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M 이사회(이사장 김윤하 목사) 블라디보스톡 탐방기-3

“딕 힐리스” 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영혼은 선교지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모든 영혼은 선교사이다.”

​이번 달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새 생명 전도축제가 시작되는데 올해 제가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먼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 는 메시지입니다. 자신이 분명한 복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복음은 복음 될 수가 없습니다.

​내 속에 복음인 그리스도가 없다면 내가 먼저 선교지라는 것과 만약에 그리스도를 받아 들였다면 당연히 선교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나는 선교지를 방문 할 때마다 내 영혼을 먼저 선교지로 낮추어 성찰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면 선교사나 선교지를 만나도 낯설지 않고 겸손하게 그들에게서 귀중한 교훈과 복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행여 이사회가 떴다는 소식이 부담으로 선교사들에게 전해질까 봐서 가기 전에 기도로 무장하고 어쨌든 겸손하게 말하고 그들을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갑니다. 선교지에서는 목사, 혹은 이사장이라는 직분보다 더 귀중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선교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아보기도 하고 현장에서 살피고 마음에 담아오기도 합니다.

​이번 방문이 이사회와 함께 병행하므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틈틈이 선교 현장을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여러 가지 선교 스토리도 들으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비전도 들으면서 불라디보스톡을 향한 기도의 숙제를 가슴에 가지고 왔습니다.

블라디보스톡 항구 모습/ 사진 김윤하 목사

불라디보스톡을 “동양의 나폴리” 라고도 말하고 동양에서 서양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유럽에 익숙한 나로서는 동양도 없고 서양도 없는 무미건조한 문화와 건축물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전혀 구경거리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냥 동양의 문화와 러시아의 바닥 문화가 섞여서 낙후된 도시의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물론 간간이 크고 웅장한 서양 건축물들이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공산주의 잔재로 밖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감각으로 알았던 그 나라의 문화와 건축을 통한 제 느낌은 어느 정도 맞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곳에는 우리 KPM 선교사님 3분이 선교사로 파송 받아 사역하고 계시는데, 한분은 우리 교회의 협력선교사이고 또 우리 교회가 파송한 북한 선교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물론 다른 교단에서는 일찍이 선교사들을 파송하여서 정착된 교회도 많고 큰 교회도 여럿 있었습니다.

​이곳의 선교 대상자는 먼저는 러시아인들이고 두 번째는 연해주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약 3만 명의 고려인들입니다. 이곳에 있는 고려인들 중에는 오래전에 정착하여 오늘까지 살아온 자들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자들과 사할린에서 온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러시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중국 연길 쪽에서 올라온 조선족들과 북한에서 나온 노동자들입니다.

고려인 문화센터에 작은 공간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한우 선교사가 섬기는 교회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고려 문화센터에 작은 공간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한우 선교사님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이선교사님은 본래 부산에서 장로님으로 섬기셨으며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국내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셨던 분이셨습니다. 1907년에 우즈베키스탄에 KPM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되어 니자미 사범대학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6 년간 섬기다가 그곳에서 추방되어 이곳으로 사역지를 옮기신 분이십니다. ​지금 사역하시는 교회는 교인들이 40여명 정도 모인다고 하는데 주일이면 교인들이 멀리 흩어져 있어서 선교사님 차로 그들을 모시러 다니신다고 합니다. 워낙 인간관계가 폭이 넓어서 국내에서나 선교지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계신 은퇴목사님과 장로님이 오셔서 함께 동역해 주시고 계셨습니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우리 KPM 선교사의 대부와 같으신 분으로 선교의 터를 잘 닫아 놓으신 분이십니다. 젊은 두 분의 선교사님을 초청하여서 기반을 만들어 주시고 이곳 선교의 틀을 닦아 주신 분이십니다. 목사의 신분은 아니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분명하였습니다. 나아가서 비전과 목표가 분명하였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기도한 것은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셨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새로운 교회 처소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찾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 파송되어 있는 전문인 선교사님들 중에는 장로님들이 많은데, 내가 판단하기로는 경영 마인드나 그 선교 현장을 읽는 관점이나 선교보조적인 사업 구상이나 현지인들의 필요에 대응하는 것은 목사 선교사들 보다 월등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목사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바탕이나 설교에 대한 준비가 결여되어서 갈등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인 선교사는 교단 신학을 마친 목사 선교사와 함께 동역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교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님의 경우 아직 우리 선교부에서 전략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지역에 스스로 자원하여 선교의 길을 닦아 놓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을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그 분이 가진 세상적인 학력이나 위치를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선교지를 선택하신 헌신적인 결단이 너무나 귀중해 보였습니다.

KPM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된 이한우 선교사(좌)

​소탈한 성격과 진실함이 몸에 베여 있는 태도와 자신의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았을 때 부럽기도 하고 존경심이 절로 나왔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전문적인 기술이나 실력을 가지고 계신 은퇴하신 장로님이나 성도님들이 선교지에 가셔서 마지막 인생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교사님의 10년의 선교사로서의 발자취는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노인의 모습이 서서히 흰 머리에서부터 주름진 얼굴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강건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서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 달리는 그의 달음질의 소리가 더 큰 소리로 내 심장에 들릴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내 마음이 또 다른 선교지가 되어 담대한 복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영혼을 감동시키는 선교사를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다음 선교 트립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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