨인 그루뎀이 쓴 조직신학 책을 보면 문자적 틀literary framework의 시각에서6일 동안의 창조 순서를 첫째 날에서 셋째 날의 부분과 넷째 날에서 여섯째 날의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부분은 비움의 영성으로 연결되는 비움의 창조 원리가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고, 반면에 두 번째 부분은 채움의 영성으로 연결되는 채움의 창조 원리가 드러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스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 사유체계를 사용하여 창조의 히브리 단어 바라bara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봅니다. Strong’s OT Hebrew Concordance를 보면 바라bara의 어미 bar는 곡식 또는 빵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곡식을 먹은 동물은 성장하게 된다는 관점에서 바라bara의 진정한 의미는 채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상의 세 가지 증거가 보여주는 의미를 종합할 때 태초에 일어난 하나님의 창조의 핵심은 이 땅에 하나님의 공급God’s supply을 통한 채움fulfillment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토대의 구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문화 또는 창조 명령의 핵심

창세기 1:26-28 말씀은 전통적으로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 또는 창조 명령creation mandate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땅을 다스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함축적 의미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다고 할 때 이 말씀은 사실 통치 Dominion명령 또는 다스림Ruling 명령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다 봅니다.

그러면 이 문화 명령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첫째, 창세기 1:26절에 등장하는 단어 사람의 히브리 단어는 아담adam입니다. 이 히브리 단어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 땅에 사는 우리 개개인은 모두 아담과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God’s image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웨인 그루뎀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대표자 또는 대리자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톰 라이트는 이를 에이전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디모데전서 2:5이 지적하는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mediator로 오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답습하거나 또는 카피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9 말씀이 언급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라는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첫 사람 아담뿐만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도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자인 점과,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이 땅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소명이 주어진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예수님이 이 땅을 통치하기 위하여 공생애동안 행하셨던 사역들을 답습하는 사람 편에서의 노력—성경이 언급하는대로 열매맺는 차원에서—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3) 에덴 동산이 지닌 의미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생령으로 만드신 후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한 장면에 창세기 2:8말씀에 등장합니다. 왜 하나님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을 창설하고 사람을 그 곳에 두셨을까? 또한 뜬금없이 이 구절 이후에 동산에서 강이 흘러 나와 갈라져 네 근원이 된다는 설명이 등장할까요? 이 땅을 향한 하나님 통치의 입장에서 그 이유가 상당히 궁금해 집니다.

그레고리 비일과 데스몬드 알렉산더에 의하면 에덴 동산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장소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한 아담의 불순종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나가게 되고, 동시에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로 부터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말씀이 지적하는대로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공급이 일어나는 원천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강이 흘러 나와 갈라져 네 근원이 된다는 설명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땅을 향한 공급이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에덴 동산이 이 땅을 향한 모든 공급의 원천이 되는 것입닏. 이를 입증하는 내용이 에스겔 47장에 등장합니다. 즉, 이 구절이 설명하는대로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사해로 향한다는 묘사는 바로 에덴 동산을 대체한 성전이 모든 축복 또는 공급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셋째,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준비한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장소입니다 (비일 2014).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 신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지칭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자 복이 지닌 의미를 유추해보면—전문용어로 파자한다고 말합니다—성경이 말하는 복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자에 담긴 창세기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자 복을 파자하면 하나님과 에덴 동산에서 함께 할 때 사람은 최고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성경말씀이 지적하는대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서만 사람은 최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4)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지닌 의미

창세기 2:17 말씀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도록 명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에덴 동산의 중앙에 두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였을까요? 이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 중의 하나입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입장에서 볼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라는 표현 속에 아주 중요한 의미—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 또는 마음—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알려면 외양성을 강조하는 헬라 관점이 아닌 기능성을 강조하는 히브리 관점에서 이 표현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위의 표현 속에 담긴 두 단어 ‘선good’과 ‘알게하는knowledge’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첫째, 히브리 관점에서 단어 선good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봅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에게 한 가지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한 시점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한 시점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선택된 사람은 이 땅이 어떻게 창조된 것인지 모르고, 구체적으로 기능적으로 어떻게 이 땅이 운영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38:4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할 당시에 욥은 어디에 있어는지 묻는 것입니다. 히브리 관점에서 선good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기능적으로 잘 작동이 된다working in a proper manner는 것입니다. 그저 눈으로 볼 때 아름답고 멋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헬라적 관점을 따르기 때문에 생겨난 해석입니다. 따라서 이 땅이 기능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려면 하나님의 도움인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히브리 관점에서 단어 알게하는knowledge이 지닌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성경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잘 알도록 여러 곳에서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1:7 말씀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이 알고 있는 이 땅을 최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지혜가 피조물인 사람에게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냥 지식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에 촛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히브리 관점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매 순간마다 동행하며 교제의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아는 것 또는 지식과 관련된 히브리 단어 야다yada가 가진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멍에의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표현 속에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이 땅을 다스리기를 바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매순간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우리가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네 가지 증거를 모두 종합할 때 창세기 1-2장에 다음과 같은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통치 계획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6일 동안의 창조 과정을 통해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이 일어나기 위한 틀이 세워졌으니, 하나님의 대리자로 예정된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 땅에 공급을 위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다만, 이 땅에 최적의 공급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4. 마케팅 활동을 통한 말씀과 삶의 일치 추구

