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파교회연구소 설립 및「고려파교회 신학전통」출판기념회

지난 2017년 4월 29일(토) 오전 11시 창원 새순교회(담임 박영호 목사, 동 연구소 이사장)에서 고려파교회연구소 창립 및 황권철 목사가 저술한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출판기념 예배가 감명 깊고 은혜로운 분위기 가운데,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정관에 따른 동 연구소 섬김 봉사자들과 자문위원, 소장, 임원, 이사 등 관계자들, 후원교회 회원들 및 한상동 목사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려파교회연구소 창립 및 황권철 목사가 저술한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출판기념회 참석자들

고려파 교회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952년 4월 29일 제37회 장로회 총회(대구서문교회)는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경남(법통)노회 총대들의 총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출옥성도들은 총회 교권자들로 부터 쫓겨났다.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출옥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1952년 9월 11일 제57회 경남(법통)노회가 진주성남 교회당에서 열렸다. 9월 22일부터 10월 12일까지 3주간 동안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자숙을 결의하였다. 이후 마산노회를 분립하면서, 경남 도청이 있는 창원을 중심으로 경남(법통)노회의 전통을 이어 받게 되었다.

제1부 예배: 옛날을 기억하라!

제1부 예배는 이상영 목사(명덕교회, 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사회자는 “지금부터 흔적이 있는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서”를 부른 후, 송선규 장로(영광교회시무, 동 연구소 회계)가 기도했다. 송 장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500년 전 종교개혁 슬로건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연구소를 통해서 선진들의 불굴의 신앙 유산을 이어 갈 수 있는 경남(법통) 노회가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이어 밀알교회‘주드림크로마하프’의 5중주가“에벤에셀의 하나님”곡을 찬양하였다.

설교자 박영호 목사는 신명기 32:1~13을 낭독한 후 “옛날을 기억하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특히 7절 말씀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하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는 말씀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박 목사는 강원도 산골에서 많이 심는 감자나, 대구 사과와 같은 맛있는 과일이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에 처음 들여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유래와 동기를 알게 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며, 뿌리를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창원 새순교회(담임 박영호 목사, 동 연구소 이사장)에서 고려파교회연구소 창립 및 황권철 목사가 저술한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출판기념 예배가 열렸다.

그는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에 언약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킬 계명이라고 하였다. 박 목사는“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십계명의 서론 말씀은 선민 이스라엘이 지난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라며, 십계명은 선민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신앙과 순결의 전통을 따라 고려파 교회의 진원지인 경남(법통)노회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있지만, 우리 경남(법통)노회는 고려파교회 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선진들의 신앙과 신학 전통을 이어가자고 역설하였다.

제2부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출판기념회

예배 후에 출판기념회가 허창수 목사(동성교회, 기독교문화연구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황권철 목사의 저서 『고려파교회 신학전통』에 대한 고신대학교 신학과 이상규 교수(역사신학 전공)의 서평이 있었다.

이 교수는 황권철 목사의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저서 출판은 귀한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여겨진다고 하였다. 이 교수는 헬라인은 잊혀지고 상실된 인간의 자취를 돌이켜 보자고 하였으나, 히브리인은 성경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자 하였다며, 역사 속에서 인간을 이끌어 가시는분은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는 황권철 목사가 저술한 책의 특징은 1) 한국교회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2) 읽기가 쉽고 문장이 간결하며 명료하고, 3) 고려파교회의 전통은 평양신학교를 계승한 고려신학교 설립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신앙의 선진들을 두었지만, 후손들이 시원찮거나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해서 오히려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고려파교회연구소가“명실상부한 연구소가 되기를 바란다. 고 했다.

이어서 강만구 목사(본산교회, 동 연구소 부소장)의 축시가 낭독되었다. 전임 총회장 윤희구 목사(창원한빛교회 원로목사)는 축사를 통해 “법통이라는 말의 참뜻과 의미는 장로회 총회로부터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쫓겨내려고 한데 대해, 우리가 법통이다. 라는 법률적 지위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며 출판을 축하했다.

『고려파교회 신학 전통』을 출간한 황권철 목사는 답사를 통해“오늘 고려파교회 연구소 설립과 동시에 출판기념회를 갖게 됨을 우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였으며, 특별히 준비 위원장이신 새순교회의 박영호 목사님과 함께 해주신 선배 목사님들과 동료, 후배 목사님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하였다.

