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닷컴'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코닷컴이 출범했다. 먼저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래서 앞 뒤 가리지 않고 몇 글자 적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떻게 이 일이 진행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필자는 발기인도 아니다. 또한 편집에 책임을 진 것도 아니다. 또한 한국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저런 우려들을 가늠해본다. 이 일이 어찌될 것인가!

몇 가지 생각의 파편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았다.

1. 코닷컴의 정체성: 정파냐 개혁기관이냐!

제일 먼저 코닷컴의 정체성이다. 코닷컴은 교회가 운영하는 공적인 언론기관이 아니다. 고신 교회를 섬기는 목사와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있지, 교회가 주축이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체성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고신 교회를 섬기는 목사와 장로들이 스스로 먼저 오늘의 고신 교회 현실을 반성하면서 현실을 타개하는 대안 언론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신 교회를 넘어서 한국 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위한 섬김을 자처했다.

코닷컴의 정체성은 교회가 운영 주체가 아니고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운영한다는 면에서 개혁주의 신학 체계 내에서는 이를 개혁기관(Reformed Organization)으로 이해한다. 개혁기관은 개혁주의 신학을 근거한 교회의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참된 교회로 존재하고 문화를 세우기 위한 노력의 구체적 증거이다. 이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교 문화관에 근거했던 고신 대학 설립 기초와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자연에 속하는 타락한 세상을 은총인 교회보다 우선시 하였던 카이퍼의 문화이해는 당시 화란 정권 창출과 깊이 관련된다. 보편 세상을 정치적으로 다스릴 수 있기 위해서 취했던 카이퍼의 문화관의 약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스킬더는 참된 문화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만이 가능함을 주장했고, 이후 기독교 문화의 본질은 나그네성에 기초한다고 설정이 되었다. 이런 나그네성은 실제로 비관주의적 선지주의로 구체화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죄의 권세가 득세하지만 그러나 경고하고 막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름이 문화활동을 하게 만든다. 죄와 대적한다는 측면에서 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나 사회 질서를 존중하고 돕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문화행위는 본질적으로 죄를 극복하는 대안적 의를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가능하다는 개혁주의 신앙에 견고히 서 있다.  

코닷컴의 정체성은 이제 교회가 주체가 아닌 성도들이 주체가 된 개혁기관이어야 한다. 교회를 진리로 보존하고 성도들을 세상가운데서 바르게 서도록 인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개혁기관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이렇게 정체성을 정리하면서, 고신 교회에서 코닷컴을 바라보는 한 우려스러운 시각을 정리해본다. 교회 정치의 한 정파의 무리들의 패거리 장소가 아닌가라는 우려이다. 부곡이나 돼지, 혹은 개혁이나 보수로 표현되는 현실 교회 정치의 한 파당의 대변지로서의 역할이다. 필자가 고신 교회의 현실에서 멀리 떠나 있는 현실이지만, 코닷컴의 등장을 단지 현실 정치의 결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단지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심 깊은 곳에 있는 내심은 관선이사 파송이라는 고신 교회 정치 현실만을 다루기 위해서 함께 모여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능력만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며, 성도들을 세상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열매맺도록 하는 일이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소망하며 나누었던 부름이 있다.

2. 왜 이때에 너희는…: 코닷컴의 현실적 부름

개혁기관은 역사 현실 속에서 존재한다. 교회 현실과 역사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진단하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그리고 갈 길을 보여야 한다. 언론으로서 개혁기관은 이런 역할의 총체적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어느 존재든지 존재가 시작되는 역사적 현장이 있다. 그것은 다양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왜 이때에 나서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들려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설명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어려움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성도들의 삶에 소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의 길을 보여주고 나누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코닷컴이 정파적 이득을 넘어서 과연 교회와 성도가 가진 복음에 기초를 두면서 그 복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내는가가, 코닷컴이 정파성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무리 말로서 아니라고 한들 소용이 없다. 복음의 능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길을 제시해 내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관선 이사 파송의 상처는 무엇을 말하는가?
문제로 파악된 현실을 교회 일선의 모든 성도들에게 제대로 홍보하여 철저한 회개의 길을 걷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회개의 결과 돌아서는 일을 견인하지 못했다. 김해 복음 병원의 문제를 이제서야 소상히 알게되고, 그리고 이것이 교회 질서를 왜곡하면서 변개하는 과정이며 결국은 오늘의 파국의 원인이 되었음을 어찌 고신 교회가 명확히 알았으리요.

또한 병원이나 대학의 진로이며 교회의 진로와 방향에 어떤 견인을 했는가? 사람의 진정성 만으로는 교회가 당하는 구조적이고 대항적 현실을 쉽게 타개하거나 견인하기가 어렵다. 현실을 복음에 기반을 둔 바른 성경해석을 통한 반성과 견인에 혹 게으르지 않았던가? 교회는 존재자체가 조직적이다. 방향을 조타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언론이어야 한다.

당장의 현실에서 눈을 들어보자. 로마교회와 루터교회 그리고 감리교회가 의화 교리에 대한 일치 선언을 하였다. 예장 통합 교회가 여기에 참여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신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여기에 동참하면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것인가? 누군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는가? 기독교보가, 신대원 교수회의가? 누가 우리 교회를 이해시키려고 하고 그리고 견인하는가?

3. 부름에 나설 자가 누구냐!

생각을 정리하면 부름 받은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누가 이 때를 위함인가?
삶을 던져서 헌신하는 일꾼이 누구인가? 주님은 누구를 준비해 놓으셨는가?

부름받은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다. 비록 자신의 부족과 허물, 또한 현실의 장벽 등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크고 소중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말씀과 약속이다.
이제 주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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