이 땅에서 말씀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글에서 필자는 마케팅 교수로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 는 앞서 논의한대로 창세기 1-2장 속에 마케팅의 숨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창세기 1-2장에 숨겨진 하나님의 통치 계획이 어떻게 마케팅과 연결이 되고, 그리고 나서 말씀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고 한다.

따라서 말씀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2장 말씀과 마케팅 개념이 서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앞으로 마케팅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 창조사역의 핵심과 마케팅사이의 관계

앞서 창세기 1장의 해석을 통해 태초에 일어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핵심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포함한 이 땅을 창조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필요를 부수적으로 창출하였다는 말로 다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 1:29 “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말씀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여러 곳에서 인간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 편에서의 공급을 제시하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주장은 무슨 말일까요? 구조적으로 이 세상은 공급 지향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이 주장에 대한 증거를 살펴볼까요?

하나님이 태초에 이루신 6일 간의 창조 과정을 주기도문 관점에서 바라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공급지향적인 창조 질서가 이미 세워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연 환경과 사회 환경을 포함한 이 세상은 주는 것이 기본이 되도록 하는 구조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접근법의 입장에서 이러한 패턴을 자연 환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사례가 물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4대 강의 후유증으로 녹조가 생기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땅은 인간의 먹거리인 채소를 산출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농약을 과잉 사용하게 되면 땅에 숨겨져 있는 고유 산출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햇빛은 스스로 열과 빛을 만들어 지구에게 전달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햇빛을 쬐어야 비타민 D가 생성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인간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뒤 산소를 만들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심장은 인체 내에서 피를 생성하여 인체의 각 부분으로 보내는 공급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연 환경 속에 숨겨진 공급 위주의 시스템이 붕괴되면 우리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패턴이 사회 환경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우리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주위를 보면 다양한 산업, 기업, 상점, 제품, 서비스, 브랜드등이 존재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러한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을까요? 이들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사람이 가진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인간은 네 가지 유형의 필요, 즉 생리적인 필요, 심리적인 필요, 사회적인 필요, 그리고 영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필요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생기는 필요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급자로서 다양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동시에 소비자로서 이 제품들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 입니다. 한 나라의 입장에서 나라 경제가 위태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돈의 공급을 위한 흐름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공급의 가장 단적인 예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엄마가 자녀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전공 영역은 모델링modeling입니다. 모델링의 핵심은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특정 패턴이 존재하는지 수식으로 표현하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수식은 선형 방정식인 Y = a + bX입니다. 이 방정식이 의미하는 바는 X라는 Input—예를 들어, 광고비 또는 판매 촉진비—이 공급될 때 어떠한 output—즉, 매출—이 생성되는지, 그리고 b로 측정되는 어떠한 영향력의 정도가 생성되는지 설명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각 기업이 보여주는 광고비, 판매 촉진비, 매출액을 관찰하고 수집하여 데이터로 만들고, 이 수식에 데이타를 대입하여 광고내지 판매 촉진비의 매출대비 영향력을 측정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빅 데이터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필자의 이러한 모델링 노력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을 포함한 이 세상이 구조적으로 인과 관계 하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인과 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필자는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고, 동시에 존재의 의미가 없게 됩니다.

