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M 이사회(이사장 김윤하 목사) 불라디보스톡 탐방기-5

제가 꿈꾸던 목회자로서의 비전은 남북이 통일되면 언제든지 북한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것입니다. 제 사역기간 중이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교인들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오래전에 제게도 선교사의 부름이 온 적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 선교사님이 저를 선교지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언어의 문제가 나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북한 선교는 언제든지 결단하고 가야지 하는 마음을 재차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두고 보니 제 사역 중에 통일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제 가슴에 다가온 선교에 대한 비전들을 어떻게 실현해 가야 할 것인지가 나에게는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항상 오늘의 교회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초대교회의 목회자들의 모습인데, 사도들로부터 그 당시 사역자들은 선교사 패러다임이 하나의 유형이었습니다. 목회하다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된 이후에는 목회자의 유형이 성직자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적인 교회가 관리적인 교회가 되면서 교회는 “크리스덤(Christendom)” 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초대교회의 형태인 선교사 패러다임을 꿈꾸던 자입니다. 그래서 나를 부르는 선교지가 있으면 나가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어디 가서 일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습니다.

우스리스크에 위치한 구원의 반석교회당 모습

내가 선교지를 돌아보면서 남보다 더 특별하게 감동을 받는 것은 선교사들이 바로 나를 대신해서 이 열악한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입니다. KPM 이사장이 되기 전에도 여러 선교지를 다녀왔지만, 이사장이 된 후에는 미얀마와 우크라이나와 불라디보스톡을 공식으로 방문했었습니다. 모두 열악한 곳이었지만 선교사님들은 순수함을 가지고 초심을 잃지 않고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만난 이철신 선교사님은 저에게 더 깊은 감사와 고마움을 던져 주신 분입니다. 이 선교사님 가족은 김지연 사모님과 2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우스리스크에 구원의 반석교회를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2년 전에 이곳으로 파송 받았는데, 이한우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우수리스크에 선교의 기반을 두었는데, 지금은 50-60명의 성도들이 주일 날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이 교회를 방문했는데, 봄기운에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검은 흙과 함께 녹아내리면서 교회 앞이 질퍽거렸습니다. 겉모습도 초라한 장소였지만 내부를 들어가 보아도 좁고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영적인 온기가 밀려오면서 따뜻한 예수님의 냄새가 새록새록 내 후각에 다가오면서 기쁨이 춤을 추었습니다.

구원의반석교회 성도들

​이 교회에는 최따냐 성도님이 잠시 인사를 했는데, 이 분은 중국에 살던 조선족 교포로서 13년 전에 교회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할린에서 오신 김따냐 성도님도 잠시 인사를 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특별히 요한복음을 필사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기도 하고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필사한 노트를 여러 권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러시아어라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글씨를 보는 순간 살아있는 말씀으로 꿈틀거리면서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분도 이 성경을 쓰면서 서서히 변화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철신 선교사님의 간증 하나가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교회에 어느 날부터 노숙자 두 사람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러시아인 교인들이 “이 사람들이 예배에 계속 참석하면 우리는 참석할 수 없다.” 라고 노골적으로 냄새의 고약함을 말하면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고민하던 선교사님 내외분은 그 다음 주부터 두 노숙인을 토요일에 불러서 집에서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목욕을 하고 나오면 목욕탕에 냄새가 베여서 들어가기가 힘들 정도였고 그들에게 맞는 옷이 없어서 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을 러시아어로 필사한 노트

그러나 그 다음 주부터는 문제가 해결되고 지금까지 예배는 순조롭게 드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도착하던 날 이철신 선교사님은 그들이 돌보던 분들이 다녀간 후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내가 사 주고 왔어야 하는데, 그냥 온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어떻게 지금 구입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이 선교사는 특별히 북한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교회가 파송한 정동명 선교사와 합력해서 북한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선교 프로젝트를 잘 준비해서 보내라고 부탁을 했는데,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남북이 막혀있는 지금 불라디보스톡을 통해서 선교의 문이 열릴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이철신 선교사님의 사람 사랑은 남다르고 선교사로서의 열정이 뜨거워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의 모습에서 서서히 예수님의 냄새가 익어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를 꼭 안고 격려해 주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도 변함없는 저 모습이라면 아마도 그의 사역에는 더 큰 열매들이 가득 열리는 풍성한 가을이 다가 오리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것을 다른 사람이 성취하는 것을 보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나는 이 선교사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서 선교사님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글로서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선교사님들이 계속해서 KPM을 통해서 훈련 받고 파송된다면 우리 교단의 선교의 미래는 밝게 열릴 것입니다.

간증하는 이철신 선교사

북한 선교를 하시는 정동명 선교사님을 저녁 식사 때에 잠시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직은 그분의 신분이나 가족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에 대한 글은 잠시 숨겨 두려고 합니다. 머무르는 동안 합동측 선교사님이신 송상천 선교사님의 섬김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수요예배는 그분의 교회에서 드렸는데 한진환 목사님의 설교가 생수처럼 영혼에 다가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 동참한 모든 이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많은 부분이 빠지거나 생략되었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를 통해서 선교사님들을 더 깊이 많이 알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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