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미군 군목 13명의 희생 이야기

이병길 목사

‘주목받지 못한 전쟁’(An unattended war)-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Unlike World War II and Vietnam, the Korean War did not get much media attention in the United States.)

그리고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될 뿐이다.

‘남한은 반공주의 독재자 이승만(1875-1965)이 미국 정부의 마지못한 지원을 누렸다.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자 김일성(1912-1994)이 소련의 열렬한 지지를 누렸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남·북한 병사가 전투에서 약1만 명이 사망했다.’(HC)

전쟁은 참혹했다. 전쟁에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은 약500만 명, 이는 전쟁 전 인구의 약10%인 이들 중 절반이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피해 수치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보다 훨씬 높았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 가용인원 90%를 파병했으며, 부담한 전쟁 비용만도 670억 달러에 이르렀다니 자유와 평화를 위한 비용치고는 상상이 안 되는 금액이다.(CNN)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군은 연인원 150만~180만 명이 참전하여 그중 33,628명(2000년 6월까지 보고 통계는 54,246명)이 전사했으며, 10여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BBC는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정답일 것 같다.

미군은 대한민국의 공산주의 적화통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막중한 기여를 했다.

미 해병은 424,000명이 참전하여 부산 방어전을 비롯하여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 북진 작전에서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 전과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공헌을 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미군이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영혼을 돌보는 군목(Army Chaplains)이 함께 있다. 미군 군목의 역사는 240여 년이 된다. 이들 군목들은 군 행정 편재성 미군 군종단(the US Army Chaplains Corps)의 종교적 지원을 받는다.

현재 2,700명의 군목들은 ‘하나님과 조국을 위하여’(Pro Deo et Patria; For God and Country)라는 군종단의 모토를 가지고 각 부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군 군목은 지휘관에게 비종교적 병사를 포함하여 모든 병사들에 대한 ‘자유 실천권리’(the free exercise rights)를 권고할 의무를 갖는다.

군목은 ‘군화신은 목자 ’(shepherd in combat boots)라고도 한다.

비전투요원으로서 군목은 총 대신에 성경을 소지하고 전투요원과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전장에서는 항상 위험 상황에 노출되며, 총상을 입고 쓰러진 병사를 마지막까지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적군 앞에서 자신의 방어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버지니아 주 헌던(Herndon)의 그레이스 힐 교회(Grace Hill Church) 장로인 조 카터(Joe Carter)는 웹사이트 《The Gospel Coalition》 편집자다. 그는 《TGC》시사 코너에 게재한 미군 ‘군목에 대하여 알아야 할 9가지 사실’(9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Military Chaplains)이라는 글에서 미국 ‘건국 이래 군대에서 활동하다가 희생된 군목은 모두 419명이라고 했다.

그들 중 독립전쟁 때 25명, 남북전쟁(연방측 11개, 남부연합 41개) 때 1명, 멕시코 전쟁 때 1명, 제1차 세계대전 때 23명, 제2차 세계대전 때 182명, 한국전쟁 때 13명, 베트남전쟁 때 15명,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1명이 각각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군종단(U.S. Army Chaplain Corps) 소속 8명의 군목이 미군 현역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명예훈장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를 받았다. 그들은 남북전쟁에서 4명, 중국 의화단사건(the Boxer Rebellion, 1899.11.2.-1901.9.7.)에서 1명, 베트남전쟁에서 2명,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1명이 수상되었다.

미군에서 군목제도는 1775년 7월29일, 대륙회의(The Continental Congress) 결의에 근거한 것인데, 대륙회의는 1777년 5월27일 각 군 지휘관에게 하루에 두 번씩 예배하도록 하는 종교의식 지침을 결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크 W. 존슨(Mark W. Johnson, U.S. Army Chaplain Corps April 9, 2013) 박사에 의하면(US Army),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5년 미 현역 군목은 8,141명, 그러나 1947년 말까지는 1,100명으로 감소되었고, 한국전쟁 직전에는 주 방위군과 예비군에 겨우 706명의 미군 군목이 남았다고 했다.