필자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마케팅 학문도 바로 이 공급 중심적인 사회의 모습을 관찰한 결과 나타난 학문입니다. 과거 사회학에서 제시한 사회적 교환 이론에 영향을 받은 Bagozzi 교수는 1975년 마케팅 저널에 출간한 논문을 통해서 공급을 위한 교환 과정exchange process이 마케팅의 핵심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케팅의 핵심이 인간이 가진 필요를 채우기 위한 공급에 있다는 주장은 마케팅marketing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분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은 두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마케팅marketing = 마켓market + 행위-ing. 단어 ‘마켓market’은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시장marketplace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필요need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동명사 행위-ing는 사람이 가진 필요를 채우기 위한 공급 활동으로 정의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의미를 더하면 마케팅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가진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공급자가 준비한 해결책을 서로 주고받는 교환 활동을 통해 공급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 활동이란 하나님 편에서의 이 땅을 향한 공급을 대리하는 활동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역에서 공급을 위한 교환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세상은 공급 활동을 통해 주는 것이 기초가 되는 구조적인 환경 속에 세워져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교환 활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주기 위한 공급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케팅 활동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예정된 사람의 편에서 공급을 끌어내고 실행하는데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신약 성경이 언급하는 공급을 통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공급을 위해 창출된 다양한 교환 활동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싫어하기는 것이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공급을 위한 교환 활동을 창출하도록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고유의 달란트와 영적인 은사를 주셨음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앞으로 성경적 마케팅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환 활동을 창출하기 위한 성경적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2) 마케터로서의 한 사람

이 세상이 공급지향적인 구조적 틀에 의존하는 자연 환경과 사회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때 성경에 의하면 누군가가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 땅에 공급을 담당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연 현상을 보더라도 해는 지구에 열과 빛을 전달하는 공급 지향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달은 지구에 중력의 법칙이 일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생존을 위하여 산소를 제공할 책무가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정에 재정적인 공급을 제공하는 임무를 포함하여 가정을 지킬 역할을 담당하는 반면에, 어머지는 자녀에게 음식과 교육을 제공할 공급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기업에서 소속된 사원들은 기업에 자신이 가진 노동력과 개인적인 능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고용되었고, 반면에 고용주는 그 댓가로 급료를 제공하도록 법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서로 주고받는 교환 활동을 통해 공급의 책임을 다하도록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에 혼술 또는 혼밥을 하는 추세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제일 많은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필요를 가진 상대방에게 적절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노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필자는 대학교에서 마케팅 원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첫 수업시간에 모두가 마케터marketer라는 점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각 개인이 마케터로서 공급을 위한 교환 행위를 창출한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먼저, 슬라이드를 통해 사람이 각 영역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활동을 학생들에게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행위, 정치가가 법안을 만들어 실행하는 행위,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 교회에서 목사가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는 행위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활동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위의 여섯가지 활동이 지닌 공통점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주지하시는대로 공통점은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교환 활동을 통해 타인을 향한 공급의 과정에 참여하는데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활동은 교환 활동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마케터marketer가 됩니다. 물론 성경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청지기적 소명을 강조하고 있지만, 청지기 소명 속에 마케터로서의 역할이 숨겨져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려 합니다.

어찌보면 이상의 내용은 성경이 말하는 소명calling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가정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남에게 주는 훈련을 하기 위하여 적절한 교육을 받고, 달란트를 개발하고, 실제로 주는 훈련을 받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정치가는 한 사회내에 공급의 과정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바람직한 입법안을 제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은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기능적으로 적합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을 제대로 해석한 설교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공급 중심적인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여야 합니다. 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마케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이 언급하는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처럼 행하라는 말입니다. 즉, 땀을 흘려 먹거리를 생산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라는 말입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우리도 자신의 의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살라는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동시에 병자를 치료하고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잔치집에서 포도주를 제공한 이유는 예수님처럼 필요를 가진 자들에게 해결책을 제공하도록 몸소 보여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마케팅의 핵심이 교환 활동을 통해 이 땅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마케터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에덴 동산과 가치의 전달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에덴 동산의 모습 또는 역할은 창조주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이 땅과의 관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먼저 하나님이 동방에 창설한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자,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계획된 장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 밖으로 나가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원래 있었던 장소인 천국을 상징하는 에덴 동산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에덴 동산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임재 장소가 계속 변경—예를 들어, 성막, 성전, 사람의 몸 등이 그 예입니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이 변경되는 임재의 장소에서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겠다는 약속이 성경 곳곳에 등장합니다 (레위기 26:12, 신명기 23:14, 사무엘하 7:6, 에스겔 28:13-14). 이러한 설명이 지적하는 바는 원래 사람이 속해 있었던 장소인 천국을 대표하는 에덴 동산의 모습이 마케터가 속한 영역 또는 공동체에서 경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안에서 에덴 동산의 본래의 모습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