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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독교는 사회통합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열린마당이 열리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대표회장 김경원 목사)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대내외적 과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35차 열린대화마당을 열었다. 5월 12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 연동교회(이성희 담임목사) 베들레헴 홀에서 열린 대화마당에는 윤영관 교수(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 외교부 장관)가 ‘평화통일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성희 목사(예장통합 총회장, 연동교회 담임목사)는 ‘한국사회 개혁의 주체로서의 한국교회’를 주제로 발표하였고 이후 질의 응답으로 순서를 마무리했다.

 

윤영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평화통일의 문제를 중심으로 /윤영관 교수

윤영관 교수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영적인 위기에서 찾았다. 강의를 요약해 본다.

한국사회의 영적인 위기: 아놀드 토인비는 “모든 역사의 껍질을 벗기고, 벗기면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영적인 문제”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그런 영적 기반을 제공하는 곳이며 한국의 미래 희망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티모시 캘러는 현대 서구 문명에서처럼 사람들이 돈, 권력, 섹스에 강박적으로 몰입해 사는 시대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내세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마음껏 즐기자는 사상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문명 속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편들이 돈, 권력, 섹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인데, 한국교계에 까지 밀려들어와 영적권위와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통일이나 평화 문제를 영적인 관점에서보다는 물질적 관념으로 보고 접근하기에 말만 통일하고 속으로는 “무슨 통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무슨 통일?”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본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오.(물질적 관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위기이다.

분단지속과 전쟁의 위기: 북한은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개발을 완료하였고 그것을 소형화하여 장거리대륙간탄도탄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핵실험과 미사일을 계속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곧 성공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은 이제사 그 실체를 깨닫고 심각하게 느껴 이를 최우선과제로 삼아 북한을 압박하고 선제타격까지 고려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안보위기를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새로 출범하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하루빨리 공조체제를 확립하고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국교회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평화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추구해 나가야 하는데, 통일을 이루는 방법을 생각할 때 통일을 둘러싸고 작동하는 두 가지 힘, 즉 원심력과 구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의 반대방향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국제정치적인 힘이 존재하고 있다. 즉 한반도 주변 4국들은 형식적으로는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를 선언하지만 내심으로는 통일이후 한국이 어느 방향으로 외교를 할지 불안해하기 때문에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따라서 통일을 하려면 이러한 원심력을 약화시키는 외교를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국제적 원심력을 압도할만한 우리 민족 내부의 구심력을 강화해야 한다. 즉 남북 간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응집하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원심력을 약화 시켜야 하는데 한국외교의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남북의 사람들 간의 통합을 통하여 구심력을 강하게 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의 역할(통일의 영적 차원): (1)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사람들 간의 화학적 결합이 긴요하다. (2)바로 여기에 말씀이 개입해야 한다,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데, 이웃사랑 (마태 22:39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을 통해서 남과 북의 사람과 사람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3)서독 정부와 주민들은 통일을 외치지 않으면서도 동독 주민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꾸준히 지원. 이것이 통일을 향한 구심력 강화를 낳았다. (4)북한 정권을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9년간 한국정부는 비핵화 문제에만 전념하면서 거의 모든 대북 접촉채널을 단절해버렸다. 비핵화 노력은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의 인간적 삶을 지원하는 노력을 중단시키지는 말았어야 했다. (5)이에 대해 한국 교회와 교인은 ‘이웃 사랑’의 계명차원에서 북한주민 및 탈북민 지원에 대해 한국 정부와 사회를 향해 강하게 적극적으로 발언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지금과 같은 긴장상황에서 남북경협 재개는 어려움이 있다. 유엔안보리제재결의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분야, 즉 북한에 대한 의료보건 협력사업, 환경협력 사업 등은 실천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에 페니실린 보내준다 해서 그것이 핵으로 전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삼림을 회복시키는 것은 한국의 주민들에게도 이득이 돌아오고 멀게 보아 통일이후에 대한 투자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한국 교회의 과제들: (1)가장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돌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신주의(物神主義)를 배격하고 통일관을 재정립해야. (마태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2)교회부터 앞장서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이웃 사랑’에 근거한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고 실천해야한다. (3)개 교회주의를 극복하고 교회, 교단 간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4)전체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탈북민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에 대한 선교 및 지원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결론> 한반도 통일과 한국 교회: (1)알렉산더 솔제니친-- 아직 소련의 공산지배가 한창이던 1983년 템플턴상 수상 연설에서 “6천만 명을 희생시킨 공산혁명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2)한반도 통일도 마찬가지. 통일 논의는 많은데 그 논의의 한 가운데에 계셔야 될 “하나님”이 빠져버렸다. “하나님”을 그 한 가운데 모셔놓는데 가장 주축이 되어야 될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3)한국 교회가 말씀에 따라 이러한 과제들을 실천, 남북주민들 간의 화학적 통합을 주도해내고 남북 주민들 간의 구심력을 강화하여 통일을 이룩하게 되면, 통일 한국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국력은 작을지라도 세계 선교의 중심, 영적 지도자 국가로 우뚝 서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꿈과 비전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성희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회 개혁의 주체로서의 한국교회 /이성희 목사

루터를 빼고는 독일을 상상할 수 없다(Deutschland und Lutherland)고 말할 정도로 독일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밀전하다. 그것이 그 사회의 밑바닥에 까려 있다.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이다. 도덕적인 부정도 있겠지만 한국교회는 그 시대마다 진리 문제를 가지고 충돌했다. 현재는 동성애문제, 이슬람 문제로 충돌한다. 사회가 한국교회를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그런데, 정치는 엉망이고 노조는 강성인데 경제는 부흥되고 수출은 최고치를 갱신한다. 모든 대통령은 다 죄인이다. 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발전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축복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는 2015인구주택 총조사를 주목한다. 기독교가 단연 1위이다. 그러나 사실은 무교가 더 많다. 이슬람이 밀고 들어온다. 방심하면 한국은 이슬람에 먹히고 만다. 북한은 더욱 그러하다. 만약에 북한이 이슬람화 되면 남한은 속수무책이 된다. 우리는 개혁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개혁은 수단이고 방법이다. 개혁 후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중세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함께 갔다. 인간성을 회복하자ᅟ그것이 르네상스라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개혁의 워밍업으로 원리적인 종교개혁이었다. 복음의 회복, 즉 믿음으로 구원 받는 원론으로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로마서는 루터의 교과서이다. 30년 후 칼뱅은 실천중심의 종교개혁운동을 했는데, 사회개조였다. 야고보서는 칼뱅의 교과서였다. 칼뱅은 마치 사회복지사같이 사회를 개조하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교회는 원론적인 종교개혁에 머물러는 안 된다. 사회를 개조하지 못하면 진정한 종교개혁이 아니다. 3.1운동 때 1.3%의 기독교가 조선사회를 움직였다. 오늘 날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위한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 그 거대담론을 해야 한다.

열린대화마당 좌로부터 사회 김호경 목사, 이성희 목사 윤영관 교수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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