그중 한국전쟁에 가장 먼저 투입된 미군 군목은 바로 칼 R. 허드슨(Chaplain Carl R. Hudson)이다. 허드슨 군목은 미군 제24 보병사단(스미스부대, Task Force Smith), 제21 보병연대 540명과 함께 일본 주둔지를 출발, 부산을 경유하여 1950년 7월5일 이른 아침 오산 북쪽에 도착, 그곳에서 북한 인민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지리멸렬하는 미군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전쟁 중 가장 먼저 전사한 미 육군 군목은 제24 보병사단 제19 보병연대에 배속된 헤르만 G. 펠로텔러(Chaplain Herman  G. Felhoelter) 사제(司祭), 그는 대전 지역 금강 전투에서 미군의 방어선이 무너질 때 후퇴 대열에서 낙오된 부상병을 안고 기도하던 중 북한 수색대에게 발각되어 다른 병사 30여명과 함께 현장에서 총살당했다. 그의 나이 37세. 두 번째 희생된 군목은 제25보병사단 제35보병연대 군목 바이런 리(Byron D. Lee)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용사로서 1950년 7월 인민군의 전투기 폭격에 의하여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들 두 군목은 한국전쟁 중 희생된 13명의 군목 중 전쟁 초기에 가장 먼저 피해를 당했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의 철저한 준비에 의한 기습 공격 여파로 예비군과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한 미군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전투였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는 미군의 피해가 많았고 게다가 군목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무기를 휴대할 수 없는 비전투요원이었기에 희생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목회자가 전장에서 활동하는 군목들에게 본받아야 할 것, 그것은 피투성이가 된 병사를 안고 함께 씨름하는 것이 아닐까.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유엔군이 북한군을 추격하여 북진할 때 서부전선 주력부대였던 미 제8군단이 중공군과 마주한 것은 압록강을 저만치 둔 청천강·운산전투였다. 미 제1 기병사단 제8기병연대가 중공군에게 압도당하면서 미군들의 희생이 컸고, 배속된 군목들 역시 희생을 피할 수 없었다.

1950년 11월, 로마 천주교의 사제 에밀 카파운(Emil Kapaun) 군목이 중공군에게 포로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카파운이 운산전투에서중공군에게 포로 되기 바로 직전 그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쟁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웃음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한 달 후 케네스 히슬로(Kenneth C. Hyslop, 제19보병연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웨인 버듀(Wayne H. Burdue, 제2보병사단 제2보병대대), 로렌스 브룬너트(Lawrence F. Brunnert; 제7사단 제32보병연대) 군목 등이 포로 되었고, 다른 몇몇 군목들도 그 주간에 피아간 치열한 공방전 가운데서 희생되었다.

1952년 10월 19일 미 군목이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사무엘 심슨(Samuel R. Sympson; 제2보병사단 제38보병연대), 제임스 코너(James W. Conner; 제7보병사단 제31보병연대) 등 네 명의 군목은 포로 된 후 1953년까지 그들의 생존이 알려지지 않았고, 1950년 전쟁 중 희생된 군목은 모두 8명이며 다른 군목들은 포로 된 후 안타깝게도 그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에밀 카파운 군목은 2013년 4월11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최고의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US Army)

파커 톰슨 군목(Chaplain Parker Thomson)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120명의 미국 남침례교 군목 중 한 사람, 그는 1951년 5월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11월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포로 교환을 앞두고 전쟁은 교착 상태였다. 그는 전쟁 중 미군 병사들에게 전했던 자신의 설교에 대하여 ‘대부분의 설교는 본질적으로 복음적이었다.’(Most of my sermons were evangelistic in nature.)라고 회상하면서, ‘군인들은 삶과 죽음에 직면해 있었다.’(The soldiers were facing life and death situations.)라고 기억을 더듬었다.(namb.net)

전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다.

성경은 대부분의 전쟁이 항상 ‘죄의 결과’라고 가르친다.(롬3:10~18) 동시에 구약성경 전도서에는「사랑할 때가 있고 싫어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평안할 때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죄와 증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전쟁은 불가피하다.

하나님은 전쟁을 지지하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과연 평화주의자일까? 어떤 형태로든지 악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때때로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전쟁이 불가피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전쟁의 수단으로 히틀러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미국의 남북전쟁이 없었다면 아프리카 계 미국인은 얼마나 오랫동안 노예로 고통 받아야 했을까?

기독교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정부적이지도 않다.(롬13:1~4; 벧전2:17)

전쟁이 불가피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경건한 위정자와 비록 악한 위정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군대의 안전과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신령한 봉사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빌4:6~7)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시키시기까지 ‘사랑’을 멈추시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죄와 불의에 대하여는 편견 없는 ‘공의’로 다스리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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