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목사(열방교회 담임/ 본사 운영위원장)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세계 곳곳에서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는데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교회도 여러 교단과 단체 그리고 기관들이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러 가지 집회와 모임을 하고 있다. 바라건데 그냥 기념행사로 끝나지 않고 마틴 루터가 주장했던 성경적인 교훈들이 전교회와 성도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행하고 있는가를 깊이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한 달 내도록 곳곳에서 개혁을 부르짖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걱정하고 우려했던 것 보다는 아직 초두라서 인지는 몰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잘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초반 여론 조사 때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 그리고 국민들과의 소통을 우선순위로 삼고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가시적인 효과 일 것이다.

국민 윤리의식도 개혁되어야

청년 실업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고용을 증대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급선무이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작업이기 때문에 화려하게 진행을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만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정책을 시행해 간다면 큰코다치게 된다. 경제적 성장도 튼튼한 윤리의식과 도덕의 토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경제만 부르짖으면 결국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위기가 오면 쉽게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교훈 -IMF- 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제하면 오금을 못 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적 지표가 나아졌다고 생각되는 파트가 바로 주식시장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돈 놓고 돈 먹는다’는 식의 경제 논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사행심을 조장하고 결국 경제를 파국으로 이끄는 견인선이 될까 걱정스럽다.

경제가 가시적 이라면, 윤리와 도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보화와 같은 가치관의 열매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경제 성장 정책을 써야지 그러한 바탕 없이 경제만 주장하면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어 준 것 같은 위험천만한 일이 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며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하고 돈을 버는 과정도 정당하고 깨끗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탈세를 하면서까지 수입을 올리는 관행은 이제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공의와 정의다움 그리고 올바른 경제의식을 가질 때 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거뜬히 입성하게 될 것이다.

윤리 도덕의 개혁 없이 교회 회복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깨끗하고 투명한 재정운용과 더불어 성도들의 삶이 빛과 소금과 같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고 희생하는 맛깔스런 삶을 살 때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침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중세시대를 방불하게 하는 부정과 부조리 그리고 재정의 건전성 문제이다. 대형교회 비리의 주된 요인이 바로 재정의 부당사용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헌금한 막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재정과 관련하여 나중에 드러나는 바는 목회자들의 개인이나 가족들의 비리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기쁨으로 헌금하는 성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헌금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하는 일도 이제는 대부분 무관심 속에 있고,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구제나 긍휼헌금도 화려한 무늬만 남기고 있다. 교회 자체를 위해 대부분의 헌금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헌금하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회자들과 중직을 많은 직분자들의 윤리와 도덕의식이 너무 희박하다. 중세의 타락도 성직자들과 사제들의 윤리실종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매관매직과 도덕적 부패는 도를 넘었다. 개혁자 루터는 그러한 도덕과 윤리의 실종 하에서는 교리적 외침과 전통적인 관습이 한갖 메아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으로 돌아가서 믿음으로 행하자고 외쳤던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회복이 없이는 국가의 경제적 성장과 부흥도,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통한 부흥과 성장도 요원한 것이다.

총회 일군들도 도덕성 검증 필요

우리교단도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교단 총회로 모이게 된다. 교단을 위해서 앞장서서 일할 분들의 도덕성 검증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은 과거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교단의 중책을 맡으면 안 된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윤리의식이 올바른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총회 임원이 되어야 한다. 성적인 윤리부분에 있어서 구설수에 오르면 안된다. 거룩하고 순결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에 대해서 깨끗하고 투명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논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흠집이 있는 분들은 아예 섬기려고 얼굴을 내 밀면 안 된다.

상대방 흠집을 내기 위해서 비방성의 루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과 같이 그러한 편력이 있는 분은 스스로 물러 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서 성경적인 원리와 방법으로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게 목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왕적인 목회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공회의 일을 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거에 총회 임원들 중에 부도덕한 사람이 있어서 교단 전체가 망신을 당하고 이미지를 실추 시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분의 목회성공의 화려한 면만 보고 총회를 위한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

좀 능력이 부족해도 선한 믿음과 깨끗한 양심을 가진 청렴결백한 분이 총회의 일을 앞장서서 할 때 모든 교회가 협력을 하게 되고 우리 교단이 명실상부 크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사역이 먼저가 아니라 그 사역을 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우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우리가 교회와 교단 그리고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 봉사한다면 더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장관들의 청문회가 한창 진행 중이고 계속해서 장관들을 임명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있을 터인데 고위 공직자가 되는 일에도 여러 측면에서 도덕성을 검증하는 절차를 엄격하게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 특히 교단과 큰 기관의 장이되거나 임원이 되는 사람들은 더 엄격한 도덕성을 잣대를 대어야 하고 흠과 티와 주름 잡힘이 없는 무결한 사람을 세워야 할 것이다. 도덕성을 덮고 당사자의 능력과 재능을 먼저 생각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고 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집에 비유해보면 윤리와 도덕성은 그 집의 기초요 토대며 외형적인 집은 사역과 재능이니 우선순위는 단연코 윤리와 도덕성이다. 국회에서처럼 총회 선관위에서 현미경처럼 검증의 절차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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