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천헌옥
긴긴 겨울 지나 봄이 돌아왔다.
목련이 핀다.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가 생각난다.
"사월의 노래"(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교회에 나간지 얼마 안되던 어느해 겨울 성탄절 이브의 밤에
난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기는 아이였다.
교회행사를 마치고 학생회가 함께 모여 밤샘을 했다.
그러다가 한 두 시간을 자고 새벽송을 나가기 위해였다.
선물교환 순서에는 선물을 뽑은 학생이 노래를 하나 부르기로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찬송가는 한 소절도 외우지 못했던 나는
학교에서 배운 사월의 노래를 불렀다. 반응은 너무나 싸늘했다.
교회, 성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노래였기 때문이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조용해 지는 것을 보며 내 노래에 취한줄 알았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는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열심을 냈다.
교회까지 3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새벽기도회까지 출석했다.
1년 후 학습을 받고 그 1년 후에 세례를 받았다.
그 누구도 한번에 합격을 시키지 않았던 담임목사(고 정재영 목사)께서는
나에게는 80점의 후한 점수를 주면서 합격 시켜 주었던 것이다.
새벽기도회 하는 학생에다 십계명을 달달 외웠으니까....
그리고 고3학년 때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하지만 신학교로는 막바로 달려가지 않았다.
창피를 열성스런 신앙생활로 극복한 나를 어엿삐 보신 하나님은
군대생활 중에 불러 주셨다. 그리고 평생 도전적인 길을 달렸다.
그리고 이제 태어난지 어언 70년이 되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에 서니 그때가 다시 생각난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웠던 그 옛날 일을 목련꽃이 새삼 일깨운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날들이 많았지만 그때는 정말 빛나는 꿈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영원한 나라를 꿈꾸는 빛나는 꿈의 계절을 맞고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