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목사 /부암로교회 원로

친척 중에 오래전에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난 후 몇 년 만에 에이저에 걸려 돌아와서 수십 년을 폐인같이 지나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알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2016년 5월9일 “ 사후약방문”이라는 제목으로 이 코람데오닷컴에 동성연애 즉 퀴어 축제와 관계된 글을 실었다. 미국에서 동성애가 포함된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후에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갈등이 심해저서 택사스 지방과 몇몇 P C A (Presbyterian church American)에 소속된 모범적인 교회가 교단을 탈퇴하며 교단적 지도를 거부하고 있기에 갈등과 아픔을 겪고 있다.

요즈음 스웨덴에서는 성직자와 동성애와의 묘한 법률로 문제가 심각해저 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동안 서울 도심에서 인권위원회의 성소수자 옹호정책과 서울시장 박원순의 협조 아래 퀴어 축제 동성애자와 지지자들이 퀴어 축제를 하였다.

금년에도 지난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변함없는 퀴어 축제가 펼저젔다. 이번에도 여전히 드넓은 광장에서 노출이 심한 음란성 퀴어 축제였다. 한 참가자는 벌거벗은 몸에 ‘I am a GOD 라는 글씨가 붉은색으로 적어 방자한 모습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가나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보조금을 조건으로 동성애 실시 권면을 거절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 240개 국가중 동성애를 지지한 나라가 20여개 국가라고 한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차별금지법이 가결되면 우리는 사후약방문을 체험하리라. 소돔과 고모라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음이 확실하지 않을까?

7월17일자 국민일보 22 페지에 “돌아오라 돌아서라 돌아가자”라는 글과 인권 가장한 동성애 조장 확산 안 돤다“라는 기사가 올랐는데, 우리교단 기독교보에는 지민근 기자의 “동성에도 진정한 사랑이다.(?)”라는 기사가 떴다.

어떻게 이러한 애매모호한 표현이 적합한가? 동성애는 사랑이 아닌 무서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악이며 미래를 어둡게 한다. 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같은 신문 11 페지에는 한이협 신학 세미나 제목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속에 동성연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발제를 맡은 목사가 이 사상은 사도시대로 부터 온 사상이라고 했다. 동성애자들을 적으로 삼지 말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동성애자들을 사랑해야 함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죄는 단호히 용납해서는 안 된다. 죄인은 사랑하되 죄는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계를 위시하여 사회전반에 서서히 동성애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까? 교계의 대처는 너무 미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계 메스컴을 위시하여 각 교회 교단들이 먼 산의 불구경 하듯히 바라다보고 “불이 났네."라는 것에서 그친다. 이를 비판하는 것이 진실로 잘못된 마음일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되지 않을까? 주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 죄는 신약 시대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구약 창세기에서 시작된 죄악이며 이 죄악은 유황불로 태워버릴 죄악임을 창세기 19장에서 밝혀주며, 레위기18;22 20;13 삿19;22 .롬1;27 고전6;9 딤전1;8 -9에서도 무서운 죄악임을 밝혀 놓았다.

이 죄악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캄캄하게 만드는 인류 존속과 관계되는 오늘의 소돔 고모라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사회가 서서히 이 사상에 물들어 가는 것은 주님을 진노하게 하지 아니할까?

지난날 일제 신사참배를 통해 교회를 무너뜨린 것 같이 차별 금지법이 개인과 나라와 내일을 어둡게 하지 않을까? 이것이 신사참배보다 하찮은 일일까? 죄의 오염은 서서히 조직적으로 침투해오고 있는데 말이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고 있는 오늘날이여! 우리는 무엇보다 이런 때일 수록 내 자신과 교회와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목놓아 울고 부르짖고 매달려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생명 걸고 법제화를 막아야 한다. 퀴어 축제를 막아야 한다. 사후 약방문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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