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M 이사회(이사장 김윤하 목사) 불라디보스톡 탐방기-4

나는 선교사님들에게 항상 3중적 복음 사역을 강조합니다.

선교사로 파송 받아 선교지에 가면 먼저 복음을 들고 현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첫 번째 사역입니다.

둘째는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목회자들의 문제는 자신들 속에 복음이 사라졌거나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나 목회자는 끊임없이 자신과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매일 갈보리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복음을 만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내 교회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오래된 교회들마다 복음의 역동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생생한 스토리를 교회에 전하므로 침체된 한국교회를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성도들이 역동적인 복음을 듣고 감동을 받아야만 합니다.

릿바째 교회(언약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는 건물

내가 선교 트립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생생한 복음을 가슴에 담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내 모습은 아닐까?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선교 현장을 돌아보고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체크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성지순례도 일종의 선교 트립으로 이해하여서 성도님들과 함께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 성지에 현장에서 만난 주님은 나에게는 큰 감동과 감격을 안겼습니다. 여러 번 주님을 경험하면서 침체된 내 신앙을 약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지나 선교의 현장에서 내가 받은 큰 선물 중에 하나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 감동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서 기쁨을 잃지 않게 만듭니다.

이번에 불라디보스톡에는 우리 교단 KPM 선교사 3명이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한우 선교사 교회를 방문한 후에 두 번째로 우스리스크에 있는 김현철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릿바째 교회(언약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인구 6천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한 마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꽤 큰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본래 경향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이 사역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릿바째 교회(언약교회)당 내부

​그런데 본래 이 교회가 서게 된 것은 고려인인 테 루드밀라 여 전도사의 헌신과 희생이 이룬 열매라고 합니다. 이 분은 한국에 와서도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데 복음의 불모지인 이곳, 러시아 인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 와서 가가호호 전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가정이 등록하여서 제법 탄탄한 교회를 이루게 되고 평일에도 성경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돌아오기 전에 아내가 작은 위로금을 손에 쥐어 주었을 때 흘리는 그 눈물과 놓지 손길을 보는 순간 갑자기 예수님 얼굴이 그 위로 클로즈업되었습니다. 또 한분의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내 영혼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 넘쳤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 그 교회 성도님들이 성경 공부하러 모이셨는데 하나같이 시골 인심 좋은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매우 가까운 이웃들로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는 성도의 친교가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 파송 받은 김현철 선교사는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인 나타샤가 키르키즈스탄 사람으로 그곳에서 6년간 생활했다고 합니다. 슬하에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가 밝고 건강한 얼굴이었고 가정이 매우 사랑스러웠습니다.

김현철 선교사와 그의 부인 나타샤

키르키스탄에서 돌아 온 김 선교사님은 그 후에 KPM 선교사 훈련을 받고 이곳으로 파송 받은 것입니다. 김 선교사님은 특별히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서 앞으로 대학생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건물의 소유가 다른 분으로 되어 있어서 앞으로 언제까지 이곳 사역을 계속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이 장소를 카페로 꾸며서 젊은이들을 불러 모우고 주민들의 쉼터를 만들어 복음의 접촉점으로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내가 머무는 동안 김 선교사과 오랜 시간 이야기하지를 못했고, 그의 인생 경력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못해서 많은 스토리를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캄차카 이야기를 했더니, 다음에 오실 때는 미리 캄차카를 답사해서 가이드를 하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돌아올 때도 다시 한 번 그 약속을 되새기면서 저에게 기쁨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한참 선배이고 이사장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부담감을 가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친근해지고 마음도 열었습니다. 언제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제 인생철학입니다. 제가 더 중요한 자리에 있을 때 억지로 내가 마음을 열려고 해도 상대방이 열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냥 함께 있으면서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면 가까워진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김 선교사님의 인품은 매우 듬직하면서 말 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신실함이 몸에 베여 있는 믿음직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이들을 보는 동안 부모 같은 마음이 동하면서 정말 귀중한 우리 교단의 아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릿바째 교회(언약교회) 집회 모습

선교사로 부름 받고 선교지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소명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목사로 선교사로 부르셨는지? 나는 평생을 사역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어쩌면 선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져도, 세상에서 이만한 실력과 경력이면 무엇을 해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면 그 영광과 은총이 너무 커서 웬 은혜인지?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의 열악한 환경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영광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김현철 선교사나 이철신 선교사를 보면서 이 시대에 진정한 선교사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더 풍족한 삶을 추구하지 말고 끝까지 초심을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 뜨겁게 격려할 뿐입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