황 목사는 경남노회사 100주년을 돌이켜 보면, 회개하지 아니한 죄가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고 하였다. 추천사를 쓴 배굉호 총회장과 전광식 총장, 변종길 전임 고려신학대학원 원장과 서평을 해 주신 이상규 교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고 했다.

특히 6. 25 이후에 박윤선 교장을 중심으로 선교사 등 다섯 명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당시의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평양신학교의 신학 전통이 부산의 고려신학교로 오기까지에는 이를 방해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간교함과 엄청난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한상동 목사님께서, 교권자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외롭고 힘든 가운데서도 너무나 힘에 부딪혀서 고군분투 하신 가운데, 승동 측과의 통합이나, 환원을 결정하신 점에 대해 이해가 된다며, 환원 결정이 없었다면, 고려신학교의 존재나 지금과 같은 고려학원은 존립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제3부 고려파교회연구소 설립 총회

제3부 연구소 설립 창립총회가 준비위원장 박영호 목사(동 연구소 이사장) 사회로 진행되었다. 양재한 장로(한빛교회, 연구위원)의 취지문 낭독이 있었고, 신진수 목사(한빛교회, 동 연구소 서기)가 경과보고를 한 후, 안동철 목사(창원교회, 동 연구소 서기)가 준비위원들을 소개했다.

사회자의 발안으로 정관 심의 및 통과가 진행되었고 정관 규정에 따라 임원이 선출되었다. 임원들에 대한 위촉장을 수여하고, 기타 토의 사항은 이사회에 일임하기로 하였으며, 박갑태 목사(은광교회, 자문위원)의 기도 후, 김수중 장로(명곡교회, 사무총장)가 인사 및 광고를 하므로 써, 모든 순서를 마쳤다. 고려파교회연구소 봉사자들은 다음과 같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학교법인 고려학원 강영안 이사장, 고신대학교 전광식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신원하 원장으로부터 축하 화환이 오기도 했다.

 

◆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추천사 - 총회장, 고신대학교 총장, 전 고려신학대학 원장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총회장 배굉호 목사는 『고려파교회 신학전통』 저술에 대해, 추천사에서, 저자는 1946년 9월 20일 개교한 고려신학교는 평양신학교의 복원임을 강조하였다. 당시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폐교한 상태였으며, 이후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부르짖던 출옥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신학교가 바로 고려신학교라는 점을 설명하므로 써, 고신교회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의 회복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하였다.

고신대학교 전광식 총장은“현재의 고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해 주는 유일한 귀한 책이다. 라고 하였으며 “고신의 뿌리와 정통성을 밝히는 소중한 책으로서, 저자가 선진들의 신앙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점이 매우 소중하다.”고 하였다.

전 고려신학대학원 변종길 박사는“고려신학교는 해방이후 생겨난 여러 신학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 평양신학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배교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출옥성도들의 강렬한 의지와 기도의 산물이 고려파교회의 태동이며, 고려신학대학원의 미래지향적 방향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제시해 주었다”고 하였다.

◆고려신학교 초기 교수들의 모습

고려신학교 초기에는 박윤선 박사와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박형용 박사가 잠시 고려신학교에 머물기도 하였다. 초기 고려신학교 교수로는 다음과 같은 분들이 있다.

1952년 고려신학교 교수일동 미 정통장로교 선교부 총무 갈부이트 목사 내한을 기념하며뒷줄 좌로부터 함일돈, 갈부이트, 오종덕, 한명동/ 앞줄 좌로부터 한부선, 박손혁, 이상근, 박윤선, 장석인, 한상동
1952년 고려신학교 교수 강사 11명 좌로부터- 한명동(성경신학) 장석인(교양과정) 이상근(신학)한상동(신학) 최의손(선교사 의사 자연과학) 오종덕(성경신학) 한부선(신학) 박손현(신학) 박윤선(신학) 마두원(선교사, 음악담당, 베토벤의 6대손) 함일돈(자연과학)
1954년 완공한 고려신학교를 배경으로 만족해하는 한부선 / Bruce F. Hunt 선교사(1903~1992) 는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 가결을 할 때“불법이요”하다가 밖으로 끌려 나갔다. 한부선 선교사의 아버지는 언더우드, 알렌 등과 한국선교를 하신 윌리암 헌트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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