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에 눈에 띄게 제도와 조직 그리고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침 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주목하게 된다. 인수위원회 없이 시작된 새 정부라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하지만, 무엇이든지 검증의 절차없이 급격하게 변화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혁명을 하면 급하게 모든 것이 변할 수 있지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촛불 시위의 중심인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소통도 좋지만 얼마든지 제도권 안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는데 광화문 광장을 제도의 틀 속에 넣어야 하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와 조직 그리고 사람이 바뀌었던 것을 많이 경험했지만, 그 정부가 마무리 될 때쯤 그 제도를 통해서 얼마나 국민들이 행복하고 사회가 밝아지고 나아졌는가를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미흡한 점들이 발견된다.
표를 얻기 위해 했던 공약을 지키겠다고 시작한 제도적 개혁이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 왔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고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구태의연한 방법과 제도를 답습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는 반드시 개혁해야 하지만 좀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하여 서서히 행동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갖게 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되고 결국은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돌다리도 두들겨서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급하게 바꾸거나 시행하게 되면 시행착오가 생기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제도 개선 이전에 진짜 소통이 필요한데 너무 조급한 나머지 그러한 과정도 없이 바로 실행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아 보인다.
예를 들어, 작년에 군형법 92조 6항의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적법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A 대위가 ‘게이데이트앱’을 통해 무분별하게 동성애자를 만나 군 기강을 저해하는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군 검찰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A 대위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A 대위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형이 확정되었다.
그러자 군 인권 단체와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몇몇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여 무죄석방요구를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법 자체를 무효화하기 위해서 국회에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새 정권이 들어서도 이 법률과 제도는 바뀌어서는 안된다. 상식적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한 법을 다시 국회에 개정안으로 내어 통과 시키려는 시도는 법 정신을 훼손하는 몇 몇 의원들의 인기몰이에 연연한 처사라고 여겨진다.
군이라고 하는 사회는 상명하복의 특수한 공동체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으로서 윤리와 도덕의식이 와해되면 불 보듯이 군인기강이 헤이해 지고 국가 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소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수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소수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꾼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고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법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본래의 의도와 뜻인 내용을 바꾸어야 그것이 진정한 개혁이고 개선이지 제도나 조직 그리고 사람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모든 조직체가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고 좋은 대안들을 찾아서 조금씩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급격한 변화는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한다. 개인이나 단체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를 수 있다. 틀린 것이 아니라면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노력에 의해 그 간격을 좁혀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모두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건전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교육하고 학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생각하면서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지난 2월에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그 나라가 이상적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꿈꾸며 무력으로 선량한 양민들 수백만 명을 학살한 현장을 돌아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점이 많았다. 킹링필드(killingfield)의 현장은 바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서 소위 부패한 사회를 바꾸어 보겠다는 야심찬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조직적인 범죄행위였고, 결국 역사에 오점만 남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사회는 다시 민주주의, 보수주의로 변하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잘못된 제도, 낡은 제도는 과감하게 시정되어야 하고 그 작업에 전적으로 협력해야 하지만 급조된 변혁은 조심해야 한다. 마음을 얻어가고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상생의 정치, 혹은 협치를 해야 한다. 독불 장군처럼 하면 피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반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 부임한 목회자가 지금까지 내려온 제도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단숨에 바꾸려고 하다가 큰 코 다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동안 해 온 것에 대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가운데 성도들의 마음을 얻고 서로 공동의 유익을 향하여 나아가야지 갑작스럽게 조직과 제도를 바꾸고 개혁의 기치를 들고 막 나가면 그 교회는 반드시 몸살을 앓게 되고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공동체를 인내를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시켜 나가면서 천천히 개혁해 가면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고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세우게 된다.
나라와 교회 그리고 교단을 바라보면, 제도개선 보다 내용(성경과 보편타당한 진리)에 충실하고 좋은 전통과 제도 그리고 문화를 유지하면서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각 교단들의 총회가 있고, 특히 우리교단의 개혁은 발등에 떨어진 시급한 과제이다. 의사소통과 계파 간의 협치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화합과 개혁에 앞장서는 교단으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계파간의 협치’라는 말이 묘합니다.
아직 우리 교단에 계파가 있고, 계파 문제를 급격히 개혁해서는 큰 코 다치고 몸살을 앓는다는 뜻의 느낌이 듭니다. 계파간의 협치... 계파 정치, 또 계파끼리 협력하여 무엇을 해보자는 것이야말로 힘들어도 개혁해야 할 핵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